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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실미도’, 그 지옥의 묵시록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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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특수부대의 이용 가치도 사라졌다. 당국엔 이들이 오히려 짐이 되기 시작했다. 군 일각에서는 이들을 은밀하게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다 실미도 북파 공작원들이 이를 사전에 감지하면서 일이 터졌다. 부대원들은 중무장을 하고 섬을 탈출해 주석궁이 아닌 청와대로 향했다. 버스를 탈취한 뒤 승객들을 인질로 삼아 서울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다 서울 외곽에서 군 병력에 의해 포위되자 인질들을 모두 내리게 한 뒤 버스 안에서 부대원 전원이 자폭했다. 이른바 실미도 사건이다.

1971년에 벌어진 이 엄청난 사건은 당시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진실은 철저히 통제된 채 실미도와 함께 땅에 묻혔다. 그렇게 실미도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정부와 어용학자들은 이 사건을 냉전시대 최대의 치부로 간주해 수십 년 동안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일부의 집단적 악몽에 불과한 일쯤으로 여겨졌다.

실미도 사건이 공식적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의 결과라고 표명된 것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열린 사회로 진일보한 것이다. 영화를 만든 2003년, 강우석 감독은 바로 이 점을 포착해냈다. 사람들에게 잊힌 역사적인 사건을 다시 조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상업적으로도 타이밍이 기막혔다. 대중은 새로운 사실, 은폐된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고백하는 과정을 영화가 대신해주기를 갈망했다. ‘실미도’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적극적으로 구현되던 시기의 한가운데에서, 얼룩지고 더럽혀진 채 벽장 뒤편에 숨겨둔 현대사에 대한 대중의 극적인 호기심을 결합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가 흥행 기록을 세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실미도’는 한편으로는 의미와 비중이 뛰어난 현대역사극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매우 상업적인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마디로 시대를 상업적으로 잘 읽어냈다는 얘기다. 감독이자 제작자, 혹은 배급업자로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강우석의 동물적 흥행 본능이 제대로 작동했다.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영화 ‘실미도’의 촬영지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은 안내판밖에 없다.

“비겁한 변명이십니다!”



역사는 바닷물과 함께 쉼 없이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락날락한다. 영화의 영광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미 과거 속에 스러져갔다. 사람들은 늘 ‘언제 때 영화 얘기를 하고 있냐’며 짐짓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하긴 그사이에 ‘태극기 휘날리며’도 나왔고 ‘괴물’도 나왔고 ‘도둑들’ ‘광해 : 왕이 된 남자’ ‘명량’이 나왔다. ‘실미도’는 아주 오래전 영화처럼 느껴진다.

지난 영화가 남기고 간 흔적일랑 그래서 항상 키치(통속적이고 천박함)적인 느낌을 준다. 실미도에서 영화 ‘실미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안내판 정도다. 처음에는 이것도 없었다. 엉성한 플래카드 수준이던 것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 폼은 나게 만들어놨다. 거기에는 비교적 젊은 시절의 설경구가 한가운데 휑뎅그렁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표정 하나만으로 이곳이 ‘영화 실미도 촬영지’라는 것을 설명한다. 그 옆에 안성기의 모습도 보이는데 사람들은 이 안내판 앞에서 킬킬대기 일쑤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바로 이 말 때문이다.

“그건 비겁한 변명이십니다아아아~!”

설경구가 실미도를 탈출하기 전 중대장 안성기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악을 쓰던 대사다. 영화 속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장면인데, 영화 흥행 이후 이상하게도 여기저기서 코믹한 패러디의 소재로 쓰였다. 누군가가 뭔가 어쭙잖게 일을 정리하려 하면 이구동성으로 소리치곤 했다. “그건 비겁한 변명이십니다아아아~!”

관객들이 꼭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지만, 영화 ‘실미도’를 전부 실미도에서 촬영한 것은 아니다. 주요 장면, 특히 수중 장면 같은 경우는 실미도가 아니라 유럽의 몰타에 가서 촬영했다. 일부는 제주도에 있는 수조 세트에서도 찍었다. 실미도에서는 군용 막사를 세트로 지어놓고 주로 해변에서 훈련하는 장면들을 찍었다. 그때 지어놓은 막사 세트장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일찌감치 철거해버렸다. 그냥 놔뒀더라면 꽤 짭잘한 관광 수입원이 됐을 텐데 아쉽다.

바닷가에 나와 있으면 뭍에 있을 때보다 괜스레 배가 고파진다. 실미도로 넘어 오기 전 약간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온 것은 정말 잘한 일 같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린다. 무인도라 사람도 없지만 요기할 곳도 없다.

영화가 촬영되던 2003년 3월에서 10월 사이에 제작진이 늘 허기진 배와 고픈 ‘술배’를 달랜 곳은 무의도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매 조개구이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기본적으로는 조개구이집이지만 가정식 백반도 먹을 수 있다. 손칼국수 맛도 일품이다. 값싸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늘에 감사할 만하다.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손칼국수 맛이 일품인 무의도 ‘자매 조개구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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