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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⑨

여로(旅路) 그 물음과 깨달음을 얻는 길

정선 편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여로(旅路) 그 물음과 깨달음을 얻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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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중, 외로운 봉분 하나를 마주해서 떠올린 시가 이것이다. 겨울 산이 아니고 또 자작나무가 없다고 해서 분위기가 달라질 바는 아니다. 검은 나무기둥 사이에 간간이 키를 세우고 있는 흰 몸체의 자작나무를, 시인은 머리칼 속의 ‘새치’ 혹은 ‘흑판의 백묵선’으로 비유하고 있다. 지극히 감각적이다. 감각을 감각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것을 존재의 심원을 찌르는 표창으로 써먹을 줄 아는 안목과 능숙한 기술이 이 시인의 뛰어남이다. 놀랍지 않은가.

새치와 백묵선은 이내 ‘뼈다귀’로 심화되고 흩어졌던 길들이 숲이 됐다는, 발상의 전환이 따른다. 염불하고 기도해서 그 뼈다귀까지 다 갈아 마시면 뭐가 될까. 결국 우리가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처럼 생긴 무덤 하나가 다인가. 그러고도 자꾸 살아 있는 자들의 걸음을 붙잡곤 한다. 보따리 싸서 야반도주하려는 엄마 앞에 팔 벌리고 서서 ‘엄마, 가지 마, 가지 마!’ 소리치는 눈물범벅의 어린애 모습을 떠올려본다. 우리 인생이 다 그렇다. 살아서 외롭고 죽어서 더 외롭다.

견고한 내 등산화 앞에 떨어지는 햇빛을 보면서, 정말이지 나 또한 대제학의 ‘외로움’을 생각해보려고 애썼지만 무망한 일이다. 문득 무덤 앞의 수림이 너른 호수의 물결처럼 보였다. 그 가없는 물결을 바라보는 가운데 대제학에게 던졌던 물음들이 예리한 통증과 더불어 내게로 되돌아왔다.

‘너는 어찌해서 이곳에 있는가, 네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가?’

가리왕산을 나와 33번 국도를 계속 진행하면 나전에서 42번 국도와 만난다. 이 도로로 옮겨 타 남쪽으로 달리면 정선 읍내에 이르고 북으로 가면 아우라지가 있는 여량을 거쳐 구절리 또는 동해시로 갈 수 있다.



내륙의 땅끝마을 구절리

어쩌면 이편 동네는 땅 이름, 물 이름마저 이렇게 예쁠까. 동강의 최상류가 되는 송천과 골지천이 여량에서 하나 된다 해서 이곳 물 이름이 아우라지다. 여량에서 송천 물길을 좇아 산협으로 파고들면 상원산과 다락산 너머 편에 있는 내륙의 땅끝마을 구절리에 닿는다. 맑은 냇물이 마을 앞을 휘돌아 흐르고 노추산이 마을 뒤편에 서서 하늘을 가린다. 간신히 물길을 따라왔던 철길 또한 여기서 끝나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한다.

손자까지 둔 연령에 사내들도 쉬 하지 못하는 백두대간 종주를 거뜬히 마친 시인 이향지는 특히 이곳 구절리에 대한 시를 많이 쓰고 있다. 구절리의 어여쁨과 구절리의 한숨이 모두 그들 시에 배어 있다.

저 바람엔

들이켜면 게워낼 수 없는 컴컴함이 배어 있다

다락산 노추산 상원산의 희디흰 탄식이 녹아 흐르고 있다

몇 안 남은 붙박이별 뿌리를 흔드는 삽자루가 들려 있다

늘어만 가는 빈집들의 방이며 뜨락을 사람 대신 채워보는

곡소리가 묻어 있다

달 높이에 가로등을 매달고 싶어 했던 철새들의 거세당한

깃털들이 우왕좌왕 떠 있다

- 이향지 시 ‘구절리 바람소리’ 부분

예전, 석탄열차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구절리역을 드나들던 때가 마을의 전성기였다. 건장한 광부들의 웃음소리, 고함이 쩌렁쩌렁 산간 마을을 울릴 때만 해도 구절리에는 최소한 ‘탄식’이며 ‘곡소리’는 없었다. 석탄산업의 사양화와 함께 광산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았고 구절리역에도 기차가 오지 않았다. 벽지와 합판을 걷어낸 빈 집들만 알몸으로 바람을 맞이하는 마을엔 어느 한때 ‘달 높이에 가로등을 매달고 싶어했던’ ‘철새’ 같은 사내들의 꿈도 있었지만 그들이 떠난 뒤에는 그들의 ‘거세당한 깃털’들만 우왕좌왕 떠다녔을 뿐이다.

그러나 예전의 석탄마을 구절리는 이제 산간 관광지로 태어나기 위한 몸단장이 한창이다. 천혜의 자연이 있기에 변신은 손쉽게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내가 구절리를 찾아가던 그 무렵만 해도 비록 부정기적이지만 서울 청량리역에서 구절리역까지는 한철 등산열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자정 가까운 시각, 저마다 겨울 산행을 위해 중무장을 한 산행객들로 빈 좌석이 없는 열차에 나 또한 몸을 실었다. 구절리역에서 도보 산행이 가능한 노추산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등산열차라는 별난 이름을 붙인 열차답게 차 안은 온통 강인한 기운이 넘쳐났고 활력과 투지를 자랑하듯 사람들 사이엔 쉼 없이 술잔이 오갔다. 아는 이, 모르는 이 구분이 없었다. 이 한시적인 튼튼함과 씩씩함을 확인하는 것은 오로지 취흥에서만 가능하다는 분위기마저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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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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