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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의리와 신뢰의 동양을”

뤼순에서 만난 청년 안중근과 21세기 한·중·일

  • 뤼순=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나는 소망한다 의리와 신뢰의 동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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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일본인이던 터라…”

북위 38도 49분, 동경 121도 15분 일대에 일제에 항거한 이들의 시신이 묻혀 있다. 뤼순 감옥에서 죽은 이들을 매장한 곳이다. 나뭇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1m 원통에 시신을 넣어 감옥 주변 야산에 묻었다. 안중근의 시신도 이 일대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유골과 관은 복제한 게 아니라 실물입니다.”

뤼순 감옥에서 유적에 대해 설명하던 중국인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겨우 들어갈 만한 부피의 원통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속을 드러냈다. 원통 속에서 산화하지 않고 형태를 보존한 백골은 누렇게 변했다. 뼈는 바스라지고 두개골만 남은, 오래전 죽은 이의 형상은 무참했다.

뤼순 감옥은 러시아와 일본의 건축 방식이 뒤섞여 있다. 저항하는 중국인을 수감할 목적으로 1902년 러시아가 처음 짓고, 1907년 일본이 증축했다. 흰색 벽돌 건물은 러시아, 붉은 벽돌 건물은 일본이 지었다. 현재 명칭은 ‘旅順日俄監獄’. ‘日(일)’은 일본을, ‘俄(아)’는 러시아를 뜻한다.



뤼순 감옥의 면적은 2만6000㎡, 감방 수는 275개다. 한국과 중국의 항일지사가 체포당해 수감됐고, 갖은 고문으로 죽어나갔다. 감옥 내부 시설을 설명하던 중국인이 일제강점기 수감자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도표 앞에서 ‘미안하다’로 해석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중국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나라별로 수감자 수를 구분한 것인데, 조선인은 따로 통계를 내지 않았습니다. 조선인은 일본인이던 터라….”

뤼순 감옥은 7개국 2000명 넘는 사람을 동시에 수용했다. 사형집행실, 고문실, 강제노동 시설은 참혹했다. 지름 4㎝의 원뿔형 구멍만 뚫린 암방(暗房)에 갇힌 이는 어떻게 버텼을까. 원뿔형 구멍으로 들여다본 2.4㎡ 넓이의 감방에는 요강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감옥 규칙을 중대하게 위반한 자’ ‘반항, 투쟁을 하는 자’가 창(窓)도 빛도 없는 암방에 갇혔다.



“나는 소망한다 의리와 신뢰의 동양을”

송홍근 기자

“志士가 교살된 곳”

일제는 수감자를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하면서도 식사를 하루 한 끼만 제공했다. 수감 태도에 따라 식사량을 7개 등급으로 나눴는데, 중하위 등급 수감자의 하루 식사량은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이었다.

뤼순 감옥은 중국의 항일 유적지 구실을 하고 있다. 일본에 항거하다 수감된 이들의 사연이 오롯이 남아 있다.

위쇼우안은 1941년 뤼순 감옥에서 처형됐다. 결심공판 때 판사와 위의 문답이다. “너는 왜 17차례나 방화를 했나.” “너희가 우리 중국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증오했기 때문이다.” “너는 이미 붙잡혔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붙잡혔으니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 붙잡히지 않았다면 계속 너희 일본 침략자들에게 방화했을 것이다.”

1942년 처형된 지쇼유시안은 “너희는 왜 방화를 했는가”라는 판사의 물음에 “너희들은 왜 중국을 침략했는가”라고 되묻고는 “너희는 일본이 문명·법치국가라고 하지만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야만국가의 행위”라고 질책했다.

뤼순 감옥에서 죽은 이의 수는 파악되지 않는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죽었다”는 게 공식 설명이다. 1942년부터 일제가 항복할 때까지만 700명이 사형당했다. 일제가 항복한 다음 날인 1945년 8월 16일에도 사형이 집행됐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류상근, 최흥식 등이 이곳에서 사형당했고, 신채호(1880~1936), 이회영(1867~1932) 등이 옥사했다. 안중근의 사형은 1910년 3월 26일 집행됐다.

“이곳이 안중근 지사(志士)가 교살된 곳입니다.”

중국인 해설자의 설명을 듣던 동행한 한국인이 말했다.

“이곳에서 교수형을 당하셨군요.”

그러자 해설자는 손으로 ‘아니다’라고 표시하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일본이 교살(목 졸라 죽임)했습니다. 안중근 지사는 범죄인이 아닙니다. (교수형이 아니라) 교살을 당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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