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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풀꽃들을 위한 변론

  • 박병원│ 前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풀꽃들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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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도 매력적입니다. 일본에서 매실을 생산하기 위해 개량한 청매실나무 과원들이 요즘 관광명소가 됐습니다. 이들은 화려하기가 어느 꽃에도 뒤지지 않겠지만 우리 옛 선인들이 사랑하던 그 나무, 그 꽃은 아닙니다. 우리 매화는 백매(白梅)도 표백을 한 듯이 그렇게 희지 않고, 홍매도 그다지 붉지 않습니다. 화엄사 대웅전과 각황전 사이에 있는 고매가 유일하게 짙은 붉은색을 자랑합니다만, 그냥 붉은빛이 좀 도는 정도입니다. 이런 우리 옛 매화를 보기 위해서는 경북 안동 병산서원이나 도산서원, 경남 산청의 정당매와 남명매를 찾아가십시오. 전남 순천 선암사나 전남 장성 백양사도 좋습니다. 기왕 이곳들 중 한 곳에 가신다면 매화 철에 맞춰 방문하실 것을 권합니다.

남해안의 경우 지심도나 거문도, 오동도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해안에 동백꽃 명소가 많습니다. 낙화하는 모습이 만개할 때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이기 때문에, 낙화 사진을 더 좋아하는 제게는 소중한 꽃입니다. 요즘 차 농원 관광도 유행하는데, 차밭만 둘러볼 것이 아니라 차꽃을 볼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동백은 차나뭇과입니다. 그래서 차나무 꽃도 초겨울에 핍니다. 작은 흰 동백 같은 차나무 꽃은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해서 피기 때문에, 제철에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모과나무 꽃은 세상의 분홍색 꽃 중에서도 가장 예쁘다고 생각합니다만, 보았다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나무의 키가 크고 꽃이 많이 달리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 대신 요즘 많이 심는 명자나무 꽃을 보시면 꿩 대신 닭은 될 수 있겠습니다. 명자나무는 모괏과의 관목인데다 꽃이 나무를 덮을 정도로 화려하게 피고 색깔도 흰색에서 분홍색, 주황색, 짙은 붉은색까지 있어 보기가 좋습니다. 그래도 신이 아니면 감히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모과 꽃의 신묘한 분홍색에 견주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풀꽃 얘기도 좀 해야지요.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책도 더 많은 종류가 나와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여름까지 미국 스탠퍼드대에 초빙교수로 머물며, 들꽃들을 열심히 보러 다녔습니다. 정말 부러운 것은 땅이 넓은 미국이라 그런지 풀꽃들이 살 수 있는 ‘그냥 풀밭’을 넉넉히 남겨두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땅을 공장이나 집을 세우고 농사를 짓는 데 쓰고, 나머지 땅은 너무 치밀하게 산림녹화를 해서 풀꽃이 살 공간을 별로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자연상태는 아니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풀꽃을 보려면 곰배령, 금대봉, 노고단 등 높은 산 위의 얼마 안 되는 공간을 일부러 찾아가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좋은 꽃나무를 계획적으로 심는 경우도 있고, 더 화려한 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식물원, 수목원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연 상태로 풀꽃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어쩌면, 사람의 손이 많이 간 곳보다 자연 상태의 풀밭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훨씬 더 귀하니까요.

꼭 한 번 보시길 권하고 싶은 꽃은 공교롭게도 모두 알뿌리에서 나오는 다년생들이네요. 그중 가장 화려한 것이 꽃무릇(石蒜)인데 전북 고창 선운사, 전남 영광 불갑사, 경남 함양 상림 세 곳에만 있다고 합니다. 저는 선운사 동백 숲 아래에 있는 꽃무릇을 봤는데 지금까지 국내에서 본 꽃 중 가장 화려했습니다. 함양 상림은 숲 중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데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풀꽃들을 위한 변론
朴炳元

1952년 부산 출생

서울대 법학과·동 대학원 졸업, 한국과학원 산업공학과 석사(경영과학) 미국 워싱턴대 석사(경제학)

前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前 우리금융지주 회장, 前 재정경제부 차관


다른 꽃으로 제주도 동쪽 난섬의 문주란이 있는데, 문주란의 흰 꽃이 섬 전체를 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섬이 바라다보이는 육지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주인에게 ‘배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해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데, 꼭 한 번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수많은 꽃의 아우성이 들렸습니다.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더 많은 분과 나눌 수 있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신동아 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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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前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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