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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문명에 대한 반성, 생명을 향한 첫걸음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문명에 대한 반성, 생명을 향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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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개발

‘침묵의 봄’은 딱딱한 과학적 내용을 문학적 감수성을 가미해 서정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리스 신화가 인용되고, 시적 수사학도 곳곳에 등장한다. 환경 전문가인 알렉스 맥길리브레이가 이 책을 “과학과 문학이라는 두 장르가 결합해 탄생한 일종의 하이브리드”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슨이 원래 작가를 꿈꾸며 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전공을 바꿔 생물학을 공부한 덕분이다. 그러면서도 ‘침묵의 봄’은 비판적 사고와 통합능력을 보여준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카슨이 위대한 점은 그때까지 아무도 모르고, 증언해줄 사람 하나 없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고발해 사회제도를 변혁시켰다는 데 있다.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이 모든 나라의 사회정책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채찍질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다루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곧이어 미국 의회도 DDT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환경보호국이 처음 만들어진 것도 이 책 때문이었다. 1970년 ‘지구의 날’(4월 22일)이 제정된 것 역시 이 책 덕분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나아가 이 책은 세계적으로 환경윤리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 선언’을 끌어내는 동력이 됐다. 환경과 개발에 관한 기본원칙을 담은 이 선언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정신을 뿌리내리게 했다.

‘불편한 진실’을 쓴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자신이 환경운동을 펼치는 데 ‘침묵의 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카슨은 환경운동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1999년 미국 생물학연구소는 생물학자 1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자신의 연구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고전을 꼽으라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침묵의 봄’이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유진 오덤의 ‘생태학’이었다. 이 조사에서 ‘침묵의 봄’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보다 앞섰다.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침묵의 봄’을 읽고 생물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책은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논픽션 중 5위에 올랐다. 세계를 대표하는 100인의 석학이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에서는 4위였다.

이 책은 전 세계 1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지금도 꾸준히 애독되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냉전 시절 소련에서는 ‘침묵의 봄’을 비밀리에 번역해 읽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한국에서는 1990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환경운동이 움트기 시작했으나, 선구적 시민단체의 하나인 한국환경재단은 ‘레이첼 카슨 홀’을 만들어 그 업적을 기리고 있을 정도다.



‘침묵의 봄’은 하마터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뉴요커’에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출간할 무렵 농약제조업체와 화학업계 등이 각종 모략으로 방해했기 때문이다. 시카고 벨시콜이라는 화학회사는 출간 전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휴턴미플린 출판사는 보험을 추가로 든 후에야 이 책을 펴낼 수 있었다. 전국해충방제협회는 카슨을 조롱하는 노래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도리어 ‘침묵의 봄’을 더욱 널리 홍보해주고 말았다. 책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당시 큰돈을 벌던 화학회사와 이를 방조한 공무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광고에 민감한 일부 언론도 공룡 같은 화학회사들의 입맛에 맞춰 카슨에게 적대적인 글을 써댔다. 일부 관료들은 심지어 카슨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DDT에 관한 한 카슨의 주장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완벽하게 결론이 난 문제는 아니다. 이 책에서 예측한 미래가 다소 빗나갔기 때문이다. 생명이 사라진, 텅 빈 지구와 DDT로 인한 암의 증가는 입증되지 않았다.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는 나라에서는 지금도 DDT를 사용한다. DDT의 환경오염보다 말라리아로 말미암은 사망이 더 참혹해 어쩔 수 없어서다. 이제 어떤 이들은 ‘침묵의 봄’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말라리아로 죽었다고 비판한다. 그러자 세계보건기구(WHO)도 2006년 DDT를 실내 벽면이나 건물 지붕, 축사 등에 뿌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DDT의 복권이다.

그렇다고 카슨의 업적을 평가절하하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이 스스로 일군 문명에 대한 반성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 준 데 있기 때문이다.

신동아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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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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