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처럼 브라카 유전자 같은 가족 위험인자를 갖고 있으면 난소암에 걸리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뉴시스]
난소암은 말 그대로 난소에 생기는 암이다. 난소는 난자를 보관하는 곳간이자 여성 생식과 호르몬 분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생식기관이다. 난소에 종양이 생기면 난자를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난소암이 생기는 큰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난소에서 매달 진행되는 배란,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갖고 있는 ‘브라카 유전자’ 같은 가족 위험인자, 그리고 난소에 생긴 자궁내막증이다. 일설에 따르면 ‘배란’이 난소암의 원인이라며 배란 횟수가 적을수록 발병 위험이 낮아진다고 하지만 사실인지는 의문이다. 마치 1970년대 남자의 정액이 자궁경부암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자궁경부암의 99%에서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발견돼서 HPV가 원인으로 꼽히듯이, 난소암도 앞으로 좀 더 디테일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본다.
유방암과 난소암은 유전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모계유전 즉 외할머니, 엄마, 이모 중에서 난소암이나 유방암 환자가 있다면 신경을 써야 한다. 보고에 따르면 유전자(BRCA 1, 2) 검사에서 양성이면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10배 이상 높아진다. 가족 중에 대장암, 자궁내막암, 직장암 병력이 있어도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암 치료와 임신
최근 필자를 찾아온 42세 여성이 있다. 그는 “15년 전 왼쪽 난소에서 8㎝짜리 자궁내막증을 복강경수술로 제거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난소에 7㎝짜리 혹이 생겼다”며 난소를 잃고 싶지 않아서 수술 없이 해결할 방법을 상담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다.골반 초음파검사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왼쪽 난소는 오래전 수술로 인해 난포가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 난소에는 매우 큰 혹이 있었다. 난소암 피검사 결과는 다행히 저위험군으로 나왔지만, 대학병원에서 CT 촬영한 영상 결과를 살펴보니 경계성 암(혹 내에 암세포 부위가 있을 수 있음)이었다. 이런 상태였지만 그는 임신을 간절하게 원했다. 난포를 더는 잃고 싶지 않기에 복강경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온 거였다.
의사로서 그와의 만남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필자는 이미 15년 전부터 자궁내막증의 혹을 가진 여성에 대해 비수술적 요법인 알코올경화술을 시술하던 터였다. 알코올경화술은 난소의 자궁내막증 부위에 긴 바늘을 넣어 안의 내용물을 흡입해 내고 생리식염수로 세척한 후 알코올을 주입해 종양 내벽의 상피세포를 경화하는 시술이다. 정말이지 그에게 딱 맞는 시술이 아닐 수 없었다. 알코올경화술을 하면 자궁내막증 혹이 반 이상 줄어들고, 이 질환이 일으키는 여러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혹 밖에 붙어 있는 작은 원시 난포들을 보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알코올경화술을 두 차례 받은 그의 난소는 상태가 매우 좋아졌고 오른쪽 난소의 혹도 절반 이상 줄었다. 기적적으로 난소에서 보이지 않던 난포까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소도 살리고 난포도 만날 수 있게 돼서 IVF(시험관아기시술)를 준비할 수 있었다.
자궁에 생기는 암은 크게 자궁경부암(자궁하부)과 자궁체부암(자궁내막)이 있다. 자궁체부암은 발병 연령이 40~50대로 비교적 높지만, 자궁경부암은 발병 연령이 점점 낮아져 30대 환자가 늘고 있다.
다음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이야기다. 1980년대에는 ‘부인암’이라면 자궁경부암을 의미했다. 그때는 서울에서 빅5로 꼽히는 대형 병원 가운데 단 두 곳만 있었다. 강남성모병원은 없고 명동성모병원이 있던 시절이다. 자궁경부암 암세포가 자궁을 벗어나 골반 주위 임파선이나 옆 장기로 전이된 경우가 많았다. 전이 상태를 제대로 알려면 몇 주가 걸리기도 했다. 그 시절의 자궁경부암 제거 수술은 자궁 주위에까지 미치는 광범위한 대수술이었다. 수술 후에는 방사선 치료뿐만 아니라 수개월간 매달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항암치료까지 받아야만 했다. 그러니 그 시절 여성에게 부인암은 여성성을 박탈당했다는 허탈감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이고도 가혹한 병이었다.
그 시절(1970년대)에는 자궁경부암을 HPV라는 바이러스가 일으킨다는 사실이 정립되지 않았었다. 자궁경부암 발생 빈도를 역학 조사한 결과, 성교 대상이 많은 여성에게 주로 발병하고 수녀나 비구니는 전혀 걸리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 부부에게서 발생 빈도가 가장 낮았다. 이를 두고 유대인 남자가 받은 할례라는 포경수술이 여성의 자궁경부암 빈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정액 내 어떤 물질이 경부암을 일으킨다’는 가짜 뉴스(?)를 생산하기도 했다.
지금은 부인암뿐 아니라 대부분의 암이 완치가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난임 전문의로서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난소암이나 자궁암에 걸렸을 때 비혼여성이라고 해도 치료와 수술 전 가임력 보존 여부를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궁암 환자라도 출산 포기는 이른 선택이다. 자궁암의 경우 암 전 단계인 상피 내 종양인 경우 자궁경부의 일부만 잘라내는 자궁경부 원추 절제술을 할 수 있다. 자궁 내부로 침습이 됐다고 해도 암세포 침투 깊이가 3㎜ 미만인 1기 정도거나 암세포 크기가 2㎝를 넘지 않으면 자궁경부 원추 절제술만으로 완치될 수 있어 임신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자궁암은 완치가 가능하니 임신 가능성을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 [Gettyimage]
문제는 젊은 유방암 환자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임신을 원하는 경우 의사는 일반적으로 IVF를 권하는데, 환자는 과배란으로 인한 여성호르몬 수치 상승을 걱정하며 IVF를 두려워한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자칫 수술 후에도 남아 있는 유방암 세포를 더 키울 수 있어서다.
암 투병이 일깨운 가족의 위대함
젊은 유방암 환자는 과배란 주사를 맞지 않는 자연 배란주기 시험관시술이나 레트로졸(유방암 치료제)을 사용하는 저자극 배란 유도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된다. 레트로졸은 원래 유방암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먹는 예방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난임병원에서는 배란유도제로도 처방한다. 항(抗)에스트로겐제로 여성호르몬 중에서 가장 강력한 호르몬인 에스트라다이올(E2)의 생성 마지막 단계를 억압함으로써 E2 분비량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레트로졸을 복용하면 E2 분비량이 낮아져서 뇌하수체에 E2가 낮다는 정보를 보내게 되고, 결과적으로 뇌하수체에서 난포자극호르몬(FSH) 분비량이 늘어나 난포를 발달시킨다. 유방암 병력이 있는 여성에게는 저자극요법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레트로졸을 배란유도제로 처방하고 있다.최근 들어 암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여성의 IVF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은 암 투병을 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자식을 낳고 싶어졌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난임 전문의를 찾는다. 투병 생활을 하며 가족의 위대함과 사랑의 기적을 느껴서가 아닌가 싶다.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