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아주 사적인 타인의 리뷰

정치학자 김영민 교수가 본 영화 ‘박화영’

행복보다 소소하게 불행한 삶을 꿈꾸는 이유

  • 입력2018-11-1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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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칠다. 불편하다. ‘쎄’다. 영화 ‘박화영’에 대한 인상이다. 가출 청소년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거의 모든 대사가 욕이다. 주인공들은 무시로 담배를 피우고, 물리적 정서적 폭력을 주고받는다. ‘박화영’의 세계에서 인간은 잔인하거나, 비열하거나, 너절할 뿐이다. 그 실상이 상영 시간 내내 관객 심장을 옥죈다. 정치사상 연구자 김영민 교수는 왜 이 영화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었을까.
    김영민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사람들이 알아보는 걸 불편해 하는 그의 뜻에 따라 사진을 흐리게 촬영했다. [홍중식 기자]

    김영민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사람들이 알아보는 걸 불편해 하는 그의 뜻에 따라 사진을 흐리게 촬영했다. [홍중식 기자]

    “영화가 많이 ‘쎄’죠?” 

    ‘박화영’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하고 마주 앉았을 때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처음 한 질문이다.

    “사실 좀 놀랐다”고 하자 그는 “나도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런 장면들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김 교수가 다시 물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 ‘필요’ 있지만 외면하고 싶은 현실. ‘박화영’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김 교수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을 좀 더 많은 이가 찾아보면 좋겠다며 입을 열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김 교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이다. 신문 잡지에 기고하는 글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화제가 된다. 9월 추석을 앞두고 발표한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칼럼은 특히 히트를 쳤다. 명절 때 가족이 모이면 으레 벌어지는 관행적 무례를 꼬집는 내용이다.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의 과거 칼럼을 찾아 읽는 일종의 팬덤이 생겼다. 한 언론사는 공식 홈페이지에 ‘(김영민 교수의) 지난 칼럼 정주행을 원하신다면…’이라는 링크까지 만들었다. 

    김 교수는 “요즘 언론사 인터뷰 요청도 종종 받는다”고 했다. TV 프로그램 출연 제안도 있다고 한다. 그때마다 거의 매번 “잘생기지도 않은 제가 무슨…” 하면서 거절해온 터다. 그가 ‘신동아’ 인터뷰에 나선 건 “영화를 출발점 삼아 다양한 얘기를 나눠보자”는 제안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교수가 처음 필명을 떨친 분야는 영화평론이다. 1997년 동아일보가 국내 종합일간지 중 최초로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을 만들었다. 이때 당선자가 바로 김 교수다. 당시 그는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정치사상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논문자격시험을 치르고 잠시 귀국한 참이었다. “학위논문 쓰기 전 한 템포 쉬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제작을 배우고, 동료들과 영화를 만들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신춘문예 소식을 듣고,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에 대한 평론을 써 보냈다. 

    김 교수는 당시 당선 소감에서 ‘나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영화를 매개로 내 곁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에 대해 떠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정치사상학자가 됐고, 미국 브린모어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서고 있다. 바쁜 일상 때문에 영화제작 또는 평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를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사는 일에 대해 떠드는 것’을 남달리 좋아한다. 

    김 교수가 ‘함께 얘기 나눠보고 싶은 영화’로 ‘박화영’을 꼽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박화영’은 7월 개봉 후 평단과 마니아들 사이에서 적잖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하지만 예술영화전용극장 위주로 상영돼 대중의 관심을 얻진 못했다. 김 교수도 “‘박화영’을 본 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아 강의 시간에 얘기를 꺼냈는데 학생들이 영화 존재 자체를 모르더라”고 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그런 영화를 교수님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 

    “나는 개봉 영화를 늘 체크한다. 볼만하다 싶은 건 다 챙겨 보는 편이다.” 

    - 그중 ‘박화영’이 특히 기억에 남은 이유가 있나. 

    “이 영화 주인공들이 처한 완전한 무질서 상태에 눈이 갔다. 정치사상 연구자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에 주목한다. ‘인간이 무질서 상태에서 어떻게 질서 상태로 이행하는가’가 정치학의 큰 주제 중 하나다. 우리가 현실에서 완전한 무질서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은 상상에 그친다. 그런데 ‘박화영’에 바로 그게 있더라.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무질서를 경험하고, 거기서 어떤 형태로든 정치 상태로 이행하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박화영이 경험하는 ‘완전한 무질서’

    영화 ‘박화영’은 기존 사회 질서를 벗어난 소녀 박화영이 직면하는 ‘완전한 무질서’를 보여준다.

    영화 ‘박화영’은 기존 사회 질서를 벗어난 소녀 박화영이 직면하는 ‘완전한 무질서’를 보여준다.

    영화 ‘박화영’의 주인공 화영은 이른바 비행 청소년이다. 등장부터 거친 욕설을 쏟아낸다.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며 돈을 요구하고, 담배를 피워 문 채 교무실에 들어가 자퇴 의사를 밝힌다. 경찰도 그에겐 못 당한다. 경찰이 막으려 들면 ‘어디를 만지냐’며 오히려 패악질을 한다. 혼자 사는 화영 집엔 그와 다를 바 없는 가출 청소년이 모여든다. ‘아이들’이 그들만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장소다. 

    대장은 주먹을 휘두르는 영재. 미정은 그와 사귀며 여왕 노릇을 한다. 남자는 힘, 여자는 성(性)을 무기로 삼는 세계에서, 덩치 크고 예쁘지 않은 화영은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다. 무료로 제 집을 내놓고 밥까지 차려주며 가치를 확인하려 들지만 돌아오는 건 멸시와 비아냥뿐이다. “집 있어서 몇 번 어울려줬더니 니가 보기엔 내가 친구 같냐”는 소리를 들어도 웃음으로 넘겨야 한다. 

    관객은 가정, 학교, 공권력 등 기성 질서 앞에서 거칠 것 없이 용감하던 화영이 영재에게는 대들려는 시도조차 못한 채 얻어맞을 때,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에서 화영에게 강요된 새로운 질서를 본다. 그는 ‘가출팸’의 피식자, 먹이사슬의 말단이며 도리 없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 보통은 이 영화에서 가출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볼 것 같다. ‘정치의 탄생’을 생각하는 게 새롭다. 

    “물론 사회안전망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된다. 동시에 이 영화가 정치학이나 정치사상의 핵심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고 보는 거다. 사람은 죽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질서를 만든다. ‘박화영’에서 기존 질서 밖으로 튕겨 나간 아이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질서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게 인간 조건이라면, 우리는 어떤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권력을 싫어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권력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무작정 싫어할 게 아니라 어떻게 선용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것이 정치학의 주된 주제라 ‘박화영’을 강의 교재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상과 맞닿은 학문

    - 권위적 기존 질서에서 탈주한 화영이 결국 더 거대한 폭력 안에 갇히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인간 사는 게 그렇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쓸쓸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대안을 원하지만, 대안을 만드는 건 매우 어렵다. ‘박화영’은 그 사실을 깨닫게 한다.” 

    - 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포착한 영화가 정치사상 설명의 텍스트가 되는 게 흥미롭다. 

    “정치사상은 철학과 정치학을 매개하는 학문 분야다. 철학자는 추상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학은 굉장히 경험적인 세계, 지금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세계에 치중한다. 정치사상을 연구하면 현실을 바라보면서 상당히 추상적인 생각도 해볼 수 있다.” 

    -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 정치사상사를 연구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선가. 

    “그렇다. 정치사상사 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 정치사상을 전공했다. 시기적으로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중국 명·청대 사상이다. 연구자로서 내 관심사는 내가 속한 정치공동체다. 한국만 공부하면 오히려 실패할 수 있을 것 같아 동아시아에 관심을 뒀다. 동시에 서양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공부는 폭넓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득 김 교수가 2007년 개인 블로그에 올린 칼럼 ‘왜 동아시아 정치사상인가?’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는 이 글에서 ‘정치학,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 중의 하나는, 남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신이 집단생활, 공동체적 삶을 싫어하건 좋아하건, 상관없다.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공존’하지 않고서는 삶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타인과의 공존은, 운명이다. 정치학이란 그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정치사상이란, 그 운명의 사랑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생각해보는 일이다. (중략) 그렇다면 왜 동아시아 정치사상인가? (중략) 동아시아 정치사상의 공부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동아시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를 사랑하기 위한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전문 분야를 연구할 때뿐 아니라 ‘박화영’ 같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도 ‘정치’를 떠올린다. 최근 그가 조선 시인 이언진(1740~1766)을 둘러싼 국문학계 논쟁에 뛰어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회과학자의 조선 문학 분석

    중인 계급 출신 역관으로 27세에 요절한 이언진은 근간에 ‘천재 시인’으로 재평가 중인 인물이다.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그를 ‘신분 차별이 당연시된 조선시대에 인간의 자유와 평등, 다원적 가치와 인간의 자율성을 논한 선구적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김명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이언진의 문학이 과대평가됐다’는 의견이다. 그는 이언진의 세계관이 성리학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반체제적 인물’로 보기엔 한계가 있고, 시의 상당 부분을 다른 문헌에서 차용해 써 예술성 또한 부족하다고 반박한다. 

    여기까지 보면 국문학계 내부 논의 같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이들이 이언진의 시 세계를 분석하며 ‘조선 체제’에 대해 언급하는 데 주목했다. 8월 학술지 ‘일본비평’에 ‘국문학 논쟁을 통해서 본 조선 후기의 국가, 사회, 행위자’란 논문을 기고함으로써 이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섰다. 

    - ‘일본비평’ 편집자 주를 보니 ‘사회과학자가 인문학 분야, 그것도 전근대 시기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라는 대목이 있더라. 어떻게 이 논문을 쓸 생각을 했나. 

    “앞서 말했듯 정치사상사는 연구 분야가 매우 넓다. 좁은 의미의 사상서뿐 아니라 문학작품도 연구 대상이다. 이번 논쟁도 처음에는 호기심에 들여다봤다. 그런데 박희병 교수가 ‘이언진의 미학은 그 본질상 정치학’이라고 하는 등, 국문학자들이 사실상 ‘정치학 논쟁’임을 천명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오고가는 조선 정치에 대한 논의 가운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이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어디에 발표할지는 정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일본비평’ 편집자인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가 적극적으로 원고 게재를 원했다.” 

    - 논문을 보면 조선 후기 정치구조의 특징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언진의 시를 새로 번역해 기존 국문학자들 풀이에 오류가 있다고까지 지적한다. 다른 전공 연구자가 이렇게 하는 것은 더욱 ‘희귀한 일’ 아닌가. 

    “이언진은 시를 쓸 때 성리학 경전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그 맥락을 알아야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국문학계 논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뒤 ‘당신들 전문 분야로 알려진 옛날 시를 내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렇지만 설득력 있게 읽어 보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상대의 존중을 받고 좀 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김 교수는 ‘맹자’ 등 정치사상서를 토대로 이언진 시를 새롭게 읽어나갔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언진은 혁명을 꿈꾼 인물이 아니라 시를 통해 양반 사대부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한 사람에 그칠 수 있다. 

    - 이 해석에 대한 다른 학자들 반응은 어떤가. 

    “논문 초고를 완성한 뒤 관련 분야 학자들께 검토를 요청드렸다. 여러분이 내 뜻에 동의하고 좋아하셨다. 그런데 한 분이 내용 중 상당부분을 빼달라고 요구하시더라. ‘잘못된 게 있나’ 여쭸더니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국문학계를 그렇게 심하게 비판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게는 그 말이 ‘우리 편이 비판당하는 게 싫다’로 들렸다. 굉장히 실망스럽고 마음 아팠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여러 번 말을 멈췄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 결심한 듯 “학자는 명색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아닌가”라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학계를 지탱하는 기본 규칙은 상대의 주장이 맞는다고 생각할 때 깨끗이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이 불문율이 깨지면 학계 근간이 흔들린다. 나는 이 일을 세상에 알려 비판적 인식을 공유하고 싶다.”

    경계를 넘어서는 학문 연구

    김 교수가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알리는 데 한 계기가 된 칼럼 ‘위력이란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이 글에는 김 교수가 국내 한 대학원에서 논문 심사를 받던 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몇 가지 질의응답이 오가기 시작했고, 난 곧 깨달았다. 이 선생님들께서 내 논문을 읽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선생이 논문을 채 다 읽지도 않은 채 심사를 하려 드는 것은 학생이 논문을 채 다 쓰지도 않고 심사를 받으려 드는 일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웃는 돌처럼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중략) 그 시공간이 일상적으로 떠먹여 주는 무기력을 더는 삼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다른 나라로 공부를 하러 갔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김 교수는 마치 박화영처럼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견고한 세계에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기존에 공부하던 철학을 지나 정치사상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 ‘위력’에 대한 칼럼을 흥미롭게 읽었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학계에 학자를 좌절시키는 분위기가 있다는 게 마음 아프다. 

    “그 칼럼이 신문에 실린 뒤 e메일을 많이 받았다. 여전히 우리나라 대학원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나는 논문을 읽지 않고 심사장에 들어가는 교수를 경멸한다. ‘경멸’이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그들은 경멸할 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 그런 칼럼을 발표하고, 다른 분야 교수들과 논쟁하고 하면 학계에서 ‘왜 저렇게 튀나’ 하는 시선을 받지 않나.

     
    “뒤에서 어떨지는 모르지만 직접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앞선 이야기에 조금 첨언하자면 나는 우리 학문이 좀 더 발전하려면 학자들이 자기 전공에 갇히지 말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물리적으로 섞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학문마다 공분모가 많다. 정치인류학이라는 게 있고, 정치사 전공자 가운데 문학 논문을 쓰는 사람도 있다. 이런 학자를 해당 학과에서 교수로 뽑아야 한다. 인류학 박사가 정치학과 교수가 되고, 정치학자가 국문과 교수가 되는 식으로, 다른 분야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한 학과에 모이면 여러 학문을 오가는 좀 더 진지한 대화가 가능해질 거다.”

    소소한 근심을 누리는 삶

    김 교수가 ‘박화영’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건, 그 자신이 기존 질서를 넘어 대안을 꿈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교수가 2007년 ‘한국정치학회보’에 발표한 논문 ‘정치사상 텍스트로서 춘향전’에는 ‘본 논문의 목적은 고전 문학 텍스트의 하나로 간주돼온 춘향전을 특정 역사적 맥락 속의 정치사상 텍스트로 해석하는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는 기성 사회의 각종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칼럼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기 전부터, 이미 학문 세계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에게 최근 언론 지면을 통해 대중적 발언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물었다. 

    “2006년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부터 칼럼 게재 제안을 종종 받았다. 초반엔 ‘귀국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한국 사회에 대해 얘기하는 건 주제 넘는 것 같다’고 거절했다. 그 후로 종종 하고 싶은 얘기가 있긴 했지만, 연구 시간을 빼앗기기 싫어 쓰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계속 아무 말 안 하고 살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무렵 마침 일간지 칼럼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아 ‘그러지, 뭐’ 했다. 그걸 좋아해주는 사람이 좀 있어서인지 이후 여기저기 청탁을 받았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 지금은 학자로서 세상과 소통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나. 

    “충분히 그렇다. 칼럼을 쓰는 게 일종의 연구 활동이 되기도 한다.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한국 사회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이러다 어느 순간 또 갑자기 그만 쓰게 될 수 있고, 매체에서 불러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있고 할 만할 때까지 하려고 한다.” 

    - 개봉 영화를 거의 다 보고, 꽤 많은 글도 쓴다. 그것이 학문과 연결된다 해도, 연구 강의까지 하면서 무척 바쁠 것 같다. 

    “나는 만화도 좋아한다. 이런 걸 다 하려면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보통의 내 또래 한국 남자가 하는 많은 일을 하지 않아서 가능하다. 나는 동창회에 안 나가고 경조사에도 잘 안 다닌다. 몰려다니면서 술 퍼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 대신 디저트를 먹는 편이다. 나랑 뜻이 맞는 동료들이 있어 ‘sweet solidarity’라는 점조직을 만들었다. ‘달콤한 연대’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다니면서 먹는 모임이다.” 

    - 멤버가 몇 명인가. 

    “점조직이라 밝힐 수 없다. 내 또래 남자를 만났을 때 디저트를 먹자고 하면 보통은 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호응해주는 이가 있고 그런 분들이랑 다닌다. 미술관 가는 것도 좋아한다. 한국 남자들은 미술관에도 잘 안 가서, 가보면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남자들과 다른 경험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나는 일찍부터 어두운 반지하에서 술을 퍼마시는 걸 힘들어했다. 노래방도 적극적, 능동적으로 가지 않았다.”
     
    김 교수는 쉽게 말 놓는 사람, 걸핏하면 동문 운운하는 사람도 경계한다고 했다. 여러 칼럼을 통해 드러났듯 그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인생 목표가 행복인지’를 물었다. 

    “행복보다는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쪽이다. 행복을 정의하기 나름인데 행복이 단지 기분 좋은 걸 의미한다면, 나는 우리 사회에서 그 단어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돼 있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찰나의 행복보다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같은 ‘소소한’ 근심을 누리는 건, 그것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소소한 근심과 함께 사는 삶

    영화 ‘꿈의 제인’의 한 장면.

    영화 ‘꿈의 제인’의 한 장면.

    김 교수가 ‘박화영’과 함께 보기를 권한 영화 ‘꿈의 제인’은 바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이 영화 주인공은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 채 혼자 떠도는 소녀 ‘소현’이다. 가출팸을 전전하며 사는 그 앞에 어느 날 꿈처럼 나타난 제인은 “우리 함께 ‘시시한 행복’을 꿈꾸자”며 손을 내민다. 제인 집에는 소현 같은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난 인생이 엄청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쭉 이어지는 기분? 근데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이런 개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 하니.” 

    가출팸을 만든 이유에 대한 제인의 설명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근무하는 이태원 클럽 ‘뉴월드’에 들어가려면 손목에 ‘UNHAPPY(불행)’라고 쓰인 도장을 찍어야 한다. 세상에서 불행한 이들은 그 공간에서 ‘어쩌다 한 번’ 행복을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살아남는 것이 매순간 전쟁인 곳, 따뜻한 먹을거리를 구하고 내 한 몸 부릴 공간 마련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이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거리를 떠도는 곳이다. 

    한국 사회, 혹은 인간 사회 전반의 외면하고 싶은 단면을 날것으로 드러내 보이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김 교수가 얘기하고자 하는 건 결국 정치의 중요성이다. 그는 “인간이 평생 다만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하면 불행해지기 쉽다. 살아남는 게 직업이 되면 안 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적잖은 사람이 그런 지경에 몰리고 있다. 이때 정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을 충분히 구축해야 한다. ‘박화영’과 ‘꿈의 제인’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국민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국가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꼴을 못 봤다는 생각에 증세에 대한 저항감도 크다. 지금 집권한 분들은 이걸 불식할 책임이 있다. 권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정작 권력을 잡아놓고 권력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기모순에 빠진다. ‘박화영’에서 봤듯 인간이 정치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다.” 

    - 지금 정치가들이 유념해야 할 정치사상이나 귀감이 될 만한 사상가를 추천해줄 수 있나. 

    “세상에 그렇게 딱 정해진, 기성복처럼 우리가 입기만 하면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마치 그런 게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 그 사람을 의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건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참고 체계를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런던 리뷰 오브 북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같은 고급 서평지가 창간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지적인 에세이를 발표할 수 있는 공간에서 활발한 논의를 벌이며, 최소 과거 100년의 지성사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에게 참고가 될 책들을 추천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서평지들을 찾아 읽으면 좋겠다. 현대 사회의 교양이라 할 수 있는 페미니즘 책도 읽기 바란다. 만화 중에도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작품이 많다. 마영신, 기선, 일본 작가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을 추천한다”고 했다. 덧붙여 “사람들이 저예산 영화도 많이 봤으면 한다”고 말을 이어갔다. “최근 작품 중 ‘살아남은 아이’ ‘땐뽀걸즈’ 등을 추천한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 중 좋은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고통스러운 단면을 조명한 영화를 본 뒤라 이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 그렇게 책을 읽고 만화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극장을 찾으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질까. 

    “각자의 삶은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아니 즐겁기보다는 풍요로워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적어도 내 삶은 좀 더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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