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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풍광, 사투리, 지역정서 모든 게 영화가 된다

곽경택 영화의 고향 부산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풍광, 사투리, 지역정서 모든 게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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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부산 아이템

탁 트인 남동해를 만끽할 수 있는 해운대 해변은 기본이고, 또 다른 명품 해변인 광안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황령산 공원, 영도다리와 태종대, 자갈치시장(이제는 현대식 수산시장 건물로 바뀌었지만) 등등은 그가 영화를 찍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곳이다.

영화적 공간만 부산에서 따오는 게 아니다. 부산의 말씨,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적 정서를 그는 고스란히 영화에다 옮겨 싣는다. 이상하게도 그가 구사하는 ‘부산식’의 모든 것을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지역색을 감추지 않고 정면으로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더 보편적인 느낌을 강렬하게 전한다.

곽경택의 부산은 결코 주변이 아니다. 지방도시가 아니다. 부산은 보란 듯 중심이며 주인공이다. 곽경택 덕분에 부산은 서울에 이은 ‘제2의 도시’ 따위의 얘기는 듣지 않게 됐다. 부산은 명실 공히 그냥 부산 스스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명백히 곽경택의 역할이 컸다.

만들기만 하면 다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의 손이 곽경택 같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곽경택만큼 기복이 심한 감독도 드물다. 그는 성공과 실패를 밥 먹듯 반복해왔다. 사람들은 그가 늘 잘나가는 감독 대열의 선봉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의 초창기 시절은 더했다. 장편 데뷔작 ‘억수탕’은, 우리 영화계 사람들에게 ‘영화는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억수로 망한’ 작품이 바로 ‘억수탕’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작품으로 부산 동아대를 배경으로 찍은 ‘닥터 K’도 모호한 제목 탓인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태풍’ 이후 6년의 슬럼프

‘억수탕’은 부산 변두리 지역의 한 공중목욕탕과 그 안을 들락거리는 사람들, 특히 서민들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다. ‘닥터 K’는 일종의 판타지 미스터리물인데, 기(氣)로 불치병을 치료하는 의사 얘기였다. 아무래도 그때로서는 조금 이른 얘기였다. 다소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작품 모두 그가 영화 초년병인 1995년 찍은 단편 ‘영창 이야기’ 때문에 제작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그만큼 이 단편은 당시 영화계에 새로운 감독의 출현을 알린 작품이고, 사람들은 일찌감치 곽경택이 큰일을 터뜨릴 사람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처음 내놓은 두 작품은 여지없이 ‘꽝’이 되고 말았다.

그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소위 ‘터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부산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부터다. ‘친구’(2001), ‘똥개’(2003)’, ‘사랑’(2007)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 중간중간 선보인 ‘챔피언’(2002), ‘태풍’(2005)은 들인 공, 쓴 돈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결과가 베스트가 되지 못했다.

특히 한국 영화 사상 처음이라는 소리를 들은 대형 해상 블록버스터 ‘태풍’은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인데, 곽경택이 그동안 벌어들인 영화 수익을 한 방에 날린 작품이 됐다. 곽경택은 ‘태풍’으로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 사람들은 그가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그런 감이 적지 않았다. 주진모 주연의 ‘사랑’이 간신히 체면치레한 것을 제외하고 ‘태풍’을 만든 이후 약 6년간 슬럼프를 겪었다. 한석규·차승원 주연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아예 그가 대타로 들어가 연출한 작품이다. 중간에 감독이 바뀌었으니 프로덕션 과정이 얼마나 속 시끄러웠겠는가. 그럼에도 ‘역시 곽경택’이라는 소리를 들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곽경택이 중간에 들어가 연출을 맡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권상우·정려원 주연의 ‘통증’은 언뜻 용산 사태를 방불케 하는 뛰어난 사회·정치적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톡톡히 실패를 맛본 작품이다. 그즈음에 그는 자신이 젊을 적 만든 단편 ‘영창 이야기’를 초저예산 장편영화로 다시 찍을 결심을 한다. 오달수가 주연을 맡은 ‘미운 오리새끼’가 그것인데, 이 영화도 흥행에서 참패했지만 곽경택이 이전의 곽경택과는 다른, 또 다른 곽경택이 돼가고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그는 그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이면 늘 그렇듯이 진정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돈이 아니라 열정과 의지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로 복귀하고 싶어 했다.

“나의 걸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운 오리새끼’는 단순히 곽 감독의 초심만을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거기엔 또 다른 복심(腹心)이 들어 있었다. 그는 지금의 2010년대를 보면서 1980년대, 정확히는 1987년의 혹독하던 시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당시 우리 사회는 혼란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의 절망을 극복해냈는가, 우리 사회는 정말 조금이라도 진화했는가, 오히려 결코 변화하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건 영화감독으로서 이름을 얻고 크게 성공했다고 하는 나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가, 그래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코미디와 드라마로 촘촘히 포장해내고 있지만, 그래서 늘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업영화의 대가로 불리는 곽경택의 영화에는 종종 우리 사회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정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지형도를 지닌 채 관통된다. ‘미운 오리새끼’는 병영이라는 작은 우주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 곧 큰 우주를 대조하고 비교하게 만든다. 병영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웃지 못할 소동극은 우리 사회가 여태 겪고 있는, 일종의 ‘잔혹한 코미디’와도 일맥상통한다고 그는 빙글거리며 얘기한다. 그가 그때 이렇게 얘기한 기억이 난다.

“데뷔하고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가 가진 두 가지 속성 주변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운 오리새끼다. 이미 거위가 됐다고 착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오달수를 제외하고는 배우 전원을 신인으로만 채우며 나를 거칠게 몰아세운 것도 그러한 자각을 스스로에게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뉴욕에서 한창 영화 공부를 할 때 스승은 곧잘 칠판에 ‘compromise’(타협)란 단어를 쓰곤 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지금껏 잘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예술과 돈의 영역에서 진실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문했다. 이번 영화는 바로 그런 내 내면의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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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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