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호

류호정 “민주당은 청년 가르치려 드는 기득권 정당”

29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복기한 4·7 재보선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입력2021-04-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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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표심은 남녀 모두 집권 여당 심판

    • ‘피해호소인’…민주당에 등 돌린 20대 여성

    • 국민의힘은 ‘젠더’를 비판 위한 도구로 사용

    • 젠더 갈등 해결 위해 정치가 나서야

    • 민주당은 기득권, 자각 못 하고 오만

    4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류호정 정의당 의원. 류 의원은 “20대 표심은 남녀 가리지 않고 집권여당에 경고를 날린 것”이라고 말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4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류호정 정의당 의원. 류 의원은 “20대 표심은 남녀 가리지 않고 집권여당에 경고를 날린 것”이라고 말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72.5%. 지상파 방송3사의 4·7 재·보궐선거(재보선) 공동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도 73.3%의 지지를 보낸 60세 이상 여성 다음이다. 20대 여성의 15.1%는 양대 거대 정당이 아닌 군소정당에 표를 던졌다. 20대의 표심을 예측하지 못한 정치권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은 정의당 소속 20대 국회의원의 생각이 궁금했다. 좀 더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4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류호정(29) 정의당 의원은 커피나 차가 아닌 흰 우유를 마셨다. 노란마스크를 쓰고 편한 옷차림에 무지개색 시곗줄이 달린 전자시계를 찼다. 인터뷰 내내 크게 웃다가 “웃느라 하려던 말을 까먹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도 “젠더 관련 이슈는 조심스럽다”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류 의원은 “선거 결과가 나온 뒤 국민의힘에 투표한 20대 남성 여러 명과 통화했다”며 “20대 표심은 젠더 갈등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라고 분석했다.

    1990년대생은 뚜렷한 지지 정당 없어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남녀 표가 크게 갈렸다.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단 출구조사에 기반을 둔 분석이라 불완전하다는 점을 전제하고 싶다. ‘남녀의 표가 갈렸다’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구분이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 20대 남성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은 사실이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경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뽑은 유권자보다 뽑지 않은 유권자가 더 많다. 즉 20대 표심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집권여당에 경고를 날린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심화된 양극화와 불평등으로 인한 결과다.”

    - 일각에서는 20대 남성들이 보수화됐다고 보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민주당에 투표한 시민을 진보로 정의하고, 국민의힘에 투표한 시민을 보수라고 정의하는 분석은 게으르다. 199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산업화나 민주화에 대한 기억이 강하지 않다. ‘민주당은 절대 안 돼’라거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국민의힘을 찍어’라는 생각이 윗세대처럼 강하지 않다. 20대 남성은 민주당의 대안으로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지 보수화 된 게 아니다.”

    - 그렇다면 20대 여성 15.1%는 왜 제3정당에 투표했다고 보나.

    “20대 여성은 재보선이 치러지는 이유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20대 여성은 민주당을 배제하고 국민의힘과 제3정당 사이에서 고민했을 거 같다. 군소정당 후보들은 대체로 20대 유권자들과 또래인 여성 후보들이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국민의힘보다 더 끌리지 않았을까 싶다. 15.1%의 유권자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 젠더 이슈가 20대 여성 표심에는 크게 영향을 줬다고 보나.

    “그렇다.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른다거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옹호하는 태도에 등을 돌린 것이다. 그와 같이 실망스러운 (민주당의) 대처가 20대 여성들이 학교나 직장에서 직접 겪었던 경험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민주당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젠더를 ‘한철 장사’로 이용 말라

    -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 ‘올인’해 참패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이 도대체 어떤 여성주의 정책에 집중했는지 모르겠다. 이 전 최고위원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선거 기간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다. 이 최고위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을 보면서 ‘젠더를 비판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우리 사회의 성차별에 대해서는 외면하겠다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더라. 이 전 최고위원 주장이 도리어 젠더 갈등을 더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젠더를 ‘한철 장사’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 이 전 최고위원은 “20대 남성들은 특권을 누린 적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우리 사회의 성차별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대가 앞 세대보다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많이 누리지 않았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다만 여전히 사회구조적으로는 성차별이 잔존한다. 일부 20대 남성 사이에 반(反)페미니즘 정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20대 남성이 여성정책 취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득하지 못해서다.”

    - 어떻게 설명했어야 했나.

    “성차별 문제와 한국 사회의 청년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고 얘기했어야 했다.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주거난, 취업난까지 겪고 있는 청년들이 차별받는다고 말하는 여성들의 처지를 되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남성 청년들의 반페미니즘 정서는 억울함에서 나오는 거 같다. 부모 세대만큼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라지 않았는데 기성세대와 같이 성차별주의자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갈등이 온라인으로 옮겨간다. 온라인에서는 갈등이 해결되기보다는 증폭된다. 대체로 서로 악감정만 남은 채로 (논쟁이) 끝이 난다. 정치인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다. 서로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있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 살기 힘든 환경은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대화만으로 남성들을 설득할 수 있나.

    “정치를 시작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실제로 만나본 20대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인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세대다. 그들에게 ‘성평등사회는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설명해야 한다. 또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 대부분은 양극화된 사회로 인해 생겨난 문제다. 청년들이 남녀로 나뉘어 서로에게 분노를 쏟아내지 말고, 문제의 원인인 기득권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으면 좋겠다.”

    젠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류 의원은 “정치를 시작하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가 등장하는 뉴스 댓글창을 보면 류 의원의 젠더 가치관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부쩍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 썼다.

    -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20대 표심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보나.

    “이번 재보선을 통해 깨진 편견이 하나 있다. 청년이 가진 변화에 대한 갈망이 진보정당의 표로 변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LH 사태’로 청년들의 마음이 많이 돌아섰다. 결국 표심의 향배는 사후 대처에 달려 있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해충돌방지법) 통과와 LH사태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중요한 이유다. 관계자들을 일벌백계하고 기존의 관습과 관행을 깨는 행보를 보여준다면 재보선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는 졌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174석을 갖고 있는 거대정당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 이번 재보선에서 군소정당 대부분이 소수자 이슈를 선거에 들고나왔다.

    “정의당 후보가 없어 목소리를 내는 데 제약이 있었다. 대선을 앞둔 선거에서 소수자 이슈가 전면에 등장한 일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정의당이 소수정당들과 생각이 같은 점을 찾아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틀리면 안 되는 사회

    - 정의당의 주요 지지기반은 청년이었다. 차기 대선에서 정의당이 청년 표심을 잡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나.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원내정당 중 유일하게 비례대표 1, 2번을 청년에게 할당한 정당이다. 덕분에 저와 장혜영 의원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말로만 청년을 위한다고 하지 않고 실제로 청년에게 기회와 권한을 부여한다. 청년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는 청년을 대표하는 제가 성과를 내야 한다. 현재 ‘청년노동3법’을 공동 발의할 동료 의원을 열심히 찾고 있다.”

    - 선거운동 기간에 박영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심 의원은 단칼에 거부했다. 과거에는 양당 간 후보 단일화나 선거 연대가 있었는데.

    “후보 단일화나 선거 연대는 양당이 토론 끝에 도출하는 정치적 합의다. 이번 선거에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없었다. 민주당은 반성 없이 후보를 냈고, 정의당은 반성의 의미로 공천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 민주당 판세가 불리하다고 느껴지자 느닷없이 심 의원에게 ‘노크’했다. 심 의원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류 의원은 재보선 하루 전 SNS에 “누구나 노회찬 정신을 계승할 수 있지만 민주당이 진보적 개혁에 (있어) 후퇴를 반복한다면 급한 마음에 가져다 쓴 노회찬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노회찬의 적은 보수정당이 아닌 부패한 기득권이었다”고 적었다.

    - 민주당은 ‘부패한 기득권’인가?

    “174석을 가진 집권여당은 기득권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을의 위치에 놓으니 시민과 청년을 가르치려드는 것이다. 선거 도중에는 ‘20대는 경험치가 없다’는 말을 하더니 패배하고 나서는 ‘이명박, 박근혜 교과서를 보고 커 역사의식이 없다’며 청년 탓을 한다. 이런 발언은 스스로가 ‘을’이라고 생각해 나오는 말이다. 그런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사회는 틀리면 안 되는 사회다. 한번 틀리면 그 순간 격차가 벌어진다. 한 번의 실수에 학벌이 결정되고 연봉이 달라진다. 월세냐 전세냐가 갈린다. 계급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어른들이 말했던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취업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평범한 삶이 이제 너무 어려워졌다. 청년들은 평범한 삶을 하나둘씩 포기하고 있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다. 이번 선거 결과는 ‘삶이 힘들다’고 표현한 청년들의 소리 없는 목소리라는 점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한편, 두 달 전 류 의원은 자신이 해고한 비서가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류 의원의 제소로 열린 정의당 경기도당 당기위원회는 3월 31일 당시 류 의원이 맡고 있던 원내대변인 겸 원내수석부대표직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피제소인인 전 비서에게는 당직 박탈과 6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을 내렸다. 당기위는 비서 해고 절차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부적절한 기자회견으로 당내 논란을 증폭시킨 점을 징계사유로 꼽았다. 류 의원은 “상대방이 항소를 하면 사안은 중앙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상대방의 항소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류호정 #4·7재보선 #20대남자 #20대여자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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