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일찍이 관세 폐지를 실험하고 자유무역 체제로 진입했다가 일정 부분 성과를 맛본 뒤 다시 보호무역체제로 회귀한 영국의 사례는 비록 200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후 프랑스를 견제할 심산으로, 수입 곡물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곡물법을 제정했다. 풍족하고 값싼 프랑스 농산물 수입을 관세장벽으로 막지 않으면 가뜩이나 경쟁력이 약한 자국 농가를 보호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이던 프랑스의 대륙봉쇄령이 해제돼 프랑스로부터의 농산물 수입량도 증가세를 보이던 터였다.
‘뜨거운 감자’ 곡물법
반면 산업혁명 덕분에 면직물, 철, 기계 생산 등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된 상공업자들은 해외시장을 좀 더 활발하게 개척하기 위해서는 곡물법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외국에 관세장벽을 걷어내라고 요구하려면 자국의 장벽부터 제거해야 협상이 진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공업자들에게는 보호무역을 표방하고 자급자족에 만족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이냐, 아니면 자유무역 정책으로 ‘세계무역의 중심국’이 될 것이냐는 게 선택의 이슈였던 것이다.
고전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당시 곡물법 폐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각각의 나라가 우위에 있는 산업에 자본을 중점 투입하고 성장시킨다면 서로에게 부족한 산업 분야를 보충하게 되고 나아가 호혜적인 국제분업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이른바 ‘비교우위론’이다. 경쟁력이 높은 국가에서 낮은 국가에 많이 수출하고 적게 수입하는 방식으로 국부를 축적하자는 중상주의, 각국이 생산비가 절대적으로 적게 드는 재화 생산을 전문화해 서로 무역을 하면 상호 간에 이득이 발생한다는 ‘절대우위론’ 등 기존 이론보다 진보한 것이었다.
1846년 곡물법을 폐지하자 영국은 리카도의 예상처럼 공업화가 더욱 가속화했고, 수출 물량도 급증했다. 자신감을 얻은 영국은 1860년 프랑스와 오늘날의 FTA와 같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영불통상협정)하기에 이른다. 당시 공업 분야의 경쟁력이 강화됐을 뿐 아니라 프랑스와 러시아에 비해 한참 수준이 낮던 농업 분야에서도 양과 질 모두 기술력이 높아져 자급 환경이 갖춰지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관세라는 보호막이 걷혀 위기의식을 느낀 농업 경영자들이 비료와 농기구 개선, 경작기술 개발 촉진 등을 통해 스스로 혁신에 나선 덕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기의 예상에서 조금씩 틀어진 분야는 오히려 공업이었다. 면제품이나 기계류를 포함한 내구재 등에서 일정 수준까지는 계속 수출량이 늘다가 어느 순간부터 매출 정체 현상이 나타났다. 가령 면 셔츠가 아무리 좋아도 한 사람이 100장 넘게 살 필요는 없고 옷이 낡아서 못 입게 될 때까지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데, 끊임없이 계속 팔리리라 기대한 것이 오산이었다.
쉽지 않은 ‘호혜적 성장’
이 시기 공급경제학의 선구이던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세이는 “공급이 수요를 낳는다”는 취지의 이른바 ‘세이의 법칙’을 내놓고 낙관론을 지폈지만, 어느 시점 이상에서는 아무리 가격을 낮춘 제품이 공급돼도 초과 수요가 발생하기 어려웠다. 한편 농업 분야에서 영국이 경쟁력을 갖춘 것과는 별개로, 해외로부터의 수입 농작물은 영국에서 안정적인 점유율을 계속 기록했다. 공업 제품과 달리 농산물은 특별히 과잉 공급될 여지가 적었고, 이미 확보된 수요는 비교적 유지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은 1870년대에 들어서며 자유무역 노선에서 탈피, 다시금 기존의 보호무역 체제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점차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국가 간 관세율은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선진국 대열에 시차를 두고 편입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일본, 미국 등에서 각각 다른 분야의 산업과 시장이 발달한 까닭에 쌍방 호혜적 성장도 이론처럼 쉽지 않았다.
현재 미국은 거의 모든 무역 분야에서 압도적 억지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무역의 최대 신봉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과 2세기 전만 해도 상황은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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