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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느라 지친 당신, 마석도를 보라

[황승경의 Into the Arte] ‘국민 영화’ 된 ‘범죄도시’ 시리즈 흥행 공식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3-09-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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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곳곳에서 들려오는 범죄 소식은 걱정과 불안, 공포를 일으켜 야금야금 내 가슴을 베어 먹는다. 날씨만큼 강력한 청량제를 찾던 관객들은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인공 ‘마석도’의 핵주먹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정의와 질서를 회복하는 주인공의 분투는 흡사 내 마음속 정글을 헤치고 나아가는 아바타 같다. 그러나 공포에 떨면서 자식을 잡아먹는 고야의 그림 속 ‘사투르누스(로마 신화 논경의 신)’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걱정과 불안에 또 다른 초인(超人)을 기다릴지 모른다.
    영화 ‘범죄도시3’ 시리즈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마석도’의 핵주먹은 현실에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관객에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영화 ‘범죄도시3’ 시리즈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마석도’의 핵주먹은 현실에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관객에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요즘 뉴스를 접할 때면 날씨만큼 머리에서 열이 난다. 이제 좀 안 봤으면 싶은 뉴스가 연신 나오니 체감온도가 덩달아 높아진다. 내 삶도 고달픈데, 원치 않게 다가오는 우리 사회의 걱정과 불안, 공포는 가랑비에 옷 젖듯 가슴에 스며든다.

    카타르시스는 심리 치료 과정의 핵심

    마음속에 불안, 긴장, 응어리진 감정이 쌓일 때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 나오는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은’ 초인을 기다린다. 외세 침탈로부터 나라를 지킨 민족의 영웅이든, 전 재산을 내놓아 제주도민을 구휼한 객주 김만덕이든, 나쁜 놈들을 처단하는 의리파 경찰이든 처한 상황에 따라 초인의 성격도 다양하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카타르시스는 공포와 연민을 불러오는 비극이 주는 효과를 묘사하는 은유(아리스토텔레스)였다. 이제는 무의식 속에 잠재하는 슬픔, 공포, 연민, 불안 등을 바깥으로 표출해 마음을 정화하는 심리치료술(지그문트 프로이트)로 확장됐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마음에 쌓이면 뿌연 창으로 세상을 보듯 눈앞이 침침해져 작은 일도 마치 큰일처럼 받아들인다. 불안감과 두려움을 가진 이들은 감정을 분출하고 해소해야 한다. 심리학에서 카타르시스를 모든 치료 과정의 핵심으로 보는 이유다. 카타르시스는 멀리 있지 않다. 눈치 보지 않고 일기를 쓰거나, 조용한 산길에서 마음껏 소리를 지를 때도 만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몰입해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며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때도 대리만족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과정에서 마음속 억압된 감정을 발산함으로써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최고의 치료법은 야금야금 가슴을 베어 먹는 슬픔과 공포의 절도범을 끄집어내 완전히 하늘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상가(喪家)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애도하던 조문객이 상주에게 “소천하신 분이 누구시죠?”라고 묻는다는 우스갯소리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슬픔을 타인의 죽음에 투사하며 평소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을 끄집어내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한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통쾌한 한 방

    5월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은 7월  1일 한국 영화로는 올해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5월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은 7월  1일 한국 영화로는 올해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그런 의미에서 마동석이 전편에 이어 주연뿐 아니라 기획·제작·각본까지 맡은 영화 ‘범죄도시3’이 또다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점은 흥미롭다. 5월 31일 개봉 첫날 1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3’은 7월 1일 개봉 32일째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국내 극장가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역대 30번째 영화이자 21번째 한국 영화다. 장면마다 빵빵 터지는 코미디, 1세대 빌런 윤계상과 2세대 빌런 손석구를 잊게 만드는 이준혁과 아오키 무네타카 ‘투 빌런’의 담대한 범죄로 버무린 탄탄한 스토리도 영화 흥행에 일조했지만, 무엇보다 ‘돌아온 괴물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범죄자들을 핵주먹으로 화끈하게 응징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총제작비가 70억(1편)·130억(2편)·135억(3편) 원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선 200만(1편)·150만(2편)·180만(3편) 관객이 관람해야 했다. 막상 개봉하고 보니 688만 명(1편), 1269만 명(2편), 1000만 명 돌파(3편 개봉 중)로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웠다. 참고로 2,3편 제작비가 1편의 두 배 가까이 되는데도 손익분기점이 더 낮은 것은 해외 선판매, VOD 예상 수입, 영상물진흥위원회 개봉 지원 등으로 먼저 입금되는 금액을 빼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편수가 늘어날수록 해외 관심도가 덩달아 높아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1편 14개국, 2편 132개국 수출에 이어 3편은 해외 판권 판매가 지금도 진행 중으로 ‘잭팟’이 기대된다. ‘범죄도시3’은 6월 초 글로벌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 컴스코어에서 전 세계 흥행 4위를 기록했으며, 몽골·홍콩·마카오·북미·영국·베트남·인도네시아·싱가포르·필리핀·호주 등 15개국에서 개봉해 해외 총 수입액 264만7657달러를 기록 중(6월 말 기준 약 34억4천만 원)이다. 여기에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수입을 더하면 6251만 달러(6월 말 기준 약 812억6000만 원)로 껑충 뛴다.

    뻔한 스토리라도 극장 찾는 이유

    주인공 마석도는 엘리트 경찰도 아니고 폭력경찰로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고 모범경찰도 아니다. 덩치가 크다는 것 빼고는 어디서 본 듯한 외모에 다소 어수룩하고 ‘무데뽀’ 기질이 다분하다. 그의 매력은 실적과 승진보다 민중의 지팡이로 초지일관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 있다. 모든 성과를 점수로 계량해 계산하는 경찰 조직에서도 마석대 팀은 승진에 개의치 않고 ‘나쁜 놈 벌주기’에 열과 성을 다한다. 1편과 2편에는 서울금천경찰서 강력1반 마석도 경위의 2004년과 2008년의 사건을 스크린에 담았고, 3편과 4편(개봉 전)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석도 경감의 2018년 사건을 담고 있다. 1,2편의 일반 당직 사건(관할 지역에서 발생하는 절도나 폭력, 강력사건)이나 점수가 많이 나오는 굵직한 사건을 주로 도맡는 3편의 광역수사대(현 강력범죄수사대)에서도 마석도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쁜 놈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쾌한 한 방을 날릴 뿐.

    ‘범죄도시3’에서 마석도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모습도 보여준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3’에서 마석도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모습도 보여준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 시리즈는 동일한 스토리 맥락을 가진다. ①거리에서 시민들을 괴롭히는 폭력 잡범들을 한 번에 제압하는 마석도 ②폭력 조직 내 끔찍한 폭력도 서슴지 않는 ‘절대악’ 등장 ③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찾을 수 없는 범죄자를 샅샅이 찾아다니는 마석도 ④최후 결투 ⑤무기를 가진 악한을 맨주먹으로 날려 쓰러뜨림 ⑥정의의 승리. 20세기 어린이들의 사랑을 듬뚝 받은 만화 시리즈 ‘마징가 Z’나 ‘독수리 오형제’에서 보던 스토리 구성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무법천지 활개를 치며 나쁜 짓을 벌이는 나쁜 놈들을 마석도가 유쾌·상쾌·통쾌하게 소탕하는 포맷이 질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 관객은 뻔한 스토리와 예상되는 결말일지라도 기꺼이 극장으로 향한다. 각각의 ‘범죄도시’ 매력을 살펴보자.

    1편은 2004년, 구로구 가리봉동 차이나타운이 배경이다. 영화는 2004년 5월 조선족 ‘왕건이파’의 살인미수 사건과 2007년 연변 조직 ‘흑사파’ 사건을 모티프로 각색됐다. 2000년대 초반 중국 정부는 대규모 조직폭력배 소탕작전을 펼쳤다. 조선족 조직폭력배들이 대거 한국으로 넘어와 가리봉동에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금천경찰서 관할 구역에는 조선족 범죄조직 사이의 잔인한 패권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범죄도시1’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도끼와 식칼로 선혈이 낭자한 잔혹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동안 많은 영화에서 차이나타운이 언어 장벽, 사회문화적 차별, 법률적 배제로 인해 중국인들이 뭉쳐 사는 문화와 관습을 유지하는 배타적 공간으로 그려졌지만 ‘범죄도시1’은 차이나타운을 더욱 음산하고 잔인하게 그린다. 영화 배경인 2004년 서울 금천구 가리봉동은 공식적으로 차이나타운으로 불리기도 전이다. 소규모 중국인 거주 지역이던 가리봉동이 차이나타운으로 불린 것은 2017년 이후다.

    1편은 금천서 관할 지역을 뒤흔드는 신흥 범죄조직 흑룡파 우두머리인 장첸(윤계상) 패거리와 강력1반 형사들의 승부가 주요 줄거리다. 개봉 전에는 아무도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등장인물들의 선명한 캐릭터, 실감 나게 생생한 액션, 귀에 꽂히는 차진 대사는 관객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고도 남았다. 유머 코드가 돋보이는 악당들의 참교육 신은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회자됐다.

    ‘범죄도시1’에서 악랄무쌍한 보스 장첸 역으로 열연한 윤계상. 역대급 악역 연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1’에서 악랄무쌍한 보스 장첸 역으로 열연한 윤계상. 역대급 악역 연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가슴 뻥 뚫린 다음에는…

    2편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인 범죄자가 동남아 일대에서 벌인 한국인 관광객 대상 납치·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마석도와 전일만(최귀화) 반장은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하기 위해 베트남 현지로 출국한다. 마석도는 용의자 심문 과정에서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극악무도한 강해상(손석구)의 존재를 파악한다. 강해상은 대부업체의 대부 최 회장의 아들을 베트남에서 납치해 요구한 돈을 받고는 아들을 살해한다. 최 회장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강해상을 살해하려 킬러를 고용하지만 강해상은 오히려 최 회장을 납치해 부인에게 몸값 20억 원을 요구한다. 돈 가방을 손에 넣은 강해상은 대담하게도 버스로 이동하고 마석도는 유유히 버스를 세운다. 버스 안에서 마석도와 강해상의 혈투가 시작된다. 전열을 가다듬은 마석도는 강펀치 한 방을 조준한다. 버스 앞 유리를 뚫고 도로로 날아간 강해상은 이내 반격하지만 마석도의 다른 강펀치에 맞아 옆 승용차의 앞 유리창에 처박힐 뿐이다. 코로나 사태로 우울한 관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장면으로 손꼽힌다.

    ‘범죄도시2’의 빌런 강해상(손석구)은 1편의 악당 장첸(윤계상)처럼 조직을 거느리지 않고 혼자 움직인다. 잔인성도 장첸보다 돌출적이고 막무가내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2’의 빌런 강해상(손석구)은 1편의 악당 장첸(윤계상)처럼 조직을 거느리지 않고 혼자 움직인다. 잔인성도 장첸보다 돌출적이고 막무가내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3편은 2018년 필로폰을 밀반입·유통한 마약조직 검거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3편에서 마석도는 여전한 맨주먹 괴력을 자랑하지만 다이내믹한 복싱 스타일의 핵주먹을 구사한다. 살인사건 조사 중 마약사건이 연관됐다는 것을 감지한 마석도는 사건을 파헤친다. 비리경찰 주성철(이준혁 분)은 공권력을 이용해 일본에서 들여오는 마약을 빼돌린다. 일본의 야쿠자는 낌새를 채고 중간 보스 리키(아오키 무네타카 분)를 한국으로 보내 상황을 종료하려 한다. 전편들과 다르게 천하의 마석도가 주성철의 간계에 걸려들어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해피엔딩이다. ‘기-승-전-마석도의 주먹’으로 끝나는 스토리지만 ‘막힌 무언가가 쑥 내려가듯’ 시원하다. 배트맨 처럼 가슴 뛰게 하는 완벽한 엄친아 영웅보다는, 가슴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맛 영웅이 필요한 세상이 됐다. ‘시대가 원하는 영웅=마석도’가 그만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선사하는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바로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 동력이다.

    ‘범죄도시3’에서 교활한 비리경찰의 무자비함을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20kg 늘린 이준혁.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3’에서 교활한 비리경찰의 무자비함을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20kg 늘린 이준혁.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작품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자식들이 자신을 왕위에서 몰아내는 저주를 받고 태어난다고 해서 태어나는 대로 집어삼켰다. 그러나 고야의 그림 속 사투르누스의 눈은 자식을 잡아먹는 중에도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휘둥그레 크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통해 대리만족을 넘어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얻고자 한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에게 대화를 청해 보라. 내재한 모든 불안과 불만의 근원을 찾을 수 있도록.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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