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조마을 전경. 중앙에 해발 1125m 운장산이 보인다.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마조마을은 생의 외경을, 선방의 노스님이 죽비 내리치듯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해발 1125m를 훌쩍 넘는 운장산 기슭에 숨어 있는 산골짝 마을, 5만분의 1 축적의 지도에서나마 미미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궁벽한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이 그나마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암 환자 덕분이다.
마조마을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소백산맥 끝자락에 돌출한 부락이지만, 말기 암 환자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드는 샹그릴라 같은 곳이다. 동구 밖 과수원 길에는 여느 오지마을과는 달리 초등생들의 목소리가 봄빛이 고운 하늘가로 울려 퍼진다. 그런 아이들의 부모 중 한 명은 말기 암 환자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랄로의 바이올린 소리보다 투명하다.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마을을 세상과 이어주는 무진장 행복한 버스.
암 환자 치료에 좋다는 곳을 알음알음 수소문한 끝에 그는 고교 교사직을 명퇴하고 부인과 최후의 순간을 같이할 곳으로 마조마을을 택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가평, 홍천 등 서울 인근의 오지마을에는 상당한 수의 암 환자가 지푸라기 희망을 걸고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젖은 눈에서 송구스럽지만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다. 건장한 체격의 그도 부인의 병세가 절망적이라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런 그가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근거는 바로 마조마을의 공기와 물, 그리고 기적의 역사라고 한다. 6개월 시한부 암 환자들이 10년 이상 생을 연명한 사례 덕분에 오늘날 마조마을은 말기 암 환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주는 성지쯤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초등생의 아버지 역시 암 환자였다. 전세 2000만 원에 월 10만 원을 주고 빌린 농가주택에서 살고 있는 그는 예상외로 밝게 웃었다. “아주 건강해보인다”는 필자의 말에 “서울아산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밤새 내려왔다. 속으로는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럽다”고 대답해 순간 할 말을 잊게 한다.
대부분의 오지마을이 그렇듯이 마조마을에서도 인적을 찾기 힘들다. 봄이 웬만큼 들어앉은 춘삼월이건만, 나들이라도 나옴직한 노인들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찾아든 곳은 마을회관. 무료하게 누워 있던 할머니 세 분이 불청객을 반긴다. 할머니들의 입을 통해 나온 마을의 역사는 더욱 남루하다. 소백산맥이 마지막 똬리를 튼 마조마을에는 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득한 시절 손바닥만한 논들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묵혀져 버려진 땅으로 변한 지 오래. 봄에는 산나물과 약초 채취로, 여름에는 뱀, 가을에는 곶감, 겨울에는 사냥을 주 수입원으로 살아왔다고 전한다.

학동분교. 오래전 폐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