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윤수의 종횡무진 공간 읽기 ⑤

서울 광화문광장

소음과 차와 국가상징물에 갇힌‘통제의 섬’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서울 광화문광장

2/4
서울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 북쪽 끝 부분에 너비 17.5m, 길이 162m 규모로 조성된 꽃발 ‘플라워카펫’.

서울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광화문 앞 좌우의 길들은 육조 관아 등이 위치한 국가 중심 거리였으며 이것이 일제강점기에는 주요기관의 철거와 함께 차도로 사용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광화문 앞 세종로는 국가권력이 전적으로 지배하고 점유하는 독점적인 공간이었다. 군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일제의 강압통치와 이후 권위주의 지배체제가 오랜 기간 광화문을 독점했다. 그곳은 밤낮으로 차량이 질주하는 무기질의 대로가 되었으며 어쩌다가 차량의 흔적이 끊긴 날이면 어김없이 권위주의적 국가이념을 과시하는 열병식과 행렬과 이벤트가 벌어졌다. 동원된 군중이 그 좌우에 늘어서서 만세를 불러야 했다.

그랬던 광화문과 세종로가 새롭게 조성되어 개장된다는 것은 일단 그 자체로 ‘역사성 복원’ 운운할 것도 없이 역사적인 사건이다. 마침내 2009년 8월1일, 총면적 1만9000㎡의 광화문광장이 열렸는데, 아뿔싸, 이 공간은 그저 폭 34m, 길이 557m의 길쭉한 공간일 뿐 그 어디에서도 ‘광장’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조형의 개념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서울시가 기본적인 개념으로 내세운 ‘역사성 회복’이라는 당위는 널찍하게 조성되는 광장 곳곳에 역사 상징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실현됐다. 기존의 이순신 장군 동상에 더해 세종대왕 동상이 설치되고, 역사문화와 관련된 전시관이 들어서는가 하면, 해치마당, 역사 물길, 해치상 원형 등을 배치해 역사복원의 장으로 삼는다는 게 서울시의 기본적인 조형개념이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16차선 차로 가운데 6개 차로를 걷어내고 남북으로 길게 광장이 새로 조성됐다.

흘러간 왕조를 상징하는 몇 가지 시설물을 설치하는 게 과연 ‘역사성의 회복’이라고 부를 만한 작업인지는 의심스럽지만, 그 점을 유보한다 하더라도 ‘역사성의 회복’을 위해 동원된 이미지와 설치된 조형물은 오늘의 세련되고 신선한 감각의 바탕 위에 조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저 1970년대의 국가주도형 공간구성에 약간의 화장을 더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서울시의 조성사업에 일정한 개념과 맥락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2007년 12월에 광화문광장 조성사업 계획안을 발표하면서 광화문광장을 ‘인간중심 공간’ ‘보행 네트워크 공간’ ‘자연공간 조망 공간’ ‘역사 문화 체험 공간’이라는 네 개의 관점에서 조성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같은 개념은 현실의 광화문광장에서 일정한 형태로 실현됐다. 북악산을 정점으로 널찍한 중앙대로가 뻗어 나와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우람한 기틀을 광화문광장은 그 한복판에서 크고 작은 조형물로 변주해낸다. 광장 좌우에는 수심 2cm, 폭 1m, 길이 365m의 ‘역사 물길’이 조성되어 있고, 동편 바닥돌에는 조선왕조에서부터 시작해 실질적인 공사가 진행된 2008년까지 이르는 기간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새겨져 있다. 서울시 측이 영구불변의 고정형 시설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시적인 이벤트도 아니라고 밝힌 광장 북쪽의 ‘플라워카펫’에는 22만4537송이의 꽃이 만발해 있다. ‘224537’, 이 숫자는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 10월28일에서 광화문광장 개장일인 2009년 8월1일까지의 날수가 된다.

그럼에도 조선 초기, 피비린내 나는 정치지형이 안정된 후 등장한 문화정치의 구현자 세종대왕이 오늘날 광화문광장에 임재해 ‘백성을 어여삐 여겼던’ 그 심정으로 보신다면 어떨까. 우선 과도하게 치장된 국가주의적 장식물이나 서울시정을 홍보하기 위한 크고 작은 시설물부터 제거하라고 지엄하게 명령하지 않으실까. 그런 우려가 들 만큼 광화문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중앙분리대에 가깝고, 또한 서울시정의 홍보공간에 가깝다.

광화문광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볼일 대신에, 광장에 가야겠다는 작은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광장으로 가기 위해 우선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지시 사항은 광장에 이르는 첫 단추가 꽤나 어렵게 꿰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광장 그 자체에 볼일이 없다면 굳이 좌우로 신나게 달리는 차량을 주의해가면서 횡단보도를 건너 그 널찍한 공간으로 걸어갈 필요가 없다.

군데군데 마련된 신호등이나 건널목을 건너서 광화문광장으로 가면, 이제부터는 광장의 아래쪽에서 위쪽까지 혹은 그 반대로 걸어야 한다.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편안하거나 안정된 심리상태를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저 광화문 앞까지 ‘걸어가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뒤로 배치되어 있는 벤치에 앉아보자. 우선 등 뒤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차량의 소음을 견뎌내야 한다. 개장 초기와 달리 차량과 광장을 확실히 구분하는 안전장치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급박한 사고가 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도심 한복판에서 바로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불편한 차량의 소음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연이나 공해는 차라리 둘째 문제다. 거대한 차로 한복판에 광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또 그 한복판에는 거대한 동상 두 개가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끝없이 샘솟는 분수도 있다.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그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 온몸을 적시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연히 뒤로 물러서게 되는데, 마침 그곳에 벤치가 마련돼 있다. 등 뒤에서 차량들이 질주하는 그 위치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쓴 것 같은, “이글거리는 광장의 열기에서 빠져나와 어스름한 황금빛 성전에 들어서서 그는 자신이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던 소년을 발견했다”는 풍경이란 적어도 이 광화문광장에서는 도저히 이뤄질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화문광장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차량 소음과 분수 물줄기를 피해) 걷게 된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그 보행과정에 시선을 좌우로 돌리면 수십년의 근대화 개발과정에서 형성된 거대한 건물들이 압도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북쪽을 향해 걷다보면 우측으로는 교보빌딩을 시작으로 방송통신위원회·KT 건물과 주한 미대사관, 문화부 건물이 이어진다. 좌측으로는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가 늘어서 있다. 모더니즘과 국가주의가 맹렬하게 팽창해 형성해낸 이 모든 건물은 사람들의 접근이나 시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대로 반사하거나 뱉어내거나 차단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일정한 규모의 경찰병력이 근무를 서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광화문광장 한복판에도 순찰을 도는 경찰들이 있다.

그들의 기본적인 임무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광장 한복판에 순찰을 도는 경찰이 있고 그 바깥으로 각종 시설과 건물을 호위하는 경찰 병력이 있다는 것은 광화문광장이 ‘만남, 의견 교환, 산책, 휴식’(프랑코 만쿠조)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은유한다.

2/4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목록 닫기

서울 광화문광장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