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공군 조종사 조기전역 비상

기량 절정 소령급 파일럿, 너도나도 민항(民航)행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6-03-03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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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대한 예산 들여 키운 조종사, 민항에 다 뺏긴다”
    • 정년 전역은 22%, 나머지는 모두 소령 전역
    • 민항 취업연령 제한이 조종사 조기전역 촉진
    • 민항행 주요 동기는 진급 적체와 가치관 변화
    • 공군, “민항 입사연령 상향조정해야”
    • 민항, “젊고 우수한 인재 선발해 오래 활용해야”
    공군 조종사 조기전역 비상
    “엄청난 국가예산을 들여 교육 다 시켜놓고 무슨 꼴인가. 난감하고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역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을 수도 없고…. 문제는 전역이 아니라 조기 전역이다. 정작 나가도 될 중령·대령은 남아 있고, 기량이 한창 무르익은 소령 조종사가 나간다는 게 문제다.”

    공군 전투비행단장을 지낸 예비역 준장 A씨의 탄식이다. A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요즘 공군 안팎에선 조종사의 조기 전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조기 전역의 주역은 비행 기량이 절정에 오른 것으로 평가되는 소령급 조종사. 소령 계급은 비행전력의 핵심인 편대장이나 비행대장을 맡고 있다. 그보다 상위 직책인 비행대대장은 중령 보직이다. 중령 이상은 지휘관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조종사 조기 전역 바람은 군 전력 약화 논란을 낳고 있다. 조기 전역하는 조종사는 대부분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민항(民航)회사에 취업하고 있다. 공군 일각에서 “공군에서 애써 키워놓은 조종사를 민항에 다 빼앗기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A씨는 조종사의 조기 전역과 민항 취업을 ‘국가적 손실’로 규정한다. 공군 계산법에 따르면 10년차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자그마치 87억원(2003년 기준). 이처럼 몸값이 비싼 조종사가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한창 발휘할 시점인 소령 때 군을 떠나 민항으로 몰려가니 A씨와 같은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A씨는 “민항에 취업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 공군이냐”고 개탄했다.

    공군 통계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역한 조종사는 매년 평균 87명(지난해엔 90여 명이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정년에 따른 전역은 22%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78%의 전역자는 모두 소령 이하 계급이다. 공사(공군사관학교) 출신의 경우 임관 후 10년이 지나야 소령 진급이 가능하고 의무복무기간이 1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신 전역자’의 대부분이 소령인 셈이다.



    군 장교의 전역률이 높아지고 전역 계급도 낮아지고 있다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공군 조종사처럼 유난히 소령 계급에 전역자가 몰려 있는 것은 특별한 현상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공군 조종사 전역실태를 살펴보면 조기 전역과 민항 취업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군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민항행(行)을 희망한 전역 조종사의 80%가 취업했다. 이들의 민항 선택에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지만, 민항사의 취업연령 제한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게 공군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민항, 만 40세 이상 안 뽑아

    민항사는 몇 년 전부터 군 출신 조종사의 취업 연령대를 만 42세 이하로 낮췄다. 그것도 공식적인 얘기일 뿐 실제로는 만 40세 이상은 뽑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교로 임관되는 나이는 만 23세(사관학교 기준)이고 36세가 되면 의무복무(13년)가 끝난다. 30대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있는 소령 계급 조종사의 전역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민항 취업 규정이 조기 전역의 촉진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민항사의 채용 방침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민항측 설명을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사기업의 인사정책과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기량이나 체력이 뛰어난 젊은 조종사를 뽑아 오랫동안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공군은 공군대로 할 말이 있다. 일부 전·현직 공군 관계자들의 걱정과는 달리 공군의 공식적인 견해는 ‘별 문제 없음’이다. 즉 인사적체 해소 차원에서 매년 일정 비율의 조종사 전역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전력 약화를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전역자의 대부분이 소령급이라는 점에 대해선 찜찜해하는 눈치다.

    과연 공군 조종사의 조기 전역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공군은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군 비행전력의 주축을 이뤄야 할 젊은 조종사들이 민항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붙잡아두기엔 진급 적체 등 인력구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공군 전력 약화가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그 정도로 키우기까지 들인 막대한 예산을 생각하면 국가적 손실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사 적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내보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다.”(예비역 소장 B씨)

    공군 조종사 조기 전역 문제에 대한 취재는 공군 내부의 제보에서 비롯됐다. 공군 고위인사인 C씨가 사석에서 이 문제에 대해 우려하면서 의견을 내놓은 것이 발단이었다. C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취재한 결과 상당수의 조종사, 그것도 비행전력의 핵심인 소령급 조종사가 매년 무더기로 옷을 벗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공군 출신 민항기 조종사들과 현직 공군 조종사들의 증언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한데,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들 증언의 공통점이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민항사는 취재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대한항공은 자료 제시와 더불어 자사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일반적인 현황과 관련된 질문에도 “인사 관련 사항은 말해줄 수 없다”며 지나칠 만큼 폐쇄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민항에서 군 출신 조종사라 하면 사실상 공군 출신을 뜻한다. 공군 외에 해군 조종사도 뽑긴 하지만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극소수이기 때문. 매년 군에서 40명가량을 채용하는 대한항공의 경우 해군 출신은 2~3명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는 모두 공군 조종사다. 그중에서도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 70% 이상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수송기, 지원기 조종사 순이다.

    아시아나, 군 출신 조종사만 채용

    대한항공의 조종사(기장, 부기장)는 2005년 12월 현재 1800여명이다(외국인 조종사 제외). 그중 공군 출신은 40%에 조금 못 미치는 670명 안팎. 공군과 대한항공 조종사협의회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지난 5년간 대한항공에 취업한 공군 출신 조종사는 2001년 42명, 2002년 47명, 2003년 35명, 2004년 31명, 2005년 32명으로 연 평균 37.4명이다.

    이에 비해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2001년에 45명을 뽑았고, 지난해엔 60명 안팎의 공군 조종사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의 조종사는 약 1000명. 그중 군 출신이 70%를 차지한다.

    아시아나항공에 취업한 공군 조종사가 더 많은 이유는 채용 경로가 군과 민간으로 이원화된 대한항공과 달리 전적으로 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에는 군 출신 외에 비행교육원을 통해 자체 양성한 조종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비율로 따지면 4대 6 정도로 군 출신보다 비행교육원 출신 조종사가 더 많다. 연간 100명가량의 신규 조종사를 선발하는데, 그중 군에서 40명 안팎, 비행교육원에서 60명 안팎을 뽑는다는 게 기본 인사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도 한때는 자체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조종사를 선발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자체 양성을 포기하고 거의 군 출신 조종사만 채용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특히 지난해의 경우 관례를 깨고 두 차례나 공군 조종사를 모집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민항의 공군 조종사 수요가 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생기면서. 대한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그 무렵엔 조종사가 모자라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고 한다.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한 이듬해 대한항공은 조종사 수요를 공군 출신으로만 채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제주도에 비행훈련원을 만들어 자체 양성을 시작했다. 조종훈련생이라 불리는 이들은 2년간 기초교육과 초·중등 비행교육 및 고등 비행교육을 마친 후 대한항공에 입사한다. 2004년부터는 대한항공과 계약을 맺은 항공대학교가 이들의 위탁교육을 맡고 있다. 교육비용은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입교생이 댄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민간인 조종사가 많은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군 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외국인 조종사의 경우 노조가 일정 비율 이상 뽑지 못하게 견제하고 있어 공군 외에는 사실상 안정적인 공급원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한항공의 외국인 기장 비율은 전체 기장의 약 20%. 단체협약에 따르면 ‘회사는 외국인 조종사 수급계획 수립시 조합과 사전 협의’해야 한다. 또 2001년 6월 회사와 노조간 체결된 ‘외국인 조종사 인력운영 약속 이행서’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돼 있다. ‘외국인 조종사 수는 2001년 12월31일 기준으로 동결하고, 매년 점진적으로 감축하도록 하되 2007년 12월31일까지 그 수의 25~30%를 줄인다.’

    사전 조율로 탈락자 최소화

    공군 조종사의 민항 취업률은 매우 높은 편이다. 공군이 민항사의 선발 예정 인원에 맞춰 민항 취업을 희망하는 전역 신청자 수를 사전 조정해 탈락자를 최소화 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입사 경쟁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공군 출신의 경우 원서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거의 다 합격시킨다”고 털어놓았다.

    공군 소령 출신인 아시아나항공 D기장은 “어차피 군에 남아 있어 봤자 중령도 달기 힘든 실정”이라며 민항행을 결정하는 데 진급 문제가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생기면서 조종사 수요가 늘어 민항 취업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D기장은 조종사 조기 전역 문제에 대해 “군 인력구조에 비춰 어느 정도는 나가야 하지만, 다들 소령 때 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며 “군 수뇌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자기들 문제가 아니라는 안이한 인식으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공군의 인사정책을 비판했다.

    공군 고위직 C씨는 “젊은 조종사들이 앞날에 대해 희망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며 “진급을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하는데 TO(Table of Organization·정원)가 제한돼 있으니…” 하고 안타까워했다.

    공군에 따르면 조종사 진급률은 일반 장교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지난 5년간 진급실태를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소령-중령의 경우 일반 장교는 진급률이 42%인데 비해 조종사는 95%로 대부분이 진급했다. 중령-대령의 경우엔 격차가 더 벌어진다. 일반 장교 진급률이 17%에 지나지 않는 반면 조종사는 70%가 진급하고 있다.

    이 수치는 조종사가 공군에서 그만큼 우대받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뒤집어보면 그만큼 많은 조종사가 전역한다는 뜻도 된다. 전역자가 많을수록 진급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공군이 밝힌 대로 지난 5년간 한 해 평균 87명의 조종사가 전역했다면 전역률은 얼마나 될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 조종사 수를 알아야 한다. 공군은 군 전력이 드러난다는 이유로 조종사 숫자를 밝히기를 거부했다

    공군 조종사가 되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사관학교. 매년 180명(지난해부터 150명으로 축소)이 입교하는데, 중도 탈락자가 10% 남짓 발생하기 때문에 4년 후 임관하는 인원은 160명 안팎이다. 그중 절반가량이 조종사로 선발된다.

    두 번째는 ROTC 장교. 한국항공대 항공운항과에 입학해 3학년 때 공군 ROTC가 되는 방법이다. 졸업하면 곧바로 임관한 후 중등비행교육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공군 조종장학생 제도가 있다. 공군이 전국 4년제 대학 1, 2학년 학생들 중 조종사 지망생을 선발해 이들에게 학비를 지원한 다음 공군에 입대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졸업 후 공군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해 3개월 반 동안 장교 훈련을 받은 후 임관한다. 임관 후 초등비행교육과정에 들어간다.

    ROTC 및 조종장학생 출신 조종사는 각각 매년 20~30명씩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한 해에 얼마나 배출되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통계를 내기 힘들다. 사정에 따라 어느 해에는 아예 뽑지 않거나 임관 후 비행교육과정에서 자질 미달로 무더기로 탈락해 일반 장교로 특기가 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양쪽에서 한 해에 20~30명씩 선발된다고 가정하면, 공군에서 매년 배출하는 조종사는 사관학교 출신을 80명으로 잡을 경우 최소 120명에서 최대 140명에 달할 것으로 짐작된다.

    공사 출신 진급경쟁 심화

    매년 120~140명의 조종사가 탄생하고 87명이 그만둔다면 전역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관찰이다. 의무복무기간이 사관학교보다 3년 짧은 ROTC와 조종장학생 출신 조종사의 경우 조기 전역률이 높기 때문이다. 항공대 출신인 대한항공 기장 E씨는 “항공대 출신의 경우 대체로 의무복무기한 10년을 채우면 곧바로 전역한다”고 귀띔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임관 13년차 이상의 진급 경쟁은 사관학교 출신끼리의 경쟁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 현재 공군에 남아 있는 임관 13년차 이상의 조종사가 대부분 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종사 전역률이 매우 높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진급 적체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1990년 이전에 임관한 공사 OO기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엔 사관학교 입교생이 300명이나 됐다. 그중 250명이 임관했고 180명가량의 조종사가 배출됐다(수송기, 헬기 포함). 이 가운데 40%를 웃도는 인원이 민항으로 옮겨갔다.

    교관을 지낸 F중령의 증언에 따르면, 이 기수의 경우 의무복무 마지막 해인 임관 13년차에 전역 신청자가 가장 많았으며, 이후 해마다 5~10명씩 옷을 벗고 있다고 한다. F중령은 “전역을 너무 안 해도 문제”라며 “그렇게 많이 나갔는데도 아직 (중령으로) 진급하지 못한 조종사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중령 진급 대상자 중 15명이 진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관 12년차로 내년에 첫 전역기회를 맞게 되는 G소령은 “아직 나갈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면서 “나가는 사람들한테 고마워해야 할 처지”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G소령에 따르면 다들 진급 적체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리는 좁은데 사람은 넘치기 때문이다.

    공군본부 공보과와 전·현직 공군 조종사들 얘기를 종합하면, 사관학교 출신 조종사 전역자가 현 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2000년 이후다. 공군은 2사관학교 폐지가 결정된 해인 1983년부터 사관학교 정원을 200명대에서 300명대로 1.5배 늘렸다(2년제인 2사관학교는 1985년 7기를 끝으로 폐교됐다).

    입학 정원이 늘어난 첫 기수는 1987년에 임관한 공사 35기다. 이들이 의무복무기한인 13년차에 접어든 해가 2000년이고 바로 그해부터 전역자가 늘기 시작한 것은 사관학교 출신끼리의 진급 경쟁이 치열해졌음을 뜻한다. ROTC와 조종장학생 출신 조종사는 수도 적은 데다 대부분 소령 때 전역하기 때문에 중령 진급률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의무복무기한 채운 후 곧바로 전역

    공군측은 사관학교 정원 확대에 따른 후유증의 여파가 2008년까지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91년 이후 정원을 180명대로 줄였기 때문에 이들의 의무복무기한이 끝나는, 즉 전역이 가능한 2009년부터는 전역자 수가 지금보다 줄지 않겠냐는 희망 섞인 관측이다.

    하지만 이는 단면적인 분석으로 보인다. 조종사의 조기 전역에는 진급 문제 외에도 여러 가지 사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데다, 민항행을 위한 조기 전역이 조종사들 사이에서 ‘시대적 유행’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E부기장은 “조종사 전역은 민항사의 채용방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단적인 예가, 1998년과 1999년의 경우 외환위기 한파로 민항사가 조종사 채용 인원을 줄이자 전역자 수가 크게 줄었던 일이라고 한다.

    중령 진급 시기를 1년 앞두고 민항행을 선택한 대한항공 H부기장. 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공사) 35기 이후 기수의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많이 나가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예전엔 중령은 물론 대령 전역자도 민항에 취업할 수 있었다. 전역률이 높지 않아 조종사가 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민항에서 중령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전역) 결심이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민항에 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중령으로 진급하면 최소 3년을 더 복무해야 한다. 그 경우 민항 취업제한 연령을 넘기게 된다. H부기장에 따르면 몇 년까지만 해도 극소수이긴 하지만 중령 입사자가 있었다. 2001년엔 심지어 전역하면서 대령을 단 입사자도 한 명 있었다. 그때는 취업제한 연령이 만 43세였다.

    군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면 연금이 나온다. 경력 20년이면 만 43세의 고참 중령이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2001년엔 연금 수령자인 고참 중령이 한 명 입사하기도 했다. 2003년에도 중령 입사자가 한 명 있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대한항공에서 중령 입사자는 사라졌다.

    아시아나항공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아시아나항공 I기장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중령 입사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 공군 출신 중 수적으로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30대 중반이다. 특히 사관학교 출신의 경우 의무복무기한 13년을 채우자마자 전역한 조종사가 다수라고 한다.

    “가족이 내 편 아니다”

    예비역 준장 A씨는 조종사들이 민항으로 몰려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는 군 생활에 비전이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진급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 다음이 가족 문제다. 조종사의 심각한 고민 중 하나가 가족이 자기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상대기가 잦다 보니 항상 갇혀 있는 분위기다. 반면 민항 조종사는 한 달에 반은 일하고 반은 쉬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더 자유롭고 보수 좋고 비전 뚜렷하고… 민항행 유혹을 떨치기 힘든 이유다.”

    대한항공 H부기장은 “요즘엔 아예 처음부터 민항 입사를 염두에 두고 사관학교에 입교하는 경우가 많다”며 민항행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민항행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진급 문제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라며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의무복무기한 13년을 채워 전역요건이 갖춰진 이후 심각하게 고민했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우선 진급 욕심이 문제였다. 중령이 되면 대령을 내다봐야 할 테고 대령이 되면 장군에 대한 희망을 품을 터였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진급 문은 급격히 좁아지고 진급이 안 될 경우를 생각하니 막막했다. 누적된 고민이긴 하지만, 가족에 대한 배려도 중요한 이유였다. 비상대기, 훈련 등으로 늘 매여 있다 보니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항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안정된 생활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또 민항에서 일하면서도 군에 있는 것 못지않게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한 점도 민항행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

    E부기장은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전에는 명예나 애국심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삶의 질을 따진다. 희생이나 조직보다는 개인적인 삶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민항행 바람이 불기 전엔 소령 때 전역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조종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공군 조종사에 대한 선망도 예전 같지 않다. 이런 가치관 변화가 진급 불투명에 따른 미래 걱정, 자녀 교육 걱정 등과 맞물려 조기 전역 풍조를 낳은 것이다.”

    공군본부가 전역을 신청한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역 동기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이 진급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적 문제다. 공군이 분석한 바로는 공군 조종사와 민항 조종사의 연봉은 꽤 차이가 난다. 같은 연차일 경우 공군 조종사 연봉이 민항 조종사의 54.6%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급여를 뒷받침하는 항공수당, 항공전력강화비 등은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 공군 조종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다.

    “연봉은 중요한 이유 아니다”

    그런데 정작 민항에 취업한 공군 조종사들은 “연봉 문제는 (민항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한항공 H부기장은 “공군 조종사의 급여 수준이 많이 향상됐고 복지제도나 시설도 개선됐다”며 “금전적 이유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민항행을 경제적 시각으로 보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E부기장도 “공군 조종사 급여는 웬만한 대기업체에 뒤지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현역 조종사 G소령은 “민항에 취업한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연봉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며 “연봉보다는 군에서의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전역하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대한한공 관계자도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지는 않는 걸로 안다”며 공군의 계산법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수당까지 합쳐 부기장 평균 연봉이 8800만원인 데 비해 공군 고참 소령은 6500만원가량 받고 있다는 것. 또 월 급여만 보더라도 13년차의 경우 공군이 월 200만원, 대한항공이 월 260만원으로 공군측이 주장하는 것만큼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군측 계산이 맞든 대한항공측 분석이 맞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연차가 오를수록 양측의 연봉 차이 비율이 커진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관계자의 분석은 부기장 연봉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기장과 부기장의 연봉은 제법 차이가 많이 난다.

    공사 출신의 경우 입사 후 17개월이 지나면 부기장이 된다. 또 부기장에서 기장이 되는 데는 10년 안팎이 걸린다. 아시아나의 경우엔 조금 빨라 입사 6년차에 기장이 된다. 이는 공군 조종사들이 연봉이 대한항공보다 낮은데도 아시아나항공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 I기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장과 부기장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부기장 연봉은 최소 7500만원, 최대 1억1000만원으로 평균 8800만원이다. 반면 기장은 최소 9900만원, 최대 1억7000만원으로 평균 1억2000만원이다. 대우도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2년에 한 번씩 기회가 주어지는 배우자 동반 해외여행(4박 호텔비 및 체류비 200달러 지급)의 경우 기장 부부의 자리는 퍼스트 클래스지만 부기장 부부는 비즈니스 클래스다. 또한 급여의 45%를 차지하는 비행수당 격차도 커진다.

    민항 조종사가 급여 외에 받는 성과급도 공군 조종사와의 연봉 격차를 벌리는 데 한몫한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지난해 기본급의 30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조기 전역 문제에 대해 공군과 민항측은 상반된 시각을 갖고 있다. 예비역 준장 A씨는 “해결책은 민항이 양보해 공생의 길을 찾는 것뿐”이라며 조종사 취업 연령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주장으로는 45세까지는 뽑아야 한다는 것. 45세면 고참 중령이거나 신참 대령이다. 임관 후 20년 이상을 근무했으므로 전역할 경우 연금 수령도 가능하다.

    “군 진급 적체 해소에 기여”

    공군도 조기 전역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적정 수준의 조종사를 유지하고 있고, 공군 전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해법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공군본부 관계자는 “정부 관계부처와 협조해 (민항 취업제한 연령을) 49세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49세라면 연령 제한을 없애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반면 민항측은 일방적 양보는 곤란하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공군 조종사가 민항에 입사하기 위해 조기 전역하는 바람에 군 전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국가경제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반론을 폈다.

    “군 전력도 중요하지만 민간경제도 중요하다. 군의 우수한 조종인력이 민간 항공사에 들어와 항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민간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것은 국가경제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오랫동안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인사원칙이다. 항공사도 마찬가지다. 기왕이면 기량과 체력이 뛰어난 젊은 조종사를 뽑고 싶은 것이다. 또 공군 인사적체 해소에 기여하는 면도 있지 않은가. 국가경제 차원에서 조종사 수급계획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민항측 논리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 기장이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감안하면, 취업 연령을 지금보다 올릴 경우 기장으로 활용할 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부기장 정년은 55세이고 기장 정년은 60세다. 예컨대 45세의 공군 조종사가 입사할 경우 현 인사구조에서는 부기장을 거쳐 기장이 되는 데 최소 12년이 걸리므로 빨라야 57세에나 기장이 될 수 있다. 3년 후엔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효율적인 인사라는 얘기다.

    공군 출신 대한항공 조종사들도 ‘친정’인 공군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E부기장은 “연령제한 철폐나 상향조정은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고 회사 방침에 공감을 나타냈다. H부기장은 진급적체 해소와 조종사 처우 개선 등 공군 내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군 조종사의 민항행 바람은 공군이나 민항사의 인사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항사는 공군 출신, 특히 사관학교 출신 조종사에 대해 승진 기간을 단축하는 등 우대하고 있다.

    이들이 노조에서 탈퇴해 조종사협의회라는 별도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을 회사측은 내심 반기고 있다. 대한항공조종사협의회와 아시아나경력조종사협의회가 그것이다. 이 탓에 두 회사 모두 조종사들이 노조와 협의회로 양분된 상태다. 말할 것도 없이 노조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공군 출신 조종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의 타격이 크다. 조합원이 3분의 1가량 줄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공군 출신만 뽑는 데는 노조 무력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조종사 조기 전역 문제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 공군과 민항사. 과연 솔로몬의 해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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