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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령 세입자 만들면 전기요금 절반”

‘모자분리’ 제도 악용, 전기요금 떼먹는 악덕 업체들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단독] “유령 세입자 만들면 전기요금 절반”

  • ● 사용량 300kW 기준 넘으면 전기요금 급상승
    ● 건물주와 세입자 전기요금체계 분리 이용
    ● 가짜 세입자 여럿 만들어 전기사용량 나눠
    ● 전기설비도 없이 계량기 분리만 해놓은 곳도
    ● 이른바 ‘편법 모자분리’ 꼼수로 전기요금 줄여
    ● 연간 전기요금 1억 원 이상 줄인 업체도
    ● 전기설비업계 “전수조사 착수해야”
일부 제조업 시설은 유령 법인을 내고 전기계량기를 여러 대 설치하는 방식으로 전기요금을 줄이고 있다. [동아DB]

일부 제조업 시설은 유령 법인을 내고 전기계량기를 여러 대 설치하는 방식으로 전기요금을 줄이고 있다. [동아DB]

가짜 세입자를 만들어 ‘계약전력’을 분리하는 식으로 전기요금을 내지 않는 악덕 업체들이 ‘신동아’ 취재 결과 대거 밝혀졌다. 계약전력은 사용자가 한 달에 전기를 얼마나 사용할지를 두고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와 계약한 전력량을 말한다. 제조업 시설이 사용하는 산업용전기요금은 계약전력이 일정 선을 넘어가면 그 이전보다 훨씬 많은 전기요금을 내도록 돼 있다. 문제는 일부 업체들이 이 일정선을 넘지 않기 위해 공장이나 건물 내에 가짜 법인을 설립해 계약전력을 분산하는 얌체 짓을 벌이고 있다는 점. 이 중에는 이런 ‘쪼개기’ 방법으로 연간 1억 원가량의 전기요금을 내지 않은 업체도 있다.

유령 법인 설립해 전기요금 나눠

한전의 전력기본공급약관에 따르면 제조업 시설의 전기요금은 계약전력에 따라 ‘산업용전력(갑)’과 ‘산업용전력(을)’로 나뉜다. 계약전력 4kW 이상~300kW 미만은 산업용전력(갑), 300kW 이상은 산업용전력(을)로 분류된다.

전기요금은 사용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다르게 매겨진다. 봄·가을철에는 전기요금이 저렴하고 여름과 겨울은 비싸다. 하루 중에도 이른 새벽과 아침에는 전기요금이 저렴하다.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전기요금이 비싸고 심야에는 다시 요금이 저렴해진다. 이 때문에 전기요금 체계가 같아도 실제 내는 전기요금은 다르다. 산업용전력(갑)은 kWh당 최소 55.5~109.2원. 산업용전력(을)은 55.6~188.5원으로, 산업용전력(을)이 훨씬 비싸다.

기본요금도 산업용전력(갑)은 계약전력 kW당 6000원~7470원인 데 반해 산업용전력(을)은 6590~9810원이다. 요금제별로 기본요금이 일원화되지 않은 이유는 요금별로 선택 사항이 있어서다. 전기 사용량에 따라 같은 요금제에서도 기본요금을 선택할 수 있다. 기본요금을 덜 내는 요금제의 경우 전기 사용량(1kWh)이 많을수록 요금이 가파르게 오른다. 반대로 기본요금이 비싼 요금제는 1kWh당 부과되는 전기요금이 비교적 저렴하다.

복잡한 전기요금이라 정확한 수치를 내기는 어려우나, 산업용전력(을)과 산업용전력(갑)의 전기요금 차이는 크다. 전기 사용량이 같을 때 산업용전력(을)이 산업용전력(갑)에 비해 전기요금이 2배가량 더 나온다는 게 전기설비 업계의 전언이다.



‘신동아’ 취재 결과, 산업용전력(갑)에 속하는 일부 업체들은 건물이나 공장 내에 유령 법인을 몇 개씩 만들어 전기요금을 절반가량만 내고 있었다. 유령 법인을 만들어 큰 덩치의 건물이나 공장을 계약전력 300kW 미만의 산업용전력(을) 요금 부과 대상으로 바꿔버린 것. 이 같은 ‘전기요금 쪼개기’에는 2009년 상법 개정으로 법인 설립이 크게 쉬워진 점도 한몫했다. 최소자본금 규정(5000만 원)이 없어진 데다 이사나 감사 수 제한도 없어져 대표자 1인만 있으면 별 돈 들이지 않고 쉽게 법인 설립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법인 설립에 드는 비용은 인지대와 각종 신고에 관한 세금이 다인 셈이다.

‘편법 모자분리’ 이용하면 전기요금 절반

법인 숫자를 늘려 전기요금을 줄이는 방식은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법인 설립만 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계약전력이 500kW인 제조공장 A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업체는 계약전력을 줄이기 위해 가족, 혹은 지인 명의를 빌려 유령 법인 B를 설립한다. B는 A공장 내 세입자로 들어온다. 이후 A공장주는 한전을 찾아 ‘모자분리’ 신고를 한다. 모자분리는 건물주나 공장주가 세입자를 들인 뒤 전기요금체계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전기사용계량기를 나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세입자가 들어왔으니 A공장주는 B법인이 계약전력의 일부를 사용하게 됐다며 계약전력량의 절반인 250kW를 B법인에 전가한다. 원래는 계약전력 500kW라 산업용전기요금(을)을 내던 A공장은 유령 법인 B를 이용해 계약전력 300kW 미만인 산업용전기요금(갑)으로 요금체계가 바뀌게 된다.

실제 사례는 예시보다 심각했다. 경기도 시흥의 한 공장은 전기요금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2018년까지 이 공장의 계약전력은 500~600kW. 전기요금은 연간 2억 원가량이었다. 2019년부터 계약전력을 180~300kW로 쪼개서 납부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위의 예시와 같았다. 유령 법인을 3곳 만들어 공장 내에 세입자로 들였다. 이 유령 법인에 계약전력을 나눠주다 보니 500~600kW이던 계약전력이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19년과 2020년 이 공장의 전기요금은 연간 1억 원 수준으로 줄었다.

경기도 광주의 한 공장에는 서류상으로는 이름이 유사한 업체 5곳이 들어와 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이 공장은 5곳이 아닌 한 업체가 사용하는 곳이었다. 원래 이곳에 있던 업체의 이름은 5곳의 업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업체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전기요금을 내는 사용자의 이름은 같다. 실제로는 한 업체가 모자분리를 통해 5곳으로 나눠 전기요금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당초 공장의 계약전력은 800kW. 5곳의 업체는 이 계약전력을 150kW 업체 4곳과 200kW 업체 한 곳으로 나눴다. 계약전력은 비슷하지만 실제 전력 사용량은 천차만별이었다. 이 중 한 업체는 매달 전기 사용량이 15~20kWh에 불과했다. 2020년 기준 서울 소재 4인 가구의 평균 전력 사용량이 240kWh.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이 일반 가정에서 쓰는 전력량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름이 비슷한 업체 여러 곳이 한 공장에 있는 경우가 가장 의심스럽다”며 “서류로는 (이름이 비슷한) 5~6개 업체가 한 공장에 있다고 하지만 직접 찾아가 보면 한 업체가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편법 모자분리 해주는 브로커 있을지도”

모자분리를 할 때 제출해야 하는 ‘전기사용신청서’. 상호와 전기사용자의 성명을 기입하는 공란이 있다. [한국전력공사 기본공급약관 캡쳐]

모자분리를 할 때 제출해야 하는 ‘전기사용신청서’. 상호와 전기사용자의 성명을 기입하는 공란이 있다. [한국전력공사 기본공급약관 캡쳐]

전기설비업계에서는 이런 전기요금 쪼개기를 ‘편법 모자분리’라고 할 만큼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제는 이런 편법이 한전의 전기요금 기본공급약관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다는 점. 한전의 전력공급약관 44조에 따르면 공급 조건에 따라 산정한 금액과 정당하지 않은 사용 방법에 의해 산정된 금액에 차액이 생길 경우, 이 금액의 3배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 고액의 위약금에도 불구하고 기업들 사이에서는 편법 모자분리가 마치 절세 수단인 것처럼 인식되는 실정이다. 전기설비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요금을 줄일 방법을 알려달라고 오는 기업 중 20~30%는 불법 모자분리가 돼 있었다, 이들 중 다수가 (편법 모자분리가) 잘못된 방법임을 모르고 있었다. 아마 일부 업체에 편법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모자분리를 해주는 브로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전의 관리감독이 너무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모자분리를 하려면 한전에 전기사용신청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한전이 확인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승인을 남발하고 있다는 게 전기설비업계의 주장이다. 이들은 “전기사용신청서에는 성명과 상호, 계약전력 등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같은 건물이나 공장 내에 있는 법인들의 서류만 제대로 비교해 보면 일반인도 편법 모자분리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편법 모자분리를 한 업체 중에는 계약자 성명과 상호를 동일하게 입력해 넣은 곳도 있었다. 경기도 일대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는 서류상 8개 업체의 공장이 가동 중이다. 8개 업체는 전부 계약전력 300kW 미만으로 산업용전기요금(갑) 요금제에 따라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문제는 이 중 6개 업체의 상호가 같다는 점. 한전에 신고한 전기사용자명도 동일하다. 사실상 같은 업체인 셈이다. 6개로 나뉜 계약전력을 합치면 총 1000kW. 하지만 이 업체의 올해 6월 전기요금은 1921만 원에 그쳤다. 전기설비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 사용시간을 알 수 없어 정확한 전기요금을 추산하기 어렵지만 만약 계약전력을 나누지 않고 산업용전기요금(을)으로 납부했다면 1.5~2배가량 전기요금을 더 내야 했다. 사실상 (한전이)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모자분리) 승인을 해준 걸로 보인다. 이 같은 업체만 잡아내도 (한전의) 적자폭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편법 모자분리를 막기 위해 한전의 세밀한 관리와 더불어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건축전기설비기술사회(이하 기술사회) 관계자는 “한전이 모자분리 신청을 받을 때, ‘임대차계약서’와 ‘자고객 임대 전기설비 도면’ ‘임대업자의 전기설비 현장 배치 도면’ 이렇게 3종의 서류만 더 받아도 (편법모자분리를) 발본색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차계약서에는 임대 면적이 명시돼 있다. 제대로 된 모자분리라면 실제 해당 기업(또는 공장)이 일정 면적을 점유하고 있게 된다. 하지만 편법 모자분리의 경우 서류상으로만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임대 면적이 있을 수 없다.

“전수조사로 발본색원해야”

전남 나주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전경. [뉴스1]

전남 나주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전경. [뉴스1]

설사 임대 면적을 써 넣을 수 있다고 해도 설비까지 넣을 수는 없다. 전기요금을 줄이겠다고 설비까지 옮기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 때문. 공장 설비업계 관계자는 “생산공장의 설비 위치는 생산효율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며 “설비를 옮기는 일에서부터 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섣불리 설비를 옮기면 생산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전수조사를 통해 편법 모자분리 건물주나 업체를 색출해 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기술사회의 다른 관계자는 “수도권 및 경기도 일대에서 편법 모자분리 업체가 100여 곳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본인 외에도) 많은 동료가 편법 모자분리 업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공단과 산단이 있는 영호남 지역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업체가 모자분리를 악용해 전기요금을 덜 내고 있을지 모른다. 전수조사를 통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힌전 관계자는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산업용전기요금(갑)과 산업요전기요금(을)의 요금 차이는 22% 정도”라며 “모자분리 신청시 구비서류(임대차계약서, 사업자등록증)으로 전기사용주체가 누구인지 판단하고 있다. 전기사용계약을 변경할 경우 구비서류를 재분석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현장확인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한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으로 말미암아 올 한 해 3조 2667억 원의 순손실을 낼 전망이다.

#전기요금 #한전 #모자분리 #신동아



신동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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