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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없는 국민의힘, 기본소득 사문화? [봉달호 편의점 칼럼]

‘이재명은 포퓰리스트’ 욕만 하면서 피할 일 아니다

  • 봉달호 편의점주

김종인 없는 국민의힘, 기본소득 사문화? [봉달호 편의점 칼럼]

  • ● 이쪽선 ‘힘들지?’ 저쪽선 ‘쟤 잘라요!’
    ● 원가 절감의 기회 혹은 일자리 증발
    ●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의 부상
    ● 국민의힘 강령 1조 1항에 담긴 기본소득
    ● 김종인이 욱여넣어도 野 의원들은 무관심
    ● 이재명 기본소득, 구휼정책+‘화수분’ 이론
    ● 野, 서진 전략·중도 공략도 도로 아미타불?
    ● ‘안 된다’ 말만 하지 대안 없는 정당
지난해 7월 14일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본소득제와 주거·부동산 정책세미나’에서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7월 14일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본소득제와 주거·부동산 정책세미나’에서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공식 선거운동 일정을 시작했다. 자신의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겠지만, 친(親)서민 행보를 한다면서 구태의연하게 전통시장에서 떡볶이나 순대 먹는 것보다는 제법 참신하고 괜찮아 보였다. 더구나 필자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더욱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런데 그런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이벤트는 엉뚱한 대목에서 구설에 올랐다. 박 후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뭐 힘든 거 없어요?”라고 물었다가 곧이어 점주에게는 “야간은 무인(無人)으로 운영해 보세요”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쪽에 가서는 ‘힘들지?’ 묻고, 저쪽에 가서는 ‘쟤 잘라요’ 한 격이다. 내내 야유와 비판의 대상이 됐다. 20대 유권자의 민심을 잃는 데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며칠 후 박 후보는 미래의 통·번역사를 꿈꾸는 청년을 만나서도 “AI(인공지능)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번역한다”고 조언(?)했다. 이 정도면 그냥 단순한 실언이라 볼 수 있을까. 애초에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살피고 대화하는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차라리 AI에게 정치를 맡기면 박영선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잘할 텐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대

3월 29일 서울 중구 무교동에 붙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벽보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3월 29일 서울 중구 무교동에 붙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벽보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농담은 걷고, 박영선의 사례는 좀 웃기는 해프닝이긴 했지만 지금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 미래에 더욱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쪽 가서는 이 말, 저쪽 가서는 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 말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업가와 자영업자에게는 원가 절감의 기회를 주고 근로자들이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는 기쁨 또한 주었지만, 한편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없애는 역설을 만들었다. 고용인을 만나면 기술혁신과 인력 효율성을 주문하지만, 피고용인 입장으로 가면 일자리 보존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업화는 초기부터 그런 모순을 내포했다. 그동안 우리는 그것을 “과학기술의 발달은 일자리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만 우리의 노동을 더욱 편안하게 도울 뿐이다”라거나 “일자리가 사라지는 만큼 또 다른 고급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이론으로 상쇄해 왔다. 또 산업자본주의의 거대하고 풍부한 생산력은 점진적으로 복지 혜택을 증가시켰고, 그것으로 여러 사회적 불만을 누그러뜨려 왔다. 어쨌든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의 성과를 많든 적든 함께 ‘향유’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대가 펼쳐지지 않을까.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고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의 초입에 지금 서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조심스러운 걱정(?)이 든다. 변화의 특징을 꼽자면 이렇다. △첫째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노동을 편안하게 바꾸는’ 과학기술의 발달 수준을 넘어 인간의 노동력 자체가 필요 없는 단계가 만들어지고 있고, △둘째 일자리가 사라지는 만큼 고급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고 그냥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거나 축약되고 있으며, △셋째 그러면서도 거대한 생산력은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떡해야 할까. 과거 산업화 초기처럼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기계를 때려 부수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제 더는 그런 거대한 생산력은 필요 없다고, 인류는 이 정도로 충분히 먹고살 만하다고 ‘개발 스톱’을 외치는 반(反)문명 운동이나 자연회귀운동을 벌여야 하는 걸까. 둘 다 의미 없고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보니 알게 모르게 후보가 12명이나 나왔다. 그중 ‘기본소득’을 직접 공약으로 내걸거나 기본소득에 기본적으로 찬동하는 입장을 밝힌 후보를 헤아려보니 대충 절반을 넘는다. 일단 당명 자체가 ‘기본소득당’인 후보가 있었고, 한국 정치의 희극인이라 말할 수 있는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의 ‘국가혁명배당금’이라는 것도 나름대로는 기본소득의 다른 표현인 것 같다. 자신이 우리나라 기본소득의 주창자라고 주장하는 후보도 있었고(이수봉 민생당 후보), 오태양 미래당 후보도 ‘청년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진보당은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지지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무소속을 포함한 전체 후보 가운데 예닐곱 명, 그러니까 3분의 2 정도는 기본소득을 직접 표방하거나 지지하는 입장 아닐까 싶었다. 이 정도면 기본소득은 하나의 ‘시대정신’이 돼가는 느낌이다.

문제는 실제로 수권 능력이 있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다. 민주당은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삼고 있다.

국민의힘 강령 1조 1항의 선언

국민의힘 강령 1조 1항. 짙게 칠한 부분이 기본소득을 명시한 대목이다. [국민의힘 홈페이지]

국민의힘 강령 1조 1항. 짙게 칠한 부분이 기본소득을 명시한 대목이다. [국민의힘 홈페이지]

그런데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알려주면 ‘설마’ 하며 놀라는 사실이기도 하다. 민주당보다 오히려 국민의힘이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강령 1조 1항에 이렇게 선언한다.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

이것이 국민의힘 강령이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정의당이나 진보당보다 앞서가는 것처럼 보인다. 당명을 가리고 어느 정당이냐 물으면 서구의 ‘사회당’이라 말해도 믿겠다. 정작 국민의힘 당원들은 자기 정당에 이런 강령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야흐로 기본소득은 거대한 시대적 요구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국민이 과연 어느 정도로 기본소득 제도를 지지하는지 파악한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지난해 6월 5일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여론을 조사한 적 있는데(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찬성 48.6%, 반대 42.8%로 나타났다. 반반으로 팽팽하긴 하지만 어쨌든 기본소득 여론이 조금 우세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현실(!)이 있다. 지난 재난지원금 사례에서 보듯, 정치적 의견으로는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돈을 준다고 하면 안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여론조사 질문을 바꿔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당신은 받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90% 정도는 찬성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다. 정치의 과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요컨대 국민의힘이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이변이라면, 국민 절반이 그것에 반대한다 해도 “결국 주면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현실이자 과제다. 민초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면, 무조건 그것을 무식하거나 천박하다고 비아냥거릴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어쨌든 기본소득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돼가고 있다. 기본소득은 다음 대선에서 ‘공정’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일단 쓰세요, 그러면 경제는 살아납니다!

2017년 2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현 경기지사)이 페이스북에 공유한 ‘기본소득 그림’. 문제가 되자 이 시장 측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월 17일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해 “양극화를 완화하는 복지정책인 동시에 소비를 어느 정도 유지시키는 성장 정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영철 기자]

2017년 2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현 경기지사)이 페이스북에 공유한 ‘기본소득 그림’. 문제가 되자 이 시장 측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월 17일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해 “양극화를 완화하는 복지정책인 동시에 소비를 어느 정도 유지시키는 성장 정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영철 기자]

필자는 여기서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라든지 이론적 원리 같은 것을 논증하려는 게 아니다. 그럴 만한 지식도 능력도 없다. 그런 부분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몫이다. 문제는 기본소득을 대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시각과 태도에 있다.

기본소득은 국민의힘 정강정책 1조 1항으로 돼 있지만, 국민의힘 당원 가운데 그것이 자기 당 강령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억지로 욱여넣긴 했지만 국민의힘 정치인 가운데 기본소득에 실제로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정치인도 없는 듯하다. 실은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관심을 갖는 의원 자체가 없는 것이다. 다들 그냥 당권이나 대권, 자신의 재선에 혈안이 돼 있을 뿐이지….

하긴 그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국민의 생계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검찰개혁이나 언론개혁 같은 허상에 목을 매고 있을 시간의 반의 반토막이라도 기본소득 같은 ‘미래 문제’에 열의를 보였으면 좋겠다. 물론 이재명 지사가 줄곧 기본소득을 표방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차제에 이야기하자면, 기본소득에 대한 견해와 입장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이재명표(標) 기본소득은 애초에 기본소득에 대한 ‘기본’부터 좀 이상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일단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아무데나 막 갖다 붙인다. 경기도에서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에도 습관처럼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럼으로써 기본소득을 자꾸 천박한 무엇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이 지사가 더욱 앞장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재난지원과 기본소득이 과연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기본소득을 무슨 구휼(救恤) 정책처럼 뒤섞어 버렸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자꾸 ‘소비’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기본소득은 수요 부족에 따른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생기는…”이라고 설명하고(지난해 6월 7일 이재명 페이스북), “어느 나라도 잘 쓰도록 지원해서 망하는 경우는 없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하는데(2월 7일 페이스북), 2017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문제가 됐던 그 이론과 비슷하다.

2017년 2월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에서는 기본소득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는 그림을 하나 제시한 바 있다. 누군가 호텔을 10만 원에 예약하고, 호텔은 가구점에서 10만 원에 침대를 사고, 가구점은 10만 원에 치킨을 사먹고, 치킨집은 문방구에서…하는 식으로 환형(環形) 순환 구조를 그려 보여줬다. 그리하여 결국 그 ‘누구’가 호텔 예약을 취소했는데, 그렇더라도 10만 원이 돌고 돌았으니 경제는 결과적으로는 성장했다는 기가 막힌 이론이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그런 식이라면 돈만 찍어 막 돌리고 돌리면 되는데 어느 누가 경제정책에 실패하겠나. 지금까지 전 세계 모든 정치인은 ‘그 쉬운 것’도 모르는 바보들이었단 말인가.

일단 쓰세요, 갖다 쓰세요, 그러면 경제는 살아납니다! 이것이 이재명식 기본소득이다. 미래 사회의 변화와 발전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온 기본소득 제도가 아니다. 그저 표를 얻고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이재명의 정치적 이미지만큼이나 가벼워 보인다. 그의 소비 이론은 경제학의 기본에서 너무도 터무니없이 벗어나 있다. 반박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고도의(?) 전략 아닐까 싶을 정도다. 현실 정치에서 어찌 그런 ‘화수분’ 이론이 태연히 등장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이 많아 그렇다”면서 국가혁명을 일으켜 그 돈을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주겠다는 허경영 씨의 주장이 더욱 그럴듯해 보인다.

‘차르’가 넣으라니 넣긴 넣었는데…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기본소득 문제에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생산력이 극대화되고 인간의 일자리는 갈수록 위협받고 있으며, 그것이 ‘풍요 속 빈곤’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이를 해결하는 방도로 빈곤층에 ‘기본적인 소득’을 줘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존 복지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이다. 여기서 약간 스펙트럼을 달리해 기존의 난잡한 복지제도를 ‘깔끔하게’ 통폐합하는 차원에서 기본소득 제도를 실시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있다.

기본소득을 자꾸 이렇게 소비정책이나 구휼정책, 복지정책 정도로 생각하니 방향이 어긋나고 국민들이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 아무렴 좋다. 특정한 정책이 반드시 ‘정확한’ 출발선을 갖고 있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같은 빵을 먹더라도 누군가는 배가 고파 그 빵을 골랐고, 누군가는 모양이 예뻐서, 누군가는 가격이 적당해서, 또 누군가는 제조사 때문에….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기본소득도 동상이몽처럼 서로 다른 사고의 출발점을 지닐 수 있다. 앞에서 이재명식 기본소득을 비난했지만, ‘소비’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아가 어쨌든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폈다는 이유만으로 이재명식 기본소득 또한 칭찬할 만하다. 오히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러한 기본소득을 제대로, 혹은 진지한 자세로 논의할 준비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슈와 열망은 꿈틀거리는데 한쪽은 정략의 대상으로만 삼고, 다른 한쪽은 무조건 싫다고만 천대한다.

앞으로 되돌아와서, 국민의힘이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을 첫째로 내세웠지만 도대체 그것이 맨 앞에 왜 있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차르’(김종인의 별명)가 넣으라니 넣긴 넣었는데 기본소득이 뭔지 모르거나 그런 걸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국민의힘 의원이 태반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실시할 것인지 논의한다는 소식 또한 들은 바 없다. 김종인이 비대위원장직을 그만두고 나갔으니 당권 경쟁과 더불어 ‘우클릭’ 차원에서 김종인의 흔적을 지우느라 급급할 테고, 기본소득도 그냥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혹은 아예 빼버린다든지.

野 만병통치약 된 ‘포퓰리스트’

어디 기본소득뿐이겠는가. 김종인이 지난 1년간 그나마 이끌어온 것들, 예를 들어 쓸데없는 이념 타령 않고 실리를 앞세운다든지, 과거 정권과 절연하는 의지를 보인다든지, 어떻게든 호남의 마음을 얻기 위한 서진(西進) 전략을 펼친다든지, 장외투쟁을 지양하고 원내에 집중한다든지, 중도 표심을 공략한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도로 아미타불이 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이 그들을 한두 번 경험했던가. 더는 기대조차 않는다. 그저 민주당이 싫은 마음이 그쪽으로 옮겨가는 것일 뿐.

국민의힘이 앞으로 지워버릴 게 뻔한 기본소득이지만 이거 하나만 묻고 싶다. “기본소득은 과연 피해갈 수 있는 이슈인가?”

열망을 대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피할 수 없는 것’을 대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열망을 꺾어버리거나, 열망을 설득하거나, 다른 하나는 열망에 편승하거나. 국민의힘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미래다. 축복받아야 할 미래가 불안한 것은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이다. 미래를 준비하면서 미래에 앞서 도착해 있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미래의 뒤꽁무니라도 따라가야 ‘정치’일 텐데 한국 정치는 그 정도는 고사하고 아직껏 검새, 기레기, 적폐청산이나 운운하는 수준이다. 지난 대통령이나 지금 대통령이나, 대한민국 대통령은 그런 연극무대의 배우 같은 느낌이다. 간신히 대본이나 따라 읽는다.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과연 꺾을 수 있을까. “이래저래 해서 안 됩니다, 대안은 이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국민의힘 내·외부를 살펴보면 ‘안 된다’는 말만 하지 대안이 없다. 그저 ‘포퓰리즘’이라고만 윽박지른다. 과거에 시대를 제압하는 그들의 만병통치약이 ‘빨갱이’였다면 이제는 ‘포퓰리스트’가 돼가는 양상이다. 국민들이 왜 그것을 바라는지,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선도(善導)하거나 선도(先導)할 수 있을지 따위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무지한 국민’ ‘게으른 국민’ 취급만 하려 든다. 이런 정당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쭙잖은 제안을 하자면, 피할 수 없다면 선점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 일단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얼마든 좋은 방향으로 순치할 수 있다. 국민을 계몽하려는 정치, 국민과 싸워서 눌러 이기려는 정치는 결단코 성공할 수 없다. 설령 국민 상당수가 뭔가를 오해하고 있다고 한들, 잘못 알고 있다고 한들, 그들을 윽박지르는 방식으로는 개조할 수 없는 법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그런 좋은 훈련 기회가 될 것이다. 이재명 지사를 마냥 포퓰리스트라고 욕할 게 아니라, 국민의힘이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함으로써 이 지사를 ‘철없는 사람’ 정도로 만드는 것이 국민을 더욱 설득력 있게 이끌어가는 길 아닐까.

제대로 된 정부라면 벌써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우리의 일자리가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 실태를 조사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렇게 ‘밀려난’ 계층은 어떻게 구제할지, 그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검토,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어야 옳다.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인간의 일자리를 없애고 그것을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 대체한 경우 거기에 세금을 물린다든지(이른바 ‘로봇세’) 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할 시점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그럴 만한 능력도 의지도 없다. 밤낮 이상한 부동산 정책이나 스물 몇 번 반복하고 아파트 가격만 한껏 올려놓는 중이다. 미래에 대한 청년들의 기대와 희망을 아예 꺾어놓는 것을 ‘미래에 대한 준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기본토론’조차 되지 않는 나라

기본소득 논쟁이라니! 하긴 우리나라처럼 토론은 없고 오로지 승자독식, 다수의 횡포만 존재하는 정치,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에서 제도를 시행하면 그대로 가져와 베끼고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니 안 맞니, 사대주의니 실용주의니 하는 문제나 갖고 또 싸우겠지. 내가 너무 회의적인가? 이 나라의 정치는 많은 것에 대한 기대를 일찍 저물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본 토론’조차 되지 않는 나라에서 괜한 소리를 길게 썼다.

#기본소득 #김종인 #이재명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신동아



신동아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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