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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정신 언제나 나에게 채찍”

전태일, 그 후 40년

  • 김지은| 신동아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

“전태일 정신 언제나 나에게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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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정신 언제나 나에게 채찍”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

김문수는 전태일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갔다면 손학규는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손학규는 40주기 추도사에서 “40년간 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웠지만, 이뤄진 게 무엇인지 자괴감이 든다. 지금까지도 노조를 무력화하고 탄압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참여당 김영대 최고위원은 10월 청계광장의 버들다리 위에서 유시민 의원과 나란히 서서 버들다리의 이름을 ‘전태일다리’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청계피복공장의 평범한 노동자였던 그를 노동운동가로, 민주노총의 부위원장과 민주노동당 창립멤버를 거쳐 현재의 국민참여당 최고위원로 이끈 정신적 지표가 된 인물이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의 희생정신은 노무현의 그것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기본을 지키기 위해, 희망을 알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바로 전태일과 노무현입니다.”

“대통령, 국회의원이 성공한 겁니까?”



민주노총을 조직하고 스스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그가 최근 가장 고민하는 것은 범야권의 통합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찾아 힘을 합하는 것, 그것은 비단 범야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사관계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전태일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청계피복노조위원장을 지낸 민종덕(58)은 1974년 청계천 헌책방에서 우연히 집어든 3년 묵은 ‘신동아’(1971년 1월·3월호)를 읽고 삶의 행로가 바뀌었다.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었어요. 노조가 뭔지 잘 몰랐지만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이소선 어머니를 찾아가 전태일 뒤를 따르겠다고 말했어요.”

장기표의 삶도 민종덕처럼 전태일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전태일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는 전태일의 친구로 기억된다. 얼마 전까지 그는 전태일재단 이사장으로 일했다. 그 자리가 못내 불편했다고 한다. “왜?”냐고 물었다.

“나는 정치를 해야 할 사람이에요.”

그는 1989년 이재오(65·특임장관), 김문수와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면서 재야인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그는 내년쯤 신당을 창당한다고 했다.

“정치적 열망과 소신이 또렷해요. 사람들은 내가 인간해방을 말하니 사회주의자인가보다 하지만 나는 사회주의에 반대합니다. 시회주의로는 이 시대에 걸맞은 인간해방을 실현하지 못해요.”

정치권에서 연거푸 실패한 그가 또 창당을 하겠단다.

“누가 성공했습니까? 대통령 되고, 국회의원 되면 성공한 겁니까? 아닙니다. 그게 성공이라면 그들이 주장하는 살기 좋은 세상이 왔어야죠. 그들이나 나나 아직 실패를 거듭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여의도의 낡은 빌딩에 터 잡은 신문명정책연구소에서 일한다. 장기표도 비정규직·실업을 한국이 풀어야 할 난제로 꼽았으나 노동계, 진보 진영의 주장과는 결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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