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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간쑤성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甘 中華의 끝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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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탐험가’ 장건

곽거병의 하서주랑 장악은 한과 흉노의 성쇠를 갈랐다. 하서주랑은 유목민인 흉노가 유일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던 지역이었고, 동서남북 여러 민족과 장사할 수 있는 무역로였다. 또한 연지산(燕支山)은 특산물인 연지(홍화꽃을 원료로 한 화장품)를 생산하고, 기련산은 목축을 할 수 있던 중요한 지역이었다. 하서주랑을 빼앗긴 흉노는 비탄에 젖어 노래했다. “연지산을 빼앗겼으니 우리네 여자들의 고운 빛이 사라지겠구나. 기련산을 빼앗겼으니 육축(六畜, 말·소·양·닭·개·돼지)을 기를 수 없게 됐구나.”

한무제의 흉노 토벌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대탐험가 장건이다. 대월지 사신으로 파견된 장건은 흉노에 10년이나 붙잡혀 있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대월지에 도착했다. 원래 목적인 대월지와 흉노의 협공은 끌어내지 못했지만, 장건의 서역 탐험은 의외의 성과를 가져다 줬다.

장건은 중앙아시아 일대의 여러 나라를 방문해 각국의 외교·교역관계와 특산물 정보를 수집했고, 몽골 초원과 서역을 잇는 초원 실크로드, 간쑤성과 서역을 잇는 사막 실크로드 외에도 쓰촨-윈난-버마-인도로 가는 서남 실크로드를 탐색했다. 장건의 정보 덕분에 중국은 외교관계가 다양해지고 무역로를 확충했으며, 변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영향력을 확대했다.

군대 보급은 흉노 정벌에서 매우 까다로운 문제였는데, 장건은 실크로드 주변의 물과 풀이 있는 지역과 보급을 얻을 수 있는 국가를 잘 파악해 대군의 원정을 수월하게 해줬다. 덕분에 일개 궁중 경호대장이던 장건은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져 제후 반열에 올랐다. ‘박망’은 ‘견문이 넓고 널리 바라본다’는 뜻으로, 장건의 넓은 시야를 찬미하는 이름이다.

장건은 대원국에 한혈마(汗血馬, 하루에 1000리를 달리고 피처럼 붉은 땀을 흘린다는 전설의 말)가 있다고 보고해 한무제의 가슴을 들뜨게 했다. 한무제는 말과 같은 크기의 금 조각상을 주고 한혈마를 사려 했지만, 대원국은 이를 무시하고 사신을 죽였다. 격분한 한무제는 1차 원정군으로 수만 명의 병사와 6000명의 기병을 보냈고, 2차 원정군으로 6만 병사, 말 3만 마리, 소 10만 마리, 낙타 1만 마리를 파견했다. 엄청난 대군을 파견한 데 비해 전리품은 준마 10여 마리, 말 3000마리에 불과했지만, 대규모 원정은 의외의 효과를 가져왔다. 서쪽 가장 먼 변방인 간쑤성은 중요한 원정 근거지가 됐다. 수만 병사와 수십만 마리의 소·말·낙타가 오가며 장사를 하게 되자 간쑤성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급격히 팽창했다.





한족과 이민족의 동거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간쑤성은 실크로드(絲綢古道)의 중요 거점이었다. 장건과 마르코 폴로, 현장법사 등이 이 길을 지났다.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거대한 모래산맥 명사산(鳴沙山). ‘바람에 날린 모래가 윙윙 울어댄다’는 뜻이다.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맥적산 석굴에는 194개의 석굴과 7200개의 조각상이 있다.

동양과 서역의 중계지인 간쑤가 성장하면서 교역은 더욱 활발해졌다. 옥문관(玉門關)이란 이름은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문자 그대로 ‘서역의 옥이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서역의 옥, 아라비아의 향료, 로마의 유리 그릇, 중국의 비단이 옥문관을 오갔다. 간쑤를 거쳐 들어온 천리마가 간쑤의 상징이 되면서 서역은 상상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이 잔뜩 있는 곳이라는 로망이 생겼다. 포도, 석류, 깨, 후추, 오이, 마늘 등 외래 작물과 비파, 하프 등 서역 문물이 간쑤를 통해 들어왔다.

한무제가 강역을 넓히고 흉노가 약해지긴 했어도 유목민족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간쑤에서 한나라와 유목민의 힘겨루기는 계속됐다. 그 결과 서량(西凉)의 군인들은 풍부한 실전 경험과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강인함으로 한나라 정예 병력이 됐다. 머나먼 변방이라 중앙의 통제가 약해지면 서량의 군인들은 쉽게 독립 군벌이 될 수 있었다. 동탁, 마등, 마초, 한수 등이 서량을 근거지로 활약한 군벌들이다.

이들 군벌은 한족과 이민족이 어울려 살던 간쑤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동탁은 농사를 짓고 있을 때 강족 무리가 찾아오자, 그자리에서 밭을 갈던 소를 잡아 대접했다. 이에 감동한 강족은 동탁에서 가축 1000마리를 선물했다. 또한 서량 태수 마등의 아버지 마평은 집이 가난해 아내를 얻지 못하자 강족 여자를 아내로 맞아 마등을 낳았으니, 마등은 한족과 강족의 혼혈아다. 마등의 아들 마초가 조조를 상대로 두 차례나 대규모로 거병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집안 환경 덕분에 강족, 저족(氐族, 티베트계 유목민) 등 유목민의 습속과 문화를 깊이 이해했기 때문이리라. 서량을 장악하려면 한족뿐만 아니라 현지 유목민족들 역시 잘 이해하고 포섭할 수 있어야 했다.

서량 군벌의 힘은 대단했다. 후한 말 실권을 쥔 동탁은 18로 제후 연합군이 모두 달려들었어도 끝내 버텨냈고, 당대 제일의 군략가 조조는 마초에게 여러 번 위기에 몰리자 “마초, 저 아이가 죽지 않는다면 내가 죽어서 묻힐 땅이 없겠구나” 하고 탄식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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