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적당한 스트레스로 재미와 실력 모두 업!

내기 골프의 세계

  • 정연진 │골프라이터 jyj1756@hanmail.net

    입력2012-02-21 13: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골퍼들 대부분이 내기를 한다. 필요악이라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내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넘치면 역효과를 내지만, 조금 모자라면 긍정적인 면이 있다. 적당한 내기는 재미와 실력을 얻느냐, 마느냐를 가름하기도 한다. 내기를 적절히 활용하면 괜찮은 동반자, 훌륭한 캐디와 함께 라운드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적당한 스트레스로 재미와 실력 모두 업!
    경기도 포천의 한 회원제 골프장. 앞 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중년의 남녀가 2명씩 짝지어 한 팀을 이뤘는데, 게임이 계속 지연됐다. 남성 한 명이 한 여성에게 필드 레슨을 했다. 여성은 귀찮다는 듯 샷을 한 후 곧바로 그린을 향했다. 그늘집에서도 그 남성은 여성에게 뭔가 열심히 설명했다. 여성의 표정이 금방 일그러졌다. 결국 후반 12번 홀에서 사달이 일어났다. 여성이 세컨드샷 지점에서 클럽을 내던지고 클럽하우스 방향으로 사라졌다.

    나중에 캐디로부터 들은 사건 개요는 이렇다. 이 골프장의 회원인 한 남성이 친구 부부를 초대했다. 문제는 초대받은 남성의 부인이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친구 부부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남편은 부인의 스윙을 일일이 지적했다. 더욱이 점심 내기까지 걸린 게임이었다. 남편의 행동에 자존심이 상한 부인은 급기야 게임을 포기했다. 부인은 택시를 불러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기분 좋게 즐기자고 내기를 했다가 죽자고 달려든 꼴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내기의 속성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넘치느니 모자란 게 낫다’는 뜻이다. 내기 골프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다. 적당한 내기는 게임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흥미를 높이고, 실력을 향상시킨다. 반면 과도하면 역효과를 낸다. 골프 특유의 흥미는 사라지고 스윙이 망가질 수도 있다. 심한 경우 동반자들과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정규명(54) 씨는 80타대 중반의 준수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정 씨는 친구들과 라운드할 때 항상 스트로크 내기를 한다. 보통 1타에 1만 원을 건다. 동반자들 모두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도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파4 홀에서 한 명이 수십만 원을 잃을 수 있다. 배판인 홀에서 한 명이 양파를 하고 나머지 세 명이 파를 했다고 치자. 양파를 한 골퍼는 세 명에게 모두 24만 원을 주어야 한다. 한 라운드에서 100만 원 넘게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 씨는 내기 골프에 장단점이 있다고 말한다.



    “보기 플레이어일 때 친구들한테 매번 당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이 상했다. 초보 때도 받지 않은 레슨을 신청했다. 열심히 연습하고 골프장을 자주 가니 실력이 금방 늘었다. 지금은 ‘봉’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돼 자존심을 회복했다. 내기에 집착하다 보면 라운드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가 있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돈 앞에 성인군자 없다. 게임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여유가 사라졌다. 100돌이를 벗어나면서 느꼈던 전율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내기를 하지 않으면 골프 자체가 재미가 없다. 골프에 빠진 게 아니라 내기에 중독된 기분이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대기업에 다니는 이종수(46) 씨는 만년 비기너다. 골프가 재미있긴 하지만, 핸디캡에 몰입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 씨는 친구들과 한 사람당 5만 원을 내는 스킨스 게임을 즐긴다. 단 한 홀을 이기지 못해도 5만 원만 잃으면 된다. 게다가 돈을 딴 사람이 캐디피를 내도록 암묵적인 룰을 만들어 부담이 덜하다. 이 씨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스킨스는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내가 딸 수 있는 내기다. 가끔 행운이 따라와 한 홀을 먹으면 괜히 웃음이 나온다. 내기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어 라운드 내내 분위기가 유쾌하다. 다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너무 건성건성 친다는 생각이 든다. 스킨스에 싫증이 나면 스트로크로 내기를 바꾼다. 그렇더라도 타당 1000~2000원을 넘기지 않는다. 모처럼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스트로크와 스킨스, 골퍼의 선택은?

    내기 골프는 크게 스트로크와 스킨스로 나뉜다. 스트로크는 1타당 얼마씩 계산해 스코어가 좋은 골퍼에게 주는 게임이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흔히 하는 내기다. 특히 고수들이 애용하는 방식이다. 고수가 하수에 비해 유리한 게임이 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골퍼마다 핸디캡을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스트로크의 묘미는 박진감이다. 18홀 내내 긴장감을 유지해야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스킬과 집중력이 부족한 하수에게는 아무래도 불리한 내기다.

    스트로크는 골프의 특수성과 잘 맞는다. 혼자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골퍼의 실력에 따라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역으로 행운은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샷 하나마다 돈이 걸려 있는 까닭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단기간에 느는 장점이 있다. 반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스윙이 망가질 수 있다. 동반자들 사이에 타수를 놓고 삿대질이 오갈 수 있다. 즐기러 갔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오는 경우다.

    일명 ‘빼먹기’라고 하는 스킨스는 단순한 게임이다. 한 홀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골퍼가 상금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실력이 떨어지거나 친선게임을 지향할 때 즐겨 선택한다. 한 사람이 주최하고 나머지 세 사람이 접대를 받는 상황에서 추천(?)되는 게임이다.

    스킨스는 스트로크와 비교해 박진감이 떨어진다. 한 홀에서 이기지 못해도 다음 홀을 기대할 수 있다. 동반자들에 비해 실력이 모자라도 꼭 잃으란 법이 없다. 하수라도 행운이 따르면 그 홀의 상금을 가져갈 수 있는 게임이다. 굳이 샷 한 번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내 방식대로 라운드를 운용할 여지가 많다. 반대로 실수가 나오면 한 홀을 쉽게 포기하게 된다. 이런 홀이 쌓이면 전체 스코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스킨스로 실력을 다지기 쉽지 않은 이유다.

    스킨스에서 가지치기를 한 내기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라스베이거스, OECD, 조폭스킨스, 후세인 등 이름과 방식도 재미있다. 골프를 위해서인지, 내기를 위해서인지 헷갈릴 정도다. 물론 수수하게 내기를 즐기는 골퍼들도 있다. 스코어에 따라 캐디피나 밥값을 내는 정도다.

    동반자를 배려하는 내기 골프의 에티켓

    내기 골프가 일반화되면서 내기 골프 에티켓도 생겨났다. 내기 골프 매너의 십계명, 내기 골프 에티켓 8가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골프 에티켓과 일맥상통하는 내기 골프의 10도(道)는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 중 한 가지만 소개하면 ‘돈보다 내기, 내기보다는 동반자의 마음을 우선한다. 승부에서 이기면 아낌없이 전리품을 분배하고 화기애매한 분위기 속에 식탁에 앉으니 이를 애(愛)라 한다’이다. 경력 20년차인 한 레슨프로의 다음 설명은 라운드 나가기 전 한 번쯤 곱씹게 한다.

    “우리나라 골퍼의 99%가 내기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도박 골프가 사회적 문제가 되어 종종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 그렇다면 내기와 도박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액수의 문제일까? 코스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돈만 보인다면, 그건 도박에 속한다. 샷에 신중하면서 동반자들과 즐길 수 있다면, 내기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어떤 분야든 적당한 스트레스는 일의 능률을 올려준다. 골프에서 내기를 적당한 스트레스로 여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넘치지 않고 약간 모자란 듯 내기를 하는 골퍼가 현명하다.”

    어떤 내기를 하고 얼마를 거는 것이 합당한지는 정답이 없다. 라운드 상황이나 동반자 성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내기의 긍정적인 면을 십분 활용하는 게 가장 좋다. 재미와 실력을 모두 끌어올릴 수 있다면 굳이 내기를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