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명품 소비와 소확행 공존 사회, 좌절 혹은 행복

[김호기의 고전으로 읽는 21세기] ‘유한계급론’과 ‘구별 짓기’로 읽는 소비하는 인간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2023-10-2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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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후에 본격화한 대량생산·대량소비

    • 사회비평가·경제학자·사회학자, 베블런

    • 19세기 후반 신흥 상류층, 유한계급

    • 사회적 지위 확인하는 ‘과시적 소비’

    • 학계서 이채로운 사회학자, 부르디외

    • 핵심 열쇠말, ‘문화자본’과 ‘아비튀스’

    • 취향, 성향이자 계급적 위치 반영

    • 불평등 구조화에 따른 소확행 부상

    [Gettyimage]

    [Gettyimage]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는 사회 이론과 사상에서 오랫동안 탐구돼 온 문제다. 고전적으로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을 경제적 존재로, 막스 베버는 합리적 존재로 파악했다. 20세기 후반 위르겐 하버마스는 소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관을, 미셸 푸코는 담론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로서의 인간관을 펼쳐 보였다.

    인문학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인간은 더욱 복잡다단한 존재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존재를,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하는 존재를, 마르틴 하이데거는 실존으로서의 존재를 부각했다. 여기에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까지 고려한다면, DNA를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존재다. 따라서 현대사회 이론에서는 인간에 대한 복수의 시각을 중시한다. 어느 한 시각으로만 파악할 경우 인간관은 인간과 그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에 대한 협소한 이해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서 주목할 인간의 사회적 성격은 ‘소비하는 인간’이다. 소비란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해 구입하고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21세기 현재 소비는 일상 및 사회생활에서 중심 영역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소비 현상은 이제 중요한 사회현상이자 문화현상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소비가 사회 이론과 분석에서 처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소비는 생산에 이어지는 부차적 활동으로 간주돼 왔다. 그런데 1945년 열린 전후 시대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본격화한 이래 소비는 생산 못지않은 관심을 끌어왔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더라도 ‘명품 소비’와 ‘소확행(小確幸)’은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이자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러한 소비에 대한 고전적 연구로 손꼽히는 저작이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1857~1929)의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1899)이다. 전후 시대에 가장 주목할 연구로 손꼽히는 저작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의 ‘구별 짓기’(La Distinction·1979)다. 이 두 저작을 통해 21세기 소비 현상에 다가서 보려고 한다.

    ‘유한계급론’ 주요 내용

    베블런은 미국의 이채로운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다. 노르웨이계 이민의 후손이다. 베블런은 제도화된 학계에서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던 반면, 시민적 대중사회에서는 크게 환영받은 지식인이었다.

    미국 사회학자 루이스 코저는 베블런이 보여준 세 가지 얼굴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첫 번째는 당대 미국 사회의 경건주의 주류 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회비평가’다. 두 번째는 제도를 중시하는 제도주의 ‘경제학자’다. 세 번째는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사회학자’다. 베블런은 주류라기보다 비주류적 시각, 다시 말해 노르웨이계 주변인의 시각에서 당대 미국 사회를 포함한 자본주의 사회와 문화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했다.

    ‘유한계급론’은 베블런의 대표 저작이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 등장한 자본주의의 신흥 부유층인 상류층을 다루고 있다.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란 말 그대로 생산적 노동을 멀리하고, 소유한 재산으로 비생산적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유한(有閑)’에서의 ‘한’이 ‘한가로운 한(閑)’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자본이 안겨주는 자본소득 등으로 살아가는, 달리 말해 놀고먹는 계급이 유한계급이다. 이러한 유한계급이 자본주의 시대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베블런에 따르면,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도 야만적인 지배자로 유한계급은 존재했다.

    이러한 유한계급의 생활 가운데 베블런이 관심을 가진 것은 그들의 여가와 소비 양식이다. 베블런에게 인간의 본능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자기보존이다. 그다음이 경쟁인데, 이 경쟁에서는 금전적 경쟁, 즉 누가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느냐가 핵심을 이룬다. 베블런이 강조하려는 것은, 재화의 가치가 그것에 내재한 물리적 속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서울의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고객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며 쇼윈도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고객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며 쇼윈도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이런 맥락에서 베블런은 특히 19세기 후반 신흥 상류층의 과시적 여가와 소비 행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베블런에 따르면, 당시 상류층은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드러내기 위해 과시적 여가와 소비를 즐겨 보여줬다. 과시적 여가와 소비는 재력을 과시하고 명성을 유지하며 사회적 우월성을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유한계급론’을 특히 유명하게 만든 것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이다. 베블런은 소비가 신흥 상류층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 준다고 봤다. 과시적 소비란 제품의 효용보다 금전적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의 목적이 전통적 의미에서의 개인적 효용 추구가 아닌 위세와 명성과 같은 사회적 기호이자 상징으로 변화했다는 것이 베블런이 전하려는 메시지다. 과시적 또는 낭비적 소비의 사례들에 관한 베블런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때때로 과시적 낭비의 목록에 복속되기도 하고 또 이러한 소비 원리에 준하여 예절을 설명하는 데도 응용되곤 하는 그런 조건들을 우리는 카펫이나 태피스트리(여러 가지 색깔의 실로 수놓은 벽걸이용이나 실내장식용 비단), 고급 식기, 웨이터의 각종 서비스, 실크해트(예복용 남자모자), 풀 먹여 다린 예복이나 정복, 갖가지 보석류나 고급 의상 따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에서 주목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소비는 단지 시장에서의 교환과 같은 경제적 역할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가 단순한 효용과 사용가치를 넘어 기호를 소비하는 행위에 가깝다는 점에서 베블런의 분석은 현대사회의 소비 행태를 설명해 주는 유용한 프레임을 제공한다.

    베블런이 개념화한 과시적 소비의 대표적 사례가 오늘날 ‘명품 소비’다. 명품 소비는 지위의 획득과 유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부의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과시적 소비 행태를 잘 보여준다.

    둘째, 과시적 소비는 과도한 경쟁과 사회적 격차를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 베블런에 따르면, 상류층의 과시적 소비는 다른 계층의 ‘모방적 소비’를 부추긴다. 상류층보다 낮은 계층은 사회 이동을 위한 경쟁적 모방 속에서 지위 상승을 추구하려고 한다.

    주목할 것은 중간계층이 상류층의 과시적 소비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모방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특정한 소비와 여가생활이 유행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유한계급으로부터 시작된 과시적 소비가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베블런의 기여는 과시적 소비의 유행과 그 그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에 있다. 이러한 유한계급의 과시적 낭비와 소비 행태는 부의 불평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이에 대한 적대감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하류계층은 모방적 소비를 통해 유한계급의 관습과 규범을 따르고 그것을 내면화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여준다. 현대 소비사회의 역설적인 그늘이다.

    한국에서 출간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문예출판사, 2019)과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La Distinction, 새물결, 2005). [각 출판사]

    한국에서 출간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문예출판사, 2019)과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La Distinction, 새물결, 2005). [각 출판사]

    ‘구별 짓기’ 주요 내용

    베블런 이후 소비의 사회이론에서 주목할 만한 논리와 분석을 내놓은 이는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다. 부르디외는 프랑스 학계는 물론 세계 학계에서 모두 이채로운 존재다. 네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부르디외는 구조와 행위의 관계를 새롭게 이론화해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의 한계를 모두 극복한다. 둘째, 이론적 구성과 경험적 조사를 생산적으로 결합해 이론중심주의와 경험중심주의를 모두 넘어선다. 셋째, ‘사회학에 대한 사회학’을 탐구한다. 부르디외는 자신이 속한 계급을 기반으로 한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성찰을 요청함으로써 지식인의 자율성을 제고하려고 한다. 넷째, 후기 저작들에서 볼 수 있듯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적 비판을 모색한다.

    부르디외의 대표 저작은 ‘구별 짓기’다. 원래의 부제는 ‘판단에 대한 사회적 비판(Critique sociale du jugement)’이다. 우리말 부제는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이다. 이 ‘구별 짓기’에서 특히 주목할 두 개념은 ‘문화자본(cultural capital)’과 ‘아비튀스(habitus)’다.

    먼저 부르디외에게 자본이란 사회적 경쟁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말한다. 이 자본은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여기서 소비와 연관해 주목할 개념이 문화자본이다. 문화자본이란 개인이 보유하는 여러 종류의 지식과 그에 상응하는 것을 말한다. 이 문화자본이 존재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가 가정에서 체험적 습득을 통해 무의식 속에서 실현된 상속의 방식이라면, 다른 하나는 학교에서 체계적 학습을 통해 의식적으로 진행된 획득의 방식이다. 이러한 문화자본의 상속과 획득을 설명하기 위한 부르디외의 이채로운 개념이 아비튀스다.

    아비튀스를 이해하기는 다소 어렵다. 아비튀스는 사회구조가 체화되고 내면화된 것을 의미한다. 소비와 연관해 말하면 사회화되고 구조화된 취향을 지칭한다. 소비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고르는 취향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아비튀스를 기반으로 한 취향에 따라 소비의 차별화가 일어나고, 이 차별화는 계급적 차이를 구별하기 위한 전략, 즉 구별 짓기로 나타난다.

    부르디외의 경험적 조사를 예로 들면, 상류계급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을, 중간계급은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민중계급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즐겨 듣는다. 부르디외는 각각 ‘정통적 취향’ ‘중간층 취향’ ‘대중적 취향’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함의하는 바는 문화자본과 아비튀스가 문화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이 인과관계는 계급적 차이를 증거한다는 것이다.

    “한 계급은 존재 상태에 의해서 정의되는 동시에 그것의 지각 상태에 의해 정의되고, 또한 생산관계에서의 그 위치에 의해 정의되는 동시에 그 소비행동(이것은 과시적이 아니면서도 상징적일 수 있다)에 의해서도 정의된다.”

    ‘구별 짓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부르디외에게 계급은 생산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소비 양태에서도 발견된다. 소비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취향은 개인의 내부에 체화된 개별적 성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개인이 놓인 계급적 위치를 반영한다는 것이 부르디외 소비이론의 핵심이다.

    자본주의와 그 문화에 대한 부르디외의 비판적 시각은 후기 저작인 ‘맞불’(1998)로 이어졌다. 부르디외에게 신자유주의는 이윤 극대화,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부문 민영화, 복지지출 삭감 등을 요구하는 복지국가의 재앙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부르디외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이론적·실천적 ‘맞불’을 지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소비이론으로 돌아오면, ‘구별 짓기’는 현대 자본주의 소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안겨준다. 소비는 교육 수준과 계급 위치를 드러내는 사회현상이다. 아비튀스와 문화자본을 기반으로 한 취향 분석을 통해 부르디외는 베블런보다 한층 세련된 소비의 지도를 제공한다. 부르디외의 소비이론을 통해 왠지 씁쓸한, 그러나 부정하기 어려운 현대 자본주의의 초상화와 마주하게 된다.

    ‘베블런 효과’와 구조화된 취향

    전통적으로 소비가 사회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생산이 사회활동에서 더 중요한 일로 생각됐고, 소비는 생산의 부산물 정도로 간주됐다. 소비는 낭비이자 쾌락으로 평가절하됐고, 그 결과 소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형성됐다.

    소비가 중요한 사회현상으로 부각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였다. 적지 않은 사회과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사회가 ‘생산 중심 사회’에서 ‘소비 중심 사회’로 변화했다고 파악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다수의 시민은 의식주는 물론 여가를 즐기는 데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다양하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렇게 소비 자본주의 시대가 본격하되면서 소비는 인류의 삶과 일상을 이루는 주요 영역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가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고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오늘날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슨 옷을 입고, 어디서 식사를 하며, 어느 곳에서 사느냐다.

    이러한 변화에서 베블런의 소비이론은 유용한 이론 틀로 영향을 미쳐 왔다. 베블런은 소비가 물질적 욕구 충족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선구적 통찰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베블런이 남긴 이론적 유산 가운데 널리 알려진 개념이 ‘베블런 효과’다. 베블런 효과란 가격이 상승하는 데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고급 자동차, 고가 아파트, 명품 의류와 액세서리 등은 경제 상황이 악화돼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과는 상반되는 가정이다. 상류층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허영심을 채우는 것이 바로 베블런 효과다. 최근 극소수 상류층 고객만을 상대로 하는 마케팅 전략인 ‘VVIP 마케팅’도 이런 베블런 효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유한계급론’이 출간된 지 124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소비는 이제 개인에게 이미지와 스타일, 개성과 자유, 쾌락과 환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소비는 후기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문화적 생활양식인 셈이다.

    부르디외의 기여도 베블런의 공헌 못지않다. 대다수 프랑스 사회이론이 복잡하고 섬세하듯, 부르디외의 소비이론은 현대 자본주의의 다양한 소비 현상을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부르디외가 제시한 소비를 통한 구별 짓기는 나의 문화와 너의 문화가 객관적으로 다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나의 문화는 가치 있고 누릴 만한 것이지만, 너의 문화는 쓸모없고 가치 없다는 규범적 차이까지 내포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류계급은 자신의 문화를 고급한 것으로 위치 짓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취향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소비 현상을 개인적 차이로 보이게끔 만든다.

    부르디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이러한 개인적 취향이 사회적 계급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아비튀스는 앞서 말했듯 사회화되고 구조화된 취향이다. 이 취향은 개인의 행위 안에 녹아 있는 동시에 그 개인이 놓인 계급 위치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소비는 한 개인의 계급적 정체성을 증거하는 지표로 기능하는 셈이다.

    소비의 두 얼굴

    그런데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베블런에서 부르디외로 이르는 일련의 분석이 보여주듯,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는 부정적 측면만 갖고 있는 걸까. 소비가 갖는 긍정적 측면을 부각한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 사회학자 콜린 캠벨은 긍정적 시각을 대변한다.

    캠벨은 자신의 저작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1987)에서 소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캠벨에 따르면, 인간에게 내재한 낭만주의 윤리는 직관을 중시하고 욕망과 쾌락을 추구한다. 이 낭만주의 윤리는 소비활동에서 진정성을 추구하는 중간계급의 가치로 뿌리내린다. 그런데 구입한 상품에 대한 만족이 이내 사라지면, 새로운 욕망과 쾌락을 다시 추구하게 된다. 낭만주의 윤리가 소비주의 정신을 고취하고, 소비자의 끝없는 욕망이 자본주의를 전진시킨다는 게 캠벨의 논리였다.

    한국에서 출간된 콜린 캠벨의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The Romantic Ethic and the Spirit of Modern Consumerism, 나남출판, 2010). [나남출판]

    한국에서 출간된 콜린 캠벨의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The Romantic Ethic and the Spirit of Modern Consumerism, 나남출판, 2010). [나남출판]

    여기서 주목할 것은 캠벨이 소비를 부정적으로만 파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비를 향한 인간의 내밀한 욕망 추구가 자아실현을 위한 필요조건을 이룬다고 캠벨은 강조한다. 이러한 견해는, 생존에서 풍요로 서구 사회생활의 흐름이 변화한 이후 특히 젊은 세대에게 개성적 취향과 이에 따른 소비문화가 중요해진 까닭을 설명해 준다.

    그렇다면 21세기 정보자본주의 아래서 소비의 미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 가지를 특히 주목하고 싶다. 첫째, 소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대할 것이다. 이 만개하는 개인주의 시대의 개인적 정체성 형성에서 의식주, 문화, 여가의 소비에 대한 선택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소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소비를 통해 결국 얻으려고 하는 것은 행복의 감정이다. 그런데 이 행복감을 정의하기란 어렵다. 어떤 이에겐 더 많은 소비가, 어떤 이에겐 더 적은 소비가, 다른 이에겐 이른바 ‘착한 소비’가 행복감을 안겨줄 수 있다. 소비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되, 소비에 담긴 인간적·사회적 의미를 성찰해야 할 시대 앞에 인류는 서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명품 소비와 소확행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 주목할 대표적인 두 가지 소비 현상은 명품 소비와 소확행이다. 먼저, 의류, 핸드백, 신발, 액세서리 등을 포함한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어느 나라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명품 소비 경향은 매우 두드러진다. 이러한 명품 소비 경향을 둘러싸고 뜨거운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명품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앞서 말한 베블런이 개념화한 과시적 소비의 전형적 사례다. 상류층의 과시적 소비는 다른 계층의 모방적 소비를 부추긴다. 우리 사회에서도 명품 소비는 물론 모방적 소비가 널리 확산돼 왔다.

    주목할 것은 명품 소비의 확산 과정에서 새로운 차별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품족(族)은 특정 회사와 상품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고, 이들 사이에는 쫓아가기 어려운 격차가 생긴다. 일부 상류층은 상품 로고도 거의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만 아는 제품’을 골라서 소비하기도 한다. 여기서 부르디외 소비이론을 떠올릴 수 있다. 취향은 타고나는 동시에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계급에 따른 소비 양식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튀스로 자리 잡아왔음을 보여준다.

    루이비통이 올해 첫 가격 인상을 단행한 6월 1일 서울의 한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뉴스1]

    루이비통이 올해 첫 가격 인상을 단행한 6월 1일 서울의 한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뉴스1]

    명품 소비 현상에서 특기할 것은 소비 양극화의 이중적 경향이다. 명품 소비와 모방적 소비 간의 양극화가 하나라면, 명품·모방적 소비자들과 그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간의 양극화가 다른 하나다. 과시적 소비는 물론 모방적 소비조차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명품 소비의 확산은 계층적 위화감을 증대시켜 사회통합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적 연대를 훼손할 수 있다. 소비는 자아실현의 자유이자 자기 정체성의 구현일 수 있지만, 자신의 소비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한편, 최근 흥미로운 소비 현상으로 부상한 것이 소확행이다. 소확행이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한다. 이 소확행이란 말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기원한다.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이 바로 행복이라는 메시지다.

    소확행은 소비 트렌드의 일종이다. 소확행에 앞서 ‘웰빙’ ‘힐링’ ‘욜로’ 등이 존재했다. 김난도 등의 ‘트렌드 코리아 2018’이 지적하듯, 소확행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구체화된 모습이다.

    우리 사회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소확행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자기 방식의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일상들이다. 길게 본다면 1950~60년대에 추구됐던 ‘소시민적 행복’이 ‘한국적 소확행’의 역사적 기원일 것이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이 재발견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불안이 일상화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진행되고, 행복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됐다. 학업·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진화가 어려워지면서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채워지기 어려운 미래의 욕망보다 당장 이룰 수 있는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한 소확행이 부상한 맥락이다.

    행복으로서의 소비

    앞서 말했듯, 행복은 정의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다. 행복이란 만족감·즐거움·기쁨이 존재하는 마음의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말하면 ‘최상의 좋음’, 다시 말해 최고선이 행복이다. 행복이 간단하지 않은 것은 사람마다 그 최고선이 다르다는 데 있다.

    이처럼 행복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 만족감·즐거움·기쁨의 대상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또한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쉽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이들은 노력을 기울여도 행복에 다가서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소비에 담긴 행복의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이 일상의 연속이라면, 그 일상에 행복을 안겨주는 소비를 부정적으로만 파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 이제 결론을 내리자. 명품 소비와 소확행은 소비가 경제 현상을 넘어서 사회적·문화적 삶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시적 소비를 도덕적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위화감을 부추기는 소비 양태를 그대로 지켜보는 것 또한 불편하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 아닐까. 소확행은 젊은 세대가 겪는 사회적 좌절의 반작용 이상의 의미, 다시 말해 자신만의 일상과 삶의 의미를 찾고 채워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21세기 현재 소비가 일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일상이 행복하지 않은데 인생이 행복할 리 없다. 어떤 소비가 내게 행복을 안겨주고, 타인의 소비를 어떻게 봐야 할지는 개인적 차원에서 한 번쯤 숙고해야 할 문제다. 소비사회의 진전에 따라 소망스러운 소비 양식 및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 하는 새로운 과제 앞에 우리 사회는 이미 서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1960년 경기 양주 출생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코렛 펠로
    ● 現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저서 :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신기욱과 공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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