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명사에세이

불륜(不倫), 커피 대국을 만들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브라질의 탄생

  •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

    입력2019-05-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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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는, 정치가를 현명하게 만들지. 또한 눈을 감고도 모든 걸 꿰뚫어보게 하지.”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1688~1744)가 남긴 커피에 대한 시구(詩句)다. 당파가 다른 정치인들이 서로 싸우면서도 “포프의 시에는 찬성표를 던졌다”는 말이 있다. 허구한 날 국민 이익이 아닌 정파 이익을 두고 다투기만 하는 한국 정치인들이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지금보다 현명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포프의 시를 인용해봤다. 

    커피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적 사건도 적지 않다. 세계 1위 커피 생산국 브라질에서도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다. 브라질이 ‘커피 강국’이 된 데는 프란치스코 드 멜로 팔헤타(Francisco de Melo Palheta)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팔헤타는 나라를 위해 음험한 불륜(不倫)을 저질렀다.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나라의 명예에 먹칠한 것이기도 하다. 요즘이라면 적폐청산 대상으로 분류됐을지도 모른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인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자콥(1889~1967)의 저서 ‘커피의 역사’ 한 대목을 읽어보자. 

    “남아메리카에서 커피를 재배한 네덜란드인들의 플랜테이션은 네덜란드령 기아나에 있었으며 그 동쪽에 프랑스령 기아나가 있었다. 상대에 대해 질시가 심했던 두 나라 총독은 커피 열매 반출을 금했으나 문제의 ‘대단한 관목’이 네덜란드와 프랑스 두 국기(國旗) 아래의 기아나에서 재배되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어리석은 금지령이었다.” 



    ‘대단한 관목’은 커피나무를 가리킨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기아나에서 국경 분쟁을 벌였다. 두 나라는 고심 끝에 포르투갈을 통해 브라질에 중재를 부탁했다. 

    ‘하늘이 준 기회로다’. 

    브라질은 중재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무릎을 쳤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커피 씨앗이나 묘목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던 브라질은 기아나에서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커피나무를 키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남자가 커피를 나만큼 좋아하는구나’

    농익은 커피 체리(왼쪽)와 그린 빈(green bean) 커피 씨앗.

    농익은 커피 체리(왼쪽)와 그린 빈(green bean) 커피 씨앗.

    브라질은 국가적 차원에서 ‘불륜(不倫)’을 논의했다. 커피 씨앗이나 묘목을 구하려면 “프랑스 총독 부인을 유혹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데 중론이 모아졌다. 적임자를 수소문한 끝에 ‘상남자’ 군인 팔헤타에게 국경 분쟁 중재자 역할을 맡겼다. 

    팔헤타는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불륜 공작’에 투입됐다. 네덜란드-프랑스 분쟁을 조정하는 것은 명목상 임무였고, 총독 부인에게 접근하는 게 실제 목적이었다. 팔헤타는 먼저 그녀의 시녀를 통해 자신을 어필했다. 멋진 외모와 세련된 매너 덕분에 추파(秋波)는 곧장 총독 부인에게 전달됐다. 

    “마음껏 사랑하는 것은 마음껏 사는 것이다. 영원히 사랑하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영원한 삶은 사랑과 결합된다.” 

    파울로 코엘료 소설 ‘불륜’의 이 대목처럼 총독 부인과 팔헤타의 사랑은 영원을 향해 질주하는 듯 보였으나 팔헤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커피 씨앗을 브라질로 가져가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팔헤타는 총독 부인을 만나 사랑을 나눌 때마다 커피 씨앗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총독 부인의 머릿속에도 자연스럽게 커피 씨앗이 각인됐다. 

    ‘이 남자가 커피를 나만큼 좋아하는구나.’ 

    사랑이 ‘커피 체리’만큼 무르익은 어느 날, 팔헤타는 “본국에서 호출 명령이 떨어져 귀국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흘려 여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팔헤타가 기아나를 떠나는 날이 됐다. 총독 부인은 팔헤타에게 남편이 보는 앞에서 커다란 꽃다발을 건넸다. 

    “대장!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노고에 대한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이렇게 아름다운 꽃다발을 주시다니요.” 

    주변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꽃다발을 받은 팔헤타는 감격했다. 찬사와 꽃다발 덕분이 아니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단순한 꽃다발이 아니라, 그 속에 한 줌의 커피 씨앗이 숨겨져 있었다. 브라질이 커피 왕국으로 가는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됐다. 1727년의 일이다.

    배반자인가, 영웅인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법을 어기면서 커피 씨앗을 꽃다발에 숨겨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건넨 여인의 애련한 일탈이 참으로 눈물겹다. 

    연인을 기망한 배반자일까? 나라를 위해 일한 영웅일까? 

    브라질 사람들은 “커피 왕국이 된 것은 한 남자의 용감하고 로맨틱한 행동 덕분”이라고 어깨를 으쓱하지만 속아넘어간 여인의 처지에서 보면 아름다운 스토리는 아닐 듯싶다. 

    여인의 마음을 훔쳐 목적을 이룬 팔헤타는 기아나와 인접한 파라 지역에 커피 씨앗을 심었다. 파라 지역은 파라강(江) 유역에 위치한 브라질 땅이다. 그곳은 열대우림으로 커피나무가 자라기 적합한 지역이자 팔헤타의 고향이라는 설(說)도 전해진다. 

    이렇듯 극적으로 파라에서 꽃을 피운 브라질 커피는 50년 세월이 지나서야 상파울루 고원까지 남하했다. 브라질이 워낙 땅이 넓은 탓이기도 하지만, 사탕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한 터라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라질은 커피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해 커피나무를 키웠다. ‘브라질 남동부에서만 커피 재배를 위해 노예 150만 명이 수입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850년 브라질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자 커피 농장주들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로 노동력을 대체했다. 브라질은 1850년 자바(현재 인도네시아 영토)를 제치고 세계 커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가가 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이자 수출국 지위를 지켜왔다.

    ‘커피를 훔쳐간’ 사람들

    ‘커피를 훔쳐간’ 사람은 팔헤타 외에도 많다. 인도 승려 바바 부단(Baba Budan)은 1600년 중동에서 커피 씨앗 7개를 허리춤에 숨겨와 마이소어 지역에 심었고, 네덜란드도 1616년 모카(현재 도미니카 영토)에서 커피 묘목을 훔쳐 자국의 식민지 자바에 심었다. 

    프랑스 해군 연대장인 가브리엘 드 클리외가 루이 14세의 온실에서 자라던 커피나무의 가지 하나를 훔쳐 카리브해 마르티니크에 심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리의 궁중에서 자라던 커피나무 가지 하나가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해에서 꽃을 피운 것도 극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이종화의 책 ‘커피 마니아’에는 커피나무가 클리외에 의해 프랑스령 마르티니크로 가는 과정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항해 도중 커피나무 가지를 보호하는 일이 훔치는 일보다도 더 힘들었다. 프랑스의 커피 산업을 방해하려는 네덜란드의 첩자가 이 가지를 없애버리려 시도했다는 기록도 있다. 해적선의 노략질과 태풍에 의해 거의 파산될 위기 가운데서도 그는 오로지 이 커피나무 가지를 보호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식수가 부족해 물이 배급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보다 이 커피나무 가지가 죽지 않도록 물을 주었다” 

    클리외의 지극정성 덕분에 커피나무가 1720년 마르티니크에서 뿌리를 내렸다. 각고 끝에 대서양을 건넌 커피나무 가지는 50년 후 1800만 그루로 늘어났다.
     
    850년경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산악 지대에서 목동 칼디에 의해 발견된 커피는 이처럼 흥미로우면서도 전설 같은 이야기를 블렌딩하면서 지구촌으로 퍼져나갔다.

    장상인
    ● 1950년 서울 출생
    ● 동국대 행정학과 졸업
    ● 연세대 대학원 석사
    ● 인하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대우건설 상무
    ● 팬택 전무
    ● 경희대 겸임교수
    ● 現 JSI파트너스 대표
    ● 저서 : ‘현해탄 波高 저편에’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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