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생각의 가방’을 뒤지겠다고? ‘창조경제’ 위협하는 검열의 유혹

사이버 망명

  •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입력2014-10-22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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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열’이라는 전근대적 방식으로 국민의 사생활을 엿보려는 공권력을 피해 많은 국민이 ‘피난행렬’에 동참한다. 국민 메신저를 떠나 해외 메신저로 옮겨가는 ‘사이버 망명’이 줄을 잇는다.
    • 이들은 그 원인 제공자가 정부와 검찰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가방’을 뒤지겠다고? ‘창조경제’ 위협하는 검열의 유혹
    ‘불심검문(不審檢問)’의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 대학가에는 경찰이 학생을 멈춰 세우고 가방을 뒤지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이른바 ‘불온서적’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던 시대였다. 물론 불심검문은 지금도 경찰관직무집행법 3조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그 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졌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이런 풍경을 목격하긴 쉽지 않다.

    헛발질 검찰, 손놓은 카톡

    그런데 검찰이 이제 ‘생각의 가방’을 뒤지겠다고 했다. 9월 16일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이틀 만에 검찰은 영장 없이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모니터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전담수사팀까지 꾸렸다. 사람들은 생각의 가방이 거리의 가방보다 더 소중하다고 느꼈다. 지식인, 전문직을 중심으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불똥은 맨 먼저 메신저로 튀었다. 이른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떠나 러시아 망명객 파벨 두로프가 만든 독일제 메신저 앱 텔레그램(telegram)으로 ‘망명’하는 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이 뒤늦게 개인 간의 사적인 대화는 감청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사람들의 의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텔레그램은 이후 각종 다운로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고 150만 명 이상의 한국인 망명객을 받아들였으며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국어 버전을 출시했다.

    검찰의 서투른 대응이 다음카카오의 합병 행보를 어지럽게 했다. 첫걸음을 떼자마자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10월 10일 다음카카오의 주가는 폭락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종가는 16%가 깎인 13만 원대를 기록했다. 사이버 망명은 급기야 어렵사리 마련된 국정감사에서도 최대 화제가 됐다.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는 증인으로 신청됐다. 이른바 ‘셧 다운제’로 게임산업을 위기에 빠뜨린 정부가 부주의한 ‘검열 헛발질’로 창조산업의 꽃으로 떠오른 무료 메신저 산업을 공격한 셈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단연 검찰이다. 디지털 시대의 무(無)국경성을 조금이나마 자각했더라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서투른 대응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카카오의 어설픈 대응은 국내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망중립성 문제로 통신사들이 압박할 때 카카오톡은 국민의 이름을 걸고 위기를 돌파했다. 그런데 이번엔 거꾸로 갔다. 검찰의 처지에서 국민을 공격한 것이다. 이석우 대표는 “달라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저 “실정법에 따른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은 아이클라우드에서 유명 여배우의 누드 사진이 유출된 것을 염두에 두고 “검찰에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고, 트위터의 벤 리 부사장은 투명성 보고서 공개를 거부하는 미국 정부를 수정헌법 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제소했다. 다음카카오의 초기 대응과 사뭇 비교된다. 심지어 다음카카오의 한 소속 변호사는 SNS를 통해 카카오톡의 무차별적인 정보제공을 비판하는 사용자를 향해 ‘비겁자들’이라고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최대 망명지 ‘텔레그램’

    러시아 정부의 정보 제공 요청을 거부하고 망명한 파벨 두로프가 독일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텔레그램이 국내 메신저 이용자들의 1차 망명지가 됐다. 파벨 두로프의 스토리에다 보안성이 강한 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망명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텔레그램 측도 발빠르게 한국어 버전을 만들고 한국인 기술자 채용공고를 냈다.

    트위터와 블로그에서 ‘텔레그램’을 언급한 문서도 급증했다. 9월 11일부터 10월 10일까지 한 달 동안 텔레그램을 언급한 문서는 13만6589건이나 검색됐다.

    9월 19일까지 10건 이하이던 텔레그램 언급량은 9월 20일엔 1290건으로 급증했다. 10월 1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한 달치 카카오톡 대화 내용과 3000명의 정보를 압수수색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언급량이 급증해 10월 2일엔 1만2742건을 기록했다. 이후 다음카카오가 관련 사실을 부인하면서 논란이 이어졌고, 10월 6일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수사기관의 감청 건수가 박근혜 정부 들어 늘어났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10월 7일엔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컴퓨터공학부)가 자신의 트위터에 수원지방법원에서 발부된 국정원의 카카오톡 감청 영장을 공개하면서 파문은 더욱 커져갔다.

    급기야 10월 8일엔 다음카카오 측이 ‘감청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말한 사실을 번복하면서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147건을 발부받았다고 털어놨다. 이로써 카카오톡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텔레그램 언급량은 이튿날인 10월 9일 1만4633건으로 하루 최고치를 기록했다(앞 페이지 표 참조).

    텔레그램과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위는 5만7572건을 기록한 ‘카카오톡’, 2위는 2만5555건을 기록한 ‘메신저’가 차지해 텔레그램 망명이 주로 카카오톡 메신저로부터 일어났음을 입증했다. 3위는 1만6262건의 ‘정부’, 4위는 1만3471건의 ‘검찰’, 5위는 1만3373건의 ‘한국’이었다. 국민은 사이버 망명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한국 정부와 검찰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전체 연관어 6위는 ‘정보’(1만2139건), 7위는 ‘보안(1만1222건), 8위는 파벨 두로프를 지칭한 ‘개발자’(1만902건), 9위는 ‘앱’(1만820건), 10위는 ‘사용자’(1만739건)였다. ‘망명’은 8761건으로 전체 연관어 12위에 올랐다.

    텔레그램과 함께 언급된 인물 연관어 1위는 4243건의 박근혜 대통령이 차지해 대통령의 언급에서 이 사건이 시작됐음을 드러냈고, 2위는 1746건을 기록한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 3위는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였다(1692건). 4위는 팟캐스트에서 카카오톡 검열 사실을 보도한 김어준 씨다(1217건).

    사이버 망명에 대한 여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심리 연관어를 보면 ‘갈아타다’(5700건)가 1위, ‘안전하다’(4334건)가 2위에 올라 텔레그램이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했다. ‘빠르다’(2937건), ‘치솟다’(2325건), ‘인기 끌다’(1987건), ‘반하다’(1914건) 등이 뒤를 이어 텔레그램으로 이동하는 추이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을 퍼 날랐고, ‘욕하다’(2522건), ‘불안’(1828건), ‘힘들다’(1822건) 등 기존 메신저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과 불안한 마음도 심리 연관어 상위권에 포진했다.

    ‘보안성’ 최우선하는 국민

    그렇다면 왜 하필 텔레그램일까. 네이버의 라인은 국내 업체이니 그렇다고 해도 전 세계 최대의 메신저인 왓츠앱을 제치고 텔레그램 열풍이 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개발자이자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파벨 두로프는 러시아의 페이스북으로 알려진 브이콘탁테의 창업자다.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정보를 요청하자 이를 거부하고 브이콘탁테를 매각한 뒤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도 2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이력이 회자되면서 텔레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생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텔레그램을 언급한 것 가운데 파벨 두로프의 이력을 전한 @bin00000의 트윗이 3000여 회나 리트윗되며 폭넓게 퍼져나갔다.

    두 번째, 뛰어난 보안성이다. 자동 암호화 기능과 삭제 기능을 가진 데다 서버도 독일에 있어 한국의 수사 당국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이 많이 작용했다. 물론 일각에서 텔레그램의 보안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만, 적어도 한국 업체처럼 알아서 정보를 내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근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언론자유 지수가 낮은 나라일수록 텔레그램 가입자가 많다는 통계가 나와 국민의 마음을 더 씁쓸하게 한다.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무려 57위이고 텔레그램 가입자 순위는 현재 1위를 달린다. 언론자유 지수 1위인 핀란드는 텔레그램 가입자 순위 359위, 2위인 네덜란드는 285위, 3위인 노르웨이는 637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국민이 ‘보안성’을 가장 중시하게 만드는 잘못된 정책이 텔레그램 망명 사태의 본질인 셈이다.

    2013년 6월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정부 3.0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개방과 공유, 소통과 공감의 원칙에 입각해 정부의 공공 데이터를 전면 공개하고 이를 민간이 참여해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ICT 산업과 콘텐츠 산업의 융합을 기반으로 창조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이른바 드림 프로젝트가 포함된 신선한 발표였다.

    이는 G8 정상회담에서 공공 데이터 전면 공개 방침을 천명한 ‘오픈 데이터 선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어 정부 데이터 공개에 대한 기본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고, 정부는 ‘지방 3.0’으로 이어지는 포괄적인 정보화 추진계획을 후속대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빅 데이터를 활용한 지방정부 정책에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도 추진됐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확립, 클라우드 컴퓨팅센터 건립 등 공개된 데이터가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포함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념 프레임에 얽매여 과거로 가는 정책을 자꾸 내놓았다. 특히 이번 사이버 망명 사태를 부른 검찰의 사이버 검열 방침은 정부 3.0과 같은 기존의 창조경제 육성 방안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다음카카오는 만년 2위 포털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국내 1위 메신저 업체인 카카오톡이 만나 새로운 미래의 융합산업을 만들어내기 위해 합병한 회사다. 특히 ‘공룡’ 네이버에 대항해 일정한 힘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국내 ICT 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런데 다음카카오는 출범 초기부터 대대적인 가입자 이탈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그리고 그것을 초래한 것이 검찰이라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검찰은 반성하지 않는다. 2008년 미네르바 사건이 검찰의 총력 대응에도 무죄 판결을 받지 않았는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최소한의 헌법적 가치에 대한 판단도 없이 충성 경쟁을 한다면 도대체 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사적 질서 속에서 한국의 창조기업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쌓아갈 수 있겠는가.

    모바일 퍼스트 시대

    세상의 변화는 무섭다. 미래학자 피터 힌센은 그의 책 ‘뉴 노멀’에서 지금까지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디지털 혁명의 정점에서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시대에 진입한다는 말이다. ‘뉴욕타임스’ 전 편집국장 질 에이브럼슨은 “마감을 끝내고 한숨짓는 사이 세상은 벌써 저만치 달아난다”고 이 시대의 속도를 은유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는 “디지털 퍼스트(디지털 우선 정책)의 숙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모바일 퍼스트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탄한다.

    지금 세계는 달라진 환경 아래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 위한 뜨거운 논쟁을 벌인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틈만 나면 “사생활은 죽었다(privacy is dead)”고 말한다. 사생활이 실제로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생활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의와 이를 보호할 새로운 차원의 법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과거의 법과 미래의 산업 사이의 균형점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전 세계 디지털 경제의 핵심 화두이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다양한 논점이 형성되지만 최소한의 합의는 있다. 이런 변화의 과정이 민주주의의 축소가 아닌 민주주의의 확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정보화하면서 거대 국가의 빅브라더 세상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만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양립시키려는 노력은 더욱 뜨겁다.

    피터 힌센에 따르면 이제 인터넷 이후의 세대인 ‘디지털 원주민’이 사회에 뛰어들었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이주한 디지털 이민자와의 가치 충돌이 빈번해질 것임을 경고하는 수사다. 디지털 원주민에겐 특히 사이버상의 대화가 매우 본질적인 것일 수 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버추얼 네임(인터넷 아이디)’을 사용하며 어쩌면 그것이 ‘리얼 네임(진짜 이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지금은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글로 표현한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핵심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전 시대에는 거리에서 가방을 뒤졌듯이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말도 있었다. 술집에서 한 이야기 때문에 잡혀가는 일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헌법적 가치에 도전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는 디지털 흔적이 된다.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심각한 명예훼손은 사후적으로 검증해 위법 여부를 가리면 될 일이다. 검찰의 모니터링 방침은 사전 검열에 해당한다. 이는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는 행위이고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도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코노미스트’한국 특파원을 지낸 대니얼 튜더가 한 칼럼을 통해 한 제안은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어떤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는 조건 중 하나는 ‘국민’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대통령을 비판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는 “만약 올랑드 대통령(프랑스)이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마다 1유로씩 받아낸다면 그는 프랑스의 국가부채를 모두 갚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 비판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꼬집기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돼 하나의 현상이 된 사이버 망명 사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나아가 표현의 자유와 디지털 경제의 상관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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