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외 세계 기록은 아직도 ‘전설’이 갖고 있다. 1994년 8월 1일 작성한 6m14가 그것이다. 동아일보는 ‘鳥人, 35번째 세계新’이란 제목으로 이날의 소식을 한국에 전했다(1994년 8월 2일자).
전설이 된 남자
전설이 된 사내의 이름은 세르히 부브카(51·우크라이나). 한국 언론은 ‘세르게이 붑카’로 적는데, 틀린 표기다. 소련이 붕괴하던 1991년 동아일보가 인용한 AP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갈 것이다. 소련 유니폼을 더는 안 입는다”고 했다. Сергей Бубка(세르게이 붑카·러시아어)는 그렇게 Сергiй Бубка(세르히 부브카·우크라이나어)가 됐다.
부브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 겸 위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9월 IOC 위원장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후보 6명 중 5위를 차지했다. 토마스 바흐 현 위원장이 당선했다.
결과 발표 직후 낙심한 그는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총회장 주변을 전속력으로 내달린 후 정장으로 갈아입고 신임 위원장 당선 축하연에 나타났다. ‘진정한 스포츠맨’이라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9월 26일 인천 송도의 오크우드호텔에서 만난 그는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 것은 스포츠나 인생이나 똑같다”고 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이 다부지다. SNS식 표현을 빌리면 ‘짱짱맨’ ‘상남자’라고나 할까. “격투기 선수해도 되겠다”고 농을 던지자 “태권도, 유도가 우크라이나에서 보편화했지만 해본 적은 없다”면서 “운동은 생활 속에서 늘 실천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 헬스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 올해 2월 실내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이 21년 만에 깨졌다.
“위대한 날이었다. 새로운 기록이 세워지는 것은 기쁜 일이다. 특히 내가 6m15를 뛰어넘은 고향 땅에서 라빌레니가 새 기록을 수립해 더욱 행복하다. 그가 앞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기를 바란다. IAAF에서 내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도록 돕는 것이다.”
라빌레니가 장대높이뛰기 신기록을 세운 대회는 그가 조직한 것이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도 조정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설계했다. 라빌레니의 실외 최고기록은 6m2로 그가 기록한 6m14에 아직은 역부족이다.
세계선수권 6연패
그는 옛 소련 보로실로브그라드(현 우크라이나의 루한시크)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장대높이뛰기를 시작했다. 도네츠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85년 인간 한계라는 마의 6m 벽을 넘은 최초의 인간이 됐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6연패했다. 세계신기록만 35회 경신했다. 1984~1986년에는 소련 최우수 스포츠맨에 뽑혔다.
▼ 인간 새라는 별명을 들어본 적 있나. 한국에서 당신을 그렇게 부른다.
그가 소리 내 웃으면서 별명이 좋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칭하는가. 못 들어봤다.”
▼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미녀새’라고 한다.
“진짜인가?”
그가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쓴 것은 1988년 서울 대회가 유일하다. 5m9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는 소련이 불참하면서 꿈을 접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실격패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후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성기가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도 도전했으나 5m70을 넘는 데도 실패해 세월의 무게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