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사상 최초로 ‘양자 우월성’ 구현 성공
양자컴퓨터 시대 개막 상징, 사회시스템 전반 격변 예고
네이처 “라이트 형제 첫 비행에 비견할 만한 업적”
IBM “양자 우월성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평가절하
美·中 국가단위 투자, 글로벌 벤처기업 백화제방
양자컴퓨터 시대, 언젠가 분명히 온다
10월 23일 구글은 자사가 개발한 54큐비트 양자계산 프로세서 시카모어(사진)가 난수 생성에서 양자 우월성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Erik Lucero / 구글]
양자컴퓨터란 무엇인가
기존 디지털컴퓨터와는 작동 방식이 전혀 다른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고 있고 만일 성공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거라는 말이 흘러나온 지는 꽤 됐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런 일이 현실이 되는 건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구글 발표로 미래가 우리 코앞에 바짝 다가왔다. 양자 우월성이 입증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암호화폐 기업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괜한 호들갑일 수도 있지만 만일 구글의 주장대로 양자컴퓨터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돼 널리 쓰이게 된다면 관련 업계뿐 아니라 사회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것이다.
다만 이런 날이 불과 10년 뒤에 올지 한 세대 또는 두 세대가 지난 뒤에야 실현될지 아무도 모른다.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사람들조차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양자컴퓨터의 ‘기묘한’ 세계를 들여다보자.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디지털컴퓨터(스마트폰에서 노트북, 슈퍼컴퓨터까지 다 여기에 속한다) 배경에는 전자기학이라는 고전 물리학 이론이 깔려 있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이라는 현대 물리학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작동하는 컴퓨터다.
양자역학에서 양자(quantum)란 전자나 양성자 같은 어떤 입자 이름이 아니다. 에너지 같은 물리량의 최소 단위를 뜻하는 용어로 1900년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제안했다. 그런데 양자의 개념을 받아들여 원자 같은 미시 세계를 연구하자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속출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세계는 확률이 지배하는 불확실성에 기초한다. 주사위 던지기에 비유해보자. 제대로 만든 주사위라면 각 면이 나올 확률이 6분의 1로 똑같다. 지금 내가 던진 주사위는 공중에 머물다 테이블 위에 떨어져 튕기고 구른 뒤 한 면이 위로 향한 채 멈췄다.
기존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주사위 값을 예측하지 못하는 건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주사위를 던질 때 주사위 각 면의 방향, 손이 이동한 속도, 공기의 흐름, 테이블 면의 탄성 등 각종 물리량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원리적으로는’ 어떤 면이 나올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럴 것 같지 않은가.
반면 양자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던진 주사위의 상태를 결코 알 수 없다. 만일 이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뭔가를 하면, 예를 들어 측정을 하면 그 행위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양자 세계에서는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올 결과를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쇼어의 알고리듬
양자컴퓨터 개념을 처음 제안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왼쪽)과 큰 수를 인수분해하는 양자 알고리듬을 개발한 응용수학자 피터 쇼어. [위키피디아, MIT]
놀랍게도 양자역학이 정립된 지 1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본질적으로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수식으로 표현되는 양자역학 이론이 미시 세계에서 관찰되는 비직관적인 현상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20세기 후반 최고의 천재 과학자로 불리는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고 나서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해서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겸손함을 보인 파인만이 바로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사람이다.
이야기는 1981년 미국 MIT에서 개최된 ‘제1회 물리학과 계산에 관한 콘퍼런스’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인만은 ‘컴퓨터를 이용한 물리학 시뮬레이션’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0 또는 1이라는 확정값을 기반으로 계산해 결과를 내는 고전적(디지털) 컴퓨터로는 불확실성에 기반한 양자 세계를 제대로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며 양자역학 원리로 작동하는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몇몇 이론물리학자와 수학자의 사고(思考) 실험에 머물던 양자컴퓨터는 1994년 미국 통신회사 AT&T의 컴퓨터과학자 피터 쇼어가 큰 수의 인수분해를 해낼 수 있는 양자계산 알고리듬 개발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뒤 양자컴퓨터가 물리학의 시뮬레이션 연구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디지털컴퓨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의견이 나왔다. 차량의 효율적인 배차 같은 최적화 문제나 인공지능(AI)의 기계학습 또는 패턴 인식, 신약이나 신소재 분자 설계 등에서 쓸모가 클 것이라는 전망들이다.
2001년 미국 IT기업 IBM의 연구자들은 분자를 이루는 원자 7개를 비트(컴퓨터의 연산 단위)로 써서 쇼어의 알고리듬으로 15를 인수분해하는 데 성공했다(=3×5).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이지만 양자컴퓨터가 암호 해독에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오늘날 대표적인 암호체계인 RSA 암호는 두 큰 소수의 곱으로 이뤄진 거대한 수를 공개키로 쓴다. 현존하는 컴퓨터로는 의미 있는 시간 내에 이를 인수분해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런데 쇼어의 알고리듬이 양자컴퓨터에서 구현돼 ‘200초’ 만에 인수분해에 성공한다면 현존하는 모든 암호가 뚫리며 국가 보안이나 금융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
중첩과 얽힘
2011년 캐나다 디웨이브시스템스가 개발한 양자컴퓨터 ‘디웨이브원(D-Wave One). 양자 프로세서가 열에 교란받지 않게 하려면 절대온도 0.015도(-273.13℃)의 극저온을 유지해야 한다. 이에 사용할 냉각장치를 설치해야 하므로 양자컴퓨터 한 대 크기는 웬만한 방만 하다. [디웨이브시스템즈]
양자컴퓨터의 또 다른 중요한 속성인 얽힘(entanglement)은 큐비트가 서로 연동돼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경우 큐비트 하나의 상태가 바뀌면 그것과 얽혀 있는 다른 큐비트 상태도 바뀐다. 이상적인 양자컴퓨터에서는 모든 큐비트가 얽혀 있는 상태다.
n개의 큐비트로 이뤄진 양자컴퓨터에서 중첩과 얽힘이 완벽하게 구현되면 2의 n승에 해당하는 연산이 한꺼번에 이뤄질 수 있다. 10큐비트라면 2의 10승(210), 즉 1000개 정도를 한 번에 연산하는 식이다. 50큐비트가 되면 연산 가능량이 2의 50승(250), 즉 1000조에 이르러 슈퍼컴퓨터를 능가하게 된다.
다만 큐비트는 주위 환경에 매우 민감하다. 조금만 교란을 받아도 중첩과 얽힘이 무너진다. 따라서 회로에 큐비트를 담고 있는 양자 프로세서는 절대 온도 0.015도(영하 273.135℃다!)라는 극저온 상태의 진공 또는 초전도 회로에서 작동해야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한편 양자 프로세서의 큐비트가 커질수록 연산 결과가 무수히 만들어진다. 거기서 정답을 골라 출력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난제다. 양자컴퓨터 개발자들조차 관련 기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양자컴퓨터를 실현할 수 있는 나노과학이나 저온물리학 등 기초과학 및 기술이 갖춰졌다. 이후 몇몇 대학과 기업에서 본격적으로 양자컴퓨터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2011년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 ‘디웨이브’가 나왔다.
캐나다 기업 디웨이브시스템스가 개발한 128큐비트 프로세서가 탑재된 제품의 첫 고객은 미국 군수품 제조회사 록히드마틴이었다. 당시 한 대 가격이 무려 1000만 달러(약 110억 원)였다. 2013년 512큐비트짜리 디웨이브 2가 나왔고, 구글이 1500만 달러(약 170억 원)에 구매했다. 2017년 출시된 4세대 ‘디웨이브 2000Q’는 2048큐비트다.
시커모어의 혁신
무려 617자릿수인 암호 RSA-2048. RSA-2048의 인수분해에 성공하는 연구팀에 2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지만 아직까지는 난공불락이다. 양자컴퓨터가 이것의 인수분해에 성공해 양자 우월성을 입증하면 센세이션이 일어날 전망이다. [위키피디아]
먼저 큐비트 사이의 얽힘에 한계(7개)가 있어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말로는 2048큐비트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7큐비트로 이뤄진 세트를 300개 가까이 모아놓은 것일 뿐이다. 그 결과 최적화 문제 같은 제한된 연산을 하는 데 특화돼 있다.
미국 퍼듀대 연구자들은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에서 디웨이브를 이용해 6자릿수인 ‘376289’를 인수분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659×571). 이 논문 저자들은 이 방식을 이용해 일반적으로 암호에 쓰는 크기의 수인 232자릿수를 인수분해하려면 14만7456큐비트 용량의 양자 프로세서가 개발돼야 한다고 추측했다. 참고로 2009년 디지털컴퓨터는 2년 동안 작동한 끝에 이 수의 인수분해에 성공했다(암호를 풀었다는 뜻이다).
다만 양자컴퓨터도 작동 방식이 여러 가지라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의 경우 대략 4000큐비트로 이뤄진 프로세서가 개발되면 무려 617자릿수 암호도 인수분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수를 인수분해하는 데는 2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지만 아직은 답을 내놓은 컴퓨터가 없다.
구글이 개발한 양자 프로세서 시커모어는 큐비트가 54개에 불과하지만 좀 더 높은 수준으로 얽힘을 구현해 훨씬 좋은 성능을 보여줬다. 그럼 양자컴퓨터가 RAS 암호에 쓰이는 큰 수를 인수분해해 보안과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날이 당장 올까. 아직은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수천 개의 큐비트가 서로 얽혀 있으면서 오류 없이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진정한’ 양자 프로세서를 만드는 건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 분야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이번 양자 우월성 발표에 암호화폐 기업 주가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참고로 시커모어의 양자 우월성 입증은 난수(일정한 규칙 없이 임의로 나타나는 수) 생성이라는 분야에서 이뤄졌다. 0 또는 1이라는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디지털컴퓨터의 경우 난수를 발생시키려면 많은 연산이 필요하다. 슈퍼컴퓨터로도 난수 샘플 100만 개를 수집하려면 1만 년이 걸린다. 그런데 시커모어 프로세서로 수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00초였다.
IBM이 시커모어를 평가절하한 이유
한편 구글이 양자 우월성 달성을 발표하자 IBM은 이를 폄하하는 논평을 냈다. IBM에 따르면 최근 난수 발생을 효율적으로 해내는 기발한 알고리듬이 개발됐다. 그 결과 디지털컴퓨터로도 1만 년이 아니라 이틀 반이면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200초’와 ‘21만6000초(이틀 반)’도 엄청난 차이로 보이지만, 양자 우월성이란 디지털컴퓨터로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의미가 없는(예를 들어 2년 만에 암호의 인수분해를 성공하는 경우) 계산을 양자컴퓨터가 해냈을 때를 가리키므로, 이번 결과는 양자 우월성 입증으로 볼 수 없다는 게 IBM의 의견이다.IBM이 민감하게 반응한 건 이 회사가 오늘날 구글과 함께 양자컴퓨터 개발을 이끄는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발표 전까지만 해도 IBM이 관련 분야 선두 주자로 여겨졌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20큐비트 프로세서를 장착한 양자컴퓨터 ‘IBM Q 시스템 원’을 공개해 주목받기도 했다. IBM은 올해 안에 뉴욕주 포킵시에 IBM Q 양자연산센터를 열 계획이다.
지금까지 양자컴퓨터 개발 분야는 앞서 소개한 세 기업(디웨이브시스템스, 구글, IBM)이 주도해왔다. 그러나 지난 수년 사이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관련 벤처가 우후죽순 생겨나 50개에 이르는 상황이다. 2017년과 2018년 2년 동안 벤처캐피털이 이들 업체에 투자한 금액도 4억5000만 달러(약 5000억 원)가 넘는다.
양자컴퓨터의 잠재력이 워낙 크고 국가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 또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는 향후 5년 동안 관련 연구에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최근 중국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 정부는 양자역학 관련 연구개발을 지원했고 많은 인재를 영입했다. 내년에 문을 열 예정으로 안후이성에 짓고 있는 양자연구소에는 무려 13조 원을 투입했다고 한다. 양자 우월성에 처음 도달한 것은 미국이지만 인수분해나 인공지능(AI)처럼 실용적인 분야에서 양자 우월성을 가장 먼저 성취하는 나라는 중국이 될지도 모른다. 우주에 처음 인간을 보낸 건 소련이지만 달에 첫발을 내디딘 건 미국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나라들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다. 우리 정부도 1월 양자컴퓨팅 연구에 향후 5년간 445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양자컴퓨터 분야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 산하 벤처캐피털인 삼성카탈리스트펀드는 10월 22일 아랍에미리트의 국부펀드 운용사 무바달라캐피털과 함께 미국 양자컴퓨터 스타트업 아이온큐에 5500만 달러(약 650억 원)를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아이온큐에서 개발한 양자컴퓨터는 극저온이 아닌 상온에서도 작동하는 새로운 방식이라 주목받는 상황이다. 전하를 띤 원자, 즉 이온을 전기장으로 포획해 큐비트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아이온큐가 삼성이 반도체를 개발하면서 축적한 초소형화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이 기술에 접목한다면 구글이나 IBM을 제치고 사상 처음 양자컴퓨터 대량생산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양자 기술
삼성카탈리스트펀드는 10월 22일 아랍에미리트의 국부펀드 운용사와 함께 미국의 양자컴퓨터 스타트업 아이온큐에 5500만 달러(약 650억 원)를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가 만든 양자컴퓨터 아이온큐(IonQ)의 내부 모습. [MS]
이 가운데 대표적인 방법인 양자키분배의 원리를 잠깐 살펴보자. 빛 입자, 즉 광자는 특정한 방향으로 진동하며 진행한다. 이를 편광이라고 한다. 정보를 보낼 때 특정한 방향으로 편광된 광자를 함께 실어준다. 누군가 정보를 빼내려고 하는 순간 광자의 편광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이는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른 현상으로 피할 수 없다) 수신자는 외부 침입을 알아차릴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양자암호통신 분야는 유럽이 앞서 있다. 특히 스위스 기업 IDQ가 개발한 ‘양자키분배기’는 이미 현장에 설치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2월 국내 기업 SK텔레콤이 IDQ를 7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SK텔레콤은 10월 유럽의 양자암호통신 시험망 구축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스위스, 독일, 스페인 등 주요국에 1400km에 이르는 ‘양자 고속도로’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보다 앞서 미국에서도 워싱턴과 보스턴을 잇는 800km 길이의 양자암호통신망을 만드는 사업을 수주했다.
양자역학은 1920년대 중반 정립됐지만 오랫동안 물리학이나 화학, 의료장비 등 특수 분야에 적용되는 데 그쳤다. 심지어 다른 분야에서는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인식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반도체칩 회로가 나노미터 수준으로 작아지면 터널링(tunneling)이라는 양자역학적 현상(겹침의 일종이다)이 일어나 ‘0 또는 1’을 유지해야 하는 비트의 안정성이 무너진다. 이것이 골칫덩이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내다본 사람이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이다. 그가 1981년 발상을 전환해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하는 컴퓨터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처음 내놓았다. 이후 40년 가까이 지난 2019년 양자컴퓨터가, 특수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처음 디지털컴퓨터를 누르고 양자 우월성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10월 24일 이 내용이 담긴 논문을 게재한 학술지 ‘네이처’는 사설을 통해 이 업적을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최초 동력비행 성공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했다. 당시 비행은 12초 동안 36m를 날아간 데 불과했지만 훗날 수천km 비행은 물론 우주 탐사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첫 양자 우월성 달성도 그처럼 양자컴퓨터 시대의 개막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과연 21세기가 양자역학의 시대로 불리게 될까.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