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한국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채널A 특강 지상중계

  • 신성미│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avoring@donga.com

    입력2012-02-21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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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았습니다. 정의와 공정, 연대, 공공성 등 커다란 이슈에 대해 남녀노소 함께 모여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토론을 벌인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1월 18일 채널A 오픈 스튜디오에서 공개 특강을 진행했다. 채널A와 동아일보,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박진근)가 공동 기획한 ‘마이클 샌델 초청 특별토론 공생발전과 정의’ 특강에서 사회를 맡은 샌델 교수는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주성 한국교원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홍권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 4명의 전문가 패널과 함께 2시간 반 동안 토론을 이끌었다.
    “한국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
    마이클 샌델(59) 교수의 공개 특강이 열린 1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사옥 1층 채널A 오픈 스튜디오 주변은 구경꾼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투명 통유리 밖에서 녹화 과정을 지켜보려고 몰려든 시민들이었다. 오픈 스튜디오는 외벽이 투명 통유리로 만들어져 녹화 과정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덕분에 스튜디오 안쪽의 방청객들 외에도 녹화가 진행된 2시간 반 동안 300명이 넘는 시민이 밖에서 토론을 지켜봤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외부에 설치된 대형 TV 2대와 스피커를 통해 스튜디오 안의 특강을 볼 수 있었고, 스튜디오 내 방청객처럼 마이크를 잡고 직접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스타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처럼 이들은 세계적 석학이 이끄는 토론을 흥미 있게 들여다봤다.

    샌델 교수는 1980년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된 이후 30년 이상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책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학자로 떠올랐다.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5월 국내 번역 출간 이후 110만 부 이상 팔리며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다. 그해 8월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샌델 교수의 강연회에는 4500여 명이 몰린 바 있다.

    공개 특강 첫머리에서 샌델 교수는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시장 주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으나 그에 수반되는 소득격차 확대 등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한국에서 불거진 윤리, 정의, 공정사회, 공공선을 어떻게 실현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논의는 ‘쌍방향’ 대화로 진행하겠다”며 “민주사회에서는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앞서 상대방을 존중해가며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논쟁을 벌이는 공론화 습관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이날 오픈 스튜디오는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샌델 교수가 소크라테스처럼 청중과 패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이들의 토론에 불을 붙였고, 청중은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열띤 공론의 장이었다.

    패널석에는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주성 한국교원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홍권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 4명의 전문가가 자리했다. 스튜디오에는 채널A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방청을 신청한 뒤 추첨으로 뽑힌 방청객 40여 명이 함께했다. 추운 날씨에도 녹화 시작 2시간 전부터 모이기 시작한 이들의 손에는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다. 이 책의 영어 원서를 끼고 온 방청객도 보였다. 주로 20대인 방청객들은 중요한 전공 수업을 수강하듯 각자 수첩을 꺼내 꼼꼼히 메모하며 진지하게 토론에 귀를 기울였다.

    공생발전 성찰하는 쌍방향 공론장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공정하지 않다? 아니다. 불평등은 저마다 노력의 결과이므로 꼭 공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공에는 노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 아니다. 성공에 노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어 1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한다면 노령연금을 확충하겠는가,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는가.”

    동시통역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내내 샌델 교수는 상반된 명제를 제시하며 청중이 손을 들어 의견을 표명하길 주문했다. 그는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고령화 사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등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현안을 다루면서 단순히 이슈의 표면만 바라보기보다는 그 바탕을 이루는 본질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먼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샌델 교수는 “한국은 미국과 유럽 등 다른 자본주의 사회와 비교할 때 평등주의 성향이 강한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이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강석훈 교수는 “하위계층 20%의 소득 대비 상위계층 20%의 소득의 비율인 5분위 소득배율이 1990년 4에서 최근 6으로 증가했고, 빈곤층의 비율은 1990년 약 8%에서 최근 약 15%로 늘었다. 20여 년 사이에 소득격차는 확대되고 빈곤층의 비율은 증가한 것”이라고 뒷받침했다.

    샌델 교수는 방청객은 물론 스튜디오 밖 시민들에게까지 의사 표현 기회를 줬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손들어주세요. 자, 창밖에서 보시는 분들도 같이 투표해주시고요. 이번엔 ‘경제적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과 성취의 정도를 반영하므로 공정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손들어주세요.”

    서로 다른 쪽에 손을 든 방청객을 둘러보며 샌델 교수가 그 이유를 물었다. 이때부터 토론은 자연스럽게 불붙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

    채널A 오픈스튜디오 밖에서도 청강 열기는 뜨거웠다.

    방청객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격차는 어쩔 수 없으니 이를 불공정하다고 탓하기보다는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에 더 큰 가치를 창출하므로 돈을 많이 벌 자격이 있다” “부의 성취 여부는 개인적 노력이나 능력의 결과만이 아니라 어느 가정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출생의 배경에도 달려 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회구조도 감안해야 한다” “빈부격차의 확대는 소외감을 일으켜 사회 결속력을 해친다”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토론의 열기가 뜨거워질 때마다 샌델 교수는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른손으로는 요점을 강조하는 특유의 제스처로 좌중을 이끌었다.

    ‘사회적 경제적 성공은 능력보다 운에 좌우될까’를 놓고 벌인 토론에서 샌델 교수는 방청객들에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의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 방청석에서 “김연아” “박지성”에 이어 누군가가 “마이클 샌델”이라고 외치자 샌델 교수의 얼굴이 빨개졌고 녹화장은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샌델 교수는 “제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잊어버렸다”며 웃다가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떠올려보죠.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농구공을 골대에 잘 넣는 능력 덕분에 높은 연봉을 받습니다. 마침 우리 사회가 농구를 즐기기 때문에 그의 기량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스포츠보다 전쟁이 중요했던 수백 년 전에도 공 잘 던지는 사람에게 그만큼 대우를 해줬을까요? 저처럼 철학 강의를 하는 사람이 과연 그 당시 높이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런 시대를 타고난 것은 운이 아닐까요?”

    그는 “교육이야말로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표적 방법이지만 부모의 부가 자녀의 교육 기회로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한국 통계청의 자료를 제시했다. 한국에서 소득기준 상위 20% 계층이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하위 20% 계층의 사교육비와 비교해 9배나 높다는 것. 논의는 자연스럽게 ‘반값 등록금’ 이슈로 이어졌다.

    반값 등록금의 해법

    샌델 교수는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며 질문을 했다. “1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면 이를 노령연금 확충에 쓰는 것이 옳을까요,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는 데 쓰는 것이 옳을까요? 결정하기 좀 어렵지만 각각 손 들어주시겠어요?” 방청객과 시민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한 방청객은 “대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벌 수 있지만 퇴직자나 고령자가 되면 사회적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다”라며 노인을 부양하는 데 예산을 써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때 창밖에서 녹화를 지켜보던 한 청소년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여학생은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을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 오예슬”이라고 소개한 뒤 “노년층을 부양할 젊은 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대학등록금을 줄여 젊은이들에게 더 큰 교육 혜택을 주면 나중에 이들이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게 되어 노년층을 부양할 수 있다”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이 여학생에게 샌델 교수는 “정말 열여섯 살이 맞느냐”며 놀라워했고 녹화장 분위기는 한층 편안해졌다.

    특히 샌델 교수가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는 방안과 빈곤층 대학생에게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 중 어떤 것을 지지하느냐”고 물으면서 젊은 방청객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놨다. “빈곤층 대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준다면 걱정 없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게 돼 최상의 성과를 낼 것이다.” “장학금 혜택이 일부에게만 돌아가면 연대감이 저하돼 사회적 의무 이행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모두에게 혜택을 주기엔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빈곤층에게만 장학금을 지원함으로써 격차를 줄이고 기회의 평등을 유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복지는 모두가 가져가는 선물 보따리가 아니다.”

    최근 대기업슈퍼마켓(SSM)의 구멍가게 잠식, 재벌 2,3세들의 빵집 경영으로 인한 영세상인의 피해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영세상인의 상생에 대한 쟁점이 불거지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토론도 이어졌다. 샌델 교수가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세계화된 무한경쟁의 시대에 대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으려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로부터 최대한 유리한 납품 가격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반면 대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발휘해 납품업체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요. 어떤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시나요?”

    홍권희 논설위원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느 혼자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들의 상생과 관련한 미해결 문제를 사회적으로 함께 고쳐 나가보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만흠 원장은 “우리 헌법에는 경제 주체들의 조화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서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다고 써 있다. 현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이들의 상생 문제를 시장경제에만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강석훈 교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 단가를 낮추라고 하는 것은 아주 정당하다. 납품단가를 낮춰 발생하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발전하면 그 발전의 여력으로 중소기업들도 발전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정의를 기반으로 논의해야

    이후 토론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정부가 규제하는 문제로까지 번졌다. 샌델 교수는 모든 의견을 청취한 뒤 “엄청난 시장지배력을 가진 대기업도 있고 그렇지 못한 회사도 있다. 이는 시장경제체제 아래서는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토론을 활발히 벌일 수 있었던 건 우리 모두 시장만이 정의를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벌어진 결과에 대해 정의의 원칙을 기반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공론은 당장 보편적인 합의나 해결책을 도출하진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 함께 상호존중하면서 서로 의견을 경청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고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오픈 스튜디오가 이끈 ‘살아 있는 아테네 학당’

    “한국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

    샌델 교수가 방청객에게 질문하고 있다.

    녹화가 끝나자 방청객들은 각자 준비해온 샌델 교수의 저서를 들고 샌델 교수에게 다가가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표정은 마치 스타를 만난 팬의 모습 같았다. 방청객 오한솔(23·대학생) 씨는 “평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오늘 세계적 석학과 함께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가져서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 밖에서 녹화를 지켜본 청중도 꽤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김원상(23·대학생) 씨는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 동영상을 보고 직접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밖에서도 방청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며 “교수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는 강의가 아니라 패널 및 방청객과 소통하며 다양한 의견을 듣는 모습이 신선했다”고 말했다. 신재섭(26·대학원생) 씨는 “지나가다 우연히 토론을 구경했는데 오픈 스튜디오로 누구나 강의를 듣게 하고 밖의 시민들에게도 발언권을 주는 형식은 지금까지 국내 방송에선 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날 채널A의 오픈 스튜디오와 주변 청계광장 일대는 남녀노소가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살아 있는 아테네 학당’이었다. 채널A는 이날 녹화된 공개 특강을 1월 20일 오후 8시 50분부터 방송했다. 이날 방송은 채널A 홈페이지(http://tv.ichannela.com/culture/justice)를 통해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샌델이 남긴 건 정의가 아니다

    이날 녹화 현장에서 샌델 교수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당신 이름은 뭐죠?” 샌델 교수가 방청객들과 스튜디오 밖 시민들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일일이 이름을 물어본 것이다.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이름을 밝히는 것은 토론의 기초이자 예절이다. 하지만 강연자와 쌍방향 토론을 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한국 청중은 의견을 말한 뒤 샌델 교수가 이름을 묻고 나서야 약간은 어색한 표정으로 이름을 밝혔다. 그때마다 샌델 교수는 청중이 말해준 이름을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부르며 존중을 표현하고 상대와 눈을 맞추며 자연스러운 소통을 이끌었다. 이날 샌델 교수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바로 ‘What's your name(이름이 뭡니까)’과 ‘Raise your hand(손들어보세요)’였다.

    이는 하버드대 명강의로 꼽히는 그의 ‘정의’ 수업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정의’는 1000여 명이 듣는 대형 강의지만 토론식 진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수업은 정의에 관한 학자들의 이론을 주입하거나 샌델 교수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생들 스스로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정의에 대해 사고하게 만든다. 지난해 1월 EBS에서 샌델 교수의 강의 동영상을 ‘하버드 특강-정의’라는 제목으로 12회에 걸쳐 방영해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채널A가 방영한 강연에서도 샌델 교수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지 않았다. 묻고 또 물으면서 청중으로 하여금 스스로 사회 현안과 그 바탕에 깔린 철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방청객들은 토론에 자유롭게 참여할 것이라는 사전 공지를 받지 못했기에 처음엔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 기존에 한국에서 방영된 강연 프로그램들은 강사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 대부분이었고 토론 프로그램 역시 사회자와 소수의 토론자끼리 토론을 이끌어가는 형식이 주를 이뤄 샌델 교수의 강연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소수정예 수업에서조차 토론식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국내 대학 강의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뿐이었다. 샌델 교수가 토론에 불을 지피면서 방청객들은 점차 열기를 띠어갔다.

    주로 20대인 방청객들은 녹화가 끝난 뒤 제작진에게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샌델 교수가 내 의견을 경청해줘서 참 고마웠다” “딱딱할 수 있는 주제들인데도 2시간 반이 후딱 지나갔다” “한 공간에서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의견을 들으니 집중도 잘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신나했다. 방청객들의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호응은 제작진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 딱딱해 보이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인문서 단행본 가운데 이례적으로 110만 부 이상 팔린 것도 그의 토론식 강의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책에는 방대한 철학 지식도, 정의(正義)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정의(定義)도 나와 있지 않다. 강의와 마찬가지로 책에서도 그는 독자로 하여금 다각도로 사고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이끄는 항해사 역할만을 했다. 그의 인도대로 주체적인 지적 유희에 빨려들어간 독자들이 이례적인 밀리언셀러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4월 말에는 샌델 교수의 새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간될 예정이다.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온 주요 주제들을 이어서 논의하되 시장과 돈에 관한 내용을 확대해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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