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캐릭터

• 헌법‧법률 규정된 상식의 대변인

• 난삽하고 조악한 尹의 정치철학

• 압력을 견디며 상식을 지키는 길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사의 오늘 발언, 두고두고 내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2013년 10월 21일, 조국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내용이다. 이 트윗은 흔히 하는 말로 ‘성지’가 됐다. 그로부터 약 8년 반 정도 세월이 흐른 후, 검사 윤석열은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잠시 복기해 보자.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여주지청장이었던 윤석열은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 윗선의 압력이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맥락에서 나왔다. “(윗선의) 지시 자체가 위법한데 그것을 어떻게 따르겠느냐”며 윤석열은 힘주어 강조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윤석열은 대가를 치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주요 보직을 맡지 못하고 소위 한직을 전전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윤석열이 ‘별의 순간’을 움켜쥔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다. 조국 같은 정치 셀럽의 관심과 환호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일개 특수부 검사에 지나지 않던 그에게 ‘매력적인 캐릭터’와 ‘정치적 서사’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2013년 10월 현재, 당시를 돌이켜보면 실로 아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10년이라는 세월이 그리 짧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좌천당했던 문제적 검사 윤석열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는 정치적 격변 때문만은 아니다. 대중에게 각인된 윤석열이라는 캐릭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단호하게 말해보자. 10년 전 대중을 매혹시킨 강골 검사 윤석열의 캐릭터는 지금 세상에 없다. 국민에게 보이는 것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뿐이다. 더욱 나쁜 것은 대통령이 된 윤석열이 본인의 기존 캐릭터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이념 투쟁의 전사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캐릭터의 변화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간극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취임 후 40%선을 가까스로 넘기거나, 심지어 20%대로 내려가기도 했던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통령 지지율이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좌우하는 요소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집권 1년차에 이런 숫자를 기록했으며, 2년차로 접어들어도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은 실로 문제적이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필요한 과반 지지는 고사하고, 지난 대선에서 본인을 찍어준 유권자의 지지마저도 온전히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여기서 질문은 두 가지다. 어떻게 검사 윤석열은 그토록 빨리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반대로 대통령 윤석열은 왜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 많은 경우 그렇듯 여기서도 두 문제는 하나의 원인을 공유하고 있다. 윤석열의 캐릭터가 지닌 양면성 때문이다.

칼날의 바탕이자 원동력

윤석열의 ‘리즈 시절’을 떠올려보자. 그는 분명 잘 드는 칼 같은 존재였다. 문재인의 손에 쥐어진 검사 윤석열은 박근혜 정권의 깊숙한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어 밝혔고, 메스처럼 도려내버렸다.

그런데 사실 검사 윤석열 캐릭터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잘 드는 칼이라는 사실 자체가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박근혜 정권에 저항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공무원으로서의 자의식이 확실한 검사, 불법적인 명령은 따르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상식을 단단하게 지키는 그런 공무원으로서의 모습이 대중에게 더 큰 감명을 줬던 것이다.

선후 관계를 따져보면 이는 매우 분명해진다. 윤석열은 그전에도 특수부 검사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건을 많이 다뤘다. 정작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권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박근혜 정권과 맞선 후다.

즉, 잘 드는 칼이라는 윤석열의 캐릭터는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톱니바퀴 같은 그런 캐릭터가 전제됐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따라서 윤석열 캐릭터가 칼이었을 때보다 톱니바퀴였을 때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그가 두 번째로 권력과 맞서 급부상한 시점을 떠올려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가 벌어졌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국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그런 조국을 윤석열 검찰이 수사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문재인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정권이 교체되기에 이르렀다.

보수의 지지자들, 국민의힘 지지자들, 혹은 더불어민주당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윤석열이 조국의 치부를 드러내고 수사했다는 사실 자체에 환호했다. 윤석열이 ‘칼’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국민, 특히 중도 내지는 부동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면모는 따로 있었다. 윤석열이 박근혜 정권과 맞섰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원칙을 지키며 상식적 태도를 견지했다는 점이다.

5년만의 정권 교체는 왜 가능했을까. 그것도 문재인 정권의 검찰총장에 의한 문재인 정권의 몰락이라는 대이변이 벌어진 근본 이유를 묻는다면 결국 그것이다. 윤석열은 검사 이전에 공무원으로서 정권이 어떻게 바뀌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이미 헌법과 법률로 규정된 상식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대선 국면을 되짚어 보자. 문재인의 칼이 문재인을 찔렀다. 하지만 여당이던 민주당은 ‘배신자 프레임’을 꺼내들지 못했다. 윤석열이 제시하는 상식과 직업윤리의 프레임 앞에 배신자 프레임을 거론하는 순간, 자신들이 비상식적 패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칼날 윤석열’의 바탕이자 원동력이던 ‘톱니바퀴 윤석열’ 캐릭터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계가 정방향으로 작동할 때는 잘 굴러가지만 역방향의 힘이 가해지면 제동을 가하는 ‘래칫(ratchet)’의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진영을 가리지 않고 그러한 상식을 지키는 모습 앞에 대중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힘으로 윤석열은 자신의 첫 번째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재명 영장 기각 후폭풍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자신이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감추거나 그 점을 억지로 포장하려 들지 않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동시에 현명한 전략이기도 했다.

현행 헌법의 문언을 놓고 보면 한번 쉬고 다시 출마하는 징검다리 ‘재선 대통령’이 불가능해보이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은 누군가의 마지막 직업이다. 적어도 공적 영역에서의 역할은 끝난다.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전직 대통령은 초야에 묻혀 대중에게 잊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으며, 그러니 공적 이미지와 캐릭터를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는 윤석열이 그간 공직자로서 쌓아올린 캐릭터 외의 다른 캐릭터를 만들거나 굳이 탐색할 이유가 없다는 말과 같다. 자신의 캐릭터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면서, 그것을 통해 본인에게 주어진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역사적 소명을 달성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본인 캐릭터의 양면성 내지는 ‘칼’의 바탕이 된 ‘톱니바퀴’ 캐릭터를 망각했다. 그가 당선된 후 전개된 흐름을 되짚어 보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선 패배 직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직을 얻고, 야당의 수장이 됐다.

이재명은 본인을 향한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의원직을 활용하고 있다는, 이른바 ‘방탄 국회’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윤석열은 타협하는 정치인이 아니었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도 검사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이재명을 향해 법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재명의 여러 혐의를 타협의 대상으로 삼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윤석열은 정치인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니다. 그 반대의 캐릭터를 대중에게 제시해 대권을 쟁취한 사람이다.

정작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필자가 지난 뷰파인더 칼럼에서 언급했다시피, 기각의 사유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다만 법적 정의나 정치적 올바름 등의 요소를 논외로 하고 정치공학 관점에서만 이 상황을 해석해 보자. 지금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다. 윤석열의 캐릭터 중 아주 중요한 요소, 즉 예리한 칼날의 캐릭터가 망가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운 존재가 돼야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존재는 함부로 대하는 반면 두려운 존재로부터는 오히려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방탄 국회’를 뚫었지만 법원에 가로막혀 이재명을 구속하지 못한 윤석열은, 물론 대통령이므로 여전히 어느 정도 두려운 존재다. 하지만 그가 검사로서 지닌 카리스마에 심각한 손상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검사로서 압도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이유는 그가 실력을 증명해왔기 때문이었다. 윤석열은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수사하고 기소해 유죄 판결을 얻어냈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초대형 수사다. 윤석열은 그런 방식으로 유능함을 입증한 검사로 대중에 각인됐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들, 특히 핵심 보수 지지층이 원하던 바가 바로 그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후벼 파던 시절의 윤석열은 싫고 미운 존재였지만, 그 칼을 ‘우리 편’의 손에 쥘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는 셈법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니, 검찰총장이 되기까지 잘만 해오던 그 일,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고 권력자를 감옥에 보내는 일에 실패한다면?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칼’이라 여겼는데 판사 한 명의 방패조차 뚫지 못한다면?

자유 반공의 이념 투사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3년의 윤석열은 자유 반공의 이념 투사가 돼있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윤석열에게 이렇게 확고한 이념적 신념을 불러일으켰을까. 어쩌다 그것이 사석이 아닌 공식 석상, 그것도 가장 중요한 광복절 축사 등을 통해 드러나게 됐을까. 그 내막을 우리가 적어도 지금 당장 알 길은 없다.

아무튼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은 대통령의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다음 늦은 나이에 새삼스럽게 이전보다 훨씬 더 완강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지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윤석열의 이념 중심적 태도는 시장주의가 국민의 살림에 도움이 된다거나 공산주의는 실패한 역사적 실험임을 명시하는 정도, 즉 단순한 사실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공산 전체주의’와의 새로운 투쟁을 해 나가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차원까지 나아가고 있다.

필자는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윤석열의 정치철학은 난삽하고 조악하다. 어딘가에서 방금 배운 듯한 인상마저 준다. 정치 지도자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리 멋져 보이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서 영국인의 단결과 전쟁 승리를 이끌어낸 처칠도, 연설을 할 때면 추상적인 이념과 가치가 아닌 ‘피와 땀과 눈물’을 이야기했다. 윤석열은 반대로 향하고 있다.

윤석열을 ‘칼날’로 바라보던 기존 보수층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반가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대선의 균형추를 옮겨놓았던 중도층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그들이 기대한 대통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13년의 윤석열, 더 나아가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윤석열이 했던 발언은 어떠했는가.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윤석열의 발언 역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수호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이념적’이라는 말을 할 때 쓰는 그러한 종류의 이념적인 발언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수호자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가 당연한 지배 체제인 나라의 상식적인 공직자의 발언이었다.

검사 윤석열은 우리 사회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을 말했을 뿐 아니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실천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국민은 공감했다. 권력이 아니라 상식을 지키는 검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려 할 때 그 자리를 지키는 톱니바퀴, 그 캐릭터의 힘으로 윤석열은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공산 전체주의’를 힐난하는 초보 정치 사상가를 선호하는 사람도 없지 않겠으나, 만약 대선 이전의 윤석열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과연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상식의 목소리 내는 사람

이것은 단순한 PI(president identity·대통령 이미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대중에 제시하느냐에 따라 국정 운영의 전반적 기조가 달라진다. 대통령이 스스로를 여전히 검사로, 한 자루의 칼로 인식하고 있으면, 공직 사회가 그 분위기에 맞춘다. 가령 육군사관학교에서 불현듯 홍범도 동상 논란이 벌어진 것은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다. 대통령이 자신을 이념 전사로 여기고 있기에 아랫사람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해왔듯 ‘검사 윤석열’ 캐릭터의 힘은 이재명 구속 불발로 수명을 다했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이전과 같은 예리함을 회복할 수는 없다. ‘사상가 윤석열’은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이념 논쟁이 더 필요하다면 그것은 시민사회와 지식인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톱니바퀴 윤석열’ 뿐이다. 맡은 바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 아무리 힘들어도 도망가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돌아간다면 문득 멈춰 서서 ‘이건 아니다’라고,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시간이 없다. 총선은 채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윤석열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제자리에서 압력을 견뎌내며 상식을 지키는 단단한 톱니바퀴의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곳곳의 올바른 톱니바퀴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이란 그런 자리다. 원하건 원치 않건, 국민을 향한 역할 모델이 됨으로써, 한 시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_{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