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친환경 신선 직거래로 소비자, 농민 함께 웃다

당일 생산, 당일 소비

  • 최영철│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3-07-23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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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신선 직거래로 소비자, 농민 함께 웃다

    경기 김포시 양촌읍 강찬순 씨 농가에서 기자가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할 토마토를 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우리 농업 및 농촌과 관련해 크게 강조한 건 단 한 가지다. 산지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보다 싼 가격에,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 식탁에 오르게 하고, 농민이 땀 흘린 만큼 보상을 받도록 하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일성으로 이런 지시를 한 것은 그만큼 우리 농산물 유통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산지→수집상(산지유통인)→도매법인(경매)→중도매인→도매인→소매상→소비자에 이르는 복잡한 유통구조는 농민과 소비자의 주머니를 모두 얇게 하고 농산물의 신선도를 떨어뜨린다. 물류비용도 많이 들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

    사실 수십 년간 이어온 이런 먹이사슬을 깨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자급자족이다. 자신이 먹을 농산물을 직접 키우는 것. 요즘 텃밭이나 베란다, 옥상에서 상추나 얼갈이, 오이, 고추 등을 재배해 먹는 사람이 늘고는 있지만 이는 극히 제한된 품목, 한정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직거래도 소비자 단위가 커지지 않으면 물류비용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는 단점이 있다.

    로컬푸드가 필요한 까닭

    지난해 3월 신용사업부문과 경제사업부문을 분리하고 개혁에 들어간 농협중앙회가 가장 역점을 둔 정책도 복잡한 유통단계의 축소다.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5~6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유통구조를 농민→농협 도매물류센터→소비자로 간단하게 만드는 것. 전국에 서울 양재 하나로마트같이 도소매를 동시에 하는 대단위 도매물류센터를 세운다는 계획 아래 이미 경기 안성시에 도매물류센터가 지어져 8~9월 중 개장할 예정이고, 2015년까지 경남 밀양시와 전남 장성군, 강원, 제주에 물류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두 번째는 직거래다. 농협중앙회는 대도시 농협이 운영하는 직거래장터를 올해까지 기존 62개소에서 107개소로 늘리고 1000㎡(300평) 이상 하나로마트 212개소에 직거래 장터를 개설할 계획이다. 다음은 로컬푸드. 농축산물을 해당 지역 주민이 신선한 상태로 사서 먹는다는 개념으로, 어떻게 보면 지역 단위의 자급자족이다. 산지 농민은 자신이 키운 농축산물을 직접 포장해 로컬푸드 직매장에 진열해놓고 농협은 판매와 정산만 담당하는 구조다. 재고관리도 농민이 직접 한다.

    로컬푸드는 지역주민 처지에선 매일 싸고 신선한 농축산물을 먹을 수 있어 좋고, 농민은 경매로 출하할 때보다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좋다. ‘홍수출하’로 농축산물 가격이 폭락해도 로컬푸드 농가는 제 가격을 받고 팔 수 있다. 기근이나 홍수로 농축산물 가격이 올라도 소비자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대부분 직매장 반경 50km 내에 산지가 위치해 물류비용도 적게 든다. 이 덕분에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어 지구를 살리는 농업 방식이란 평가를 받는다. 농축산물 가격 결정을 생산자인 농민이 하고 소비자와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평가 및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실 로컬푸드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회운동의 하나였다. 환경을 보전하고 식품 안전성을 높이는 한편, 지역농업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차원에서 비롯된 로컬푸드 운동은 미국에선 농민이 정해진 날짜에 인근 도시 내 특정 장소로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갖고 나와 판매하는 ‘농민장터’와 학교급식이 주류를 이룬다. 직매장 형태는 일본에서 유행한 것으로 이미 2만여 곳을 넘는다. 우리나라에선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농협이 초기 단계로 실시해왔다. 소비자가 지역생산자와의 계약을 통해 계약 기간에 제철 농산물을 배달받는 ‘제철 꾸러미 사업’과 직매장 방식은 전북 완주군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엔 완주군 용진면 농민 350명이 생산한 농산물을 ‘일일 유통’을 원칙으로 파는데, 매장 개장 후 총매출액은 월평균 9.3%, 고객 수는 월평균 4.2%씩 증가하고 있다. 2013년 2월 기준 총매출액은 9억4000만 원, 총 고객 수는 3만58명이다(용진 하나로마트 포함). 고객의 80% 이상은 인접한 전주시 주민이다. 로컬푸드 직매장에 없는 농축산물은 2층 하나로마트에서 살 수 있어 많은 대도시 주민이 편리하게 이용한다.

    용진농협 로컬푸드 사업에선 수확부터 포장, 운송, 가격 결정, 매장 진열까지 모든 과정을 생산 농민이 담당한다. 가격은 생산 농가가 경매가격과 인근 소비지 시장가격 등을 참고한 후 직접 결정해 바코딩 작업까지 한 뒤 상품을 매대에 진열하는데, 매장 CCTV와 연결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재고를 확인해서 모자라면 다시 농축산물을 가져다놓을 수 있게 해놨다. 전날 출하한 물량을 재출하하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물량을 출하하면 직매장 판매가 금지된다.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의 성공을 지켜본 농협중앙회는 각 지역 농협별로 로컬푸드 직매장 운영을 희망한 곳만 35개에 달한다고 밝힌다. 농협은 올해 내로 이 중 20개소를 선정해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2015년엔 50개소, 2016년엔 100개소로 확대한다는 계획. 과연 우리 농촌에서도 로컬푸드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올해 4월 2일 문을 연 경기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을 찾기로 했다. 농축산물의 수확, 포장, 운송, 가격 결정, 매장 진열, 판매, 식탁에 이르는 전 과정을 동행 취재하기로 한 것.

    친환경 신선 직거래로 소비자, 농민 함께 웃다

    김포시 북변동에 자리 잡은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토마토를 따다

    6월 27일 새벽 6시 10분 도착한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엔 셔터 문이 내려져 있었다. 엄경렬 김포농협 차장은 “오전 8시부터 30분간 농축산물 입고가 완료되고 9시부터 정식 판매가 시작된다”며 “일단 농가로 가서 수확 과정에 참여하자”고 말했다. 경기 김포시 북변동 아파트촌에 인접한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문을 열었다.

    인근에 김포 하나로마트가 있고 농협 알뜰주유소가 붙어 있어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다. 주유소 옆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직매장에서 농축산물을 산 후 없는 품목은 인근 하나로마트를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 가까이 보이는 아파트촌과 빽빽이 들어찬 상업시설을 보니,‘아, 여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도시 주민은 아무리 싸고 신선한 농축산물을 취급하는 매장이라도 가까이 있어야 자주 찾기 때문이다.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 농축산물을 공급하는 농민은 70여 명(로컬푸드 교육 이수 농가는 107개소)으로, 기자가 찾은 농가는 그중에서도 토마토와 오이를 생산하는 강찬순(58) 씨 농가였다. 김포시 양촌읍 누산리에 위치한 이 농가는 직매장에서 10여 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6시 25분쯤 도착해보니 약 1650㎡(500평)규모의 비닐하우스가 펼쳐져 있고, 강 씨 부부는 벌써 토마토와 오이 수확에 한창이었다.

    “8시 30분까지 직매장에 진열을 마쳐야 해서 바쁩니다. 우리는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야 수확, 포장, 바코드, 진열 작업을 제시간에 끝낼 수 있습니다. 늦으셨네요. 오늘 기자님이 계셔서 빨리 끝나겠어요.”

    주름이 깊게 팬 강 씨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지만 말 속엔 기자가 늦게 온 것에 대한 핀잔이 섞인 듯했다. ‘헉! 3시간밖에 못 자고, 회사에 도착해 새벽 4시 30분에 출발했는데…’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강 씨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가위와 장갑을 건네주며 “시간 없으니 빨리 따세요”라고 채근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 난다”는 말을 뒤로하고 토마토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잘 익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새벽에 나오느라 아침을 못 먹어 한입 베어 물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뒤로 미루고 열심히 토마토를 가지에서 잘라 수레에 담았다. 토마토 수확이라곤 태어나서 처음 하는 기자를 강 씨는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가지를 꼭지 가까이까지 자르지 않으면 나중에 포장할 때 꼭지에 달린 가지가 다른 토마토를 찔러 상하게 하니 제대로 자르세요. 품질이 나쁘면 가지가 잘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매장에서) 잘려요.”

    말을 듣고 보니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을 시작하고 나서 수입이 꽤 짭짤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강 씨는 토마토 품질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조금이라도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30여 년 전 귀농해서 빚도 많았는데 20년 전 이 땅을 마련했고 여기서 애 둘 대학까지 다 졸업시켰습니다.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할 땐 경매 수수료 떼고, 뭐 떼고, 기름값 많이 들고 애로가 많았어요. 로컬푸드 시작하면서는 정말 좋아졌습니다. 일종의 직거래잖아요. 제가 지은 농사의 결과물을 당당하게 제가 가격을 매기고, 좀 비싸다 싶어도 소비자들이 한번 먹어보면 다른 농산물을 멀리할 정도가 됩니다. 이 지역 소비자들이 직매장 진열대에 있는 토마토와 오이를 모두 사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요. 정말 농사지을 맛이 납니다.”

    地氣가 성패 가른다

    이날 강 씨 부부와 기자가 수확하고 팔아야 할 물량은 토마토 5kg들이 상자 15개와 오이 6개들이 30봉지 정도였다. 새벽이라 밖의 온도는 영상 24도였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조금 더웠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토마토를 따는데 강 씨가 한마디한다.

    “퍼런 건 따지 마세요. 예전 로컬푸드를 하기 전엔 유통단계와 기간이 길기 때문에 덜 익은 걸 출하한 적이 많았지만 지금은 진열대에 올려놓자마자 팔려나가니 잘 익은 걸로 따야 합니다. 그래야 가격도 많이 받죠. 너무 익은 붉은 것도 곧 물러 터져버리니 따지 마세요. 그건 우리가 먹어야 합니다.”

    로컬푸드 직매장에 나오는 물건이 왜 다른 농축산물보다 가격뿐 아니라 경쟁력 면에서 우위에 있는지 이유를 알 만했다.

    강 씨가 토마토 농사를 시작한 때는 5년 전. 그전엔 참외와 멜론을 주로 재배했다. 5년 전 참살이(웰빙) 열풍과 함께 토마토가 건강식품으로 떠오르자 토마토를 키우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2월에 심어 10월에 뽑아낼 때까지 4~5차례 수확이 가능한 데다 병충해에도 강해 땅의 기운만 좋으면 열매가 튼실해진다. 강 씨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토마토는 먹어보니 당도가 높고 식감도 아삭아삭한 게 특상품임이 확실했다. 아기 얼굴만한 크기의 것도 곧잘 눈에 띄었다.

    “사실 직매장에 나오는 토마토 중에서 저희 농장 것이 약간 비쌉니다. 그런데도 평균 95% 이상 팔려요. 그 이유는 맛과 식감에 있죠. 신선도야 로컬푸드는 모두 비슷합니다. 비밀은 바로 땅에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여 년간 똥거름을 절대 쓰지 않고 대신 볏짚을 써왔습니다. 똥거름을 준 땅은 딱딱하게 굳어 숨을 못 쉬고 작물의 뿌리가 못 뻗어나갑니다. 볏짚은 푸석푸석해 땅과 작물이 숨도 잘 쉬고 뿌리도 잘 뻗어나가게 하죠. 땅이 부드럽고 양분이 많으니 열매가 맛있을 수밖에요. 농협에서 납품 농산물에 대해 일일이 농약잔류검사를 하고 기준에 못 미치면 입고 거절을 당하고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나면 결국 회원에서 제명됩니다.”

    친환경 신선 직거래로 소비자, 농민 함께 웃다


    강 씨 말대로 비닐하우스에선 똥거름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소여물 같은 냄새가 조금씩 배어나왔다. 그는 로컬푸드를 시작하면서 친환경 농산물의 가치에 대해 새삼 느끼는 바가 많다. 요즘도 전염병이 돌아 어쩔 수 없을 때에만 농약을 치지 대부분 농약을 쓰지 않는다. 화학비료도 극히 조금만 쓰려고 노력한다. 그는 “볏짚 거름 방식의 경우 농업기술센터와 다른 농가에서 배우러 올 정도”라고 자랑했다.

    “처음엔 저보고 다들 미친놈이라더니 요즘은 죄다 이 방식을 써요. 농사가 한편으론 좋은 게 하늘(기후)과 사람(중간 유통상인)은 거짓말을 해도 땅은 정말 진실하다는 거죠. 조금 있으면 친환경 인증도 받게 될 겁니다. 친환경농업의 중요성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기자가 1시간 동안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토마토와 씨름하는 동안, 강 씨 부부는 오이를 땄다. 오이는 상대적으로 따기 수월하다. 어느 정도 크기로 잘 자란 오이의 꼭지 부분을 가위로 잘라주면 된다. 수확한 토마토와 오이를 외바퀴 수레에 담아 포장대 위로 옮기려는데 보기엔 쉬워도 여간 어렵지 않다. 오른손과 왼손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수레가 넘어져 토마토와 오이가 모두 쏟아질 상황. 뒤뚱뒤뚱 낑낑대는데 강 씨가 외친다.

    “어깨를 쭉 펴요. 중심을 잘 잡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요. 덩치는 산만한 사람이 그것도 못 옮깁니까.”

    토마토와 오이를 포장대 위에 올려놓으니 강 씨의 부인이 잘 익은 오이를 하나 먹어보라고 권한다. 땀 흘려 목마른 데에는 오이가 최고란 걸 그제야 깨달았다. 왜 등산하는 사람들이 오이를 들고 다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한입 베어 물고 씹는 순간 싱그러운 오이 향이 입안에 확 퍼지며 목마름이 일순간 사라졌다.

    하나로마트보다도 20% 싸

    친환경 신선 직거래로 소비자, 농민 함께 웃다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천장의 CCTV. 농민들은 자기 농산물이 얼마나 팔리는지를 스마트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7시 50분. 토마토와 오이 포장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토마토를 반질거리도록 수건으로 잘 닦아 5kg들이 종이박스에 넣고 무게를 쟀다. 550g 초과. 토마토를 하나 빼내려니 강 씨가 말린다. “박스 무게가 300g인 데다 좀 넘치게 넣어야 소비자가 좋아해요.” 인심인지 상술인지 몰라도 정직하다. 넘치면 넘쳤지 절대 모자라게는 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사달은 오이 포장에서 났다. 비닐 봉지에 오이 6개를 상품명이 잘 나오도록 예쁘게 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이 휜 오이는 예쁘게 포장하기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강 씨 부부의 손놀림은 득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도사가 따로 없다.

    “시간 없으니 기자님은 일단 토마토 상자를 차로 옮기세요. 남은 오이는 우리가 포장할 테니. 글만 써서 그런지 손재주는 영 꽝이네요.”

    달리 할 말도 없고 해서 토마토 박스를 실어 날랐다. 위세에 놀란 사진기자도 토마토 나르는 걸 도왔다. 토마토를 연신 먹어가면서 말이다. 굵은(?) 몸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8시 10분 토마토와 오이를 차에 가득 싣고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으로 다시 향했다. 출근 차량들 때문에 길이 좀 막히긴 했지만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매장에 도착하니 이미 다른 로컬푸드 회원 농민들이 아침에 수확한 농산물들을 해당 코너에 진열하느라 여념이 없다. 다행히 토마토와 오이 등 경쟁 작물 중에선 가장 일찍 도착했다. 단 5분 만에 진열 완료.

    다음부터는 바코드 작업이다. 강 씨는 능숙한 솜씨로 바코드 입력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로컬푸드 매장에 납품하는 농민들은 모두 각자의 개인 코드가 있어 입력만 하면 생산자 이름, 연락처, 주소, 출하일자가 자동으로 찍혔다. 품목과 중량, 금액, 등급 항목 숫자는 일일이 눌러줬다. 토마토 5kg 한 상자의 가격은 1만1000원, 오이 6개들이 한 봉지는 2000원. 인근 하나로마트보다 20%나 싼 가격이다. 출력된 바코드 스티커를 상자마다, 봉지마다 잘 보이도록 가지런히 붙이고 진열대를 다시 정돈했다. 이제 소비자의 선택만 남았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다 끝났네요. 저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침 먹고 스마트폰으로 저희 매대만 열심히 보면 됩니다. 다 팔려서 다시 한 번 더 나오는 일이 벌어지면 좋겠는데.”

    강 씨는 진열이 끝나자 가벼운 수인사를 하곤 차를 몰고 휑하니 돌아갔다. 진열대 천장 곳곳에 CCTV가 달려 있다. 엄경렬 김포농협 차장은 “엽채류같이 조금씩 가져다놓는 품목은 스마트폰을 통해 상황을 보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납품하는 농민도 있다. 심지어 김포 로컬푸드를 처음 하자고 제안한 조기창(59) 씨는 자신이 당일 올린 농산물뿐 아니라 농사짓는 과정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일일이 알리고 있다”고 했다.

    조 씨는 농어민후계자상, 새농민후계자상, 농림수산부(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등 각종 농업 관련 상을 휩쓴 주인공으로 김포시가 운영하는 엘리농업대학 스마트학과에 입학해 블로그 운영 및 전자상거래를 배우고 있다. 실제 그는 K파머스라는 프로그램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농업 현장에서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의 농산물을 홍보한다. 그는 “소비자에게 안전한 밥상을 제공하고 생산자에겐 안정적 소득이 보장되는 로컬푸드는 상황이 허락되는 대도시 주변에선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착한 소비 이끄는 로컬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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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되는 블루베리. 무농약, 유기농으로 생산된다. 직매장에선 블루베리 묘목도 판다.

    강 씨가 돌아가고 난 후 다른 농가의 토마토가 들어오는데 서로 가격을 얼마나 써 넣어야 하는지를 놓고 눈치경쟁이 심했다. 대부분 강 씨가 쓴 가격보다 몇 백 원에서 1000원까지 쌌다. 강 씨가 자기 제품에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 확인되는 대목이다. 오전 9시 드디어 매장 문이 열리고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자가 수확하고 포장하고 옮긴 토마토는 3번째로 팔렸다. 손님을 매장 밖까지 따라가 “왜 이 토마토를 고르셨어요”라고 물었다.

    “산책 갔다 들렀는데 이곳 토마토를 몇 달 먹어보니 싱싱하고 맛이 있습디다. 가격도 다른 마트에 비해 싸고요.” (심현만 씨, 65세)

    그런데 심 씨의 손엔 요구르트병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인근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맛이 좋고 가격도 싸다”며 “직매장에 들를 때마다 산다”고 말했다. 이 요쿠르트는 김포시 꿈목장의 이윤재(53) 씨가 생산한 것으로 직매장에서 1L에 7000원에 판매된다. 가격이 싸면서 맛도 좋아 직매장 농축산가공품 중 인기 높은 품목이다. 그는 직매장에 아침에 짠 우유를 납품하고 있기도 하다. 신선한 우유 역시 마트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선 상추, 시금치 등 엽채류와 고구마·무·감자 등 근채류, 토마토·오이·블루베리 등 과채류, 서리태·메주 콩 등 콩과류, 느타리버섯·표고버섯 등 버섯류 등 모두 130여 가지 농축산물과 가공품을 판다. 심지어 블루베리 묘목과 꽃도 팔고 청국장, 엄나무, 헛개나무, 가시오가피, 두부, 된장, 청국장, 간장, 김치, 누룽지도 판다. 요즘 피부질환과 전립선 질환에 좋다는 블루베리가 100% 무농약, 친환경 제품으로 나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블루베리는 김포시 고촌읍 웅진농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으로, 기자가 방문해 확인한 결과,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재배한 천연제품이었다. 그래서일까. 블루베리 향이 진하고 맛도 달고 새콤했다. 웅진농장 이명재(52) 씨는 “외환위기 당시 중장비 일을 하다 지인 소개로 이곳에서 농사를 시작했는데 땅은 뿌린 만큼 거둔다는 신념으로 일하고 있다. 로컬푸드 취지에 맞게 친환경 농산물을 보다 신선하게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게 내 임무다. 직거래로 얻어진 결과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밝혔다.

    무서운 성장세

    친환경 신선 직거래로 소비자, 농민 함께 웃다

    김포시내 중증 장애인들이 만든 ‘꿈을 빚는 도자기’와 ‘행복누리 천연비누’. 투박하지만 아름답고, 천연 재료만 사용한 게 특징이다.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의 코너 한켠은 도자기와 천연비누로 꾸며져 있다. 모두 김포시내에 있는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 등 중증 장애인들이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중증 장애인 직업재활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것. 하지만 그 수준은 전문가 작품 뺨친다. 김포시 중증장애인요양시설인 가연마을 장애인들이 만든 ‘꿈을 빚는 도자기’는 모양이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갖췄고, (사)경기도지적장애인복지협회 김포시지부가 만든 행복누리 천연비누는 천연 원료만 사용한 고급 비누로 그 모양과 기능성이 뛰어난 게 특징. 로컬푸드 매장이 장애인의 지속가능한 재활과 사회적기업을 돕는 기능까지 하는 셈이다.

    7월 초 현재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의 시도는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4월 2일 개장 후 총매출액은 3억6000만 원으로, 4월 1억 원, 5월 1억2000만 원, 6월 1억4000만 원, 7월 2억 원(추정치)으로 수직 성장하고 있다. 일평균 고객 수도 4월 280명에서 6월 400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 국내 로컬푸드의 모범 사례라 하는 완주군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을 조만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김명섭 김포농협 조합장은 “비록 로컬푸드 직매장 운영으로 농협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로컬푸드 직매장은 시대적 요청이자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농협 본연의 임무를 한다는 차원에서 확대해나갈 것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조합원과 소비자가 로컬푸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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