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포커스

文 정부 교육공약 실종 사건

뒤집히고 엎어지고 미뤄지고 “공론화에 교육부 관료들만 신났다”

  • 입력2018-10-31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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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론화 통한 정책 결정…책임 회피 수단 전락”

    •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허용…정책 결정 기조 변화?”

    • 수능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뀐 이유

    • 표류하는 교육정책, 지지 세력도 등 돌려

    • “국민 설득할 논리 체계부터 갖춰야”

    8월 17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향’에 대해 “교육개혁을 후퇴시킨 조치”라며 김상곤 교육부 장관(당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8월 17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향’에 대해 “교육개혁을 후퇴시킨 조치”라며 김상곤 교육부 장관(당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10월 초순 교육계의 가장 큰 화두는 ‘유치원 영어교육’이었다. 10월 4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을 금지한 기존 교육부 입장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통해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특별활동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거센 반발로 3주 만에 이를 뒤집었다.

    여론 눈치보다 소신 잃어

    유 장관의 갑작스러운 입장 표명에 ‘즉흥적’ 처사란 지적과 함께 설익은 정책으로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방침을 10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철회한 탓이다. 그동안 여론 반발을 고려해 정책 결정을 유예한다거나 ‘작은 공론화’인 정책숙려제를 통해 공론화하겠다고 밝힌 적은 있지만, 유아 발달 시기의 무분별한 영어교육을 규제해야 한다는 지향성은 변함이 없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었다. 

    교육부는 이번 정책 결정에 대해 유치원 방과 후 과정에서 영어수업을 허용하되 놀이 중심의 영어 허용임을 강조한다. 유아 발달단계에 따르면 유치원에서 영어수업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학부모들의 현실적 수요를 반영한’ 절충안이라는 설명이다. 

    학부모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온라인 카페 등에는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의견이 꾸준히 올라왔다. 영어유치원처럼 고가의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성행하는 현실에서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을 금지하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고,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도 벌어진다는 게 학부모의 입장이다. 

    이번 정책 결정으로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교육계와 전문가들은 비판의 날을 세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진보진영 인사들조차 “정부가 교육정책에 대한 소신과 일관성을 잃었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유아 발달과 공교육 철학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결정으로 교육 현장의 혼란만 부추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3학년생은 방과 후 특별활동 시간과 정규 수업시간에 각각 영어를 배울 수 있지만, 초등 1~2학년생은 영어를 배우려면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 시장으로 가야 한다. 결국 소신 없는 교육부의 정책 추진이 ‘정책 엇박자’를 자초한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면서까지 입장을 번복한 것일까. 교육계는 “교육부가 청와대 의중과 국민 여론 눈치를 본다”고 비판한다. 진보 성향 교육활동가 S씨는 “여론 존중 덫에 걸린 새 교육부 장관의 교육개혁이 과연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문재인 정부 교육공약을 이행하려고 해도 줏대 없이 휘둘리면 전임자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수능 상대평가 선회는 ‘공약 후퇴’

    지난해 12월 1일 전국방과후법인연합 및 방과후 교육 관련 종사자들이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1일 전국방과후법인연합 및 방과후 교육 관련 종사자들이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정부의 이러한 정책 결정이 ‘교육공약의 후퇴’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2022학년도 대학입시 제도 개편안은 문재인 대통령 교육공약과 비교해 오히려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의 핵심 교육공약인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대입제도 개편안에서 가장 논란이 된 사안이다. 현재 상대평가로 치러지는 수능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과도한 입시 경쟁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는 있지만, 변별력이 떨어져 시험이 사실상 무력화된다. 자연히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각종 ‘꼼수’가 난무하는 탓에 학생부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불신이 크다. 

    교육부는 엄청난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대입제도 개편안 결정을 1년 유예하기로 했다.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뒤 결정하겠다”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앞서 교육부는 ‘일부 과목 절대평가’ 내용의 1안과 ‘전 과목 절대평가’ 내용의 2안 중 한 가지를 택해 개편한다는 입장이었다. 

    대입제도 개편 국면에서 국민 여론은 수능 상대평가 유지와 정시 비율 확대로 크게 쏠렸다. ‘객관적 지표를 얻는 수능이야말로 공정한 평가 요소’라는 이유에서다. 수능 상대평가와 정시 비율 확대는 경쟁 체제를 가속화한다. 현실에서도 대다수 국민이 경쟁 교육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육단체 대표를 지낸 진보 성향 교육운동가 K씨는 “수능 상대평가 유지와 정시 확대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국민 여론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이 진짜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정부가 이를 간파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8월 17일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 개편안의 핵심은 ▲수능 정시 비율 30% 이상 확대,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제2외국어와 한문으로 확대(기존 영어와 한국사는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2025년 전면 시행이다. 이는 지난 7월 550여 명의 시민참여단이 2차례 숙의 토의한 결과를 절충한 것이다. 당시 4가지 시나리오 중 1안(수능 상대평가, 수능 정시 45% 확대)과 2안(선발은 대학 자율,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이 각각 52.5%와 48.1% 지지를 얻었다. 

    1년 만에 정책이 반대 방향으로 간 셈이다. 결국 수능 절대평가가 중장기 과제로 넘어가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실현 가능성도 사라졌다. 이는 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수능 절대평가 전환과 전면 배치된다.

    진보진영이 교육부 보이콧

    지난해 12월 1일 전국방과후법인연합 및 방과후 교육 관련 종사자들이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1일 전국방과후법인연합 및 방과후 교육 관련 종사자들이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이를 두고 교육계는 “이번 공론화는 정부가 대입제도를 결정하는 부담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에서 추진했다”고 비판한다. 교육부에서 시작해 국가교육회의를 거쳐 시민참여단까지 이어지는 ‘층층구조’ 공론화가, 정책결정 과정의 신뢰성과 책임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보 성향의 교육의원 출신 C씨는 “교육부가 대입제도를 결정하는 부담과 책임을 회피하고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한 식구’라 할 수 있는 진보진영마저 교육부 장관 사퇴론을 꺼내 든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전교조는 8월 17일 교육부의 대입 개편안 발표 이후 “대입제도를 개악한 국가교육회의를 해체하고 김상곤 교육부 장관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는 문재인 정부의 집권 초기 교육정책은 실패했다는 표현도 담겼다. 

    이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측도 “문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파기한 책임을 지고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과 김상곤 장관은 퇴진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는 9월 4일 송인수·윤지희 공동대표 명의로 단체 회원들에게 보낸 ‘특별편지’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국민 여론에 떠밀려 당초 본인이 대통령 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2015 개정교육과정 따른 수능 절대평가 실시)을 뒤집었다. 믿고 열심히 싸웠는데, 국가가 나서서 뒤통수를 친 셈”이라며 교육부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급기야 진보진영이 교육부를 향해 ‘보이콧’을 선언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좋은교사운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21개 교육단체는 “학생부 신뢰도 제고를 위한 정책숙려제와 대입 제도 개편 공론화는 모두 교육부의 정책 결정 책임을 국민에 전가한 행위였다”며 앞으로 진행되는 교육부의 정책숙려제 참여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들은 지난해 문재인 정권 출범 당시 ‘수능 절대평가’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고교학점제 도입’ 등의 교육공약을 크게 지지했지만 1년 만에 김상곤 장관 퇴진에 이어 교육부의 정책숙려제까지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공론화 없이 결정… 정책 결정 기조 바뀌었나?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당시)이 8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당시)이 8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진보진영 교육단체들이 1년 만에 반기를 든 것은 정책숙려제와 공론화가 문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지 않는 ‘책임 회피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정책 결정 책임 떠넘기기란 비판을 받고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는 성토가 나온다. 

    교육단체 대표를 지낸 진보 성향 교육운동가 K씨는 “공론화 도입 이전에는 교육부가 교육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몇 차례 회의한 결과를 토대로 정책 결정을 내리곤 했다. 이때 회의 과정에서 교육부 담당자의 잘못이 드러났고, 때론 책임을 묻기도 했다. 공론화 도입 이후에는 교육부가 숙의 과정에 대한 책임조차 지려 하지 않는다. 요즘 교육부 주변에는 ‘공론화로 교육부 고위 관료들만 신났다’는 말이 나돈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가 도입한 ‘작은 공론화’의 수단인 정책숙려제는 미래교육의 비전과 가치를 토론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을 의제로 다루면서 어정쩡한 결론이 나와 오히려 문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반된 의견을 가진 관계자들이 토론하면 시민들이 판결을 내리는 구조였기 때문에 양측 의견을 봉합하는 수준에서 결론이 났다는 주장이다. 진보진영 교육단체 관계자는 “이런 방식이면 앞으로 예고된 정책숙려제도 비슷한 방식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은혜 장관 체제에서도 공론화는 이어질 전망이다. 교육부는 정책숙려제의 문제점을 분석해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교육의원 출신 진보진영 인사 K씨는 “아예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론에 따라 정책을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번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은 원생 모집 시기를 이유로 공론화 과정을 생략했다. K씨는 “유 장관 취임을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 결정 기조와 프로세스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교육 개혁을 다시 요구하는 진보진영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진보진영 30여 개 교육단체는 8월 29일 ‘문재인 대통령 교육공약 지킴이 국민운동’을 출범하고, 정치권과 정부가 무력화한 공약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국교수노동조합도 투쟁에 나섰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던 공영형 사립대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한 데 따른 대응 차원이다.

    “진짜 교육은 학교에서 시작돼야”

    이를 두고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흘러나온다. 전교조 조합원 K씨는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교사들은 노무현 정부의 교원평가제도 시행으로 ‘덴’ 경험이 있어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에 의구심이 컸다. 대통령의 핵심 교육공약이 공론화라는 명분 속에 잇따라 후퇴하는 걸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 성향 교육단체를 이끄는 C씨는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게 행동하니 거리로 뛰쳐나간 것”이라면서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식구끼리 모이는 건 촛불 집회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교육계 초미의 관심사는 향후 진보진영의 지형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다. 진보 성향 교육활동가 S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진보진영에는 새로운 기조가 생겼다. 교육단체가 정치 성향이 비슷하다거나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인을 찾아다니며 요구사항을 관철할 게 아니라 국민을 만나 직접 설득하며 여론을 주도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진보진영 교육활동가 K씨는 “일부에서는 ‘김상곤 실각으로 진보진영 위세가 위축됐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러난 게 아니라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 개혁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교육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공감대 높은 교육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교육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론화를 주창하기에 앞서 국민을 설득할 논리 체계부터 갖추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다. 

    또한 토론회장이 아닌 학교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제대로 된 틀을 제시하고, 진정한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주체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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