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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해혼(解婚)과 혼자 사는 연습

  • 이주향│수원대 인문대 교수·철학

해혼(解婚)과 혼자 사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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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가족이 해체되면서 평생을 처자식을 위해 살았는데 50대가 되고 보니 직장에서, 가정에서 위기라고 느끼는 남자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큰소리칠 때는 술친구도 많았는데, 도와줄 힘도 없고 술값을 낼 돈도 없어지자 친구도 사라졌다고, 세상 인심이 각박하다고 푸념하는 남자도 많습니다. 세계는 넓은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고립감을 호소하는 거지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관계에서 위기라 느낄 때 어떻게 하십니까. 혹, 가까운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하거나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우울증이라는 형식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나요? 우울증과 분노가 반복되다보면 망치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가까운 관계입니다.

그래서 일단 불혹을 넘기면 슬슬 혼자 살아갈 연습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친구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내가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존감이 없는 사람의 하소연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아끼지 않고, 실적이 미미하면 폐기처분하는 사회에서는 내가 나를 아껴야 합니다. 1등만 기억하는 현대사회에서 ‘나’는 그저 돈 버는 기계가 되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이유도 모르는 무한경쟁의 감옥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 스스로 내 공간을 찾고 내 시간을 찾아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합니다. 아플 자유, 울 자유 없는 세상에서 돈이 많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만의 공간 갖기는 어렵게라도 이룩해야 할 인간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동굴 없이 정서적인 독립을 이룩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당연히 나만의 통장이 있어야겠지요? 법인카드로 돈을 팍팍 쓰고 다닌 사람 중엔 내 지갑을 여는 일이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내 지갑을 열어 가까운 사람들을 먹일 수 있어야 진짜 내 경제력입니다. 규모 없이 돈을 마구 쓰고 다니는 사람도 불안하지만 누가 자린고비하고 친구하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스스로 만든 밥상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서는 한 끼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남자를 여자들이 좋아할 리 없습니다. 요리를 할 줄 알면 생각보다 삶이 튼튼해집니다. 프랑스 중산층의 조건에 ‘나’만의 요리가 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오로지 ‘나’를 대접하기 위해 요리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삶의 기본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요리 두세 접시를 직접 만들어낼 줄 아는 것, 혼자 사는 연습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면서 맘에 맞는 친구를 불러보시지요. 식탁이 당신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관심사를 찾아보시지요. 여행도 좋고, 운동도 좋고, 명상도 좋고, 특정한 분야의 공부도 좋습니다. 그런 관심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감정이 교류되고 이성이 교류되고 신성이 교류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해혼(解婚)과 혼자 사는 연습
이주향

196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이화여대 석·박사(철학)

한국니체학회 이사, 동아일보 독자위원회 제2기 위원

저서:‘사랑이, 내게로 왔다’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 ‘현대 언어·심리철학의 쟁점들’ ‘내 가슴에 달이 들어’ ‘나는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 등

現 수원대 인문대 철학교수


그러고 나서 내가 사회적으로 잘나갈 때 도와줬던 사람들을 잊어야 합니다. 사실, 잘나갈 때 도와줬던 사람을, 친하다고 생각해서 찾았는데 그 사람이 초라한 내 모습을 부담스러워하면 기가 막히지요?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빚쟁이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빚을 상기시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사람의 심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도와준 일을 잊고 있으면, 내가 줬던 도움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빛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홀로 선 사람만이 모든 존재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신동아 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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