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국가에 의존해 사는 사람은 자유시민 아닌 노예

[함운경의 생업전선]

  •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前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입력2023-11-0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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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살아 보려는 의욕·욕심이 국가 발전 원동력

    • 스스로의 노력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좋은 나라

    • 세계가 부러워할 ‘상공인의 나라’ 만들자

    노량진수산시장 새벽 경매장. [동아DB]

    노량진수산시장 새벽 경매장. [동아DB]

    나는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시민이 스스로 먹고살아 가는 나라가 좋다. 국가는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국민 스스로 먹고살아 가는 나라가 되려면 상공인이 존중받아야 한다. 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시당하지는 말아야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사농공상의 서열 의식이 남아 있다. 신분제도가 철폐돼 많이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펜대를 굴리는 권한 있는 자리에 올라야 ‘출세했다’ ‘성공했다’ 인정받는다. 시험 한번 잘 보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강력한 중앙관료제가 오랫동안 유지돼 온 까닭에 그 같은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동안 국가 주도로 경제개발을 해왔다. 국가가 공권력을 앞세워 시민사회를 간섭해 왔고, 지금까지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민주화가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국가기관에서 일하거나 나라의 도움을 받아 생활을 영위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공무원이 되거나 공무원처럼 살고 싶어 하는 나라다.

    지난 정부 때 정규직을 늘린다며 공무원 수를 대폭 늘려서 국가 공공부문이 더 커진 상황이다. 나는 장사를 하면서 국가 공공부분이 커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돈 벌 사람은 줄어드는데 돈 쓰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상공인 우대는 못 할망정 무시 말아야

    민주공화국은 자유시민이 자발적으로 동의해서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모두’의 공동체다. 스스로 먹고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존해 살아가려는 사람은 자유시민이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노예로 사는 것과 같다. 노예란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노예가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인의 요구만 잘 맞추면 주인이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노예다. 종속된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고 편안하게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달콤한 노예의 삶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자유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사실 고달픈 일이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온갖 위험을 자기 책임하에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새벽을 맞이하면 생동감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 상업이란 것이 생산된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기만 하는 걸로 보이고 거기에 이문을 붙이기 때문에 하는 일도 없이 돈을 버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천대를 받아왔다. 뚜렷이 무엇을 생산한 것도 아닌데 이익을 본다는 것이 선비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상업이란 게 얼마나 모험적이고 위험을 수반한 활동인지 내가 직접 수산물 유통을 하면서 절감했다.



    나는 수산물 유통을 하기 전에는 조경식재업을 했다. 조경식재업은 건설업에 속한다. 건설업은 역시 공사 수주가 생명이다. 내가 남들과 다른 특별하고 특수한 기술을 갖고 특화된 공정을 담당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공사 수주는 주로 단가와 연줄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조경식재 공사는 가격이 싸고 연줄이 튼튼하면 수주하는 데 유리하다. 그래서 나는 공사 수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게 됐고, 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내가 공사 수주를 부탁하는 일은 많은 사람이 아닌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 집중된 일이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고 느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산물 유통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특정 몇몇 사람이 아니라 일반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원할지에 집중해야 한다. 요즘은 대구철이다. 2kg, 3kg짜리 대구를 팔 때 다른 가게는 손질하지 않고 대구를 통째로 담아 보낸다. 고객이 대구를 직접 손질하라는 것이다. 이 큰 대구를 손질하는 것은 경험이 많지 않은 주부에게는 쉬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적게 파는 대신 손질해서 파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온라인 판매 때에는 내가 파는 가격과 내가 처리하는 모든 과정이 공개되기 때문에 가격과 품질 면에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에 집중해야 좋은 가격에 먼저 팔 수 있다. 이처럼 장사꾼에게는 매일이 경쟁이고 전쟁이다.

    경쟁과 모험 권장해야 부강한 나라 가능

    조금 있으면 물메기철이다. 물메기는 바다 바닥을 긁어서 잡는데 잘 잡힐 때는 어마어마한 양이 잡힌다. 그런데 주말에 많이 잡히면 난감한 일이 발생한다. 물메기는 내장이 약해 바로 손질하지 않으면 냉동해도 잘 상한다. 그런데 주말에 그 많은 양을 처리할 수 있는 가게는 많지 않다. 양은 많고 처리할 곳은 없고 그래서 가격이 싸다. 그런데 평일날 물메기가 잘 잡히지 않으면 가격이 10배로 뛴다. 물메기로 승부를 보려는 사람은 물때가 사리일 때와 주말이 겹칠 때를 노린다. 바로 손질해서 팔든 말려서 냉동하든 돈이 된다. 그런데 언제 물메기가 많이 나오고 언제 가격이 떨어질지 어찌 알겠는가? 내일 가격을 아무도 모르는 게 수산물 유통이다. 오늘 적당한 가격에 샀는데 내일은 더 낮아질 수 있다. 못 팔면 폐기 처분해야 할 수도 있다. 수요 예측을 잘못하면 망한다. 그러니 수산물 유통은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택배로 수산물을 파는 나에게는 아이스박스 얼음 포장지가 필요하다. 생선이든 아이스박스든 얼음이든 모든 거래는 누군가에게 이익이 된다. 이익이 되지 않으면 거래가 성립하지 않는다. 모두 이익을 추구하지만 한 사람만 이익을 독차지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게 시장이다. 거래량과 가격을 정하는 것도 시장이라고 하는데 장사꾼들의 이익 추구 활동이 서로 이익이 되는 가격을 결정해 준다.

    나는 수산물 유통을 하면서 사람들의 욕망이나 이기심을 칭찬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이기심과 이익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믿게 됐다. 물론 거래의 규칙은 있어야 한다. 규칙을 잘 정해야 쓸데없는 분쟁이나 헛된 수고를 하지 않게 된다.

    나는 매일 시장 바닥에서 경매부터 고객에게 택배로 보낼 때까지 경쟁하고 위험이 따르는 결정을 내린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상인이 매일 하는 일이다. 물고기가 팔딱팔딱 뛰듯이 살아 움직이는 결정을 매일 한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새벽 시장에서 매일 보는 이런 생동감 있는 모습과 분위기가 우리나라에 꽉 차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가발과 옷, 배와 자동차를 열심히 만들어내고 장사꾼들이 세계시장에 나가 열심히 팔았기에 가능했다. 잘살아 보려는 개인의 의욕과 욕심, 이기심이 대한민국 국가 발전에 기여한 것이다. 경쟁과 모험을 권장하고 개인이 성공하도록 보장해 주는 나라가 성공한 나라, 부강한 나라가 됐다. 영국과 미국이 대표적이다. 한동안 국가 주도로 경제를 발전시킨 우리나라는 시장에 점차 많은 영역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더 큰 나라,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아직 부족하다.

    공무원이 되겠다며 노량진 공시촌으로 몰려가고, 판·검사가 되는 게 성공의 척도가 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공무원이 돼 평생 월급과 연금에 의존해 살아가려는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위험을 감수해 가며 사업체를 이끌어 부자가 되기도 하고 실패를 겪기도 하는 상공인의 나라로 바뀌었으면 한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손발과 머리에 의존해 먹고살아 가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아야 국가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로운 시민이 되고, 그러한 자유시민이 모여야 진정한 공화국이 된다. 진정한 공화국이라야 과거 로마처럼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국민 누구나 자유를 맘껏 누리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전 세계 상공인들이 부러워할 만큼 상공인에게 기회가 많은 나라, 상공인의 나라가 되기를 시장 바닥에서 꿈꾸어본다.


    함운경
    ● 1964년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부장
    ● 現 네모선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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