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문재인, 6·25 北 책임 희석하려 국제전 언급”

[Special Report | 성취의 기록, 대한민국 75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격정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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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8-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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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스럽고 좀팽이 같은 중국의 행태

    • 언필칭 좌파, 입만 살아 진실 호도

    • ‘이승만 기념관’ 취지, 신격화 아냐

    • 文 정부, 백선엽에 앙갚음·화풀이

    • 野 추진 민주유공자법, 법도 아냐

    • 검찰 힘 약한데 검찰 공화국이라니…

    8월 9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박해윤 기자]

    8월 9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박해윤 기자]

    박민식(58) 국가보훈부 장관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8월 9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90분간 이어졌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배석한 보훈부 대변인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 중 가장 길게 했다”고 귀띔했다. 이날 박 장관은 날 선 표현을 많이 썼다. “좀스럽고 좀팽이 같은 행태” “핏대를 올리고 싶다” “입진보” “영악한 프레임” “앙갚음” “역사의 패륜아로 방치”…. 보통의 장관에게선 쉬이 듣기 어려운 단어다. 그가 ‘정치인’ 장관임을 보여주는 모종의 징후다. 특유의 부산 사투리가 차진 맛을 더했다.

    질문지에 있던 보훈부 주요 사업에 대한 질의는 모두 뺐다. 대신 현대사의 불구덩이 같은 쟁점에 대해 물었다. 초대 보훈부 장관이 가진 날것 그대로의 역사관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얘기는 꼭 써달라”거나 “워딩 그대로 강조해 달라”고 여러 번 말했다. 단단한 자긍심이 엿보였다.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 요청은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되레 기자가 “이 표현 그대로 써도 되느냐”고 두 차례나 물었다. 인터뷰에 앞서 그가 꺼낸 “편히 말할 테니 알아서 쓰이소”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싶었다. 시작은 미국과 중국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5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한미동맹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1953)이 쉽게 이뤄진 게 아닙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때론 구걸하고 때론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을 협박하는 등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해 조약이 체결됐어요. 이것이 대한민국 성장의 초석이 됐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을 못하지 않습니까. (한미동맹이) 진영 간 다툼의 대상도 아니고 인정할 건 까놓고 인정해야죠.”

    최근에는 신(新)냉전이라는 표현이 쓰입니다.

    “정치가 도덕률과 꼭 같이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푸틴의 길을 갈지 미국의 길을 갈지 선택은 자명합니다. 75년 전에도 똑같았습니다. 김일성의 길을 갈지 자유 대한민국의 길을 갈지 선택이 명확했잖습니까.”

    보수 정치인도 다 평화를 원하죠

    ‘중국이 좀스럽다’는 표현을 한 걸 봤습니다.

    “그 부분은 내가 핏대를 좀 올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주무 장관도 아니면서 중국을 감정적으로 대하느냐고 하던데, 나는 주무 장관이에요. 보훈부 장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독립지사들을 제대로 예우하는 겁니다. 뤼순(旅順)감옥 박물관에 안중근 의사 전시실과 신채호 전시실, 이회영 전시실을 만들 때 광복회가 (돈을) 지원했습니다. 잘못 운영될 때 말을 하는 게 주무 장관의 책무입니다.”



    뤼순 감옥 박물관의 안중근 전시실이 폐쇄됐다는 사실은 8월 1일 동아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뤼순감옥 박물관 관계자는 폐쇄 사유와 재개관 일정 등을 묻는 동아일보의 질문에 “시설 점검 및 보수 중”이라며 “재개관 날짜는 모른다”고 답했다. 점검 대상이나 보수 이유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 장관의 말이다.

    “보훈부에서 예산을 지원한 대학생 탐방단이 여름 땡볕에 독립지사의 숨소리를 듣고 싶어 그곳에 찾아갔는데, 대문에서만 사진을 찍었어요. 일방적으로 문 닫고 보수 중이라고만 하니 (중국 당국이) 정치적이라는 의심을 사는 겁니다. 덩샤오핑 이래 중국 외교정책의 슬로건인 구동존이(求同存異)와는 다른 좀스럽고 좀팽이 같은 행태입니다. 문제가 신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추가 조치를 할 겁니다.”

    보훈부 차원에서 어떤 조치를 할 수 있습니까.

    “법적인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고, 공식 항의할 수도 있고요. 미국과 어깨를 견준다는 G2 중국에서 이런 행태를 보인다는 건 아주 어리석은 겁니다. 중국에 무슨 이득이 있냐고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황당하다는 뉘앙스로)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철학이 내 철학과 맞지도 않아서 수긍도 안 갈뿐더러, 사실 쓰고 싶은 표현은 있는데…. 이 말로 하입시다. 너무 순진무구하다고. 국제정치 현실에 대해 너무 얕은…. (끝말을 흐리며)”

    문재인 전 대통령은 6월 25일 책 ‘1950 미중전쟁’을 소개하면서 “한국전쟁이 국제전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튿날 박 장관은 “왜곡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야당 일각은 문 전 대통령이 ‘국제전’ 성격도 있음을 강조했을 뿐, 김일성의 남침을 옹호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아니, 현대전이 국내전이면서 국제전의 성격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굳이 문 전 대통령이 국제전임을 강조한 것은, 역사적으로 명백한 북한의 남침 책임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나는 봅니다. 6월 25일 전직 대통령이 낼 메시지는 딱 두 가지입니다. 비극적 전쟁으로 수백만 동족이 희생당했는데, 누구 책임인지 강조해야죠. 또 국민과 유엔(UN) 참전국이 함께 피를 흘려 비극을 극복했다는 점을 말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지낸 분이 이런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걸 몰랐다면 무능한 거고, 알았으면서도 (이를 빼고) 국제전이라고 했다면 (북한의) 전쟁 책임을 고의로 희석하려는 의도가 있는 거지요.”

    이 대목에서 박 장관은 “나는 ‘진보’ 대신 ‘이른바 진보’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이른바’라는 세 글자에 담긴 함의는 작지 않다.

    “이른바 진보, 언필칭 좌파라고 하는 사람 사이에 그런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요. 전쟁 책임에는 눈감고 ‘이 전쟁은 비극이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재명 대표가 말한 ‘더러운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는 말과 똑같은 거거든. 평화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보수 정치인도 다 평화를 원하죠. 평화를 확보하려 노력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입진보’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입만 살아갖고 반대쪽 사람들은 마치 호전적이고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처럼…. 아주 영악한 프레임에 기대어 진실을 호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야박하기로서니…

    동아일보는 6·25전쟁이라고 표기합니다만, 이를 두고도 ‘학계 주류 의견과 다르다’며 반박 투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엔이 참전했는데 국제적 성격이 왜 없겠어요? 더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 거죠. 전쟁은 남북 사이의 도발과 냉전 구조에서 발발한 것이지, 한쪽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게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꺼낸 핵심 논리입니다.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6·25가 김일성이 요청하고 스탈린이 승인해 이뤄진 남침이라는 팩트를 더는 부인할 수 없게 됐어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그 부분은 의도적으로 말을 안 하고 국제전이라고 물타기하는 것 같아요.”

    그의 집무실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이 많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한국 사회에서 진영(陣營)을 나누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초대 대통령의 운명치고는 기이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도서가 많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집무실 책상. [박해윤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도서가 많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집무실 책상. [박해윤 기자]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고 1952년 ‘이승만 라인’으로 독도를 사수했는데도 ‘친일파’라고 매도당합니다.

    “이승만이 친일파라는 주장이야말로 가장 악의적인 왜곡입니다. 이승만은 일본에 대해선 평정심을 잃을 정도의 극렬 반일주의자였어요. 나는 북한의 적색심리전 영향이 있다고 봐요.”

    적색심리전이라면?

    “북한에서 이승만 비난할 때 논리가 ‘친일파’ ‘미국의 앞잡이’ 아니겠어요? 초대 내각 면면을 보면 김일성 내각에 친일파가 있습니다. 이승만 초대 내각에는 친일파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 법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이 얘기는 꼭 써주세요.”

    ‘법적으로 불가능했다’는 말의 의미는 이렇다. 1948년 5·10 총선거를 위한 선거법 제정으로 친일 부역자들의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까지 박탈하는 조항이 마련됐다. 이에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는 친일파로 규정할 수 있는 인사가 참여할 수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쟁점 중 하나가 이승만 기념관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8월 1일 “이런 괴물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광복회는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회장은 이틀 뒤 광복회보에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두고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일”이라고 썼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있어 이종찬 광복회장과 견해차는 없다고 보면 됩니까.

    “이종찬 회장은 이승만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합니다. 이 회장이 대통령이 있는 자리(8월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김황식 전 총리의 건립추진위원회에 적극 힘을 보태겠다고 했고, 건립에 속도가 나야 한다면서 운영까지 세심히 살피겠다고 했습니다. ‘괴물 기념관’이라는 표현을 쓴 건, 제가 두세 번 확인했는데 이승만을 김일성처럼 숭배하고 신격화하는 데 반대한다는 거예요. 이승만 기념관 건립 취지가 신격화는 아니잖아요. 신격화에는 나도 반대해요.”

    제자리를 찾아준다는 취지인가요.

    “정확한 표현이에요. 그동안 이승만을 역사의 패륜아로 방치시켜 놨다고. 우리가 아무리 야박하기로서니, 이승만이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때 동상 하나도 지으면 안 될 정도의 대통령에 불과했습니까?”

    이승만 저평가는, 일제 치하에서 이승만의 외교 노선보다 김구의 무장투쟁 노선을 높이 평가하는 흐름과도 무관치 않을 겁니다.

    “그런 영향도 있죠. 김구 선생은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깍듯하게 형님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승만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극우파고, 김구를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중도진보파인 것처럼 아주 정략적인 프레임이 형성됐죠.”

    조봉암 서훈, 나도 궁금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는 백선엽 장군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다음 날인 2020년 7월 16일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현충원 홈페이지 안장 기록에 기재했다. 백 장군 유족은 2월 해당 문구 적시가 국립묘지법에 위배되고 사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보훈부에 삭제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냈다. 보훈부는 7월 24일 이 문구를 삭제했다.

    백선엽 장군 ‘친일파’ 문구 삭제와 관련해서도 광복회 일각이 ‘원상복구’를 요구했는데요.

    “팩트로 얘기할게요. ‘신동아’에서 확실히 정리해 줘야 딴말이 안 나오지. (수첩을 꺼내 메모를 보면서) ‘백선엽 장군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주장에 전혀 동조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박민식 보훈부 장관과 입장이 같다. 광복회 선배들이 조사한 친일자 명단에 백선엽 장군은 애초에 없었다.’ 이것이 이종찬 회장의 입장입니다.”

    직접 들은 거지요?

    “직접 듣고 우리 부처 국장이 가서 또 확인한 내용이에요. 백선엽 장군은 태극무공훈장을 비롯해 수많은 훈장을 받은 육군 대장 출신입니다. 관계 법령을 보면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장성은 무조건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하게 돼 있어요. (책상을 치며) 친일파 기재도 법적 근거를 갖고 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문재인 정부 때) 정치적 영향 때문에 이뤄진 억지 조치거든. 원위치하는 게 맞는 거 아닙니까? 문재인 정부는 백선엽에 스크래치를 내고 싶어 했어요. 이렇게 그대로 써줘요. 끝까지 뭐라도 흠집을 내고야 말겠다는 그 사람들의 보복 심리, 앙갚음, 화풀이 정서가 있었다고 봅니다.”

    백 장군이 2년제 봉천만주군관학교를 마치고 1942년 초 헤이룽장(黑龍江)성 자무쓰(佳木斯)의 만주군 신병학교 교관을 1년 정도 맡은 뒤 배치받은 곳이 ‘간도특설대’다. 간도특설대는 일본이 세운 괴뢰국가인 만주국에 의해 1938년 창설됐다. 독립군을 소탕한 부대였기 때문에 백 장군이 독립군을 때려잡은 친일파란 주장이 잉태했다.

    “백 장군은 1948년 반민특위가 발표한 친일파 명단에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70년 후에 친일파라고 규정한 겁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회의록을 봤는데 정말 어설퍼요. ‘(백 장군의) 회고록에 나온 아주 애매한 표현밖에 없으니 보강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기재해 놨어요. 내가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리고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 복무했을 때 나이가 스물두 살이에요. 지금으로 치면 육군 소위·중위가 친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죽산 조봉암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여부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내용이 기준이라면 농지개혁을 주도한 죽산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공적심사는 공적심사위원회가 하게 돼 있습니다. 장관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죠. 공정하게 심사하리라고 봅니다. 다만 제가 해석하자면 그분(죽산)의 경우 친일 논란이 있고, 또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개혁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북한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공적심사위원회에서 토론과 검증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도 (결과가) 궁금합니다.”

    7월 6일 박 장관은 CBS 라디오에 나와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장관직을 걸겠다고 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며 “가짜 유공자 양산에 대한 정부·여당 우려는 시행령을 세밀하게 만들어 보훈심사위원회에서 유공자를 엄격히 가려내면 해소될 일”(경향신문 7월 19일)이라고 했는데요.

    “이재오 선배보다는 제가 법률에 대해 조금 더 잘 알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헌법 위반입니다. 헌법에 포괄 위임 금지라고 돼 있어요. 법률의 범위를 정해 대통령령이나 장관 부령 등에 위임해야 합니다. 민주화 관련법이라면, 민주화의 범위를 법이 정해줘야 합니다. 이를 정하지 않고 시행령으로 가린다? 그럼 보훈부 장관이 최고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법이 뭔 필요가 있어요? 그건 법도 아니에요.”

    나도 검찰 출신이라고 하대요?

    그는 사법연수원 25기로 23기인 윤 대통령의 2년 후배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이던 2005년 안기부(국정원 전신) 도청사건을 맡아 신건,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구속했다. 이후 검찰을 나와 부산 북·강서갑에서 18·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윤석열 정부가 반(反)카르텔을 국정 기조로 삼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검찰 중심으로 사정 기능을 강화하려는 포석 아니냐고 비판합니다.

    “제가 특수1부 수석으로 일할 때의 검찰에 비하면 지금의 검찰이 하는 일이 없어요. 너무 힘이 약해요. 수사 대부분을 경찰이 먼저 하고 상당 부분이 (경찰로) 이관돼 있지 않습니까.”

    야당은 검찰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나도 검찰 출신이라고 하대요? 정치판에 있던 시간이 훨씬 긴 사람도 포함해 검찰 공화국이라고 하는 건 윤 대통령을 흠집 내기 위한 프레임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눈이 중요하니 신중히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선에 출마합니까.

    “정치는 본인 의지도 중요하지만 고객인 유권자의 니즈(needs)가 훨씬 중요하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가 몇 번을 부산시장 나간다고 했는데, 부산시민이 나를 원했으면 아마 됐지 않았겠습니까. 고객의 니즈가 있으면 그때 생각할 일이지, 내 의지는 의미가 없어요. 지금은 보훈부 업무에 푹 빠져 있어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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