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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논픽션 공모 우수작

땅문서에 이름표를 달아줘

  • 김상인

땅문서에 이름표를 달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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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땅

희뿌연 차창 밖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속도를 늦추며 전조등을 켜고 상향으로 불빛을 비춘 채 천천히 차를 몰았다. 비탈진 밭둑에서 고양이가 앙칼진 소리를 내며 잡은 쥐를 갈기갈기 물어뜯고 있다가 자동차 불빛에 앞발을 세운 채 눈알을 굴리는 게 보였다. 어디서 달려왔는지 개들도 흙을 파헤치고 뼈다귀를 핥으며 컹컹대고 있었다. 구린내가 진동을 하고, 날벌레와 파리떼가 희미하게 사라졌다 나타났다. 차창을 모두 닫았는데도 이토록 메스껍고 썩은 냄새가 차 속까지 파고들다니!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손으로 만지던 차석이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우리 다 눈뜬 장님이 된 거나 다를 바 없군요. 차라리 돌아가서 소장님을 모시고 옵시다. 이런 날 리더는 어떻게 측량을 하는지 서툰 목수가 좀 배워야겠어요.”

“조금 전에 못 봤어? 안개 속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꽃가루도 날리는 걸. 괜히 소장님 모시고 왔다가 날이 개면 낭패야. 오늘 우리가 배울 것은 경청이다. 거창읍 시가지 외곽엔 두 개의 마을이 있어. 동쪽은 동산마을이고,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서쪽은 성산마을이지. 마을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줘야 해. 듣다보면 봄 연무야 1시간 후면 개지 않겠어?”

흰 장갑을 끼고 차창을 닦던 막내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손동작을 멈췄다.



“동산마을이라면 나병 환자가 사는 곳 아닙니까? 그렇다면 성산마을 주민도 문둥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라고요? 마을 주민이 측량의뢰인은 아니잖아요!”

“윤 대리, 앞으로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마. 한센인이나 특수피부 질환자, 혹은 소외계층 장애인이라고 불러야지. 차석도 내 말 명심해. 측량신청은 군청 사회복지과에서 대신 한 거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건 마을 주민이야.”

두 팀원의 얼굴은 금세 바깥 날씨만큼이나 우울해졌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내가 말을 걸었다.

“우리처럼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가진 사람들은 무뚝뚝해 보이는 거 알지? 이미지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돼. 게다가 오늘같이 을씨년스러운 날씨엔 더 그렇지. 우리가 먼저 웃으면 해님도 얼굴을 내밀지 누가 알아. 거울은 절대 먼저 웃지 않는 법이거든.”

소하천의 다리를 건너자 아스팔트 포장 도로가 끝나고, 오래된 콘크리트 도로가 시작됐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정비된 듯한 진입로다. 이 길이 30년간 그 모양 그대로 머물러온 헌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양계장 축사의 지붕이 연무 사이로 조금씩 형태를 드러내는 걸 보며 마을 가까이 온 것을 실감했다. 점점 사방에서 찌든 때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중충한 색깔이 바람에 하수를 뒤집어쓴 들쥐처럼 떨고 있었다. 빛바랜 세상의 응달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한센인 거주 마을

소름끼칠 정도로 외로운 전조등 불빛이 마을 입구 화강암에 각인된 ‘성산(星山)마을’ 표지석을 비췄다. 마을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우리 일행은 마을회관 1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실내에서도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 같은 검은 안경을 쓴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남자 네 명이 의자에 앉아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명함을 꺼내 건네고 나머지 두 팀원도 소개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일어서더니 받은 명함은 보지도 않은 채 탁자에 놓고는 장갑 낀 손을 내게 내밀었다. 나의 오른손은 멀리 나가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자꾸 움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이소, 측량기사 양반! 우리는 지금 묵념과 기도를 올리고 있소. 이틀 전 우리 마을 원로 한 분이 돌아가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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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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