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전례 없는 무거운 범죄”
日은 지난해 7월에도 사형 집행
“사형 집행 시설 점검하라”의 의미
‘죽음으로 대가 지불’ 응보적 정의
“형벌 만능주의자들이 하는 얘기”
생명권은 반드시 절대적 가치인가
독일이 절대적 종신형 폐지한 이유
“한동훈 대권 플랜으로 해석될 것”
[Gettyimage]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선 안 된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술이다. 한데 국가는 사람의 생명을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 있다. 사형제가 형벌로서 현존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110조 제4항은 헌법에서 유일하게 사형을 명시한 조항이다. 구체적으로는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중략)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돼 있다. 일종의 간접 표현이긴 하나, 사형제의 존재는 인정하는 문구다.
1997년 12월 30일 새벽, 대한민국은 법의 이름으로 23명을 처형했다. 유신 치하이던 1976년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그로부터 26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일컫는다. 보수 정권은 명시적으로 사형 집행 의지를 드러낸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3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사형을 전제로 (시설 설치 검토를) 하는 거다. (사형) 집행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 뒤따를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결행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웃한 일본은 지난해 7월에도 사형을 집행했다. 2008년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행인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7명을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가토 도모히로가 대상자였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2021년 12월에도 사형을 집행한 바 있다. 2018년 7월에는 불과 20일 터울로 ‘옴진리교 사건’ 관련자 1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서 극히 보기 드문 대규모 사형 집행이다.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한 아베 신조 총리 시절의 일이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20개국에서 총 833건의 사형이 집행됐다. 전년 대비 53% 증가한 수치다.
응보(應報)와 위하(威嚇)
현재 국내에 남은 사형수는 59명이다. 최근 사형이 확정된 이는 2014년 전방부대인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임모 병장이다. 199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사형 집행이 아닌 병사, 자살 등 기타 사유로 사망한 사형 확정자는 12명이다. 임모 병장을 포함한 4명은 군사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돼 군에서 관리한다. 군인은 국방부 장관의 명령으로 사형이 집행된다. 나머지 55명에 대한 사형 명령 권한은 형사소송법상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 현직 각료 중 최고의 뉴스메이커인 한동훈 장관이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월 27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종합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검사 출신인 만큼 사형제의 논거를 드는 데도 능하다. 같은 달 28일 공개된 ‘중앙일보’ 서면 인터뷰에서는 “사형제도 반대 입장에서는 예방 효과가 없다는 논거를 들지만, 예방 효과가 분명히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예방 효과 못지않게, 가해자에게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응보도 형벌의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밝혔다. 방점은 ‘합당한 죗값’에 찍혀 있다. 사실상 국가가 대신 행하는 복수다.
응보(應報)는 사형제 존치론의 가장 강력한 논거다. 대개 법원은 사형 선고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범죄의 잔혹성을 묘사하는 데 비중을 할애하는 경향이 있다. 응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예컨대 2015년 8월 27일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한 사례의 선고문을 보면 “피고인은 배관공으로 가장하여 먼저 피해자들의 집에 들어가 내부 사정을 살피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피해자에게 화장실 배관 수리를 도와달라며 유인한 후 그 머리와 얼굴 등을 칼과 망치로 여러 차례 찌르고 내리쳐 위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식의 표현이 나온다.
확신에 가득 찬 사형제 존치론자들도 응보의 레토릭을 애용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렇다. 그는 20개월 된 아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을 거론하며 “이런 놈은 사형해야 하지 않겠나.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놈은 반드시 사형할 것”(2021년 8월 31일)이라고 했고, “흉악범에 한해서는 우리도 반드시 법대로 사형 집행을 하자”(2023년 8월 5일)고 했다. 노골적일 만큼 직접적이다.
응보에 정의를 덧입히자. 응보적 정의다. 여기에는 살인자가 죽음으로 자기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응보의 수단이라는 건 유가족이 사형을 통해 정의가 실현됐다고 느끼는 감정”이라면서 “피해 유가족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예를 들어 정신질환이 있어 정신병원에 보낸다거나, 그냥 감옥에 계속 있다고 하면 ‘내 딸 혹은 내 어머니는 그렇게 황당하게 죽었는데 그걸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할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수 논객이자 사형제 존치론자인 전원책 변호사는 응보와 더불어 위하(威嚇)의 기능을 강조한다.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단호한 투로 답했다.
“형벌의 목적은 여럿인데, 그중 하나가 위하(威嚇)다. 범죄를 저질러 얻는 쾌감보다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돼 형벌을 통해 받는 공포심과 불쾌감이 더 커야만 범죄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피해자 감정을 생각해야 한다. 피해자는 고통스럽게 토막이 나서 죽었는데, 피해자와 유가족이 느꼈을 고통과 분노를 어느 정도 회복해 줘야 한다. 이것이 형법의 응보(應報)적 기능이다. 사형이 규정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토막 살해범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 그리고 명확한 증거가 확보돼 오심일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의 가해자들이 있다. 50명 넘는 사형수 중 이와 같은 자들에게 사형 집행을 함으로써 하나의 경종을 울릴 수 있다. 미국 대다수 주에서 사형을 집행하지만 미국을 비문명국이라고 공격하지는 않는다. 사형제를 유지함으로써 잔혹한 범죄를 막는 기능이 더 크다.”
2004년 7월 18일 연쇄살인 혐의로 검거된 유영철이 현장검증에 나서기 전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그는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아DB]
실은 공정한 형 집행의 문제
이와 달리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교화(敎化)에 방점을 찍는다. 사형제 연구에 천착해 온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경찰행정과 교수는 “응보는 형벌 만능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얘기다. 응보만으로 사회가 완전한 형태의 평화로운 상태로 갈 수 있나”라고 되물으면서 “그간 국민이 분개했던 이유는 (범죄자에 대한) 응보 욕구가 충족이 안 됐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한 형 집행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응보만이 전부가 아니다. 국가가 사형수 59명에 의해 고통을 받은 피해자 유족들을 위해 어떤 대응을 해왔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실제로 2010년 2월 두 번째 제기된 사형제 헌법소원에서 김종대 헌법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내면서 “국가가 사형을 통해 범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피해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이미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범죄에 대한 비난으로서의 응보의 기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범죄에 대한 보복으로서 국가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억제 효과’ 역시 사형제를 둘러싼 쟁점이다. 헌법재판관 당시 사형제 합헌 판결을 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9월 8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꺼낸 논리도 ‘억제 효과’의 맥락 위에 있다. 그는 이날 “실질적으로 사형이 폐지되면 극악무도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최근 염려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곤 있지만 25년 전과 비교해 극악 범죄가 통계상 확연히 늘어난 건 아니다”라면서 “이를 감안하면 사형제 폐지를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형제가 범죄를 예방 내지 억제하는 효과가 없다면 폐지론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극단적 범죄에 대한 극단적 대처가 실효성이 없다는 얄궂은 결론으로 미끄러진다. 억제 효과가 있다면 존치론자들에게는 강력한 논거가 된다. 다만 아직까지는 확정적 결론이 없다. 억제 효과가 ‘있다’ 내지 ‘없다’는 연구가 모두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입증된 바 없다. 변화하는 경제·사회 상황도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 범죄율 감소가 사형제 때문인지, 혹은 민생 상황 개선이나 치안 서비스 제고 때문인지 혼동할 여지가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송두환 위원장이 꺼낸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지만 극악 범죄가 통계상 확연히 늘진 않았다”는 논거에도 구멍은 있다. 극악 범죄가 늘지 않았다면, 경찰 수사력 증진과 CCTV, 포렌식 등 치안 기술의 발전 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여러 변수가 있는 상황에서 중간 고리는 무시한 채 현상(범죄가 늘지 않았다)과 현상(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을 직접 연결하면 자칫 중요한 걸 놓치고 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5월 26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차히야 엘벡도르지 국제 사형제 반대위원회 위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법무부]
사형과 낙태
복잡다단한 쟁점이다 보니 각자 이념 지향에 맞춰 억제 효과를 판단하기도 한다. 가령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토론하면서 “사형이 흉악범 억제 효과가 없다는 게 실증됐다”고 말했다. 한동훈 장관은 서두에 소개한 대로 “사형제도 반대 입장에서는 예방 효과가 없다는 논거를 들지만, 예방 효과가 분명히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했다.일부 사형제 폐지론자는 억제 효과가 추상적인 추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쪽 결론도 있고 저쪽 결론도 있으니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독특하게도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점, 즉 근거가 ‘아직’ 불분명하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사형제 폐지론자들과 맞선다. 그는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사형제에 관한 공개 변론에서 법무부 쪽 참고인으로 나와 ‘합헌론’의 시각에서 진술한 바 있다. 장 교수가 당시 경험을 토대로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실질적인 효과가 뒤섞여서 나온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헌재에서 열린 공개 변론 당시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해 연구해 온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나와서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그분은 주로 미국 사례를 갖고 얘기하는데, 각 주마다 다르다는 거다. 송두환 위원장은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얘기했는데, 그건 결국 잘 모르겠다는 거다. 문화권으로 따지면 (한국과 더 가까운)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이 오히려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이런 점을 놓고 보면 ‘사형제가 효과가 없고, 그래서 유지해선 안 된다’고 단언하기가 어렵다.”
장 교수는 전통적으로 사형제 폐지론의 논거가 된 ‘생명권’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가 보기에 헌법상 생명권은 불가침의 절대적 기본권이 아니다. ‘생명은 절대적’이라는 관용어에 익숙한 우리에겐 매우 논쟁적인 주장이다. 그가 헌재 참고인 진술 내용을 수정·보완해 발표한 논문 ‘사형제도의 합헌성 여부에 대한 검토’(‘공법학연구’, 2022년, 23권 4호)에는 흥미로운 논증이 나온다. 생명권의 절대적 보호를 이유로 사형을 위헌으로 판단하면, 태아의 생명권을 빼앗는 낙태의 허용범위를 확대한 결정과 모순이 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2019년 4월 낙태하는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토록 한 형법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2012년 내린 합헌 결정을 7년 만에 뒤집은 셈이다. 장 교수가 부연 설명했다.
“정당방위 같은 경우 (위해를 가하는 상대의) 생명을 보호해 주기 위해 내가 대신 죽어야 하나.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낙태는 어떤가. 그것도 태아의 생명권 문제다. 그런저런 여러 문제를 고려해 볼 때 생명권에 대해서도 ‘절대적’이라는 말을 함부로 쓸 게 못 된다. 생명권이기 때문에 무조건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생명권도 다른 기본권과의 관계 속에서 조율·조정된다. 특히 생명권과 생명권이 충돌하는 경우에 그렇다.”
전원책 변호사 역시 “사형제를 폐지한다고 생명 존중의 나라가 되는 건 아니다”라면서 “진정으로 생명권을 존중한다면 사형제는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상대적 종신형’
법무부는 8월 14일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법원이 무기형을 선고할 때 가석방 허용 여부를 함께 정하도록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20년 복역 시 가석방이 가능하다. 한 장관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사형제도와 병존하는 것이 정부의 안”(8월 30일)이라고 했다. 절대적 종신형에 대한 찬반도 갈린다. 먼저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물었다.절대적 종신형이 사형제를 대체할 수 있나.
“사형제 합헌론·위헌론과 존치론·폐지론은 결이 다르다. 나는 (합헌론 쪽에 서 있지만)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전제로 사형제를 폐지하는 건 충분히 고려할 수 있지만, 국민의 폭넓은 공감대가 있어야 된다.”
국민 공감대라면 국회 입법을 통한 방법밖에 없지 않나.
“공론화 과정을 전제로 국회에서 사형을 폐지하고 대체 형벌로 절대적 종신형 같은 제도를 두는 건 가능하다고 본다.”
대법원은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사형 못지않게 위헌 논란이 있는 중한 형벌을 추가로 도입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최근 대법원이 무리한 판단을 한 게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교도소에서 무기징역수가 동료 죄수를 죽였는데, 그에게 또다시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무기징역이지만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무기징역이 최고형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나온 사람이 다른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형수의 인권, 무기징역수의 인권을 얘기하는 건 좋다. 그런데 그들에게 희생되는 선량한 시민의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에는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경찰행정과 교수와의 문답을 소개한다. 장 교수에게 던진 질문과 대동소이한 편이지만 답변 내용은 첨예하게 다르다. 두 사람이 가진 법철학과 세계관의 차이이기도 하다.
사형제의 대체 형벌로 절대적 종신형이 검토되는데.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누군가 곧바로 위헌 법률 심판을 제기할 것이다. 현재 형법 41조에서 형의 종류는 9가지다. 징역과 금고형은 무기형과 유기형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 절대적 종신형을 두려면 10번째 형종으로 추가하기 위한 형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법안에는 이에 대한 대목이 빠져 있다. 제도를 설계하면서 (세부 사항을) 디테일하게 규정하지 않은 점은 법률 자체가 껍데기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동훈 장관은 미국 27개 주에서 사형제와 절대적 종신형이 함께 운영된다는 점도 언급한다.
“흔히 비교법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도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미국에서도 절대적 종신형 제도가 갖는 모순성이 드러나는 실정이다. 오히려 절대적 종신형이 더 가혹하니 차라리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다. 형벌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논의하고 공론화를 해서 해답을 찾으려 해도 잘 안 되는 문제인데, 상황 논리에 따라 급작스럽게 진행하는 건 문제다.”
일종의 ‘중재안’도 있다. 독일에서 채택한 ‘상대적 종신형’이다. 독일은 1949년 사형을 폐지하고 대체 형벌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했다. 하지만 1977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해 위헌으로 판단했다. 그렇게 해서 도입된 제도가 상대적 종신형이다.
이희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상대적 종신형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이 교수는 굳이 분류하자면 ‘단계론자’다. 국민 다수가 장기간 사형 폐지 여론에 호응할 경우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사형 존치론 쪽에 여론의 무게가 쏠린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9월 초 연합뉴스·연합뉴스TV가 여론조사업체 메트릭스에 의뢰한 조사에서 ‘사형 집행 재개론’에 대한 찬성 의견이 74.3%나 나온 점을 언급했다. 이 교수가 부연했다.
“사형 찬성 여론이 오랫동안 높게 유지되는 점을 볼 때, 국민 주권주의 차원에서 사형 존치가 바람직하다. 또 국회가 형법 등 관련 법 규정에서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적절한 범위로 제한하는 등 사형 대상 범죄의 종류를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가야 한다. 절대적 종신형의 경우 독일 헌재가 수형자 인격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대신 상대적 종신형에서는, 범죄자에게 최단 30년부터 최장 50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토록 한 후 개전의 정이 명백할 경우 등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요건에 의해 가석방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상대적 종신형을 선고받은 범죄자를 가석방할 경우, 법원 판단에 의해 가령 5년 이하 기간 동안 보호관찰과 전자발찌 등의 장치를 부과하는 형태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0년 2월 25일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과 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사형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 선고를 앞두고 판사석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목영준·민형기·김희옥·이공현·이강국·조대현·김종대·이동흡·송두환 재판관. [동아DB]
결국은 尹의 판단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는 11월에 끝난다. 법조계는 헌재가 유 소장 임기 내에 사형제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망한다. 헌재는 1996년과 2010년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유 소장을 포함해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 등 4명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석태 전 재판관이 있을 때는 9명 중 5명을 차지해 다수였지만, 지금은 소수다.헌재의 결론보다 더 뜨거운 감자는 한동훈 장관이 쥐고 있다. 여기서 남는 질문은 두 가지다. ①그래서 한동훈 법무부는 사형을 집행할까 ②내년 4월 총선에는 어떤 파장을 미칠까. 당연히도 ②는 ①이 충족됐을 때만 의미를 갖는 질문이다.
주목할 요소는 있다. 최근 법무부는 사형수 유영철과 정형구를 대구교도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했다. 서울구치소는 실질적으로 사형 집행 시설을 갖춘 국내 유일의 교정기관이다. 이에 대해 한동훈 장관은 9월 25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사형수 이감 조치와 관련해 “제가 이송 지시한 것”이라면서 “교정 행정상 필요한 지시였다”고 밝혔다. 서울구치소에는 강호순, 정두영 등 다른 사형수들도 수감돼 있다.
실제로 사형 집행이 임박했다는 간접적인 정황도 있다. 9월 초 한 장관은 유영철과 강호순 등의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법무부는 피해자 유가족이 가해자 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았는지 등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종의 명분 쌓기 과정으로 해석할 여지가 풍부하다.
사형제 폐지 활동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관련 공무원들과 접촉해 온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경찰행정과 교수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어디까지나 정황에 해당하지만, 향후 진행될 상황을 이해할 만한 단초는 엿보인다. 그의 말이다.
“여러 통로를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검찰 쪽 고위직 인사도 과거 같으면 (사형 집행에 대해) ‘그럴 일 없습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이번에는 ‘지켜보세요’라고 하더라. 현재 상황은, 제가 볼 때는 1단계는 스탠바이 돼 있을 것이다. 사형을 집행하려면 대검에서 법무부 장관한테 ‘사형집행구신’을 한다. 사형 집행장은 법무부 장관이 발부하기 때문에 그전에 서류들을 다 올린다. 거기에 필요한 게 뭐냐면 사형 확정자들의 건강검진 진단서다. (사형 집행 시설 점검을 지시한) 8월 30일 무렵 전국 교정시설에서 전체 재소자에 대한 건강검진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형 확정자들만 (건강검진을 하면) 눈치 챌 게 아닌가. 아마 국군교도소에 있는 4명을 제외한 55명에 대해서는 일단 (서류가) 올라갔으리라 본다. 결국 장관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판단에 의해 좌우되겠지. 국제사회의 시선은 신경 안 쓸 것이다.”
②, 그러니까 총선에 미칠 파장도 관심거리다. 그렇잖아도 인권단체 등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사형을 정치적 국면 전환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는 형국이다. 존치 혹은 폐지에 대한 태도를 논외로 하더라도, 실제 사형을 집행할 경우 정국에 미칠 파장은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원책 변호사는 “사형 집행 여부를 선거에 도움이 되는지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총선에 영향은 줄 것”이라면서 “토막 살해범을 아직 살려두고 있느냐는 국민적 분노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라도 사형 집행은 (범죄 행위에 대한) 응당한 대가”라고 했다. 이어 “보수 정권이 제대로 된 보수의 길을 걸어야 한다. (사형 집행에 대한) 대중의 반대는 그리 크지 않으리라 본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와 같은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여권 고위 관계자는 “사형 집행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는 없다”면서도 다만 “사형이 집행되면 한동훈 장관의 대권 플랜으로 해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수정당 내에서 (사형 집행에) 동조하는 의견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당이 결집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묻지마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수도권에서는 총선에서 우리 당 후보 지지율이 5%포인트 안팎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동훈의 생각
기자는 10월 10일 한동훈 장관에게 사형제에 관한 견해를 묻는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주로 한 장관의 견해와 반대되는 논거를 거론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대로 옳기면 이렇다.“장관님은 ‘가해자에게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응보를 형벌의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말씀하셨는데, 흉악 범죄 피해자들을 대리해 국가가 범죄자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사실상의 ‘대리 복수’가 아니냐는 겁니다. 그리고 형벌의 기본적 기능이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한다는 점에 있다고 할 때, 피해자가 이미 생명을 잃은 상황에서 사형제가 이와 같은 기능을 충족시키느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장관님께서는 ‘사형제’와 ‘절대적 종신형’이 함께 운영될 것이라고도 하셨는데, 범죄자에 대한 영원한 격리가 목적이면 사형제 없이 ‘절대적 종신형’만 있어도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편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의 경우, 사형을 마지막으로 집행한 때와 비교해 극악 범죄가 통계상 확연히 늘어난 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사형제 폐지를 고려할 시기가 됐다는 뜻입니다.”
끝으로 “짧게라도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기사에 충분히 반영하고자 한다”고 전했지만, 10월 27일까지 한 장관은 답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