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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생활정치’의 달인

군림하면 버림받고 양보하면 망한다? 식구들과도 거래를 하라 !

① 가정 내 정치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군림하면 버림받고 양보하면 망한다? 식구들과도 거래를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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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밥 던지고 밑간 보기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건 아니다. 누군가는 불만을 가질 것인데 이 사람에게 밑밥을 던져두어야 한다. 당신의 결정에 태클을 걸 그 사람에게는 다음번에는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거나, 오늘 거기에 가주면 뭘 해주겠다거나, 뭔가를 면제해주겠다는 식의 접근법이 주효할 것이다. 드물긴 하겠지만 상대가 돈을 요구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강하게 나오는 순간, 당신도 잠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선택권을 내려놓는 순간 당신 입에서 나올 말은 정해져 있다.

“나는 따라갈 테니까, 알아서 결정해!”

이 순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잠시 움찔할 것이다. 상대방이 수그러든다면 좀 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고, 당신이 줘야 할 것도 줄어들 것이다. 한 번쯤은 튕기면서 반응을 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반대를 할 사람까지 손아귀에 넣었다면, 외식은 만사형통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이유가 없다면, 과감하게 양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양보가 지나쳐 매사에 당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추종만 하면 가족 구성원들은 당신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지 않게 된다. 가족에 대한 당신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신이 당신 인생의 주요 결정을 당신 뜻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당신의 일에, 당신의 진로에 자주 끼어들려 하고 간섭하려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은 정말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은 평소 사소한 일에라도 당신의 주장을 자주 표현해둬야 한다. 동시에 평화를 깨지 않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약간의 밑간만 봐주면 가족의 외식은 훨씬 부드러울 수 있다. 또 즐거울 수 있다. ‘조용한 가족’의 ‘살벌한 만찬’이 아니라 ‘시끄러운 가족’의 ‘열정적 만찬’을 만들 수 있다. 정치는 싸울 것을 말로 하는 것이다. 이 점 잊지 말 일이다.

내란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

만약 당신이 가장이고 외식 메뉴 정하기를 현명하게 해결했다면 당신에게 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집 안에서 당신은 어떤 지도자인가?’

시도 때도 없이 박근혜가 어쩌니 하며 정치 논평을 늘어놓는 당신! 정작 당신이 가정에서 어떤 정치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독재자? 그보다 덜한 권위주의자? 아니면 극단적 방임주의자? 아니면 그 좋다는, 합리적 민주주의자?

권위주의적 정치인에게 가혹하기 그지없는 평가를 내리는 남성 가장 상당수는 가정에서 독재를 일삼는다. ‘나는 절대로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가. 당신 생각 말고, 가족들에게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기 바란다. 어떤 평가가 나올지 좀 두려울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독재자였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늘 민주주의를 강조하곤 했지만, 정작 ‘집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이들은 무조건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조금 비겁한 핑계긴 하지만, 부모의 영향이 컸던 게 아닐까 한다.

군인이셨던 내 아버지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트랩 대령 같았다. 트랩 대령처럼 미남에 부자였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히 ‘군대식’으로 가정을 운영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뜻이었는지 어머니의 뜻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출퇴근할 때 우리 다섯 형제는 트랩가의 자녀들처럼 현관 앞에 일렬로 도열했다.

아버지가 퇴근할 때 어머니는 문앞까지 마중을 나갔다 아버지의 뒤를 바짝 뒤쫓아 오면서 그날의 아버지 기분을 몸짓으로 우리에게 표현하곤 했다. 아버지의 기분이 나쁜 날에는 ‘뿔이 났다’는 의미로 머리 뒤로 양쪽 검지를 들어올렸다. 이런 날엔 우리 형제들은 인사를 마치기 바쁘게 후다닥 방문을 닫고 들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냈다.

이런 날의 식사 분위기는 어둡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의 기침소리 하나에도 흠칫 놀라곤 했다. 물론 평상시 식사 분위기도 썩 화기애애했던 것은 아니다. 상석에 앉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서열대로 앉아서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식사를 했다. 이어 아버지의 일장훈시가 길게 이어졌다. 식사 시간에 침묵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어머니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났으니 내가 가부장적인 행태를 보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행히 내 아내 역시 가부장제를 존중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탓에, 속으로는 불만이 쌓여도 가능하면 내 비위를 맞추려 애써왔고 그 때문에 내란이 발생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를 포함한 주위의 많은 중년 남성은 가끔은 독재자로, 보통 때에는 권위주의자로, 하지만 겉으로는 합리적 민주주의자를 표방하며 살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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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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