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금메달 목에 걸고도 고개 들지 못한, 비장의 아픔

[명작의 비밀]

  •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학부 교수 kpleedonga@hanmail.net

    입력2023-11-0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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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기정 눈빛에서 읽히는 슬픈 영광

    • 우승 기쁨보다 망국 슬픔 담긴 표정

    • 식민지 비극 그대로 드러난 명장면

    1936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손기정 선수. 일장기가 지워졌다. [동아DB]

    1936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손기정 선수. 일장기가 지워졌다. [동아DB]

    강제규 감독의 영화 ‘1947 보스톤’은 마라톤을 소재로 한 영화다. 주인공은 마라토너 서윤복(1923~2017)과 손기정(1912~2002)이다.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서윤복과 당시 마라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손기정의 가슴 벅찬 도전을 그렸다. 1947년 당시 한국은 광복은 맞이했으나 국가로서의 정부를 갖추지 못해 미군정 통치하에 있었다. 서윤복은 가슴에 ‘KOREA’ 글자를 선명하게 새겼지만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달고 뛰어야 했다(시상식에 오를 때는 태극기만 달린 체육복을 입었지만). 가슴에 달린 태극기는 손기정이 그토록 꿈꾸었던 것이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42.195㎞를 달려야 했다.

    영화 ‘1947 보스톤’은 서윤복의 우승을 그린 영화지만 그 시발점은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우승이다. 1936년 8월 9일 오후 3시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을 출발한 식민지 청년 손기정과 남승룡은 약 2시간 30분이 흐른 뒤 10만 관중의 환호 속에 각각 1위와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손기정의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2로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손기정은 이미 1935년 11월 제9회 메이지신궁 마라톤 경기대회 겸 올림픽 예선에서 2시간 26분 42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터였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치러진 뒤 시상식이 거행됐다. 일장기가 올라가고 일본 국가(기미가요)가 울려 퍼지자 손기정은 월계관을 쓴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손에 든 월계수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 그때 손기정은 ‘다시는 일본 대표로 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남승룡도 고개를 숙였다. 2위를 한 영국인 마라토너 어니스트 하퍼만이 고개를 들고 국기 게양대를 바라봤다. 남승룡은 훗날 “손기정이 부러웠다. 손기정이 1등을 해서 부러운 것이 아니라 일장기를 가릴 묘목을 갖고 있다는 게 부러웠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위대한 우승을 쟁취해 놓고도 기뻐할 수 없었던 손기정과 남승룡. 그렇기에 시상대에 오른 두 청년의 표정은 우울하고 슬펐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일장기를 차마 바라볼 수 없었기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런 심경은 손기정이 우승 직후 전남 나주의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륜마크가 선명한 이 엽서에 손기정은 “슬프다”라고 적었다.

    금메달 목에 걸고도 떨군 시선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흔적은 여럿 남아 있다. 우승 금메달과 우승 상장과 월계관(국가 등록문화재), 손기정이 시상식에서 받은 월계수(서울시 기념물), 시상식 장면을 담은 여러 장의 사진, 손기정의 역주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영상, 조선중앙일보(1936년 8월 13일자)와 동아일보(1936년 8월 25일자)의 일장기 말소 지면, 손기정이 뒤늦게 전달받은 우승 기념 부상인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보물) 등.



    손기정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을 보면, 서울 종로구 삼청동~청와대 뒤쪽 산길을 오르내리고 창경궁 앞길을 달리며 마라톤 연습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삼청동~청와대 뒤편 북악산 길과 창경궁 앞길도 손기정의 소중한 흔적이 아닐 수 없다.

    손기정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표지 그림은 강형구 화백의 ‘우리의 손(Our Son)’이다. [휴머니스트]

    손기정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표지 그림은 강형구 화백의 ‘우리의 손(Our Son)’이다. [휴머니스트]

    이들 가운데 여운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면박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손기정의 사진을 꼽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사진 속 손기정의 슬픈 눈빛이다. 어마어마한 영광을 쟁취했으나 그러기에 더 슬플 수밖에 없었던 스물다섯 식민지 청년. 손기정의 올림픽 우승 사진 가운데 42.195km를 질주하는 모습은 격정적이고 통쾌하다. 그러나 시상식 사진에 담긴 그의 모습은 서글프다. 그 사진 속에서 손기정은 시종 고개를 숙인 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손기정의 사진과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일장기 말소 사건이다. 조선중앙일보 1936년 8월 13일자 조간 제4면과 동아일보 1936년 8월 25일자 석간 제2면.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 1936년 8월 13일자 석간 제2면에 실린 사진에서도 일장기를 삭제했다는 의견이 있다(최인진, ‘손기정, 남승룡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다’, 신구문화사, 2006).

    동아일보 8월 13일자 제2면을 보면, 일장기의 일장 부분이 흐릿하다는 점에서 말소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장기의 흔적이 다소 남아 있기에 본격적인 일장기 삭제인지에 대해선 좀 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조선중앙일보 8월 13일자에 실린 사진 원본은 일본의 동맹 통신이 전송한 사진이었고, 동아일보 8월 25일자에 실린 사진 원본은 일본 오사카 아사히신문 지방판에 게재된 것이었다. 두 신문은 이 사진들을 게재하면서 일장기를 삭제한 것이다.

    사진 속 손기정은 월계관을 머리에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에선 고개를 약간 숙였고,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사진에선 고개를 좀 더 숙였다. 두 사진 모두 손기정의 표정은 어둡다. 그런데 손기정의 슬픈 눈빛은 동아일보 사진에서 훨씬 더 잘 드러난다.

    식민지 현실 보여주는 손기정의 눈빛

    손기정의 슬픈 눈빛에 매료된 화가가 있다. 강렬한 초상화로 유명한 강형구 화백이다. 그는 극사실적 인물화로 명성이 높다. 특히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눈빛이 강렬하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서 손기정의 눈빛은 강렬함이 아니라 슬픔으로 가득하다.

    강형구 화백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손기정 전문가다. 10대 때부터 손기정에게 빠져든 강 화백은 손기정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손기정 초상화도 그려 200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손기정 기념전 ‘올림픽 108년, 그리고 손기정’을 개최했다. 그는 2005년 손기정기념재단 설립에 기여해 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서울역 인근인 서울 중구 만리동 고갯길에 손기정기념관이 있다. 손기정의 모교인 양정고등보통학교(양정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손기정기념관의 제2전시실 초입엔 강형구 화백의 유화 ‘우리의 손’(1997)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 이름은 ‘우리의 손기정’이라는 뜻이다. 가로 193.9㎝, 세로 259.1㎝의 대작으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의 맨 높은 자리에 올라선 손기정의 사진을 회화 작품으로 구현했다.

    승리의 월계관을 썼지만 처연함이 배어 있는 얼굴. 눈을 보면 한 점 눈물이 맺혀 있다. 기념관 안내문과 기념관 전시 도록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기쁨과 영광이 아닌 슬픔, 비장함, 억눌린 마음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금빛 영광 같은 황금색 빛이 얼굴에 쏟아지지만 한편으로 조국을 잃은 슬픈 마음이 느껴지는 어두운 명암이 얼굴 대부분에 드리워져 있으며 눈물이 맺힌 눈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실린,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 얼굴도 우울하고 슬픈 표정이지만 강 화백은 그 슬픔을 예술적으로 극대화했다. 작가는 손기정 얼굴의 땀구멍까지 세밀하게 묘사해 놓았다. 사진보다 더 세밀하고 실제 얼굴보다 더 사실적이다. 1936년 8월 9일 영광의 순간, 식민지 조선의 혹독한 현실이 땀구멍 하나하나를 통해 생생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 숨 막히는 치밀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강형구 화백의 또 다른 작품으로 ‘손기정(질주)’이 있다. 질주하는 손기정의 얼굴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얼굴에서는 최후의 일각까지 전력으로 질주하며 조선 청년의 기개를 세계에 떨치고자 했던 손기정을 치열함을 만날 수 있다.

    강 화백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손기정 선수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시대상이 그의 어두운 얼굴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지옥 같을지라도 우리에겐 조국이 존재한다.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조국이 손기정에겐 절실했다. 42.195km를 질주하는 터질 듯한 심장의 고통보다 원치 않는 국기와 국가 아래 서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던 그 때의 한(恨), 그 시절의 절실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역사 연구와 미술 탐구에 열정적이었던 이석우 전 겸재미술관장도 ‘우리의 손’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남겼다. “그림 속의 손기정은 그 기쁨의 순간인데도 기쁨의 눈물이 아닌 슬픔의 눈물을 머금고 있다. 표정 또한 비감에 차 있다. 청년의 건강하고 풋풋한 얼굴, 따스한 온기가 얼굴에 가득하다. 잘생긴 한국인의 얼굴이다. 비장의 아픔이라고 할까.” (‘서울아트가이드’ 2008년 12월호)

    슬픔에 대한 예우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부상으로 받은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부상으로 받은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2016년 손기정체육공원에 손기정 동상이 건립되었다. 손기정기념관 바로 뒤편이다. 일장기가 아니라 태극기를 가슴에 단 손기정이 그리스 청동 투구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다. 배형경 조각가의 작품으로 높이는 2m. 작가는 “만약 국권을 잃지 않고 태극기를 달고 달려 우승을 했다면 손기정의 모습이 어땠을까”하는 생각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슴에 태극기가 달렸고, 그리스 청동 투구를 들고 미소 짓고 있다고 했다.

    동상의 얼굴을 보면 시상식 사진 속 손기정의 표정보다는 다소 밝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딘가 슬픔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에서 손기정이 태극기를 달고 우승했다고 가정하더라고 손기정의 실제 역사는 우리 머릿속에 늘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태극기를 달고 미소 지으려고 해도 여전히 슬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2016년 손기정체육공원에 건립된 손기정 동상. [손기정체육공원]

    2016년 손기정체육공원에 건립된 손기정 동상. [손기정체육공원]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부터 기증실을 개편하고 있다. 관람 동선에 따라 입구에 해당하는 공간을 새로 조성하고 바로 옆에 영상실을 만들었다. 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독립된 전시 공간인 기증실이 나온다. 기증실 입구에 배치된 물품은 손기정이 기증한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다. 이러한 배치는 예상 밖의 파격이다. 당초 고려청자나 조선 회화, 불상 등을 기증한 사람들을 기리거나 그 기증품들을 전시할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뤘다. 이를 뒤엎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손기정의 청동 투구를 맨 첫 공간에 배치했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손기정 마라톤 우승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엔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부상을 제공하는 관행이 있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선 그 부상이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였다. 그러나 당시엔 이 청동 투구를 전달받지 못했고 50년이 지난 1986년이 돼서야 손기정의 품에 돌아왔다. 이듬해 문화재청은 이 청동 투구를 보물로 지정했고, 1994년 손기정은 “이 투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것”이라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투구를 볼 때마다 그리스 아테네의 젊은 전사의 모습과 손기정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얼굴을 그리는 것은 역사를 그리는 것

    1936년은 조선이 국권을 상실한 지 27년째. 자칫 절망에 빠져버릴 수도 있는 시점이었다. 그렇기에 손기정의 우승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 1위로 골인한 것은 1936년 8월 9일 오후 5시 30분경. 조선의 시각은 8월 10일 새벽 1시 30분이었다. 라디오 중계를 통해 우승 소식을 접한 한반도는 온통 환희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와 힘차게 거리를 달렸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등 서울 도심의 언론사 속보판 앞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신문사들은 호외를 찍었고 심훈은 ‘오오 조선의 남아여!’란 시를 지었다.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이천삼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오늘 밤 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들을 만나보리라/…/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어잡고/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이렇게 조선은 온통 감격과 흥분으로 떠나갈 듯한데, 정작 그 주인공 손기정은 시상식에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자신의 우승을 슬퍼해야만 했다. 이러한 역설이 또 어디 있을까. 손기정의 슬픈 눈빛은 안타깝고 처절한 시대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 ‘1947 보스톤’도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을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 기억의 방식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감히 손기정의 시선과 눈빛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상대에 올라선 손기정의 표정 특히 시선과 눈빛은 매우 상징적이다. 우승했으나 기뻐할 수 없는 식민지 청년의 슬픈 실존과 내면. 그건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엄혹한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얼굴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다.

    강형구 화백은 “얼굴을 그리는 것은 한 시대의 역사를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승리의 월계관을 머리에 썼으나 손기정은 그 영광을 기뻐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 눈엔 눈물이 가득 고일 것 같다. 식민지 청년 손기정의 슬픈 눈빛과 안타까운 시선. 애잔하고 처연하기에 오히려 더 감동적이다. 20세기 우리의 표정 가운데 이보다 더 시대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는 얼굴이 또 어디 있을까. 이보다 더 감동적인 눈빛이 어디 있을까. 사진 속 손기정의 눈빛은 금메달보다 월계관보다 청동 투구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역사적 성찰과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손기정의 슬픈 눈빛은 그 자체로 진정한 명작이 아닐 수 없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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