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장성택 비리 목록 공식·비공식 통로로 北에 전달”

朴 정부 1기 국정원의 북한 붕괴공작 내막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4-10-16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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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쇄·압박 통한 北 붕괴·통일 목표
    • 이간책(離間策) 구사해 2인자 분리 시도
    • ‘최룡해 혁명 적통’ 퍼뜨려 北 흔들기
    • 北 노동당 가입한 南 인사 명부 확보 공작
    “장성택 비리 목록 공식·비공식 통로로 北에 전달”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황병서(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노동당 비서·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노동당 비서·통일전선부장) 3인조의 10월 4일 인천 방문을 두고 동료들과 토론했다. 그는 1980년대 대학가를 뒤흔든 주사파 팸플릿 ‘강철서신’의 저자. 당시 뜻을 같이하던 이들과 함께 북한에 ‘민주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김 연구위원은 동료들에게 3인조 방남(訪南)과 관련해 3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① 개혁, 개방을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실세 3명이 함께 와 진정성을 느끼게 하려 했다.

    ② 장성택 숙청으로 어려워진 대중관계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 했다. 긴장 완화,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중국에 보여주고자 연출한 것이다.

    ③ 장기간 거동 불능 등 김정은 유고 사태가 생겼고, 그에 대처하려는 조치일 수 있다.

    그의 분석을 더 살펴보자.



    “③의 논리는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결함이 가장 많다. 신병 이상은 북한의 위기 사태인데, 실세들의 외유가 과연 가능하겠나. 북한이 전략적 태도를 가졌다는 점이 ②의 결함이다. 대남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낸다고 하루아침에 대중관계가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①의 논리는 자연스럽지만 역시 결함이 있다. 북한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다?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는 “일각에선 스포츠를 중시하는 김정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논리적 결함이 있어도 셋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북한 3인조 방남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오랫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것과 겹치면서 “뇌사(腦死)했다” “실각(失脚)했다” “연금(軟禁)됐다” 등 호사가의 억측을 불렀다. 10월 14일 노동신문은 “평양에 완공된 위성과학자 주택지구에서 현지지도 했다”면서 김정은의 시찰 모습을 공개했다. 지팡이를 짚고 40일 만에 노동신문에 등장한 것. 정보당국이 언론에 흘린 대로 “군부 장악을 비롯한 김정은의 통치에는 문제가 없으며, 발목 수술 후 회복 중”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가 단단한지와 관련한 의견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공고하지 않다”거나 한발 더 나아가 “(김정은은) 꼭두각시일 것”이라는 주장은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쪽에서 주로 나온다. “불안정한 북한을 더욱 흔들어 무너뜨린 후 통일해야 한다”는 견해가 따라붙는다. “김정은 체제가 공고하며 안정돼 있다”는 주장은 대화를 늘리자는 쪽에서 주로 나온다. 관여론자들은 “5·24조치를 해제하고 경제협력을 늘려야 북한이 변하고 통일에 다가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에 2인자가 존재하는지를 두고도 다양한 견해가 충돌한다. “장성택→최룡해→황병서로의 변화무쌍한 이동을 보면북한에 2인자는 없다” “조직지도부를 뒷배로 삼은 황병서가 2인자다” 등의 엇갈린 주장이 나온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제하 칼럼(중앙일보 10월 10일자)에서 황병서를 1.5인자로 묘사했다.

    “황병서는 ‘2인자’라기보다는 ‘1.5인자’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이자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다. 최근엔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선임됐다. 당과 군을 잇는 권력 회로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최고인민회의에서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면 ‘북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그 자리에 없었다. 만약 발목 부상이나 통풍이 불참 이유였다면 최고인민회의를 연기하는 게 사리에 맞지 않았을까.”

    차 교수는 “독재자는 극심한 편집증과 권력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병적인 불안감에 시달리는 경향이 있다. 최고지도자가 증발한 가운데 2인자를 남쪽으로 보낸 것은 매우 특이하다. 언론 매체가 2인자·3인자 운운하는 것 자체가 그를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지 않은가”라면서 김정은 체제가 불안하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2015년 자유대한민국 통일”

    “장성택 비리 목록 공식·비공식 통로로 北에 전달”

    노동신문 10월 14일자 1면에 40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의 사진이 실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견해는 다르다.

    “김정은이 핵심 간부를 측근으로 교체했으며, 충성심이 부족한 이들을 해임 또는 숙청했으므로 단기적으로는 북한체제의 안정성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북한에는 장기간 2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1953년 미국의 간첩으로 몰려 숙청된 박헌영은 분명한 2인자였다. 각각 1967년, 1969년 종파분자로 몰려 처형된 박금철, 김창봉은 실제적 2인자였기에 숙청됐다. 1968년 김일성 유일영도체제가 완성된 후 북한 권력집단에 2인자는 없었다. 김정일 집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은이 등장하고 한국 언론에서 2인자로 부르던 이영호, 장성택, 최룡해는 숙청되거나 지위가 강등됐다. 그중 장성택은 종파분자로 낙인찍혀 처형됐다. 그렇다면 황병서는 어떨까. 김영환 연구위원의 견해는 이렇다.

    “호위총국 소속으로 보이는 사복 경호원과 최룡해, 김양건의 언행으로 볼 때 명실 공히 2인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 △공식 직위 △수령의 인정 △실질 권력 △대외적 공개, 이 4가지 면에서 2인자의 지위를 인정한 것은 박헌영 숙청 이후 61년 만이다. 황병서도 다른 사람처럼 밀려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쉽게 밀려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북한의 독특한 군주제적 정치문화에서 2인자가 존재하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박헌영, 박금철, 김창봉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독재 권력자는 2인자를 의심하게 마련이다. 두 사람이 반목하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 ‘1기 국정원(남재준 원장)’이 북한의 2인자(실제로 2인자였는지 확인된 바는 없다)를 흔드는 다수의 공작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식통들은 “장성택, 최룡해와 관련한 공작이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한국인 명단을 입수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봉쇄·압박을 통해 북한을 붕괴해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남 전 원장의 목표였다”고 한 소식통은 말했다. 이 같은 국정원의 공작이 성공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24일 남 전 원장이 핵심 간부 송년회에서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 송년회 참석자는 조선일보에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 “국가보안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조국 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남 전 원장은 이 보도 내용을 부인했으나 소식통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2013년 초부터 ‘구체적 플랜’을 가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소식통은 “장성택의 비리 목록을 작성해 공식, 비공식 경로를 통해 북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정은과 장성택을 분리하는 이간책(離間策)을 구사한 셈이다. 한국의 국정원과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는 중국에서 접촉하게 마련이다. 장성택 숙청은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장성택 측근 접촉

    “장성택 숙청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 소식통은 “장성택 판결문에 재정 사용의 문제점, 비자금 유용 등 돈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가 넘겨준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우리 정보를 이용한 것만큼은 사실이다”라고 답했으나 장성택 판결문에는 돈 문제 외에도 다양한 비위 혐의가 등장한다. 이 소식통은 “VIP(대통령)에게는 이런 사실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남 전 원장 성격이 원래 그렇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중국에 나와 있는 장성택 측근들과도 은밀하게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국 언론에 ‘김정은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장성택이 대안’이라는 보도가 나오게 해 김정은과 장성택을 분리하려 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3일 국회 대면 보고를 통해 장성택이 실각했다고 발표하면서 정보력을 과시한 적이 있다. 발표 내용은 이랬다.

    “노동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공개 처형 사실이 확인됐으며 장성택도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 보위부에서 장성택 심복에 대한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에 들어가는 등 일부에서 견제 분위기가 나타나면서 장성택은 공개 활동을 자제해왔다.”

    “장성택 비리 목록 공식·비공식 통로로 北에 전달”

    10월 4일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북한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왼쪽부터).



    “장성택 비리 목록 공식·비공식 통로로 北에 전달”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적잖이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2월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출당했다. 나흘 뒤인 12일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판결을 내리자마자 형을 집행했다.

    다른 소식통의 증언은 결이 다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는 것이다.

    “남 전 원장이 장성택 실각과 관련해 쿠킹(cooking)된 보고에 고무돼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상황을 오판하는 계기가 됐다. 아랫사람의 보고는 의도에 따라 작성되게 마련이다. 특히 최룡해와 관련해 진행된 건은 수준이 참으로 낮은 것이었다.”

    남 전 원장은 재임 중 두 차례 크게 고무된 적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이석기(통합진보당 의원) 내란 선동 사건 때고, 다른 하나는 장성택 숙청 때다. 이석기 사건 때는 국정원 내부에서 “원장님께서 강력한 의지로 수사를 해내셨다”는 ‘용비어천가’ 수준의 찬사가 대놓고 나왔다고 한다. 또한 장성택 숙청 후 고무된 남 전 원장이 남다른 의지를 표명하면서 지난해 12월 최룡해와 관련한 공작이 시작됐다고 한다.

    나비효과?

    김정은과 최룡해를 분리하려는 국정원의 시도 중 하나가 언론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올해 4월부터 느닷없이 한국 언론에 북한의 적통(嫡統)과 관련한 기사가 잇따라 실렸다. 제목을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보다 항일운동의 정통성을 지녔던 최현” “북한 통치 ‘적통’은 김정은 아닌 최룡해” “혁명 적통 최룡해 위협적, 숙청 가능” “北 항일투쟁 적통은 최현의 아들 최룡해…김정은이 숙청할 가능성”“항일무장투쟁 정통성 김일성·최현 중 누구에게 있나” “‘金氏왕조’보다 더 무장투쟁 정통성”…. 최현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 최룡해의 아버지다.

    이론적 토대는 A연구기관의 B박사가 마련했다. 북한 사료를 바탕으로 김일성보다 최현이 항일무장투장에서 오히려 정통성이 있다는 결론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한 것.

    앞서의 소식통들과 다른 소식통은 “나비효과가 있을 수 있다. 암투가 벌어져 최룡해가 위기에 몰렸을 때 정통성을 내세워 살길을 도모할지, 무기력하게 사라질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최룡해를 의심하게 만들고, 최룡해가 김정은에 반발하는 구도를 상정한 것이다.

    최룡해는 4월 9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오르면서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공교롭게도 한국 언론에 북한의 적통 관련 보도가 나온 후 낙마했다. 4월 26일 황병서가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된 것. 최룡해는 총정치국장에서 밀려난 후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맡았다. 측근들이 내사 받을 때 장성택이 맡은 직책이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이다. 최룡해는 9월 26일 국방위 부위원장에서도 해임되고 그 자리를 황병서가 차지했다.

    최룡해 낙마 과정 또한 오비이락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와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맞물린다. 북한에 수시로 들락거리는 한 미국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때 권력이 강하긴 했는데, 최룡해는 촐랑대는 스타일이다. 예전엔 힘이 세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실세가 돼 있더라. 그러더니 또 군복 벗고 밀려났다. 김정은 바로 옆에서 계급장 뻔쩍이던 사람이 서너 번째로 밀려나 앉았다. 다른 나라 정치에서는 말이 안 되는 얘기 아닌가. 밀려났으면 집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한 소식통은 이렇게 설명한다.

    “최룡해는 원래부터 바뀔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신실한 사람이 못된다. 술, 여자를 좋아한다.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도 가계(家系) 덕분이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될 때 최현이 총대를 멨다. 1984년 최현이 사망할 때 김정일에게 아들을 잘 돌봐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최룡해가 말썽 피우고 해도 김정일이 챙겨준 까닭이다.”

    일각에선 최룡해를 조직지도부 세력(황병서, 조연준)이 과도기적 인물로 내세운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황병서, 최룡해의 권력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승렬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는, 켜가 완전히 다른 견해도 있다.

    국정원 대북전략국 복원

    또 다른 소식통은 국정원이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한국인 당원 명부를 구하는 일도 진행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인사가 노동당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면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정치적 파괴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명부의 진위를 두고 극한의 정치적 다툼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C간부가 “구할 수 있다”면서 이 공작을 추진했는데, 국정원의 다른 라인에서 검증한 결과 C간부가 접촉한 북한 인사가 ‘그 직위의 그 인물’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 사칭한 인물에 속는 것으로 보여 중단했다고 한다. 다른 소식통은 당원 명부 입수와 관련해 “비슷한 일이 있었으나 팩트가 다르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전 원장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갈등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남 전 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졌다. 남 전 원장의 강한 자기 확신에 청와대가 부담을 느꼈다는 견해도 있다.

    청와대와 여권의 최근 기류는 남 전 원장의 소신과 다르게 대화 쪽으로 움직이는 모양새다. 박근혜 ‘2기 국정원(이병기 원장)’은 대북전략국을 부활시켰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과의 물밑 접촉을 담당한 곳이다.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은 간첩 잡는 곳이지 간첩과 대화하는 곳이 아니라는 이유로 폐지됐다가 복원된 대북전략국이 남북 대화의 막후 채널을 맡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우리가 북한을 자극하는 일은 가능한한 안 하는 게 좋겠다”면서 삐라 살포 자제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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