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美·中 사이 한국의 중립은 中과 조공관계로 돌아가는 것”

미국 보수주의 거두 에드윈 풀너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작심발언

  • 대담·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정리·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4-10-22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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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에 의존
    • 센카쿠는 日 영토…한국도 최악 상황 준비해야
    • 한국도 일본처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해야
    • THAAD 한반도 배치? 더 많은 방어가 더 좋은 것
    “美·中 사이 한국의 중립은 中과 조공관계로 돌아가는 것”
    헤리티지(Heritage)재단은 미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두뇌집단(Think Tank)이다. 1973년 설립돼 공화당의 싱크탱크 구실을 해왔다. 민주당의 두뇌집단 역할을 해온 브루킹스 연구소와 함께 미국의 국방, 외교, 정치, 경제, 사회 정책을 견인하는 양대 연구소로 꼽힌다.

    新보수주의 그룹 리더

    헤리티지재단의 설립자는 에드윈 풀너(Edwin Feulner·73) 박사다. 1977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재단 이사장을 맡아왔다. 풀너 박사는 ‘진정한 보수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신(新)보수주의의 아이콘 격이다.

    미국 신보수주의 그룹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1969~1974) 집권 때 대(對)민주당 타협 노선에 반발해 헤리티지재단을 설립했다. 풀너 박사의 이데올로기가 정책으로 만개한 때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1981~1989) 때다.

    헤리티지재단은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1000여 쪽에 달하는 ‘리더십을 위한 위임령(Mandate for Leadership)’을 제안했다. 이 위임령에는 3000건에 달하는 보수 개혁 어젠다가 담겼는데, 레이건 행정부는 그중 60% 넘는 사안을 정책으로 채택했다.



    헤리티지재단은 그간 국방 강화, 미국 이익 방어, 전통 가치 존중, 제한된 정부, 복지 축소, 자유 기업 및 무역 등 보수적 어젠다를 강조해왔다. 미국 공화당의 거물들이 이 재단의 구성원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헤리티지재단의 제안을 정책에 반영했다.

    미국 보수 정치의 거목인 풀너 박사는 신보수주의 그룹의 리더면서 ‘보수주의라는 거대도시의 판테온’(뉴욕타임스)이다. 판테온(Pantheon)은 ‘모든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워싱턴에서 가장 힘 있는 인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인사’를 꼽을 때마다 앞자리에 이름을 올린다.

    그는 레지스대(영문학),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MBA), 에든버러대(정치학박사)에서 수학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한국 정부로부터 한미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자유의 행진’ ‘미국을 위한 리더십’ 등의 저서가 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체스판이 요동한다. 오바마의 ‘피벗 투 아시아’,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이 충돌한다. 정경유착 자본주의를 뒷배로 삼은 푸틴의 ‘동진(東進)’도 요란하다. 아베의 일본도 ‘편 가르기 연대’ ‘셈법 외교’에 혈안이다.

    ‘미국 보수주의의 판테온’은 요동치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나아갈 길을 어떻게 볼까. ‘신동아’가 10월 1일 서울 강북의 한 호텔에서 풀너 박사를 만났다. 의외로 그간 풀너 박사와 인터뷰한 한국 언론이 거의 없다.

    작은 정부, 친(親)시장을 강조하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그’가 동아시아라는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현안에 대해 밝힌 시각은 미국의 정통 우파가 한국과 동아시아의 오늘을 어떻게 보는지 짐작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보수주의 제1 원칙

    ▼ 풀너 박사는 1973년 헤리티지재단을 설립해 40년 넘게 이끌면서 미국의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로 키워냈습니다.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헤리티지재단을 처음 꾸릴 때 지금의 우리 모습과 비교할 만한 조직은 미국에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싱크탱크가 누구도 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두꺼운 책 형태의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그런 보고서들은 정책 수립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요. 특정 사안에 초점을 맞춰 결론을 명료하게 담은 짧은 보고서를 내놓으면 정책 결정자가 참고하기 좋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15, 16쪽을 넘지 않는 분량의 페이퍼를 작성해 정책 결정자가 현안을 파악하고 전략을 짜는 것을 돕는 게 헤리티지재단의 설립 취지입니다. 이 같은 일을 지금껏 우리가 해왔습니다.”

    ▼ 미국에서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보수주의가 인기가 있습니다. 풀너 박사처럼 존경받는 보수주의자가 존재하기에 그렇다고 봅니다. 반면 한국의 젊은 층엔 보수주의자가 매우 적습니다. 한국의 젊은 보수주의자에게 격려나 충고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보수주의의 기초 원칙으로 되돌아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 조언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나 같은 보수주의자의 주장이 옳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책임감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외부의 거대한 힘이나 정부에 의해서 삶의 양식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노력에 따라 성장하고 발전하는 게 삶이라는 점을 믿는 것입니다. 각자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가 가득한 이 경이로운(wonderful) 세계에서 말입니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이 바로 보수주의의 첫째 원칙입니다. 이 같은 원칙을 설명하면 많은 젊은이가 ‘그래, 그것이 바로 내가 믿는 거야’라고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원칙이 옳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보수주의의 원칙을 설명하고 보수주의자가 말하는 것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워싱턴-서울 관계 생산적”

    ▼ 당신을 ‘보수주의라는 거대도시의 판테온’이라고 묘사한 뉴욕타임스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풀너 박사가 없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이 미국 보수 정치와 정신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뭐라고 봅니까.

    “내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내가 건설한 기관입니다. 헤리티지재단을 말하는 겁니다. 나와 동료들이 처음 싱크탱크를 꾸렸을 때는 별 볼일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구적으로 이어지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싱크탱크로 성장했습니다. 헤리티지재단은 현재 워싱턴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앞으로도 그러한 역할을 할 겁니다.”

    ▼ 한국과 관련한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21세기 한국의 외교 전략 중 중요한 것이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조화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이 중국에 다가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워싱턴에서 나오는 것으로 압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직설적 화법으로 “미국은 언제나 한국 편에 서왔다. 한국도 미국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현재의 한미동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내 생각에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매우 좋은 모습입니다. 아시아에서 미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미국인들은 현재의 워싱턴-서울 관계가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박근혜 대통령과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것을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나와 아내가 박 대통령을 미국의 우리집에서 맞이했으며, 반대로 한국에서 박 대통령의 환대를 받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나와 박 대통령은 서로의 생각(ideas)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당선 후 미국을 처음으로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서로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공감(sympathy)하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워싱턴의 외교 정책 초점이 중동으로 가 있는 상황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한국과의 관계를 무척 자랑스러워 합니다.”

    “중국에 事大하길 원하나”

    ▼ 국가 미래 전략과 관련해 한국의 일부 좌파 학자는 중립화 모델을 이야기합니다. 아시다시피 핀란드가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와의 관계에서 중립적 정책에 기초한 실리 외교를 펼친 바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도 G2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앞으로 중립 모델을 만드는 게 현명하다는 논리입니다. 이 같은 모델을 한국에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까.

    “핀란드화 모델을 말하는 건가요? 결론과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한국인이 무엇을 원하는가입니다. 한국인이 자신들의 이익, 한국의 국익, 한국인의 미래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한국인이 한국과 미국이 60년 넘게 공유한 비전이 옳다고 믿습니까. 내 생각에는 이 질문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미국과 공유한 비전이 옳다고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중립적 위치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과는 기꺼이 토론할 용의가 있습니다. 자유와 비(非)자유 사이에는 중립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이라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 오래전의 조공 관계로 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 한국인은 한국이 중국에 사대(事大)하는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까. 그것은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14억 인구의 중국에 한국은 작은 지방일 뿐입니다.”

    핀란드화 모델(finlandization)은 1960년대 서독에서 생겨난 말로 냉전시기 소련과 핀란드의 관계를 빗댄 표현이다. 한 나라가 자주 독립을 유지하면서 대외 정책에서 이웃한 대국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1871~1940년 독일과 덴마크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이 낱말을 사용한다. 핀란드인은 이 단어를 모욕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서방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소련과 친하게 지낸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냉전시기 미국의 대외 정책 전문가들은 일본과 서유럽 일부 국가가 핀란드화해 반(反)소련 정책을 취하지 않는 것을 우려했다.

    “美·中 사이 한국의 중립은 中과 조공관계로 돌아가는 것”


    “미국도 일본과 거칠게 대면”

    ▼ 국가의 전략에서 이념과 가치는 어느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모든 개인은 특정한 권리를 가졌습니다. 이 같은 권리는 정부가 준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겁니다. 인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만큼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개인의 자유 및 권리와 관련한 청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정부를 지배한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칙입니다. 정부가 시민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도 이 같은 원칙에서 비롯합니다.

    이데올로기와 가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진보하며 발전할 수 없을뿐더러 결국엔 야만적인 존재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이 같은 이데올로기는 미국인과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 중국 일본 관계는 2009년 12월 오자와 이치로 당시 민주당 간사장이 140여 명의 의원, 경제사절단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면서 최고 정점을 찍었는데 이듬해 희토류 분쟁 등이 발생하면서 일본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려고 노력한 것으로 압니다. 반면 한국은 대중 무역 의존도가 수출에서 26%가 넘는 데다 삼성전자 첨단 반도체 설비 등 주요 대기업 공장이 중국에 둥지 틀고 있습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어떤 전략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고 보는지….

    “우리는 전 세계의 자유무역을 장려합니다. 더 많은 무역이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무역, 한국과 일본의 무역 확대도 마찬가지겠지요.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미국에 의존합니다. 미국은 일본과도 아주 가까운 동맹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미국-일본 동맹은 중요합니다. (한국의 안보와 관련한) 미군 기지가 일본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원하는 게 아니지만 한국 또한 어떤 갈등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친구인 한국이 중국과 경제 관계를 확대할 때 미국과의 관계, 일본과의 관계, 미국-일본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본과 관련한 역사 문제에 대해 들었고 이후의 전개 과정에도 공감합니다. 미국 또한 일본과 역사적으로 굉장히 거칠게 대면한 경험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미국-한국 동맹은 성공적인 미국-일본 동맹에 많은 부분을 의존합니다. 한국은 두 동맹을 모두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 역사 문제로 인한 한일 갈등이 한국, 미국, 일본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은 이 같은 상황을 오히려 부추기면서 즐기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미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 일본 사이에서 조정자 노릇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가 4+2대화(6자회담)로 되돌아갈 때 워싱턴 서울 도쿄가 반드시 함께 걸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we must work together)는 겁니다. 또한 세 나라의 목표가 동일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북한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통일이 목표가 돼야 합니다. 누군가가 내게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실제로 그런 목표(북한 핵 폐기와 한반도의 통일)를 추구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러기를 희망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평화를 이뤄내는 것과 통일된 한국인이 자유를 누리는 것은 옳은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안보 동맹은 누구인가?”

    ▼ 센카쿠 열도(중국 명 댜오위다오)는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상대적으로 큰 곳입니다. 중국, 일본 간 국지전이 이곳에서 발생하면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까.

    “주지하듯, 오바마 행정부와 과거의 미국 정부는 공화당, 민주당 구분 없이 그 섬들이 일본의 영토라고 언급해왔습니다.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따르면 누군가 일본 영토를 공격한다면 이 조약을 침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답은 아주 명백합니다. 앞선 행정부들과 현 행정부 역시 센카쿠 열도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의 방위 의무 대상이라고 확인했습니다.

    나는 한국이 누구와 안보 동맹을 맺었는지 상기하길 바랍니다. 또한 서울이 미국과 한국이 공유한 비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여러 지역에서 함께 희생했다는 사실도 상기하기를 바랍니다. 센카쿠 열도에서 국지전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할지라도 미국과 한국은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합니다.”

    풀너 박사의 언급은 한국도 미국을 도와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한국은 베트남전(1965~1973), 걸프전(1991), 2001년 시작된 대(對)테러 전쟁 때 동맹국인 미국을 지원했다. 한국과 미국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군사 동맹이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 동맹을 규정한 미일안전보장조약은 1951년 체결돼 1960년 개정됐다. 이 조약의 주된 내용은 일본 유사시 미군의 참전과 미군의 일본 주둔이다.

    “美·中 사이 한국의 중립은 中과 조공관계로 돌아가는 것”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이 10월 1일 에드윈 풀너 헤리티지재단 설립자와 대담하고 있다.



    ▼ 북한이 핵실험을 세 차례나 했습니다. 파키스탄 모델(사실상 핵보유국)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하는데요. 한국과 미국의 정책이 실패한 것입니다. 워싱턴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전략이 부재한 것 아닐까요. 워싱턴이 평양에 대한 베이징의 영향력을 과대 평가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한미동맹을 이용해 강력하게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요.

    “북한 핵 문제는 미국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와도 공유하는 사안입니다. 이들 국가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 핵 문제가 그들의 국익에만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국 내에 핵 시설을 보유한 중국이 평양에 핵 폐기와 관련해 강한 압력을 넣지 않는 까닭에 대해 베이징의 친구들과 논쟁해왔습니다. 베이징이 평양을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합니다. 핵 확산을 멈추는 것은 지구촌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핵 재처리, 한일 동등 대우를”

    문제는 한미관계가 친밀함에도 미국은 지구의 다른 쪽에 붙잡혀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중동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미국 정부 안의 일부 인사들은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북한 핵 문제에 그들이 쏟아야 하는 것보다 적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나는 중국이 북한 핵 개발 중단을 위해 공적, 사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길 바랍니다. 북한 핵 문제는 나와 너의 관심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 박사께서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미국에서 적극 지지했습니다. FTA는 단순한 통상 협상이 아니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룹니다. 한중 FTA 협상이 마무리 단계인 반면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나 한일 FTA 협상은 진전이 매우 더딘 것으로 압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나는 미국과 한국이 맺은 FTA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헤리티지재단이 한국과의 FTA와 관련해 공화당, 민주당이 함께 일하도록 하는 데 수행한 역할 또한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앞서 강조했듯 우리는 자유무역의 힘을 믿습니다. 한국이 중국 일본 등과 더 많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은 좋은 일이고, 내가 요청하는 바입니다. TPP 협상이 더욱 신속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중국이 TPP 협상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TPP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협상 중인 광역 자유무역협정(FTA)을 말한다. 미국은 미국식 FTA를 TPP의 모델로 삼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상 질서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중국은 TPP가 ‘중국 배제 블록’이 될 것을 우려한다. 미국이 겉으로는 “참여하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가입하기 어려운 구도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중국 처지에서 한중 FTA는 TPP를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 한미 간 핵심 현안 중 하나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입니다. 박사께서는 1988년 개정된 미일 원자력 협정 내용을 인용하면서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관련해 무기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이 한국에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 다시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포함한 포괄적 사전 동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나는 미국이 좋은 친구이자 동맹인 한국을 일본과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같은 체제 안에 있는 다른 선진국과 일본처럼 한국을 대우해야 해요. 나는 왜 이 이슈가 논쟁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친밀한 관계를 가로막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한국 정책 당국의 숙원이다. 미국은 핵무기로의 전용을 우려해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현재 한미 간 협상이 최종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편이 옳은가”

    ▼ 올해 2월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미·베트남 원자력협정 본문(body)에 베트남의 사용후핵연료 농축(enrichment)과 재처리(reprocessing)를 금지하는 명시적 조항이 빠졌습니다. 미국이 암묵적으로(implicitly) 재처리를 허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한국 보수진영 일부에서는 “미국이 베트남보다 못하게 한국을 대우한다” “미국이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나는 원자력 정책 전문가는 아니지만 동료인 헤리티지재단의 부르스 크링어가 이 문제와 관련해 자세한 보고서를 썼습니다. 헤리티지재단의 관점과 나의 견해를 종합해 얘기하면 한국 정부와 국민에 대한 미국의 신뢰와 확신은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베트남과 다르게 대우하거나 한국을 공정하게 대하지 않을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 미국은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배치하길 희망합니다. 그와 관련해 한국에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지식인은 중국이 반발할 것이라며 THAAD 배치에 반대합니다.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THAAD가 한국의 안보에 필요하다고 보는지요.

    “나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미사일 방어 이론을 신봉합니다. 더 많은 방어가 더 좋은 겁니다(The more defense is the better). 미사일 방어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자국을 보호하는 것 아닙니까. THAAD가 적을 공격하는 수단은 아니지만 중국이 좌지우지하게 할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의 국익, 한국의 국익에 관련한 것을 함께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안보동맹을 맺은 이유예요. 나와 헤리티지재단의 동료들은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호의를 갖고 있습니다. 이 정교한 시스템을 한국에서 발전시키는 일에 미국과 한국이 함께할 수 있습니다.”

    10월 8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THAAD의 한국 배치는 안보와 국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김영근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한민구 장관의 주장은 충분한 고려 없는 맹목적인 찬성”이라면서 “사드 배치가 6자회담 당사자인 중국, 러시아 등과의 갈등을 빚게 되고 북핵 문제 해결에도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친(親)중국화한다는 견해가 일각에서 나온다. 미국의 힘이 전성기보다 약화하고 중국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조화가 잘 이뤄질 수 있을까. 풀너 박사는 완곡한 어법으로 “어느 편에 설 것이냐?”가 아니라 “어느 편이 옳으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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