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명사에세이

기러기 가족 지자체를 許하라!

  • 입력2018-06-20 17: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매주 KTX를 탄다. 강의를 마치고 학교 일정이 끝나면 서울행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뒤, 거기서 다시 소요산행 전철로 갈아타 동두천으로 향한다. 일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인천행 전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마산행 KTX를 탄다. 대학 부임 전에는 회사 셔틀버스를 탔다. 금요일 저녁 6시 50분에 거제도에서 출발해 11시 10분쯤에는 서울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린 후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영락없는 ‘셔틀버스 여행객’이다. 셔틀버스와 KTX를 타고 다닌 지 벌써 7년째다. 

    누가 내게 “어디 살아요?” 하고 물으면 대답은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마음이 든다. “어디 사람이에요?” 하고 물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서 태어나 초·중·고·대학·대학원을 모두 서울에서 다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울 사람이다. 엄마도 서울 사람이고, 아버지도 1960년대 상경했다. 분명히 나는 서울 사람이다. ‘서울 사투리’도 몇 가지는 입에 끈적끈적 붙어있다. 

    그러나 20대 이후로는 ‘서울 사람’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다. 경남 거제에서 5년간 회사를 다녔고, 이후 2년째 마산에 있다. 심지어 결혼 후에는 동두천에 신방을 차렸고, 처가는 광주다. 나는 어디 사람인가? 어디에 사는 것일까?

    전국에서 날아오는 지방선거 홍보 문자

    물론 누군가 내게 출신지나 사는 곳을 묻는다고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은 별로 없다. 외려 특이한 이력이라면서 신기해하면 서로 이야기할 거리라도 생겨 다행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난감할 때는 다름 아닌 선거 때다. 

    6·13 지방선거전이 펼쳐지면서 031(경기), 055(경남), 02(서울)로 시작하는 번호에서 연일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왔다. 직장 주소, 사는 곳 주소, 선거권이 있는 지역 주소가 모두 달라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다. 적어도 그만둔 회사 동네 시장 후보나 기초의원 후보한테는 연락이 안 오면 좋겠으나 후보들이 기존 정보를 ‘사고팔면서’ 내 정보 또한 넘어갔을 것이니 이 또한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고, 정치에 늘 예민하기 마련인 사회과학도라지만, 세 군데 광역단체와 광역의회,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까지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거기에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도 있다. 결국 그렇게 내가 비판하던 ‘정치 무관심층’이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나 같은 사람이 예외일까. 꼭 자산 증식이나 자녀의 ‘학군’을 잘 만들어주고자 하는 위장전입 등이 아니더라도 사는 곳, 일하는 곳, 실제 주소지가 다른 사람은 참 많다. 통계청 분류로는 ‘비동거 맞벌이 부부’, 즉 기러기 가족도 많다. 2017년 기준으로 58만 가구 부부가 따로 산다. 아이 유학 때문에 엄마가 자녀와 함께 해외에 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요새는 부산·울산·경남 산업도시나 세종시, 또는 각종 ‘혁신도시’에 남편이나 아내 중 한 명이 나가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들은 평일에는 일터에서 살고, 주말에는 부부간 해후의 시간을 맞이한다. 

    동시에 아예 거처가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조선소에서 일손이 급할 때 동원되는 ‘물량팀 노동자’가 그렇다. 그들은 울산, 부산, 거제, 통영 등에서 일감이 나올 때마다 현장을 전전하며 하도급업체가 제공하는 ‘합숙소’에서 거주한다. 최소한 울산, 부산, 경남도 3군데가 그들의 삶터이자 일터라고 할 수 있다. 건설업 노동자나 운송업 종사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사는 곳, 일하는 곳, 주소는 어떤 의미일까? 분명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정주’하는 ‘고장’ 관념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동하는 사람’을 위한 정치

    즉 정주의 관념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 지방자치선거는 그들 삶의 양식이 만들어내는 유동성을 온전히 품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최근엔 사전투표제를 통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어느 곳에서나 시간 여유를 갖고 투표할 수 있게 되긴 했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목표가 주민 의견의 대표자(광역의원, 기초의원), 주민이 뽑은 행정 수반(단체장)의 선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근본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괴리가 드러나는 장면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가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은 재래시장이다. 후보자들은 시장 상인 및 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찾아가 지역 경제를 살릴 적임자로서 자신들을 부각하고자 애쓴다. 예전처럼 시장 상인이 근처에 살고, 지역 주민들도 집 근처 시장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 반찬거리를 사던 시절이라면 아주 합리적인 행위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 종로의 시장 상인이 강남에 사는 일, 부산 국제시장 상인이 경남 김해에 사는 일이 드물지 않다. 8시간 동안 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에서 일하고 퇴근해서는 부산 해운대의 오피스텔로 향하는 서울 출신 엔지니어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지점에서 거주지 등록을 철저히 하게 함으로써 이런 예외를 다스리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예외는 많이지고 있고 계속 늘어날 것임에 분명하다. 국내의 모든 공간은 4시간 이내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일 생활권’ 아닌가. 

    지방선거를 없애자는 말이나 지방선거 의미가 퇴색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지방선거가 품고 있는 전제, 즉 주민들이 한 동네에 정주하고 근처 직장을 다니며 근처에 있는 아이들 학교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생각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지방자치제도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게는 투표율의 문제, 크게는 대의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면서 최근 수령한 6·13 지방선거 투표 안내문과 선거공보 팸플릿을 읽어봤다. 별로 눈이 안 간다. 후보 공약과 무관하게 그냥 내가 지지하는 정당을 찍게 될까 걱정이다. (좀 더 검색해봐야겠다.) 내가 유권자로 참여할 지역 선거의 양상보다 이곳 경남도와 창원시 선거에 더 관심이 간다. 매일 출근길에 마주치는 파란 옷과 빨간 옷의 선거운동원과 유세차에 쓰여 있는 이름들이 아른거린다. 

    전에 다니던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며 서울행 셔틀버스를 타는 친구와 여수 화학단지에서 KTX를 타고 올라가는 친구들은 후보자 한 번 본 적 없이 주말에 사전투표를 하든지 집에 있을 때 가족들과 투표를 할 것이다. 물론 가족이 권하는 후보나 원래 지지하던 당 후보를 찍을 공산이 크다. 찍는 게 문제가 아니라 ‘유동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누가 대변해줄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럴 거면 아예 나처럼 ‘어디 사람인지 불분명한 사람들’ 또는 ‘셔틀버스 기러기 가족’의 기초단체라도 권역별로 하나씩 할당해주면 어떨까 싶다. 그 지방자치단체는 버스와 기차를 오래 타면서 올 수 있는 불면증이나 디스크 검사와 치료도 해주고, 교통 예산을 확충해 코레일과 버스 회사에 좀 줘서 비용을 경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까지 하고 말았다.


    양승훈
    ● 1982년 서울 출생
    ● 2012~2017 대우조선해양(주) 전략혁신담당 근무
    ● 산업도시/산업정책 연구자
    ● 저서: ‘사라진 영국의 산업도시’(2017, 퍼블리) 
       ‘산업도시 거제와 중공업 가족’(2018년 말 출간 예정)




    에세이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