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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民主化에 멈춰 선 정치에 미래 맡기다니

[홍태화의 98년생 독해법] ‘공화당 혁명’ 뉴트 깅리치의 정치력을 배운다

  • 홍태화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유라시아 펠로

    입력2024-04-1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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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의 파격 ‘미국과의 계약’

    • 중도층 끌어당긴 ‘공화당 혁명’

    • 비록 금세 리더십 상실했지만…

    • 간단하고 대중적인 어젠다의 힘

    • 탁월한 지적 능력+정치적 노련함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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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작가 로이 T. 베넷(Roy T. Bennet)의 저서 ‘마음의 빛(The Light in the Heart)’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과거는 거주하는 장소가 아니라 참고하는 장소이며, 생활의 장소가 아닌 배움의 장소다.”

    2024년 많은 한국 정치인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은 부정할 수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냈고, 한미동맹이라는 기적적 외교 성과를 이뤄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궈낸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미래지향적 어젠다 대신 이들의 과거 업적만을 소환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진보 진영 인사들 또한 과거 민주화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중국의 예시에서 보듯이, 경제발전이 자동적으로 민주화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민주화의 불꽃에 뛰어든 이들의 노력 없이도 한국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로 향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1987년 이후 진보 진영은 이미 세 차례 집권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여전히 정치를 구체제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보는 듯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모든 이들의 명암을 가감 없이 조명해 가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서 과거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이니 우려스럽다.



    개인 후원금 쏟아지다

    1994년 미국 공화당의 중간선거 압승을 이끈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 전 하원의장을 주목한다. 선거를 앞둔 당시 깅리치 하원의원이 내세운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파격적이다. 의회 보좌관과 예산을 줄이고 강력 범죄 예방, 방만한 복지 시스템 개혁, 정부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눈에 띄는 조항은 마지막 열 번째 항목인 ‘의원 임기 제한’이다. 깅리치가 꾸준히 가꿔온 ‘개혁 대 수구’ 프레임의 정점을 찍었다. ‘미국과의 계약’이 선포되고 5일 후 공화당 후보 300여 명은 이 문서에 서명하는 의식을 대대적으로 치른다. 기득권 세력으로 브랜드화된 과거의 공화당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일종의 ‘쇼’였다.

    ‘미국과의 계약’은 유권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친기업, 기득권 이미지의 공화당에 거대 기업이 아닌 개인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수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끌어온 공화당은 결국 42년 만에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다. 이런 ‘공화당 혁명’을 연출한 깅리치는 민주당의 40년 하원 독주를 멈춘 공로로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하원의장으로 추대된다. 1995년에는 시사지 ‘타임(Time)’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국가수반이 아닌 정치인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깅리치는 결코 완전무결하지 않았다. 사생활은 수많은 불륜과 추문으로 얼룩졌다. 정치적 유산에 대한 논쟁 또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연방정부의 교육 지원 프로그램, 지역사회 구제 정책 등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아 미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 갈등을 고착한 장본인이라는 평도 받는다.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2018년 깅리치가 미국의 정치적 논쟁을 ‘유혈 스포츠(Blood sport)’로 고조시켰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 칼럼니스트 다나 밀뱅크는 2022년 사설에서 “지금의 미국 정치 시스템을 망가뜨린 가장 큰 책임자는 깅리치”라고 주장했다. 깅리치는 1995년 클린턴 백악관이 보스니아 참극을 막기 위해 개입하려 하자 행정부의 폭주를 막겠다며 제동을 걸었다. 깅리치는 개입에 주저하던 클린턴 행정부를 더 소극적으로 만들어 보스니아 제노사이드를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을 적수로서 존경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그가 2009년 5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서울 C40 세계도시 기후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동아DB]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을 적수로서 존경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그가 2009년 5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서울 C40 세계도시 기후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동아DB]

    무엇보다 깅리치가 ‘시대의 풍운아’ 빌 클린턴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클린턴의 지지율은 르윈스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임기 내내 고공 행진했다. 그는 특유의 정치적 능숙함으로 비토권을 포함한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했다. 깅리치는 카리스마와 우호적 여론으로 무장한 클린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1995년 11월과 12월에 진행된 연방정부 셧다운은 깅리치의 의도와 다르게 공화당에 대형 악재로 작용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야당인 공화당이 민주당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봤다. 클린턴과 깅리치의 대결 구도는 전자의 우위로 점철됐다.

    깅리치의 불도저 리더십은 서너 해 만에 그 빛을 완전히 잃었다. 깅리치의 벼랑 끝 전술은 공화당에 점점 큰 리스크로 작용했다. 1997년 3월 여론조사에서 깅리치 하원의장은 불과 25%의 지지율을 기록해 클린턴 대통령(5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굴욕을 겪었다. 그는 1998년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하원의장직은 물론 의원직에서 사퇴했다. 클린턴은 1996년 대통령 재선과 1998년 민주당의 중간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한동안 재야인사로 지내던 깅리치는 2012년 대권에 도전하나 경선 4위에 그치며 정계를 은퇴했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AP 뉴시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AP 뉴시스]

    어젠다 싸움으로 표 끌어모으다

    그럼에도 깅리치의 정치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절박함 속에서 승부수를 띄우는 사명감과 판단력이 인상적이다. 깅리치는 탈냉전 직후의 미국이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믿었다. 미국이 소련이라는 외부의 적은 이겼지만 증세와 국유화, ‘문화전쟁’이라는 내부적 자충수로 탈선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1994년 ‘미국과의 계약’은 이런 절박함 속에서 던진 도박이었다. 수십 페이지의 거창한 매니페스토 대신 10개의 불릿 포인트로 정리된 포스터 한 장이 이를 대변한다.

    큰 반향을 일으킨 ‘의원 임기 제한’ 법안은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득표를 얻지 못했지만, 깅리치와 공화당은 그 이상의 보상을 받았다. 나머지 조항과 관련된 법안을 대부분 통과시킬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깅리치의 어젠다는 간단하고 대중적이다. 방만한 의회의 비효율과 정치권력 남용을 타파하고, 경제적으로는 작은 정부를 구현하지만 강력한 공권력으로 치안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과격한 ‘막말’을 구사한 깅리치는 대외적으로 민주당을 적으로 묘사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원리주의자는 아니었다. 깅리치는 과거 공화당 노선을 탈피해 종교를 기반으로 한 보수주의가 아닌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당 이데올로기를 재확립했다. 깅리치가 주창한 보수주의는 ‘보수 황금시대’로 인식된 레이건의 그것과도 달랐다. 기존의 공화당 전통을 벗어나 경제를 이론적 모델이 아닌 ‘심리적이고 문화적’인 방향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정부의 적극적 경제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주장했다. 클린턴과 깅리치는 서로를 뛰어난 적수로 존경했고, ‘마이크로 테크놀로지’처럼 정치와 무관한 지적인 대화도 즐겨했다. 클린턴과 깅리치 양쪽의 보좌진이 사적 대화 속 말실수로 서로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것을 두려워했을 정도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모두가 깅리치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밥 돌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위시한 온건 중도보수주의자들은 깅리치의 폭주를 우려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깅리치였지만, 공화당은 인물 중심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계파가 나뉘었다. 중도 보수주의자들은 특히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관해 백악관과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감세주의자 깅리치와는 다른 노선을 걸으려 했다. 깅리치는 이들의 존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들을 몰아내거나 위축시키려 하지 않았다. 깅리치는 1996년 대선 경선에서 당내 라이벌이던 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돌은 이듬해 하원 윤리위의 벌금 징계를 받은 깅리치에게 30만 달러를 빌려주며 화답했다.

    깅리치는 참신함 없는 젊음을 앞세우는 청년 정치인도, 지혜 없는 연륜을 포장하는 기성 정치인도 아니었다. 1994년의 승리로 하원에 입성한 공화당의 초선의원들은 51세의 깅리치에게 “뉴트, 뉴트”를 외치며 환호했다. 공화당 원로들도 깅리치를 잠재적 대권주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깅리치는 당내 ‘기득권 타파’를 주장하면서도 내부 분열 대신 단결을 꾀했다. 미국 국민은 깅리치의 정책 플랫폼만큼이나 그가 상징하는 단합된 공화당에 큰 호감을 느꼈다. 탁월한 지적 능력과 정치적 노련함이 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민주당, 클린턴 백악관을 상대로는 과격한 정책 싸움을 붙였지만 유권자들을 세대별, 성별로 갈라치기 하는 대신 어젠다 싸움으로 최대한 많은 표를 끌어오고자 했다.

    ‘한국과의 계약’

    깅리치의 ‘미국과의 계약’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지난 2022년 9월, 케빈 매카시 당시 공화당 원내대표는 깅리치의 ‘미국과의 계약’을 모델로 한 ‘미국에 대한 헌신(Commitment to America)’을 발표했다. 구체적 내용은 시대에 맞게 조정했지만, 공화당의 단합과 혁신, 보수 가치의 재정립이라는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2023년의 공화당은 깅리치를 재소환해 바이든 정부와 가상 대결을 붙이지 않았다. 깅리치 본인이 1994년에 레이건을 소환해 그에게 의존하지 않았듯이, 매카시도 깅리치를 끌어오지 않았다. 그의 플랫폼에서 여전히 유효한 형식과 가치만을 추출해 전술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깅리치는 과거 공화당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환하는 대신 미래를 지향하는 청사진을 그렸다. 선명한 어젠다와 실행 방법, 구체 공약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명의 개인과 지도자로서의 깅리치는 분명 많은 흠결이 있었다. 보수주의 운동에서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지만 대중으로부터는 과격함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력’ 만큼은 부분적으로 본받을 필요가 있다. 좌우 정당,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적 가치만큼은 명확하게 표명하고 실현할 필요가 있다.

    사실 깅리치 본인의 등장과 몰락 자체가 역설적이게도 인물 중심이 아닌 노선 중심 정치의 강점을 보여준다. 한때 화려하게 등장해 공화당을 구원한 깅리치였지만, 어젠다가 빛을 잃자 그 또한 힘을 잃었다. 미국 유권자들과 공화당은 깅리치를 신격화하는 대신 그의 어젠다가 가진 상품성만을 기준으로 표를 주기도, 내치기도 했다. 인물 중심의 한국 정치가 참고할 대목이다.

    지금의 한국 정치에서는 ‘미래지향적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엄중한 지정학 소용돌이 속에서 외교에 대한 논쟁보다 역사전쟁이 우선인 듯하다. “한국의 보수·진보 정당은 도대체 무슨 가치를 표방하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듣는다. ‘보수의 가치’ ‘진보의 가치’를 고민하고 토론하기보다는 시류에 따른 포퓰리즘에 편승하는 모습도 보인다.

    여야 의원들은 과거와 달리 사적인 식사도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적 분쟁이 개인 원한과 갈등으로 비화한다. 정당 내에서조차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숙청과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인물 중심 세력 경쟁이 아닌 정책 및 노선 경쟁을 통해 당내 다양성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2024년의 한국 정치지도자들이 1994년의 미국 정치인보다 못할 이유는 없다. 4월 10일 총선 이후에는 시의적절한 ‘한국과의 계약’이 탄생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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