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누구나 실패하게 마련 나도 ‘새’ 아닌 ‘인간’일 뿐”

장대높이뛰기 ‘인간새’ 세르히 부브카 IOC 위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4-10-21 15: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서울올림픽 金·세계新 35회 ‘육상 전설’
    • IOC 위원장 도전…“스포츠는 내 운명”
    • “마케팅으로 번 돈 세계인에게 되돌아가야”
    • “비용 덜 드는 형태로 올림픽 바꿔야”
    “누구나 실패하게 마련 나도 ‘새’ 아닌 ‘인간’일 뿐”
    2월 15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열린 실내 육상대회에서 르노 라빌레니(28·프랑스)가 ‘장대높이뛰기의 전설’을 뛰어넘었다. 6m16. 1993년 2월 21일 ‘인간새’가 기록한 6m15를 넘어선 것이다. 21년 만의 일.

    실외 세계 기록은 아직도 ‘전설’이 갖고 있다. 1994년 8월 1일 작성한 6m14가 그것이다. 동아일보는 ‘鳥人, 35번째 세계新’이란 제목으로 이날의 소식을 한국에 전했다(1994년 8월 2일자).

    전설이 된 남자

    전설이 된 사내의 이름은 세르히 부브카(51·우크라이나). 한국 언론은 ‘세르게이 붑카’로 적는데, 틀린 표기다. 소련이 붕괴하던 1991년 동아일보가 인용한 AP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갈 것이다. 소련 유니폼을 더는 안 입는다”고 했다. Сергей Бубка(세르게이 붑카·러시아어)는 그렇게 Сергiй Бубка(세르히 부브카·우크라이나어)가 됐다.

    부브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 겸 위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9월 IOC 위원장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후보 6명 중 5위를 차지했다. 토마스 바흐 현 위원장이 당선했다.



    결과 발표 직후 낙심한 그는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총회장 주변을 전속력으로 내달린 후 정장으로 갈아입고 신임 위원장 당선 축하연에 나타났다. ‘진정한 스포츠맨’이라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9월 26일 인천 송도의 오크우드호텔에서 만난 그는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 것은 스포츠나 인생이나 똑같다”고 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이 다부지다. SNS식 표현을 빌리면 ‘짱짱맨’ ‘상남자’라고나 할까. “격투기 선수해도 되겠다”고 농을 던지자 “태권도, 유도가 우크라이나에서 보편화했지만 해본 적은 없다”면서 “운동은 생활 속에서 늘 실천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 헬스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 올해 2월 실내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이 21년 만에 깨졌다.

    “위대한 날이었다. 새로운 기록이 세워지는 것은 기쁜 일이다. 특히 내가 6m15를 뛰어넘은 고향 땅에서 라빌레니가 새 기록을 수립해 더욱 행복하다. 그가 앞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기를 바란다. IAAF에서 내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도록 돕는 것이다.”

    라빌레니가 장대높이뛰기 신기록을 세운 대회는 그가 조직한 것이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도 조정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설계했다. 라빌레니의 실외 최고기록은 6m2로 그가 기록한 6m14에 아직은 역부족이다.

    세계선수권 6연패

    그는 옛 소련 보로실로브그라드(현 우크라이나의 루한시크)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장대높이뛰기를 시작했다. 도네츠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85년 인간 한계라는 마의 6m 벽을 넘은 최초의 인간이 됐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6연패했다. 세계신기록만 35회 경신했다. 1984~1986년에는 소련 최우수 스포츠맨에 뽑혔다.

    ▼ 인간 새라는 별명을 들어본 적 있나. 한국에서 당신을 그렇게 부른다.

    그가 소리 내 웃으면서 별명이 좋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칭하는가. 못 들어봤다.”

    ▼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미녀새’라고 한다.

    “진짜인가?”

    그가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쓴 것은 1988년 서울 대회가 유일하다. 5m9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는 소련이 불참하면서 꿈을 접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실격패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후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성기가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도 도전했으나 5m70을 넘는 데도 실패해 세월의 무게를 느꼈다.

    ▼ 올림픽과 인연이 적었다.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컸다. 유일하게 금메달을 딴 곳이 한국이다. 서울은 잊을 수 없는 장소다. 올림픽 스타디움의 열기를 지금껏 기억한다. 한국과 끈끈한 인연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서울올림픽은 내가 걸어온 길에서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누구나 실패하게 마련이다.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부브카라는 이름의 ‘인간 새’도 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날아오르는 게 아니었다. 존경받는 스포츠맨이었지만 나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삶의 다른 일 또한 똑같지 아니한가.”

    그는 우크라이나의 ‘국민 영웅’이다. 국회의원(2002~2006)을 지냈으며, 정부 각료(2002~2005)로 일했고, 현재는 대통령 고문(2010~ )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내전 상황이다.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부브카’의 동상이 서 있는 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親)러시아 반군이 전쟁을 벌인다. 10월에도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3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빼앗았으며 내전에서 친(親)러시아 반군을 지원한다. 인터뷰에 앞서 ‘IOC 위원 부브카’의 보좌관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우크라이나 사태와 IOC 위원장 선거 재도전 여부는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한국의 미녀새’ 산파

    ▼ 2000년 은퇴 행사 때 레오니드 쿠츠마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세계는 부브카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쿠츠마 전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친러시아 반군과의 협상 대표를 맡고 있다). 올림픽 정신을 전파하는 IOC 위원으로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어떻게 보나.

    “….”

    ▼ 답변하기 어려우면 안 해도 된다.

    “스포츠맨으로서 말하겠다. 올림픽 철학은 평화와 우호를 강조한다. 전 세계에 평화와 우호가 있었으면 한다.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양쪽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맞춰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 아시아경기대회 참관이 방한 목적인가.

    “그렇다. IOC 위원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그간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대한육상경기연맹과도 긴밀하게 협조한다. 인천에 도착해 트라이애슬론, 하키, 크리켓 등을 관람했다. 내일(9월 27일)부터 육상 종목이 시작된다. 집중적으로 참관할 예정이다.”

    ▼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준비를 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흡한 점이 많던가.

    “개최지 언론은 늘 그런 식으로 보도하게 마련이다. 준비를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경기 진행이 깔끔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도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 대한육상경기연맹(이하 육상연맹)을 통해 한국 육상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안다.

    “오동진 육상연맹 회장은 육상 보급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지난 봄에도 서울을 방문해 연맹 임직원과 다양한 사안을 의논했다. 육상의 매력을 시민에게 알리고 스포츠로서의 육상을 좀 더 널리 보급하는 방안을 조언했다. 학교체육 활성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 육상연맹이 도입해 일선 교육 현장에 보급한 키즈 프로그램(Kids Program)은 IAAF가 제공한 것이다. IAAF는 트레이너 지원도 한다. 아르카디 시크비라 한국 장대높이뛰기 코치는 도네츠크 출신으로 내가 추천한 사람이다. 시크비라 코치가 선수들의 기량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들었다.”

    10월 1일 언론에 ‘한국의 미녀새’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임은지가 동메달, 최예은이 4위를 차지한 것. 임은지의 아름다운 복근과 최예은의 앳된 얼굴이 화제로 떠올랐다. 두 선수를 지도한 사람이 시크비라 코치다.

    ▼ 한국은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육상 저변이 좁다. IAAF가 한국 같은 나라에서 저변을 확대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안다.

    “IAAF는 유소년 학교체육에서 시작해 전문 선수 육성까지 아우르는 강력한 육상 발전 프로그램을 마련해놓았다.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각국의 육상연맹을 지원한다. 재정 및 전문가 양성 지원 등도 포함돼 있으며 스타디움의 장비라든지 시설과 관련한 도움도 제공한다. 한국은 육상이 발전할 우수한 조건을 가졌다. 경제적으로 발전해 있어 스포츠 저변이 확대될 기반이 탄탄하다.”

    올림픽 철학과 비즈니스

    “누구나 실패하게 마련 나도 ‘새’ 아닌 ‘인간’일 뿐”

    1988년 9월 28일 서울올림픽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 세르히 부브카가 하늘을 날 듯 바를 넘고 있다.

    ▼ 은퇴 후 스포츠 행정가의 길을 걸은 까닭은.

    “내 삶은 스포츠로 가득 차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스포츠 발전을 위해 능력을 발휘하는 게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으로 후배에게 도움 주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운동에 다걸기 한 이들일수록 은퇴 후 공허함을 느끼기 쉽다. 엘리트 선수들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사회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면서 개개인에게는 기회다. 스포츠 외교, 스포츠 행정에 나서는 선수가 더욱 많으면 좋겠다. 김연아 혹은 또 다른 한국 선수 출신 스포츠 행정가를 IOC 총회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 올림픽의 지나친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포츠 본연의 의미와 상업화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상업화? 비즈니스를 말하는 것인가?”

    ▼ 그렇다.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위원장(1980~2001)이 재임할 때 IOC가 비즈니스와 연계한 정책을 많이 구사하면서 올림픽을 전 인류적으로 보편화하려고 노력했다. 올림픽과 비즈니스의 관계는 철학적인 문제이면서 정책적인 사안이다. 올림픽 운동(movement)은 이상이면서도 현대의 삶에서 실제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를 벗어나서는 운동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비즈니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마케팅을 통해 확충한 재정을 올림픽 운동에 올바르게 사용해 전 세계 모든 젊은이에게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의 노력으로 올림픽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렸으나 ‘주역’이던 선수들이 스폰서의 ‘광대’가 돼버렸으며, 올림픽이 ‘비즈니스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IOC는 프로선수를 참가시켜 ‘상품 가치’를 높였으며 중계권료, 스폰서십으로 번 돈을 올림픽을 지상 최대의 이벤트로 만드는 데 사용했다. 빈곤국에 자금을 지원해 참가국 수를 늘렸으며 여자 종목도 확대했다.

    개도국 돕는 ‘부브카 재단’

    ▼ 올림픽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올림픽을 개혁하고자 굉장히 노력한다. IOC 비상대책위원회가 12월 올림픽 개혁의 청사진을 내놓는다. 개인적으로는 올림픽의 가치를 보호하면서 젊은이들이 올림픽 무브먼트에 활발하게 동참하는 형태가 좋을 것 같다. 또한 올림픽을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 지금껏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은 다양한 나라, 도시에서 개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올릭픽 철학에 부합한다. 전 세계인이 올림픽을 통해 체육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 IOC 위원으로서의 포부는.

    “스포츠를 통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올랐다. 앞으로도 운동과 관련한 삶을 살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게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선수들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전 세계인이 스포츠를 더욱 즐겁게 행하는 데 기여하려고 한다.”

    그는 사재를 출연해 ‘부브카 재단’을 세웠다.

    “부브카 재단의 첫 번째 설립 목적은 개발도상국의 스포츠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개도국의 선수와 트레이너를 돕는다. 스포츠 분야 외에 장애 아동을 지원하는 일도 한다.”

    알려졌듯, 그의 꿈은 IOC 위원장을 맡는 것이다. ‘뼛속까지 스포츠맨’의 다음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