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호

평화 타령 아닌 힘이 윤석열 vs 김정은 승부 가른다

시계 제로, 南北관계

  •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국민대 겸임교수

    입력2023-03-10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大전환기 한복판에 선 대한민국

    • 미·일·중·러 對한반도 정책 기조는 ‘국익’

    • 김정은의 2023년 大전략은?

    •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않으면 화 입어

    [Gettyimage]

    [Gettyimage]

    대한민국은 대전환기 한복판에 서 있다. 세계는 유무형의 다양한 경쟁과 전쟁,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등으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남북관계도 시계(視界) 제로다. 젊은 독재자 김정은이 그동안 갈고닦아 온 핵 발톱을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8일 핵 선제공격 정책을 법제화한 북한이 두 달 뒤 발사한 미사일은 1953년 휴전 이래 처음으로 강원 속초시 앞바다에 떨어졌다.

    그런가 하면 12월에는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마음대로 휘저은 뒤 귀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월한 전쟁 준비 지시와 비례 대응으로 응수했다. “도발 시 100배, 1000배 보복”과 “전술핵 재배치, 자체 핵무장 필요성 검토” 의지까지 천명했다. 바야흐로 강 대 강 대결의 먹구름이 한반도 상공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지정학 귀환과 新냉전 구도

    한반도에는 탈냉전·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던 지정학이 귀환해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新)냉전 구도가 형성됐다. 정치는 이전투구로, 경제는 끝없는 미로로, 사회는 갈등과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 이슈는 민족을 넘어 국제 문제다. 이런 이중성은 광복과 분단 과정은 물론이고 냉전기 6·25전쟁, 탈냉전기 북핵 문제를 비롯한 체제 경쟁 레이스에서 확연히 입증되고 있다. 최근 다시 형성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조는 과거 냉전기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세계 속 위상이 완연히 달라졌다. 한국은 추격자(follower)가 아니라 선도자(leader)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동·서 진영도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의 단선적 개념이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 진영이 어디에 속하든 국가 간 갈등과 협력 병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게다가 각 진영 내 협력에도 한계가 있다. 한일과 중·러 관계에 언제든 파열음이 나올 수 있다.

    미·일·중·러의 대(對)한반도 정책의 최우선 기조는 ‘국익(national interest)’이다. 가치도, 동맹도, 연대감도 국가 이익보다 우선할 수 없다. “세계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오로지 영원한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다”라는 19세기 영국 외무상 파머스턴 경의 명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되새겨야 할 금과옥조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예상 행보를 간략히 짚어보면, 미국은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중국 포위망 구축의 전략적 기조하에 대한민국과의 공조 강화와 북핵 문제의 원칙적·장기적 해결을 추구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 강화 견제, 북한 후원국으로서 역할 강화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모를 꾀하는 일본은 ‘자기 코가 석 자’여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의 大전략 추진 움직임

    김정은은 2011년 27세 젊은 나이에 권력을 승계했다. 후견인들과의 공동통치를 거부하고 빠르게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핵개발의 가속페달을 밟아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에 진입시켰다. 이 같은 통치행위가 과연 즉흥적·독단적 행동일까. 아니다. 그 나름의 계산과 시나리오, 목표를 가지고 진행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김정은의 대전략(grand strategy)은 2013년 6월 주민생활지침서(bible)라고 할 수 있는 유일영도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을 수정해 ‘백두혈통으로의 영구 승계’ 문구를 삽입한 점과 집권 후 2016년과 2021년에 개최한 노동당 당대회 규약에서 선대의 ‘전(全)한반도 공산화 통일’ 유훈을 계승한 데서 잘 나타난다. 2022년 9월에는 핵정책법령 전문과 제1조에 ‘영토완정’을 명시해 적화통일 야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런 동향과 김정은 지시·정책 행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김정은의 대전략은 3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김씨 일가의 영구 집권 기반 구축, 둘째 사회주의 강국 건설, 셋째 한반도 공산화 통일이다.

    김정은의 대전략을 이행하는 수단(tool)은 무엇일까. 가장 대표적인 게 핵·미사일 전력 강화, 다른 하나는 북한 사회 개조이며, 셋째는 통일전선전술이다.

    ‘핵=북한=김정은=미래세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등식이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제2고난의 행군’을 감수하며 모든 자원을 핵개발에 투입한 이유도, 천진난만한 어린 딸을 미사일 발사 현장에 데려가는 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북한 사회 개조는 경제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분야다. 김정은은 대북제재를 감수하며 핵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 안녕을 무시하는 독재자의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 김정은은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도 문재인 정부와 국제사회의 지원 제의를 일체 거부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국경을 막아놓고 새로운 북한 사회 재건을 꿈꿨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 복원과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은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통일전선전술은 핵개발과 북한 사회 개조가 어느 정도 진행됐다고 판단될 때 취할 정책이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의 핵 공갈과 김여정의 반(反)윤석열 투쟁 공개 촉구, 다양한 미사일 도발, 무인기 침투공작 등은 대한민국 내 친북 세력, 사이비 평화주의자에게 모종의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2023년 북한의 정면 돌파 계획

    지난해 12월 27일 조선중앙통신은 하루 전인 26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전원회의가 소집됐다고 밝혔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27일 조선중앙통신은 하루 전인 26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전원회의가 소집됐다고 밝혔다. [뉴시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를 대체한 당전원회의(2022년 12월 26일~31일)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핵에는 핵으로,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를 천명했다. 2023년 상반기에는 긴장이 고조될 대형 정치 이벤트가 줄줄이 있다.

    2월 대규모 열병식이 진행될 예정이며, 3월에는 연례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맞대응 도발이 있을 것이다. 4월에는 지난해 천명한 정찰위성 발사가 예정돼 있고, 김여정이 위협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정각발사와 7차 핵실험 시기도 저울질할 것이다. 6월 25일부터 7월 27일까지는 반미투쟁월간인데 올해는 휴전(북한 표현으로는 전승) 7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반제·반미 대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것이다. 하반기에도 8월 한미합동군사훈련, 9월 북한 정권 창건 75주년 등이 계속 이어진다. 올해 1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에서 2023년을 “생산 토대 정비 보강의 해”로 규정했다.

    동향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은 올 한 해 대화 재개를 통한 비핵화·경제난 타개 전략보다는 중·러와 공조하에 핵전력 고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 사회적으로는 부정부패와 외부 사조 척결 등을 통한 북한 사회 재정비(resetting)에 주력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 시스템, 국격에 맞게 재정비할 때

    지난해 11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은 하루 전인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 때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그의 딸이 함께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지난해 11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은 하루 전인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 때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그의 딸이 함께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일방통행(one-way) 전략전술로 나라의 안위를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는 첫 단추를 잘 꿰었다. 여론의 압박이나 북한의 위장전술에 휘둘려 자세를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 대북 직선로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우회로, 즉 ‘세계로, 미래로, 하나로’ 전략전술에 공을 들여야 할 때다. 그래야만 김정은이 우리를 쉽게 보지 않을 수 있으며, 단절 없는 남북관계를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힘은 북한과 비교할 수 없는 국력과 다양성에 있다. 북한의 50배가 넘는 경제력, 세계 6위 군사력, 70년 한미동맹 관계, 세계를 선도하는 K-콘텐츠 등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북한 행동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김정은에게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포용할 것은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수비(defence·자주국방+미국의 핵확장 억제력)를 튼튼히 하면서 공격(offence·대북제재+북한체제 정상화 활동)을 지속 강화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장기적 관점하에 가치와 원칙에 기초해 세계로 나아가면서 북한을 정공법으로 상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첫째, 미국과의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기초로 한 자주국방, 핵공유 등 위리관리 능력을 강화하면서 세계를 리드해 나가는 자유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면 김정은이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 북한 비핵화와 남북 공동체 건설 촉진을 위해 윤 대통령이 제시한 ‘담대한 구상’을 비롯해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 인권 개선에 북한이 호응하도록 지속 촉구한다. 대의명분은 국가의 기본 품격이자 훌륭한 전략전술이다. 셋째, 북한의 7차 핵실험 등 예상되는 도발에 대한 레드라인을 미리 선포하고 제재수위 제고, 대북심리전 재개, 국민계도 활동 강화, 핵 민방위훈련 실시 등 상응 조치를 취해야 한다. 넷째, 비핵화·자유화·시장화·세계화·친한화 등 북한 체제 정상화를 위한 5화 활동 가운데 자유화와 친한화 활동에 중점을 두고 민관군이 전방위적-유기적, 공개-비공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한에 핵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다양성이라는 비대칭 무기가 있다. 다섯째, 이 같은 활동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안보 시스템을 높아진 국격에 맞게 새롭게 재정비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국가 및 부문 정보기관들은 기관별 리모델링(remodelling) 수준을 넘어 제로베이스에서 재구축(rebuilding)하는 문제도 숙고해야 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발전시킨 ‘정보 공동체’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사기(史記)’는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입는다”(當斷不斷 反受其亂·당단부단 반수기난)고 강조했다. 우리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북한이 불법으로 핵을 보유하고 위협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새로운 각오로 대응 태세를 차분하게 정비하면서 필요한 경우 단호히 결심해야 한다. 긴장 수위를 마냥 높이자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지향하되 한가롭게 평화 타령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는 것도 힘이고, 만드는 것도 힘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천길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현애살수(懸崖撒手)’의 기백과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정신을 거울로 삼는다면, ‘윤석열 대 김정은’ 승부는 자연스럽게 결론 날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