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를 보고 드디어 일을 냈구나 하고 생각했다.”(K검사)
“사업가로서 인맥 관리한 것을 두고 사건 브로커라고 얘기하는 건 무리다. 경찰이 오버한 거다.”(C변호사)
서울 용산역 윤락가 주변에서 ‘해결사’로 통하는 박아무개(50·안마시술업소 운영)씨에 대한 평이다. 용산경찰서는 최근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과 더불어 계좌압수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검찰(서울지검 서부지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씨가 사건 알선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고 죄가 무겁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휴대전화 통화 많아
박씨 사건이 검·경 갈등으로 비화된 것은 그의 검찰 인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진 까닭이다. 경찰은 수사과정에 박씨가 개입한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그가 평소 법조인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이 그를 긴급체포한 것은 지난 3월17일. 체포 직후 그가 쓰던 휴대전화 2개를 압수, 지난해 12월17일부터 올 2월17일까지 3개월간 통화 내역을 조회했다. 놀랍게도, 법조인 20여 명과 100여 차례에 걸쳐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상당수가 검사인데 특히 몇몇 검사와 변호사와는 통화횟수가 10여 회나 돼 예사롭지 않은 친분관계임이 드러났다.
검사들과 통화한 횟수는 총 70여 회. 그 중 용산서 사건을 관할하는 서부지청 소속 검사들과 통화한 횟수만 해도 10여 차례였다. 이는 경찰이 박씨에 대한 영장 기각 배경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기도 하다. 박씨와 통화한 검사들의 신분이 쉽게 확인될 수 있었던 것은 휴대전화 통화가 많았기 때문. 통상 검사들이 웬만한 친분이 아니고선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박씨가 검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이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경찰은 보강수사 후 재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같은 이유에서 다시 이를 기각했다. 그 후 경찰의 수사의지는 크게 꺾였다. 그 와중에 일부 언론의 보도로 이 사건이 검·경의 대립으로 비쳐지자 부담을 느낀 경찰은 후속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씨와 통화한 법조인들의 명단도 비밀에 부치고 있다. 경찰 주변에서는 “박씨 구속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 사건은 경찰이 사실상 상급기관에 해당하는 검찰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경찰의 한 간부는 “검사의 비리를 감시하고 수사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있는지 확인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애써 이 사건을 무시하려는 분위기다. 통화한 검사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박씨와 검사들 간에 비리 커넥션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박씨가 어떤 인물이고 그가 어떤 사업을 해왔고 어떤 사건에 개입했는지, 또 어떻게 검찰 인맥을 가꿔왔는지가 명백히 드러나면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시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취재 결과 박씨 사건은 수사가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법조비리의혹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술장사를 해온 박씨는 공중보건위생법위반 혐의 등으로 네 차례 입건된 전력이 있으며 현재 안마시술업소와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박씨의 검찰 인맥은 10여 년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스폰서 노릇을 해왔고, 일부 검사는 그를 정보원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아’는 박씨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 그와 통화한 법조인 명단을 단독 확인했다. 아울러 통화자 명단에는 없지만 과거 그와 어울렸거나 그를 잘 알고 있는 검사, 또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로부터 박씨와 관련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명단에 오른 검사들은 대부분 박씨와 아는 사이임을 인정했다. 다만 사건 청탁 여부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부인했다. 이들에 대한 확인취재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대검 감찰부가 박씨와 통화한 검사들을 모두 조사할 방침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법조인들과 박씨의 통화 내역은 정황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통화한 검사들의 주장대로 사건 청탁과는 관련 없는 ‘안부전화’이거나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도 박씨가 ‘인맥 관리’ 차원에서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경찰의 의혹 제기엔 타당성이 있다. 경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씨는 이른바 ‘사건 브로커’로 활약해왔다. 특히 윤락가 주변에서는 ‘확실한 해결사’로 알려져 있다. 경찰이 확보한 증인들에 따르면 박씨가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검사들과 직접 통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씨는 오래 전부터 많은 검사와 알고 지내왔다. 이런 점에서 박씨와 통화한 검사들은 속사정이야 어떻든 ‘오해’를 살 만하다.
경찰은 그가 브로커로서 활동한 사례를 세 건 찾아내 구속영장에 기재했다. 시간을 갖고 충분히 조사하면 그 이상의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게 경찰 주장이다. 박씨를 긴급체포해 서둘러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일단 신병을 확보한 다음 그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한 포주들을 상대로 여죄를 캐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영장 기각으로 경찰의 계획은 틀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풀려나자 포주들이 더 이상 수사에 협조해주지 않는다”며 “이번 사건은 결과적으로 박씨의 위력만 입증한 셈이 됐다”고 허탈해했다.
또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은 통화 대상자 중에 서울지검 서부지청 소속 검사가 많다는 사실(이중 몇몇 검사는 지난 4월 인사 때 다른 검찰청으로 옮겨갔다). 그들 중 일부는 박씨와 여러 차례 통화한 것으로 나타나 단순한 친분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용산경찰서 사건은 모두 서부지청 관할이다. 즉 용산서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은 서부지청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하고 영장 청구도 서부지청 검사가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박씨의 주 활동무대는 용산 윤락가 주변이고 구속영장에 언급된 사건들 중 2건은 서부지청에서 처리됐다.
이 사건은 경찰의 불만 표출과 언론 보도, 검찰의 공개 반박으로 이어지면서 사건의 진실보다는 검·경의 대립 측면이 더 부각된 상태다. 경찰은 박씨와 검사들의 친분을 들어 영장 기각 배경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반면 검찰은 경찰이 증거도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건을 키워 수사권 독립 논쟁의 호재로 삼으려 한다고 못마땅해하고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검찰이 비록 구속영장을 기각하긴 했지만 박씨의 혐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검찰도 박씨가 사건을 알선한 사실은 인정한다. 다만 영장에 기재된 세 사건 중 두 사건의 경우 받은 돈을 변호사비로 다 써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증거가 없고 나머지 한 사건은 피해자와 합의한 만큼 구속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박씨가 변호사 선임비가 아니라 사건 해결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이므로 변호사법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한 발짝 물러서 설사 검찰 주장대로 구속영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쳐도 사건을 알선하는 등 변호사법위반 혐의가 짙은 상황에서 청탁이나 알선 사례금 수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계좌압수영장을 기각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어느 쪽 주장에 더 타당성이 있을까. 먼저 박씨 체포경위부터 살펴보자. 용산경찰서 형사과에서 박씨의 비리혐의를 포착한 것은 3월 중순. 그 즈음 형사과 강력5반은 경기도 평택 윤락가 포주 2명에 대해 윤락행위방지법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평택 윤락가와 용산 윤락가 포주들은 ‘사업상’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이란 주로 인신매매다. 이 바닥을 잘 아는 한 경찰 관계자는 “용산에서 팔려가면 평택이나 청량리로 간다”고 귀띔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박씨의 존재가 드러났다. 어느날 형사과에 ‘오다리’가 이 사건에 개입하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아울러 오다리에 대해 “돈은 좀 들지만 확실한 해결사”라는 평과 함께 “검사와 직접 거래하므로 일 처리가 확실하다” “오다리가 개입하면 100% 해결된다” 따위의 소문이 윤락가 주변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됐다.
“오다리가 붙었다”
오다리는 바로 박씨의 별명. 그는 본명보다 이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어릴 때 하도 동작이 빨라 ‘다리가 다섯 개’라는 뜻으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박씨는 젊었을 때부터 오다리로 불렸다”고 귀띔했다.
사실 용산서에 오래 근무한 형사들은 전부터 오다리의 존재를 직·간접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다리가 검찰과 직접 통한다는 소문이 있는 데다 범죄사실이 뚜렷이 드러난 적이 없었던 까닭에 그를 조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택 포주를 체포한 직후 용산서 내부에서 “오다리가 붙었기 때문에 구속해봐야 곧 풀려날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런 사정에서다.
확인 결과 구속된 포주측에서 한 다리 거쳐 박씨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경찰은 용산역 윤락가 포주들을 상대로 그가 과거에 개입했던 사건들을 수소문하는 한편 윤락가 범죄 관련 수사기록을 뒤졌다.
윤락행위방지법에 따르면 매매춘 당사자와 윤락녀를 고용한 업주는 사법처리 대상이지만 포주들이 구속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경찰이 단속을 해도 미성년자 고용이나 화대 갈취, 인신매매 등 ‘확실한’ 범죄가 아닌 다음에야 구속하지 않는 게 관례인 까닭이다.
용산서 형사과는 지난해 8월 용산역 윤락가 포주 오아무개(여)씨가 구속된 사건을 주목했다. 당시 오씨는 영업비, 벌금, 족보 등의 명목으로 윤락녀들의 수입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됐는데 검찰의 약식기소로 벌금을 물고 풀려났다.
경찰은 곧바로 오씨의 남편 김아무개씨를 조사해 박씨가 이 사건에 관련됐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그에 따르면 김씨 부부는 박씨를 만난 적은 없지만 소문을 통해 그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그에 따라 박씨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이아무개씨를 만나 ‘사건 해결’을 부탁했다.
박씨는 김씨가 이씨를 통해 건넨 돈으로 오씨에게 2명의 변호사를 선임해줬고,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오씨는 20일 만에 석방됐다. 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박씨는 2명의 변호사에게 각각 1000만원, 300만원씩 모두 1300만원을 변호사비로 지급했다.
경찰은 3월17일 아침 서울 서초동 박씨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그렇게 해서 신병을 확보한 다음 박씨가 개입한 윤락가 사건을 또 한 건 찾아냈다. 2001년 용산역 윤락가 포주 안아무개씨가 미성년자를 윤락녀로 고용한 혐의로 구속됐던 사건이었다.
당시 안씨는 두 다리를 건너 박씨에게 줄을 댔다. 자신과 잘 아는 이아무개씨를 통해 박씨와 절친한 또 다른 이아무개씨(오씨 사건에 등장한)에게 1000만원을 건넨 것이다. 이씨는 이 돈을 박씨에게 건넸고 박씨는 안씨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줬다. 그 결과 안씨도 오씨와 마찬가지로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경찰 구속영장에 나타난 박씨의 범죄혐의는 모두 세 가지. 나머지 한 건은 윤락가와는 관련 없는 것으로 박씨에게 떼인 돈을 받게 해달라는 명목으로 500만원을 줬다가 사기당했다는 사람이 용산서에 나타나는 바람에 밝혀진 것이다. 박씨가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를 찾았다는 그는 박씨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했다.
가만히 앉아서 박씨의 혐의를 한 가지 더 확보한 경찰은 매우 고무됐다. 박씨는 처음엔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으나 대질신문에서 사기꾼으로 몰리자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경찰이 영장을 청구하기 직전 피해자에게 500만원을 돌려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합의했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정상참작의 소지가 있을 뿐이다. 경찰은 5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영장에 추가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대로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과 계좌압수영장은 모두 기각 당했다. 검찰은 당시 “박씨가 실제로 취득한 이익이 있는지 불투명하고 계좌는 이 사건과 직접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박씨는 경찰서에서 풀려난 후 주변에 “경찰이 나를 체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솔직히 검사들 반은 안다”
박씨는 지금은 서초동에 살지만 오랫동안 용산에 살았다. 그가 젊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용산역 앞에서 ‘복다방’을 운영했다. 용산 지역 사정을 잘 아는 C형사는 “오다리(박씨)가 복다방 시절에 얽힌 연줄로 윤락가 주변 사건에 많이 개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C형사에 따르면 박씨는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검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고 한다. 무슨 사건이 나면 자신이 해결하겠다며 앞에 나서곤 했다는 것. C형사는 “건달세계의 안 좋은 물을 먹어선지 오다리는 아래위가 없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한테도 함부로 이름을 부른다”며 혀를 찼다.
박씨는 술장사로 꽤 많은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후반 영등포에서 술집을 하다 1990년대 초엔 한남동에서 이른바 ‘홀딱쇼’로 유명했던 C업소를 운영했다. 이 술집은 퇴폐업소 단속에 걸려 문을 닫았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전직 경찰관 P씨의 회고.
“용산서에서 집중단속을 폈는데, 오다리는 일반음식점 허가로 유흥업소 영업을 했다. 당시엔 그런 퇴폐적인 쇼를 하는 업소가 많았다.”
그는 박씨가 법조브로커라는 의심을 받는 것과 관련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꽤 오래 전부터 검사들을 많이 안다는 소문이 있었다. 다들 ‘허가 없는 변호사’라고 그랬다. 웬만한 변호사보다 실력이 좋다고 했다.”
박씨는 한때 스포츠센터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처가가 서울 강북구에서 수영장을 운영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씨 사건에서 최대 관심사는 박씨와 법조인, 특히 검사들과의 관계다. 그 근거가 바로 박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이다. 그와 통화한 검사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박씨와 어떻게 알게 됐을까.
박씨는 용산서에 처음 잡혀왔을 때 검사들과의 친분 관계를 철저히 부인했다. 하지만 영장이 기각된 후 두 번째 다시 불려와 조사받을 때는 어느 정도 시인했다. 하고 싶어 한 게 아니고 경찰이 그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에서 확인한 검사들 명단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처음에 부인한 이유에 대해 “아는 검사들에게 누를 끼치기 싫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렇긴 해도 검사들과 어떤 얘기를 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자꾸 검사들과의 관계를 추궁당하자 “솔직히 검사들 반은 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또 검찰 간부 두 명의 이름을 대며 “오래 전부터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과시하기도 했다.
법조인들과의 통화사실이 관심을 끄는 것은 물론 박씨가 법조브로커로 활동해왔다는 의혹 때문이다. 박씨와 통화한 검사는 20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그보다 적다. 휴대전화가 아니라 사무실 전화로 통화한 경우 직접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데다 검찰청 대표전화로 한 경우 어느 검사와 통화했는지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씨와 통화한 법조인 중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15명으로 검사가 10명이고 변호사가 5명이다. 또 근무지는 확인됐지만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검사 또는 검찰 수사관이 8명이다. 대부분 검찰청 대표전화로 통화한 경우다.
그밖에 판사 1명이 박씨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판사는 당시 서울지법 서부지원 소속이었는데, 지금은 지방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름이 확인된 10명의 검사 중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는 4명으로 그 중 2명은 통화량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밖에 통화 대상자 명단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과거 박씨와 알고 지내던 검사 2명과 검사 출신 변호사 2명의 이름도 확인했다.
검사 5명은 박씨와 통화할 당시 모두 서울지검 서부지청 소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한 검사는 박씨가 개입했던 용산역 윤락가 포주 안아무개씨 구속사건 당시 주임검사였다.
통화사실 확인요청에 대한 검사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답변 형태는 엇비슷했다. 대다수 검사들은 “명단을 확인했다”고 하자 통화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반면 일부 검사는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비켜갔다. 또 상당수 검사는 특별한 친분관계가 아님을 강조했지만 몇몇 검사는 평소 남다른 친분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거의 모든 검사들에게 공통적으로 확인된 것은 박씨와 적어도 한번 이상은 식사 자리나 술자리를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박씨와 검사들의 통화시간대는 다양하다. 박씨는 낮밤 가리지 않고 검사들과 통화했다. 밤 11시 이후에 통화한 검사도 있다. 어느날에는 변호사와 통화한 후 몇 명의 검사들과 잇따라 통화했다. 한 검사와 하루에 여러 차례 통화한 적도 있다. 또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통화한 흔적도 있다. 박씨가 전화를 건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유흥업소 업주인 박씨가 도대체 검사들과 그토록 자주 통화한 이유가 뭐냐”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그와 통화한 검사들은 대부분 그가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들은 박씨가 하는 사업에 대해 저마다 다르게 알고 있었다.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줄 아는 검사가 가장 많았는데 과거에 술집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검사도 있었다. 그가 안마시술소 업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들 놀라워했다.
검사들은 사건 청탁 여부에 대해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한 목소리로 부인했다. 일상적인 안부전화였다는 것이다. 검사들의 답변을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 한 가지는 박씨가, 사건 청탁 여부와 관계없이, 평소 ‘검찰 인맥’을 열심히 관리해왔다는 점이다.
“사건 청탁은 없었다”
재경지청 부장을 지낸 L검사. 현재 지방의 고검에 근무하는 그는 박씨와 유난히 통화량이 많다.
이에 대해 그는 “주로 안부전화였다”며 “(박씨를) 잘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또 박씨를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질문엔 “동료 검사가 만나는 데 따라갔다가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동료검사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소개를 받았다. 충남 공주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또 검찰 가족의 인척이 된다고도 했다. 부서 검사 몇 명과 저녁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다. 그후 가끔 전화를 걸어왔다. 사건을 소개해주거나 수사정보를 주는 관계는 결코 아니었다.”
L검사는 “박씨가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줄은 신문을 보고 알았다”며 “그러잖아도 기사를 보고 구설수 좀 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안마시술소 업자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검사가 (박씨를) 만났겠나”라고 덧붙였다.
역시 간부급인 서울고검의 S검사. 경찰에서 박씨가 언급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검사이기도 하다. S검사는 박씨가 한때 한남동에서 술집을 운영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박씨와 통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 어떤 모임에서 알게 됐다.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등 몇 차례 만났는데, 언제부터인가 가까이 할 사람이 아닌 듯싶어 멀리했다. 최근 5∼6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지난해 연말 안부전화를 걸어왔다. 안마시술소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서울지검의 K부장검사는 “알고 지낸 건 맞다”며 “지난해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씨가 안마시술소와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줄 몰랐냐는 질문에 “스포츠센터를 하는 사람으로만 알았다”고 대답했다. 또 사건과 관련한 청탁이 없었냐고 묻자 “사건 얘기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전화로 (얘기하기) 곤란하다”며 질문이 계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대검 간부인 L검사는 “알긴 아는 사람”이라며 박씨와의 관계를 시인했다. 그는 통화기록에 대해 “지방에 근무할 때 몇 차례 통화했다. 주로 안부전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씨를 OO지청에 근무할 때 알지 않았냐”고 묻자 부인하지 않았다.
“당시 선배검사 소개로 알게 됐다. K부장(현재 변호사)을 모시고 함께 회식도 했다. 사건 관련 얘기는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이 뒤에서 나쁜 짓 하고 다닌 줄 누가 알았겠나.”
재경지청 소속인 L검사는 조금 뜻밖의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선배검사를 통해 소개받았다. H대 법대 출신이고 법무부 보호위원이라고 해 그런 줄만 알았다. 특별한 친분은 없지만 ‘예우’ 차원에서 가끔 안부전화를 드렸다.”
경상도 지역의 모 지청에 근무하는 W검사도 L검사처럼 박씨를 H대 출신으로 알고 있었다. W검사는 “지난해 가을 선배검사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박씨와 인사를 나눴다”고 말했다.
“선배검사들 얘기가 H대 법대를 졸업했다는 것이다. 스포츠센터를 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정초에 새해인사차 전화를 걸어왔고 지난 2월 인사가 났을 때도 통화했다. 사건 관련 얘기는 전혀 한 적이 없다.”
경인 지역 모 지검의 L검사. 이 검사는 박씨와 통화한 사연을 묻자 “경찰의 언론플레이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고 에둘러 시인했다. 거듭 질문을 던지자 “전화로 얘기하기에 부적절한 것 같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재경지청에 근무하는 B검사도 통화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 B검사와 박씨가 어떤 사이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B검사에게 며칠에 걸쳐 10여 회 이상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직원을 통해 통화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역시 재경지청 소속으로 통화자 명단에 오른 K검사도 B검사처럼 통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걸 때마다 매번 자리에 없다고 했다. 직원을 통해 메시지를 몇 차례 전달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서울지검 소속으로 현재 모 기관에 파견 나가 있는 K검사도 박씨와 통화한 법조인 명단에 올라 있다. 그가 파견근무하는 모 기관 공보실을 통해 전화연결을 부탁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이상 언급한 검사들 중엔 H대 법대 출신이 2명 있다. 이 2명 중 1명이, 또는 2명이 함께 자신의 후배검사들에게 박씨를 소개한 것으로 짐작된다. 후배검사들은 선배검사와 대학 동문이라는 박씨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씨의 학력은 불투명하다. 박씨는 경찰에서 H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C변호사는 그가 K대 법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10여 년 전 그를 알았다는 검찰간부 K씨는 그를 D대 법대 출신으로 기억하고 있다.
박씨가 검찰에 인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영등포에서 술집을 하던 1980년대 후반으로 보인다. 영등포 지역은 서울지검 남부지청 관할이다. 그 때문인지 당시 그는 남부지청에 아는 검사들이 많았다. 그때 인연을 맺은 검사들 중엔 지금까지도 박씨와 연락하고 지내는 이들이 있다. 당시 남부지청에 근무했던 전직 검사 Q씨의 증언.
“그때 남부지청에 근무했던 검사들 중에는 박씨와 알고 지낸 사람이 많다. 내가 처음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은 검찰 간부가 주선하는 저녁 자리에서였다. 두세 차례 만났던 것 같다. 검찰 간부들과 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부장검사를 꿰차고 있었다. 가끔씩 검사들 회식자리에 나타나 계산하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술집을 하는 사람이었다.”
Q씨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박씨는 장발이었고 덩치가 컸다고 한다. Q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박씨가 검찰 간부들의 이름을 팔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당시 친분을 쌓은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소개해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박씨와 통화한 것으로 확인된 법조인들 중에도 남부지청 출신이 3명 있다. 검사가 2명이고 변호사가 1명이다. 남부지청에 근무한 적이 있는 K검사(지방 지청장)에 따르면 박씨가 평소 검사들에게 사건 청탁을 했을 개연성이 있다.
“남부지청에 있을 때 선배검사와 함께한 어느 식사 자리에서 그를 처음 봤다. 내가 서울지검 부장으로 부임한 후 어느날 찾아와 사건 관련 얘기를 하기에 ‘그런 얘기 하려면 앞으로 나를 찾지 말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어디 가서 나를 안다고 얘기하지도 말라’고도 했다. 인간적 모욕을 느낄 정도로 따끔하게 말해줬다. 그래선지 나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언론 보도를 보고 드디어 일을 내는구나 싶었다.”
K검사는 박씨를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D대 법대를 나온 사업가’로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K검사는 통화 대상자 명단에는 없다).
그밖에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검사 또는 검찰 수사관 8명은 통화 당시 서울지검 동부·북부·의정부지청, 수원지검, 광주지검, 대전지검, 대전지검 천안지청 등지에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통화 대상자 명단에 오른 변호사 5명 중 박씨와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은 3명이다. 나머지 2명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지방 지청장 재직 당시 비리사건에 연루돼 검찰을 떠난 L변호사. L변호사도 남부지청에 근무할 때 박씨를 알았다. 당시 영등포에서 술집을 하던 박씨가 단속에 걸려 입건된 적이 있는데 그때 주임검사가 L변호사였다는 것이다.
그 인연 때문인지 두 사람은 매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이는 당시 남부지청에 함께 근무했던 전직 검사 Q씨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이번에 확인된 박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에 비춰보면 L변호사와 박씨는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통화량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L변호사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박씨와 먼 친척간이라는 P변호사. 검사 출신인 P변호사는 박씨가 연루된 용산역 윤락가 포주 오아무개씨 구속사건에 변호인으로 선임됐었다. 당시 그는 박씨로부터 300만원을 받고 오씨 사건을 수임했다. 주임검사 P검사가 P변호사의 사시동기였다. P변호사는 당시 오씨가 벌금형으로 풀려난 데 대해 “갈취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사건말고도 박씨로부터 몇 차례 사건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사건 알선 대가로 사례비를 준 적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긴 하지만 그다지 친하지는 않다. 유흥업소를 운영한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검사들과 친해졌는지는 모르지만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더라. 변호사 개업을 한 이후 한동안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가 다시 연락을 해왔고 그의 소개로 광주에서 재판이 열렸던 어떤 사건과 춘천 윤락가에서 발생한 사건을 맡았다.”
포주 오씨 사건을 수임한 변호인은 2명이다. P변호사에 앞서 검찰 간부 출신인 Y변호사가 맡았다. Y변호사를 선임한 사람은 오씨로부터 돈을 받은 박씨다. 그런데 경찰은 Y변호사가 박씨와 특별한 인연이 없다는 점을 들어 ‘바지’, 즉 들러리일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즉 박씨가 겉으로는 변호사를 내세우고 실제로는 자신이 검찰에 로비해 사건을 해결해오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P변호사는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
“오씨 사건을 수임한 후 주임검사인 P검사를 찾아갔다. P검사는 내게 ‘이미 Y변호사가 선임돼 있다’며 Y변호사가 몇 차례 자신을 찾아와 변론을 했다고 말해줬다. 경찰이 Y변호사를 ‘바지’로 보는 건 난센스다.”
P변호사는 또 “박씨는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업도 잘 됐기 때문에 브로커 해서 돈 벌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며 경찰 수사내용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박씨는 호남 출신으로 서울에서 성장했다. 전북 전주가 그의 아버지 고향이며 선산도 그곳에 있다고 한다.
박씨의 영장에 적힌 윤락가 포주 안씨와 오씨가 구속된 사건을 모두 수임했던 Y변호사는 모 법무법인 대표. 그는 경찰이 박씨와의 관계를 묻자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또 박씨가 알선한 포주 구속사건에 대해서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Y변호사의 사무장이 “박씨를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는 것. 하지만 경찰은 이 진술에 의문을 품고 있다. Y변호사와는 통화하지 못했다. 여러 차례 메시지를 남겼으나 회신이 없었다.
연수원 출신인 C변호사는 박씨를 고향 선배로 여기고 있다. C변호사의 고향은 전북 익산이다. 오래 전부터 박씨에게 사업과 관련한 상담을 해주고 있다는 그는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박씨의 공범으로 규정한 이아무개씨 변호를 맡았다.
이씨는 포주 오씨 구속사건 때 오씨를 박씨에 연결시키는 다리 노릇을 했다. 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이씨는 오씨의 남편으로부터 모두 2500만원을 받아 그 중 1300만원은 박씨에게 변호사비로 넘기고 나머지 1200만원은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는 것이다. 이씨는 검찰이 박씨를 체포할 때 그것이 문제가 되자 서둘러 오씨측에 돈을 되돌려줬다. 오씨 사건이 일어난 게 지난해 8월이니 약 9개월 만에 가로챈 돈을 돌려준 셈이다.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이 기각했다.
C변호사는 P변호사와 마찬가지로 박씨를 옹호했다. 그는 “박사장이 K대 법대를 나왔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사장은 법대를 나와 판·검사가 못 된 것에 한이 맺혔는지 법조계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술집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은가. 검사들을 알고 지낸 것은 사업가로서 인맥을 관리한 것으로 본다. 좋게 표현하면 사업수완이 좋은 것이다. 몇 년 전 박사장과 검사들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박사장이 불러 가보니 알 만한 검사들이 많이 보였다.”
C변호사는 박씨가 과거 술집을 할 때 퇴폐업소 단속에 걸렸던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박씨에 대한 경찰 수사를 비판했다.
“박사장이 용산에서도 술집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경찰이 영웅심에서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 변호사법위반 혐의만 조사하면 되는데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부분까지 손대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서울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B변호사도 통화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 하지만 B변호사는 “(박씨의) 이름도 모르고 통화한 기억도 없다”며 통화 사실을 부인했다. 한편 통화기록엔 없지만 과거 남부지청에 근무할 때 박씨와 아주 가까웠다는 검찰 간부 출신 K변호사에게도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직원을 통해 “통화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박씨 사건에서 법리적으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변호사법위반 적용범위다. 검찰은 받은 돈을 다 변호사비로 썼다면 변호사법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내세운다.
“경찰은 박씨가 따로 돈을 받았다는 심증만 갖고 있지 물증을 찾지 못했다. 계좌 추적도 그렇다. 개연성만으로 개인과 가족의 모든 계좌를 뒤질 순 없지 않은가. 영장을 기각한 것은 단계적으로 수사하라는 뜻이지 수사를 봉쇄한 게 아니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모 부장검사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박씨한테 돈을 건넨 사람들이 변호사비가 아니라 포괄적인 사건 해결 비용으로 건넸기 때문에 변호사법위반이라고 반박한다. 경찰은 또 박씨가 변호사 소개나 사건 알선 대가로 사례금 따위의 뒷돈을 챙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포주 안씨 구속사건에서 안씨는 석방된 후 룸살롱에서 박씨에게 감사 표시로 200만원을 건넸다. 두 사람에 따르면 박씨는 그 돈으로 그날 술값을 치렀다고 한다.
검찰의 계좌압수영장 기각논리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박씨는 일종의 자선사업가다. 자신은 아무런 이득도 취하지 않고 남의 일에 나서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힘을 써줬다는 얘기다. 휴대전화 통화내역에서 드러났지만 박씨는 많은 법조인과 친분이 있다. 박씨가 사건을 해결하면서 또는 평소 인맥관리 차원에서 법조인들에게 돈을 건넸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일단 확인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수사의 기본 아닌가.”
그렇지만 검찰의 논리에 경찰이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용산서 수사관계자는 “검찰의 시각이 (경찰과) 다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영장 기각 이후 박씨와 관련자들 진술의 모순점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경찰 내부에서도 용산서의 수사방식을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 P씨의 지적.
“검찰의 영장 기각 취지는 박씨에게 죄가 없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구속할 만큼 무겁지 않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경찰이 너무 서두른 것이 화근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박씨를 공범인 이씨와 동시에 체포했더라면 변호사법위반 혐의를 입증하기 쉬웠을 것이다. 이씨는 풀려난 박씨와 밖에서 입을 맞춘 후 경찰에 출두한 것으로 보인다.”
“그 분이 힘써 내가 풀려났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후 심장이 좋지 않아 입원해 있다가 얼마 전 퇴원했다. 박씨와 형 동생 사이로 지낸다는 그는 “변호사를 소개하면서 따로 돈 받은 적이 없다”고 박씨를 적극 감쌌다.
“‘사건 소개’를 직업적으로 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오씨와는 30년 지기다.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와 박씨에게 얘기해준 것이다. 박씨도 피해자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좋은 일이라도 남 앞에 나서면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씨는 자신이 중간에서 챙긴 1200만원에 대해 “수술비로 쓰려 했다”고 말했다. 이씨를 통해 박씨로부터 변호사를 소개받은 포주 오씨는 “박씨는 우리한테 상당히 고마운 분”이라며 “그 분이 힘써 내가 풀려났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구속됐었는데 그분이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그런데 내 사건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어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다.”
오씨는 박씨에게 사례비를 주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돈을 준 적은 없고 추석 때 김과 멸치를 선물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사건을 수임했던 변호사 2명의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역시 박씨에게 도움을 받았던 포주 안씨는 “박씨는 나와 직접 관련이 없다. 나는 이OO한테 변호사 비용을 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반만 맞다. 그가 건넨 돈이 두 사람을 거쳐 박씨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5월10일 밤 서초동 박씨의 집을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그의 부인이 집 밖으로 나왔다. 골목에서 20분 가량 얘기를 나눴다. 부인에 따르면 박씨는 용산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몇 가지 물어보자 부인은 “남편이 하는 일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입을 다물었다.
박씨의 과거에 대해 파악한 내용을 들려주자 그녀는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냈냐”고 되물었다. “뭐 하러 이런 기사를 쓰려 하느냐”고 힐난하는 그녀에게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명함을 주면서 “남편의 얘기를 꼭 듣고 싶으니 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한테서는 기사 마감일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