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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號 70돌 |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지식인

“전도하는 마음으로 미술사 연구…외롭지 않아”

미술평론가 유홍준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전도하는 마음으로 미술사 연구…외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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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하는 마음으로 미술사 연구…외롭지 않아”
김호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홍준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입니다. 1권만 150만 권이 나가고 7권까지 나온 시리즈 전체가 350만 권 정도 판매됐습니다. 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요.

유홍준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강생들과 함께 다녔어요. 성심여대(현 가톨릭대) 국사학과에 강의를 나갈 때도 학생들과 같이 갔고요. 현장에 가서 좋아하는 학생들을 보면 감동적이었어요. 영남대 교수가 돼서 남도 답사 1번지를 쓸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복이었어요. 영남 출신 학생들을 이끌고 호남 문화유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게 했어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장수하게 된 비결의 하나는 시리즈로 쓰면서 수준을 높였다는 점에 있어요. 1권보다 2권, 2권보다 3권의 이야기 수준이 높았던 거죠.

다산 초당과 감은사지

김호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1권 표지가 감은사지 석탑입니다. 감은사지에서 문무왕 대왕암으로 걸어가는 길을 저는 내심 우리나라 제일의 길로 꼽아왔습니다. 한 칼럼에서 그 내용을 쓰기도 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문화유적으로는 어떤 것을 꼽으시는지요.

유홍준 다산 초당과 감은사지죠. 그래서 책의 시작은 다산 초당으로 하고 표지는 감은사로 했죠. 둘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달라요. 감은사지에서는 우리 고대국가의 기상과 자신감 넘치는 문화 창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요. 다산 초당에서는 어떤 어려움 속에도 꿋꿋이 자기를 지켜간 지식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고요.



김호기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경주에 가면 대왕암부터 찾아가야 한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감은사지와 대왕암은 당당하면서도 고결한 민족문화유산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북한 문화유산 답사도 하고, 최근에는 ‘일본 문화유산 답사기’를 발표했는데, 중국 문화유산 답사 계획은 없는지요.

유홍준 중국이든 서양이든 답사를 안 해서 못 쓰는 곳은 없어요. 독자들은 알겠지만 한 번 갔던 인상을 가지고 쓴 글은 없어요. 5번, 10번 다녀온 다음에 쓰거든요. 아무것도 모르고 갔을 때, 공부하고 갔을 때, 소화하고 나서 갔을 때를 포함해 최소 3번은 가야 쓸 수 있는 거죠. 문화사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중요한 지역은 모두 3번 이상 갔다 왔어요. 로마, 피렌체, 베이징, 상하이, 난징, 시안 등을 다녀왔어요.

중국 문화유산 답사에는 세 가지가 중요해요. 고조선·고구려·발해 유적 답사, 진시왕릉·용문석굴 등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답사, 그리고 조선 시대의 연행 사신들이 갔던 길의 답사예요.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세 번째예요. 조선시대에 중요한 질문의 하나는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였어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중국을 어떻게 보고 이해했는지는 연행 사신들의 길에 많이 나와요. 담원 홍대용,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등의 연행 이야기를 답사기 형식으로 쓰면서 오늘의 의미를 묻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전통이란 무엇인가

김호기 우리에게 조선시대에 중국은 무엇인가, 20세기 전반에 일본은 무엇이고, 20세기 후반에 미국은 무엇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전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한 쌍을 이룹니다. 그 경계를 분명히 나누기 어렵지만 전통과 현대는 상반된 가치이자 영역입니다. 사회학에서 전통은 ‘전통문화(traditional culture)’와 ‘문화전통(cultural tradition)’으로 구별되는데, 전통문화가 과거 전통사회의 문화를 말한다면, 문화전통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축적된 문화양식으로서 현재 사회환경 속에도 유지되는 문화를 의미합니다. 전통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유홍준 전통이 가진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첫 번째는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뀐다는 것이에요. 고착된 전통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성 한복은 계속 입어 온 덕에 예쁜 개량한복이 나오는데 남성 한복은 안 나오잖아요. 허리띠, 대님, 이거 얼마나 불편해요. 위창 오세창의 사진을 보면,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고름이 없어요. 단추를 호크 식으로 달았어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입었으면 시대에 맞는 한복이 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죠. 계속 입어온 여성 한복은 전통으로 살아남고, 남성 한복은 옛날에 그랬다고 하는 것으로 끝나버린 인습이 된 거죠. 전통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 점이 중요해요.

“전도하는 마음으로 미술사 연구…외롭지 않아”
김호기 오늘날 사회변동을 이끄는 것은 세계화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전통을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요.

유홍준 대학에 입학한 다음 1970년대를 지나면서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한국의 미학, 즉 한국의 미는 무엇인가, 우리 미의 특질은 무엇인가였어요. 앞서 고유섭이나 야나기 무네요시 등 여러 사람이 연구했어요. 구수한 큰 맛, 비(非)정제성, 자연주의 등이 우리 전통문화에 있다는 견해에 대해 공부했고, 얻은 바도 컸어요.

그런데 저로서는 거기에 대해 회의도 품게 됐어요. 이러한 견해들은 한국의 미를 너무나 좁혀놓아버린 거예요. 한국의 미가 소박한 것이라면 소박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냐는 문제에 부딪친 거지요. 후학인 제가 보기에 우리가 식민지를 겪고 제3세계적인 후발주자가 되면서 문화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은 게 이런 한국미의 특질을 연구하게 만들었던 거예요.

제가 도달한 결론은 이런 거예요. 우리는 중국, 일본, 베트남, 몽고, 티베트와 함께 19세기까지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해왔는데, 당당한 지분율을 가진 문화적 주주 국가라는 점이에요. 동아시아 문화의 보편성에다 우리가 가진 특수성을 이야기해야 우리 정체성이 나오는 겁니다. 유럽의 경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서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으로 간 게 르네상스예요. 그때 유럽 르네상스에서 네덜란드가 가진 지분율이 20~30%였다면, 우리가 가진 문화적 지분율이 그 정도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김호기 서양미술사를 보면 처음부터 국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국제 고딕 양식의 경우에도 국경을 넘어 존재했습니다. 예술에서 국민국가란 인위적인 구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류 열풍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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