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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愼獨) 혼자서 견뎌내는 방법

맹씨행단의 대청마루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신독(愼獨) 혼자서 견뎌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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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리 민속마을

아산에는 맹씨행단이 있고 외암마을이 있다. 도로의 진행 방향 때문에 먼저 나는 외암마을부터 들렀다. 이 마을들의 주산은 설화산이다. 이런 산이라면 풍수에 능하고 지리에 통하다는 이들의 고견이 필요 없을 정도다. 멀리서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냥 편안하고 아늑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산 아래로 마을들이 흡사 아기새들처럼 어미새, 곧 설화산 품에 깃들어 있다. 산 모양이 붓끝처럼 생겨 ‘문필봉(文筆峰)’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름 덕분인지 산 아래 마을에서 수많은 문필가가 나왔다. 설화산의 한쪽 기슭으로 외암마을이 있고 반대편으로 맹씨행단이 있다. 나는 먼저 외암마을을 들렀다가 맹씨행단으로 넘어왔다.

외암마을은 ‘외암리 민속마을’이라고도 하는데, 너무 관광지 같은 명칭이다. 하긴 산하 도처가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서 온통 ‘문화관광 사업단지’로 변모하고 있으니, 그런 점에서 본다면 외암마을은 ‘민속마을’이라는 이름을 진즉에 들을 만한 곳이다. 원래 강씨와 목씨의 집성촌이었다가 조선 명종 때 예안 이씨의 이정(李挺)이 옮겨와 살면서 예안 이씨 세거지가 됐고 이정의 6대손 이간(李柬)의 호를 따서 ‘외암’이 됐다.

외암마을은 물의 마을이라고 할 만하다. 마을 입구를 적시는 큰 개울이 있다. 설화산과 광덕산에서 흘러내린 물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넉넉한 물소리를 듣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부채를 아래쪽으로 완만하게 펼쳐놓은 형태로 마을이 조성돼 있다. 그 부챗살들 사이로 물이 넉넉하게 흐른다. 이로써 농사도 짓고 밥도 짓고 연못을 조성하기도 한다. 유려한 곡선의 초가지붕이나 단아한 기와집의 처마도 고개 들어 볼 만하지만 일부러 시선을 밑으로 하여 찬찬히 내려다보면 외암마을에 물이 넉넉하고 또 그 물을 일상생활에 두루 활용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제법 큼직한 집마다 조성된 연못은 그 자체로 미의식의 반영이자 화재 같은 위급한 일에 긴급히 대응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외암마을에는 건재고택으로도 불리는 영암댁을 비롯해 참판댁, 교수댁, 송화댁 등의 양반 주택과 여든 채가량의 초가가 옛 모양 그대로 남아 있다. 일찍이 ‘민속마을’로 지정돼 임의로 개편하는 것이 행정적으로 어려워진 까닭도 있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형태만 있고 삶은 없는 조잡한 테마파크로 전락하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다. 직선의 도시에 익숙한 방문자에게 외암마을은 곡선을 보여준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담은 초가의 지붕으로 이어지고 또 거기서 설화산의 능선과 잇닿는다. 그 능선 너머로 중리마을이 있고 맹씨행단이 있다.



맹씨행단은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1360∼1438)이 살았던 집이다. 고려 말의 최영 장군 손녀사위였고 조선 개창 이후에도 조정 안팎의 고평을 받았던 인물이다. 행단은 은행나무가 있는 단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뜻이 깊다. 공자의 묘나 공자 사당에 흔히 은행나무를 심었으므로 ‘행단’이라고 하면 공자 사상과 직결된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에 은행나무가 있어 유래한 것인데, 따라서 행단은 마을의 향교나 후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뜻하기도 한다.

신독(愼獨) 혼자서 견뎌내는 방법

아산시 외암민속마을의 장독대와 메주.

소슬한 오후

그러니 오래된 고택이라고 해서 이런 별호를 함부로 쓸 수 없으며 더욱이 정승 판서가 난 세도가라고 해서 행단 같은 말을 갖다 붙일 수도 없다. 오직 학문에 정진한 바 이를 존숭해 따르는 후학이 있어 단호히 질정하고 어질게 이끌어 무릇 스승이란 격에 어울린 학자의 집에 진정한 경칭으로 붙는 이름이 행단이다. 이 고택의 입구에 회화나무와 향나무가 서 있고 사랑채 곁으로는 역시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오랜 세월을 견뎌왔으니 그 내용과 형식에 걸쳐 과연 행단이란 말에 어울리는 고택이다.

고건축 전문가들은 이 고택이 고려 말의 가옥 구조와 조선의 그것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확연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처음 지을 때는 온돌이 없었으나 1482년 온돌을 설치한 점, 조선 세종 때 민가의 장식을 엄격히 단속했는데 그 전후의 양상이 동시에 다 확인된다는 점, 바람을 막기 위해 문지방 아래에 대는 널조각(머름)이 창의 위아래에서 모두 보인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창 아래에만 머름을 설치했다고 한다.

쌀쌀한 2월의 평일 오후였으므로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몇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그때는 5월이라 세상 만물이 잔뜩 부풀어 오른 화창한 계절이라 이 고택을 둘러싼 나무들이 유록색으로 찬란했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2월 하순에는 한 줌 남은 겨울의 잿빛이 겨우 드리워져 있을 따름이다. 마침 바람도 쌀쌀해 찾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 덕분에 잠시나마 대청마루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지나가는 바람소리의 결까지 엿볼 수 있었다. 천하가 문화 관광지로 급변하는 시대에 이런 기회는 아주 귀하다.

나는 마당을 거닐어보고, 대청마루에 앉아보고, 사랑채의 크고 작은 방에 들어가 앉아보고, 뒤란을 걸어보기도 했다. 후원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뒤란이라는 말이 훨씬 따스하다. 정원보다 마당이 편안한 이치다.

요즘의 아파트 군락지에서 소요할 만한 구석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당도 없고 뒤란도 없고 대청마루도 없는 곳, 기껏해야 한 뼘의 베란다요 텔레비전 왕왕거리는 거실인데, 그 네모난 규격의 아파트를 벗어나면 또한 주차장이요 조금 멀리 걸어가야 겨우 공원이 나온다. 널찍한 공원이 일순간 시원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판에 박은 조경에 딱딱한 벤치에 조잡한 설치물을 보다보면, 곧 서둘러 일어나게 마련 아닌가. 그러므로 이런 공간에서 혼자 마당을 걷고, 대청마루에 앉고, 다시 일어나 뒤란으로 걸어가보는 일이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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