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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기획 | 多문화 한국, 그 불편한 진실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산다는 것

“엄마가 돈 벌러 왔지? 어서 돌아가라”

  • 육성철│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 ysreporter@yahoo.co.kr│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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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생이별

오산에서 화성 쪽으로 달리다 야산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가면 산꼭대기에 컨테이너로 지은 공장이 있다. 브러시나 붓을 만들 때 필요한 나무 손잡이를 만드는 곳이다. 사장과 필리핀 미등록 노동자 2명이 여기서 일한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면 톱밥과 먼지가 가득하다. 루이는 이곳에서 면 마스크를 쓰고 온종일 나무를 자르고 반질반질하게 다듬는다. 마스크가 톱밥과 먼지를 막아주지 못하는 작업장에서 레아는 5년간 일해왔다.

쪽문을 열고 두 번째 방으로 가면 시너 냄새가 코를 찌른다. 루이와 또 다른 필리핀 노동자가 다듬은 나무가 이곳으로 보내진다. 사장은 여기서 시너를 섞고 니스를 칠한다. 칠이 끝난 나무를 잠시 들여다보는 동안 현기증이 날 만큼 냄새가 지독했다. 사장은 작업할 때 방독면을 쓴다고 했다. 벽면에 환풍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면 마스크만큼이나 믿을 게 못되는 물건으로 보였다.

루이는 이곳으로 오기 전 다른 공장에서 8년간 일했다. 지금 일하는 공장의 사장 친척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공장에서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루이는 지금보다 조금 나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의의 화재로 사장은 불에 타 죽었다. 그 후 남편은 다른 공장으로 옮겼고, 레아는 현재 일하는 곳으로 왔다.

공장 사장은 루이의 이름 대신 “야, 이 새끼야”라고 부른다. 그 소리가 싫어서 공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며칠 뒤 사장이 돌아오라고 했을 때, “아니요, 그건 사장이 잘못한 거예요. ‘이 새끼’ 같은 말을 하면 안돼요. 나쁜 말 하지 말아요”라고 대꾸했다. 그날 이후 사장은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루이는 그것만으로도 한결 편안하다고 말한다.



연하는 몽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에서 화학을 전공한 엘리트다. 의사인 아버지는 연하에게 교수의 길을 권했다. 그러나 러시아 유학 중 남편을 만나 아기를 임신하고 결혼했다. 유학을 마치고 몽골로 돌아온 연하는 제약회사에서 5년간 일했다. 이후 몽골이 IMF 경제위기를 겪게 되자 소개비 500달러를 내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직업소개소에서 만난 한국인 미스터 리는 한 달에 몇 백만원씩 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사기라는 걸 알기까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유리공장에 취직한 연하는 뒤늦게 미스터 리가 사장에게 돈을 받고 몽골인을 팔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뭔가 크게 잘못됐지만 한국말이 서툰 연하는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미스터 리는 돈을 챙겨 잠적한 뒤였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연하는 우연히 몽골인들과 연락하다가 미스터 리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수소문 끝에 미스터 리가 20대 몽골 여성과 산다는 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몽골 여인은 미스터 리가 더 이상 그곳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연하는 몇 년 뒤 다시 몽골 여성을 찾아갔는데, 그날 미스터 리가 몽골, 필리핀, 중국 등을 돌면서 동일한 방법으로 취업사기를 치다가 중국 마피아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을 몽골에서 데려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아들을 맡길 곳이 없어 아침에 출근하면서 하루 동안 먹을 음식과 과자, 장난감 그리고 변기통을 넣고 문을 잠갔다. 일하다가 걱정되면 화장실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달려와 아들을 보았다. 그러나 방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 창문으로만 훔쳐보고 다시 공장으로 뛰어갔다. 행여 아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들이 펑펑 울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연하의 아들은 요즘 사춘기를 겪고 있다. 아들도 미등록이라 항상 불안해하는 눈치지만 엄마로서 이 문제를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건드려봐야 대책은 없고 상처만 날까 싶어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다. 아들은 대학에 가고 싶어하지만 갈 수 있을지 미지수고, 설사 간다 해도 등록금을 댈 형편이 못된다. 이래저래 아들의 미래는 막막하다.

아들은 몽골어를 못한다. 엄마는 먹고 살기 바빠 가르칠 시간이 없었다. 이제 와 후회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아들은 한국에서 살고 싶어한다. 몽골 음식도 먹지 못한다. 아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몸도 마음도 다 한국인이다. 심지어 한국을 자기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의 꿈은 아들이 또래의 한국 젊은이들처럼 직장을 다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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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 ysreporter@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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