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면세점, 맛집앱이 창조경제? 생산현장 없이 성장 없다”

‘축적의 시간’ 대표집필 이정동 서울대 교수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면세점, 맛집앱이 창조경제? 생산현장 없이 성장 없다”

2/3
‘스케일 업’ 부재의 비극

“신창수 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는 자원 탐사 중 지하 상태를 보여주는 지하영상화 관련 기술연구를 합니다. 그가 유력한 기술을 개발해 국내 에너지 회사에 연락했더니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기업은 신 교수로부터 e메일을 받자마자 비행기 타고 날아와 라이선스를 체결해갔어요. 몇 년 지나 그 회사 탐사 자료를 보니 신 교수의 기술을 엄청나게 발전시켜놨다고 해요. 1원 내고 사간 기술을 100원짜리로 만든 거죠. 한국 기업들은 1원짜리 기술을 키울 생각은 안 하고 100원을 내고 사옵니다.”

▼ 대우조선해양 등 최근 조선업의 위기도 비슷한 맥락에 있나요.

“김용환 교수(조선해양공학과)가 말하듯 기존 조선산업과 해양플랜트 산업은 성격 면에서 차이가 커요. 하지만 이에 대해 고려하지도, 기술적 대책을 충분히 세우지도 않고 해양플랜트 사업에 진출했지요. 그게 국내 조선·중공업 기업이 겪는 어려움의 근원입니다.”

해양플랜트를 만드는 과정은 EPCI, 즉 엔지니어링(Engineering), 구매(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 설치(Installation)로 나뉜다. 외국에는 단계마다 오랜 경험을 축적한 전문회사들이 있다. 한국은 선박 건조 경험을 바탕으로 시공을 맡으며 이 시장에 진출했는데, 너무 섣부르게 욕심을 내서 구매와 설치에도 나서 위기에 봉착했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전문회사들의 축적된 노하우는 한국 조선업체들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해양플랜트 전 과정을 직접 하겠다고 나선 것은 의욕은 좋지만 너무 쉽게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험의 축적’은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후발 추격 국가’로서 한국은 선진국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개념설계 역량의 부재는 ‘모방추격형 산업 발전 모델의 그림자’인 셈이다. 최근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는 중국이지만, 시간이 없기는 한국과 마찬가지. 하지만 중국은 ‘공간’을 가졌다. 내수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매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

▼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중국’입니다.

“장대교(長大橋)를 건설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고강도 케이블을 개발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중국이 올해 안에 고강도 케이블을 자체 생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중국은 내수시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그 축적된 경험을 한데 모아줄 강력한 정부도 있습니다. 중국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한국이 가진 주력 사업 대부분은 5년 안에 끝난다고들 봐요. 그간 한국을 먹여 살린 ‘차화전’(자동차·화학·전자) 모두 어렵다고 예상하는 거죠.”

▼ 인재 측면에서도 중국과의 격차를 호소하는 교수가 많더군요.

“국제 콘퍼런스에 가서 중국 학생들을 만나보면 확실히 달라요. 영어도 매우 잘하고 수학, 기초과학 등 기본기가 뛰어납니다. 제가 중국공산당 상무위원회에서 근무하는 학생을 석사 지도한 적이 있는데, 한국 학생들이 2~3쪽 써올 때 100쪽씩 써와서 깜짝 놀라곤 했어요. 그것도 완벽한 영어로요. 근본적으로 동기가 다른 데서 차이가 생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절박함이랄까, 성공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해요. 샌드위치만 먹고 공부했다는 1960년대 한국 유학생들을 떠올리게 하죠. 더욱이 실력을 갖춘 학생이 수적으로 너무 많다는 사실도 우리에겐 큰 걱정입니다.”

‘시간’을 누린 선진국과 ‘공간’을 품은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대 공학 석학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어 국가적으로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센티브 체계, 문화를 바꿔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주체가 축적을 지향하도록 변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 문화를 바꾸자? 막막하게 들립니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부터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실패했다고 쫓아내지 말고, 실패를 바탕으로 더 발전하도록 격려하는 사회가 돼야 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의 종류예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데에서 많이 실패해야 합니다. 박영준 교수(전기정보공학부)가 강조하는 ‘아키텍트(Architect, 설계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제자들이 격하게 공감해요. 전자공학 박사가 회사에서 외국 소프트웨어를 국산화하는 작업만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죠.”

▼ 대학은 뭘 해야 할까요.

“커리큘럼부터 다시 짜야 합니다. 백묵 들고 하는 강의는 이제 그만 하고,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개념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해요. 수준 낮은 논문만 양성하는 교수 평가 시스템도 바꿔야 합니다. 신창수 교수의 말처럼 SCI급 논문 10편보다 강의 하나 잘 하는 게 더 중요해요. 그래야 창의적인 학생들이 생기고 대학의 연구 수준도 올라갑니다. 사실 그동안 서울대 공대부터가 논문 쓰는 데만 매달렸지, 산업계가 가진 문제에 천착하지 않았어요. 반성합니다.”

2/3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면세점, 맛집앱이 창조경제? 생산현장 없이 성장 없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