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1년 반, 거칠었고 콘텐츠·비전 빈약
후보 시절엔 중도, 지금은 보수적 인물로 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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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여러 출렁거림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여야 방향성은 명확했다. 정부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장악력이 점점 강화되는 방향으로, 야당 역시 이재명 대표의 장악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여당에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아깝게 석패한 후보가 야당에서 위상이 공고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지난 1년 반 전개는 매우 특이했다.
진영 내 장악력 높이고 진영 밖 통합력 강화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정권 초반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높은 지지율과 인사권, 정치력 등을 바탕으로 확고하게 자기 위상을 다졌다. 대체로 진영 내에서는 장악력을 높이고 진영 밖으로는 통합력을 강화하는 식이었다. 내·외부 활동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갔다. 1노 3김, 4자 경쟁 구도 선거에서 36.6%라는 역대 가장 낮은 득표율로 대권을 쥔 노태우 대통령이 그 같은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겸손한 2인자 포지션으로 대선후보 자리를 꿰찬 그는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화의 열풍과 거대 야당의 압박을 전임자에게 전이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국가원로자문회의까지 만들어놓고 ‘상왕’ 노릇을 준비한 전두환은 백담사로 유폐됐고, 친인척과 직계 측근들도 대거 제거됐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JP)의 신민주공화당을 끌어안은 3당 합당은 화룡점정과 다름없었다.민주투사에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 후보로 변신해 당선한 김영삼 대통령도 이 같은 국정 운영 패턴에서는 노태우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하나회 해체, 역사 바로 세우기에 이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임자의 구속으로 자신을 배태한 3당 합당의 구조를 스스로 깨버리고 부채를 지워버렸다. 대신 이회창, 이명박, 이재오, 홍준표, 정의화 등 각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신진 인재를 대거 발탁해 군부와 단절한 신보수 개념의 신한국당 체제를 구축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채라고 할 수 있는 JP와의 내각제 약속을 깨고 집권 기반이던 DJP연합 구조를 해체했다. 대신 자기 세력에다가 이만섭·김중권 등 보수계 인사와 충청권 이인제 등을 규합하고, 임종석·송영길 등 386 젊은피를 수혈해 새천년민주당이라는 새 틀을 짰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신의 직계인 개혁당, 한나라당 탈당파까지 합쳐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기업인 출신 이명박 대통령은 상당히 독특했다. 그에게는 부채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새로운 구조 창출에 대한 관심도 커 보이지 않았다. 친이계 중심의 재편, 정운찬·김태호 등을 통한 정권 재창출 시도가 한계에 부딪히자 곧바로 비주류이자 진영 내 2대 주주인 박근혜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확고한 진영 내 위상을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한 케이스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교과서 추진 외에는 새로운 구조 창출을 위한 비전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등 자신과 다른 콘셉트의 차기 주자군도 용납하지 않았다. 확장적이라기보다 수축적 행보의 말로는 비극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의석과 진보 진영의 사회적 파이 등을 물리적으로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후계 구도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집권 1년 반이 지난 현재 윤석열 대통령은 어떠할까. 정치 신인의 신분으로 아무 기반 없는 거대 정당에 입당해 대선후보 자리를 꿰찬 사람은 윤 대통령이 유일하다.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유사점이 있지만 이 후보는 대법관 이후 감사원장·총리·집권당 대표를 지냈고, 현직 대통령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당을 장악한 상황에서 여당 후보가 됐다. 대선에서는 낙선했다. 진영 내에서 특별한 부채가 없다는 점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유사한 점도 있다.
역대 대통령이 걸어온 행적을 살펴봤듯이 대통령으로 당선한 이후 여권, 나아가 자기 진영 재편에 나선 사람은 윤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 지형을 바꾸려 시도하지 않은 대통령이 없을 정도다.
신년 기자회견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생략
윤 대통령 처지에선 본인이 입당하기 한 달 반 먼저 대표로 선출됐다는 이유로 오너십이랄 것도 없고 국회 경험도 없는 젊은 당대표가 경선과 본선 과정 내내 자신을 견제하던 모습을 잊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 대통령 취임 후,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과 친정 체제 구축은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다. 지난 1년 반이 그런 시간이었다.역대 다른 대통령과 비교해 볼 때 윤 대통령의 1년 반은 스타일 면에선 너무 거칠었고, 콘텐츠와 비전에선 너무 빈약했다. 대중과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특히 심각했다. 대통령의 친정 체제 구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과 수준이 문제였다.
윤 대통령은 정치권에 뛰어들기 이전부터 보수 진영 내에서 일종의 대세론이 형성돼 있었다.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전 정부의 대척점에 선 인물 중 확고한 ‘원톱’이었기 때문이다. 경선 과정에서도 홍준표, 유승민 등 당내 경선 주자들과 비교할 때 민심보다 오히려 당심에서 우위를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분열, 홍준표 체제와 황교안 체제의 연이은 실패, 두 전직 대통령의 수감, 태극기부대와 강경 유튜버들의 발호 등으로 인해 철저히 무너진 보수 진영은 윤 대통령을 자연스럽게 리더로 받아들였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 즉시 자기 컬러로 여권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에게는 시어머니 노릇을 할 전임자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갚아야 할 정치적 빚도 없었다. 게다가 전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본인의 이미지도 상대적으로 중도적이었고 풍모와 사람을 대하는 스타일도 소탈했기에 ‘윤석열의 여당, 윤석열 정부’는 인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역대 보수 정부에 비해 중도적이고 역동적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예상과 완전히 다르다. 일단 내용과 비전 면에서 보자. 맨 처음 내세운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거칠긴 했지만 올려볼 만 한 깃발이었다. 하지만 지금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기능과 이미지 면에서 대한민국의 심장부이자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집무실 추가 리모델링을 통한 상징성 강화나 용산 권력의 재구조화 이야기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라면 대통령 집무실 재(再)이전 문제는 다음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탈원전 폐기, 소득주도성장 폐기, 한미동맹 강화, 북한에 대한 원칙 재정립, 가치와 안보 중심 외교 노선 재정비 등 전 정부의 레거시를 뒤집은 사안들은 논쟁적일 수밖에 없지만 소신과 실천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다른 사안들에 비해 지지도도 높은 편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노동, 교육, 국민연금 등 주요 사안에 대해 아직까지 현 정부의 ‘안’ 자체가 없다. 야당이 발목을 잡았다고 하지만 야당 때문에 추진하지 못한 정책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다. 대신 이념과 가치에 대한 언급은 그 빈도와 강도가 모두 높아졌다. 자유에 대한 강조는 어느 날부터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에 대한 질타로 넘어갔다. 윤 대통령은 여당 연찬회에 참석해서는 “제일 중요한 게 이념입니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입니다”라고 말했다. 후보 시절에는 보수정당에 뛰어든 중도적 인사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보수정당에서 제일 보수적인 인물이 돼버렸다.
인력 풀도 그렇다. 검사 출신이라고 하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실무 역량이나 연령, 이미지 면에서 신선한 감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기획재정부 공무원 출신들 말고 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것으로 보이는 인사들의 면면은 신선감이 심각해지고 있다. 과거 보수 정부 출신 인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선 때 기여한 것도 아니고, 보수 진영 내에 상징성이나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적 인기나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 도대체 인선 배경을 알 수 없다는 인물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의 허락도 받지 않고 청문회장을 뛰쳐나간 뒤 낙마한 장관 후보자까지 등장했다. 친윤 핵심이라는 사람들도 야당 때릴 때 말고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전당대회 때 나경원, 안철수 대신 대통령과 통한다는 강점 하나만 가지고 들어선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의 회동 소식도 들어본 지 오래다. 야당은 큰 부담 없이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언론이나 일반 국민과 스킨십, 소통 부분은 가장 심각하다. 사실 취임 전만 해도 스스럼없는 스킨십은 윤 대통령의 큰 강점으로 꼽혔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야당 중진의원은 필자에게 “이제 윤 대통령이 용산에서 우리 의원들에게 무차별로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하고 관저에서 폭탄주 만들어서 돌리며 각개격파로 나서면 당해낼 방도가 없다”고 토로했다. 집무실 출근길 도어스테핑은 내로라하는 대중정치인 출신 역대 어느 대통령도 엄두를 내지 못한 과감한 시도였다. 취임 다음 날부터 6개월여 동안 61차례의 출근길 문답을 진행했다. 취임 100일에도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신년 기자회견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생략됐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와 만났다는 이야기도 뜸하다. 3월 전당대회 직후에는 윤 대통령과 김기현 대표가 매월 두 차례씩 회동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실천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선보인 도어스테핑이 지난해 11월 중단 이후 현재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동아DB]
총선 판세 가를 세 가지 전선
요컨대 윤 대통령은 1년 반 동안 역대 다른 대통령들처럼 여권을 완전히 자기 컬러와 인물로 재편했다. 그런데 다른 대통령들은 구체제의 흔적을 지우고 자기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깃발을 들고 새로운 인물을 포진시키고 본인이 직접 대중과 소통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달랐다. 물론 윤 대통령 임기는 아직 30%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단임제 대통령들의 기세는 ‘상고하저’다.내년 4월 총선은 윤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정부 여당은 세 가지 전선에서 싸웠다. ‘이재명이 옳으냐 그르냐’의 전선은 대체로 유리했다.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의 전선도 해볼 만했다. ‘윤석열이 잘하냐 못하냐’의 전선은 대체로 불리했다.
6개월 후의 주 전선은 어디가 될까. 현재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분명한 것은 세 번째 전선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총선 이후에는 계속 맞닥뜨릴 전선이다. 억지로 외면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면 매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