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산 백석동 모델하우스단지.
거실이나 안방이나 서재나 욕실에 들어서면 공통적으로 ‘장식용입니다’ 혹은 ‘옵션 상품입니다’ 같은 인상적인 문구가 정중히 인사한다. 어떤 모델하우스에는 ‘만지지 마시오’나 ‘가져가지 마시오’란 문구도 적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투박한 경고가 드물다. 아무튼 모델하우스에 세팅된 인상 깊은 소도구들은 대개 ‘장식용’이거나 ‘옵션 상품’인데, 이는 모델하우스 전체가 미래로 한없이 유보된 꿈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모델하우스 자체가 장식용이며 수많은 옵션으로 구성된 기계장치인 것이다.
아파트. 이제는 이 한반도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이 되었다. 산하 도처에 아파트 아닌 곳이 없으며, 지금은 비록 공터이거나 야트막한 산이라 해도 가까운 시일 내에 모조리 아파트로 뒤바뀔 것이다. 높은 산을 깎고 너른 바다를 메워 아파트를 짓는 시대가 아닌가.
1970년 이 한반도의 아파트는 겨우 4만2000가구로 전체의 0.7%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30년 만인 지난 2000년에는 523만8000가구로 36.8%까지 증가했다. 2000년 이후 해마다 40만~60만가구가 공급되어 2009년 12월 현재 총 628만5201가구로 급증했다. 이 거대한 물량의 생산과 구매와 소비의 정점에 모델하우스가 있다.
국내에 모델하우스가 처음 들어선 것은 1969년 서울 한강변의 동부이촌동 한강아파트 때 일이다. 1957년 중앙산업이 고려대 부근에 종암아파트를 지은 것으로 아파트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모델하우스는 10년쯤 지나서 등장한 것이다.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1964년의 마포아파트(현 도화동 삼성아파트 자리)나 최초의 고층아파트로 불리는 1967년의 한남동 힐탑아파트까지만 해도 모델하우스의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파트=중산층 주거지’ 인식의 확산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 차원에서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꿀 정책적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아파트 역사 초기의 10년 동안 아파트는 시민들의 전통적인 주거 개념을 넘어서지 못했다. 자기가 사는 거실 위에 다른 가족의 화장실이 있다는 데 대한 거부감은 물론 수도, 위생, 엘리베이터, 쓰레기 처리 등의 시설 문제가 완벽하게 선결되지 않았던 탓에 주택 공급 물량을 확대하고 이로써 구도심을 ‘개선’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동부이촌동의 한강아파트 모델하우스다. 1969년의 일이다. 공무원아파트, 한강맨션, 한강외인, 한강민영아파트 등 4단계 개발과정을 통해 형성된 이 단지는 총 3220가구로 서민형 크기에서 최대 55평형까지 갖춘 복합 단지였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서민들이 다닥다닥 붙어사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었는데 정부는 이 개념을 불식하고 ‘중산층 주거단지’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학교, 상가, 공공시설까지 적절히 배치했으며 고위직 공무원을 입주시키는 전략까지 추진했다. 이와 같은 단지 배치와 중산층 거주라는 개념은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단지 조성’의 개념적 원형이 되었다. 그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모델하우스를 설치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분양 현황판, 지역 안내도, 모형 등을 보여주는 정도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