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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산업 ‘갑질’ 논란 속 쫓겨나는 상인들

‘도시재생 후보지’ 용산전자상가

  • 김건희 | 객원기자 kkh4792@hanmail.net

나진산업 ‘갑질’ 논란 속 쫓겨나는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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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개월짜리 임대차계약에 불안한 상인들
  • ● 건물주 살리는 도시재생?…“박원순 ‘서민’ 맞나”
  • ● 구성원 목소리 반영 못하고 공모 중심 사업 진행
  • ● 서울시 “2월 사업지 선정”, 용산구 “‘젠트리피케이션’ 막겠다”
‘도시재생’ 사업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민선 2기 핵심 공약이다. ‘뉴타운’ 사업이나 기존 재건축은 건물을 철거한 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신축하면서 온갖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도시재생은 구성원이 주도해 낡은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도시재생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용산 일대에선 구성원 간 불협화음을 넘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건물주가 구성원을 쫓아내려 하는데, 이런 곳에서 도시재생 사업 취지대로 건물주와 구성원 간 상생을 도모할 수 있겠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논란이 벌어지는 곳은 서울 지하철 용산역 서부에 위치한 용산전자상가 내 나진상가 일대. 용산전자상가는 나진상가, 나진전자월드, 전자랜드, 전자타운, 원효전자상가, 선인상가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나진상가는 총 9개 건물(나진상가 10~13동, 15동, 17~20동)에서 컴퓨터, 휴대전화, 전자기기, 조명기구를 판다. 용산전자상가 중 규모가 제일 크다.

용산전자상가가 서울시 2단계 도시재생활성화지역 후보지 28곳 중 하나로 선정된 것은 지난해 6월. 11월부터 구성원이 주도하는 ‘소규모 재생사업’이 시작됐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 소규모 재생사업에 예산 2000만 원을 지원했다.





박원순 시장 핵심 공약

서울시가 개설한 도시재생 거버넌스 구축 사이트 ‘서울시 도시재생 대외공론화(www.seoulforum.net)’에는 용산전자상가의 도시재생 활동이 기록돼 있다. 지난해 봄 서울시와 용산구, 도시재생 대행 역할을 맡은 (사)뉴용산거버넌스, 각 상가를 대표하는 용산전자상가연합회 임원진을 중심으로 이른바 ‘용산전자상가 거버넌스’가 만들어졌는데, 회의 안건에 따라 건물주인 나진산업 이사 정모 씨와 건축가 및 마을운동가 등 네트워크를 연계하는 ㅅ도시계획 건축사무소 직원, 컨설팅 단원으로 활동하는 ㄷ대학 도시지역계획과 교수 홍모 씨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난해 지역 아이디어 캠프 회의를 비롯한 여러 차례 모임을 가졌다.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관계자는 “소규모 재생사업은 본 사업을 시작하기 전 일종의 ‘준비 단계’로, 구성원의 도시재생 사업 역량을 살펴보려는 것”이라며 “이를 근거로 2월에 도시재생 사업지역을 최종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용산 일대에서 추진하는 소규모 재생사업은 △용산전자상가 방송국(Pod Cast·팟캐스트) △디지털랩(Digital Lab) 조성 △용산전자상가 홍보 동영상 제작 등 3가지. 그중 지난해 11월 25일 개국한 팟캐스트는 ‘상인이 주도하는 방송국’을 표방한다. 구성원 참여를 강조하는 도시재생 ‘철학’에 따라 상인 중심으로 소규모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나진상가상인연합회장 장모 씨는 “도시재생 후보지 대부분이 거주지여서 주민들 간 이해관계가 달라 제대로 논의되지 않지만, 용산전자상가는 상가마다 상우회(商友會)가 있고 협업이 잘된다. 지난해 사업 발표회 때 용산구청 공무원과 (사)뉴용산거버넌스 등 현장 전문가, 용산전자상가연합회 임원들이 티셔츠를 맞춰 입고 협동심을 발휘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 회장의 ‘자랑’과 달리 기자가 직접 만난 상인들은 ‘행정기관과 연합회 그들만의 재생사업’이란 반응이다. 소규모 재생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팟캐스트 운영(300만 원)과 디지털랩 조성(900만 원), 홍보 동영상 제작(800만 원)에 예산이 책정됐다는 말에는 ‘금시초문’이란 반응이었다. 상인 박모 씨는 “올 들어 첫 월례회의 자리에서 용산전자상가가 도시재생 후보지로 선정됐고, 사업의 하나로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며 “재개발처럼 불도저로 건물을 싹 밀어버리고 새로 건물을 짓는 건 아니라던데,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상인에게 도움이 되느냐”고 의아해했다.

용산구에 따르면, 도시재생 사업 공청회와 실태조사 등 의견 수렴 절차는 본 사업인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되면 진행한다. 용산전자상가처럼 후보지 단계에선 의견 수렴 과정을 따로 거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인들에게 도시재생의 취지와 내용을 알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설명회와 실태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상인들은 “상인이 배제된 채 용산전자상가가 후보지로 선정됐고, 소규모 재생사업에 상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진상가연합회 상인회에서 임원을 맡은 한 상인도 “용산전자상가 거버넌스는 실제 상인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들은 상인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취지를 설명하고 아이디어를 모으기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걸 알고 거버넌스를 구축할 때부터 ‘문화 자본’을 가진 전문가를 중심으로 공모 사업을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구성원의 참여보다는 대학교수 등 전문가 중심의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부연이다.


商人 목소리 반영 못해

기존 재개발은 주민들이 토지나 주택 소유권, 거주 형태에 따라 분양권을 배분하기 때문에 주민 자격은 재산권이나 거주 형태로 판가름 났다. 반면 도시재생은 직접적인 개인 자산보다는 공공 인프라나 지역 경관, 주민 공모사업 등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다 보니 도시재생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문화 자본’을 가진 이들이 중심이 된다. 도시재생을 연구하는 한 연구원의 설명은 이렇다.

“주민이나 상인 등 구성원과 문화 자본을 구축한 이들 간에 ‘과연 구성원이란 누구인가’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다. 도시재생은 상생, 협업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이런 가치는 하루아침에 공유되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갖지 않은 채 공모 일정에 쫓겨 사업을 추진하니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용산전자상가 도시재생이 파열음을 내는 데에는 상가 건물주인 나진산업과 상인들 간의 갈등도 한몫했다. 상인들은 “나진사업이 다양한 방법으로 상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내쫓으려 하면서 구성원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재생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된다면 임대료만 오르고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밖으로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상인 김모 씨는 “‘서민 시장’이라던 박원순 시장이 서민은 내쫓고 건물주 배만 불리는 도시재생 사업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상인들의 속사정은 이렇다. 나진산업은 2016년부터 그동안 매년 1년 단위로 연장하던 임대차계약 기간을 3개월로 바꿨다. 지난해 상반기에 나진상가 12동과 13동을 중심으로 ‘3개월짜리 임대차계약’이 체결됐고, 하반기부터 나진상가 전체로 확대됐다고 한다.  

지난해 9월과 12월 두 차례 ‘3개월 점포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상인 이모 씨는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정상적인 상업 활동은 물론 시설투자 같은 장기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은 나진산업이 임대차 계약 기간을 3개월로 변경한 이유로 올해 용산역 앞에 들어설 앰배서더 호텔 용산을 꼽는다. 나진상가연합상인회 관계자의 말이다.

“나진상가는 30년이 지난 건축물이라 보수만으론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용산역세권에 면세점과 초고층 관광호텔이 준공되는데, 나진산업은 호텔에서 거리가 가까운 12동과 13동 건축물을 단장해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업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 일부 상점을 공실로 내버려두고, 계약기간을 3개월로 확 줄여서 상인들을 내보내려는 전략이다.”

일부 상인들은 임대차계약 기간 3개월 체결에 대해 ‘보이콧’을 논의했지만 ‘상가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과 ‘3개월 임대차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임차인이 불리할 것’이란 불안감 때문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나진상가 상인 박모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3개월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 계약”

2016년 11월 3일 나진상가연합 상인회가 나진산업에 임대차계약 기간 3개월 변경 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청하자 나진산업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사는 임대차계약 기간을 3개월씩 연장하는 방법을 제시하였으나, 구체적이고 확실한 계획이 확고해지지 않는 이상 기존 임대 계약에 조금도 어긋나는 요구를 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며, 불안해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업을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해 드리도록 노력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진상가의 답변과 달리 기자가 나진상가를 찾은 1월 2일 오후 나진상가 13동 지하 1층은 안이 텅 빈 채 문이 굳게 잠긴 상점들이 줄을 지었다. 상점 유리문에는 ‘임대 상담’ ‘입점 준비’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나진상가 13동에서 구름다리를 건너 도착한 12동에도 군데군데 빈 가게가 보였다.

나진상가 12동 상인은 “지난해 몇몇 상점이 나갔지만 새 임차인은 아직 안 들어왔다. 적극적으로 임차인을 들여와도 상가가 활성화될까 말까 한데, 왜 상점을 공실로 놔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진상가 10동부터 20동까지 문 닫은 상점이 꽤 보였다. 교차로에서 나진상가를 바라보니 유동인구가 많은 10동과 12동 건물에 자리 잡은 대형 상점이 비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교차로 횡단보도 바로 앞 목이 좋은 상가였다.   

상인들은 “15년간 영업한 롯데리아 용산전자상가점이 나진산업으로부터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후 1년 6개월간 법원 조정기간을 거쳐 결국 지난해 12월 26일 영업을 종료했다”며 “이로 인해 ‘나진산업 갑(甲)질’ 논란이 일었고, 이 과정에서 나진산업이 임차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입을 모았다. ‘터줏대감’인 롯데리아 용산전자상가점 폐점이 상인들에겐 큰 충격인 듯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롯데리아 용산전자상가점 전 점주 김모 씨는 2001년부터 영업을 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5년 전 이병두 나진산업 회장이 우리 부부에게 ‘평생 이곳에서 롯데리아 용산전자상가점을 운영해 나진상가를 방문하는 쇼핑객에게 편의를 제공해달라’고 했다. 이전 임차인에게 권리금 5억원을 지급했다. 이후 약 10억 원을 들여 시설투자를 했고, 최근에도 1억 원 넘게 투자해 새 장비를 설치했는데 계약을 해지한다니 얼마나 억울한가.”

현재 나진산업은 와병 중인 할아버지(이병두) 대신 손자가 대표이사를, 아들이 부회장을 맡고 있다.

나진산업 측과 매년 임대차계약기간을 갱신해오던 김씨는 그러나 2015년 1월 19일 ‘갱신 계약이 불가능해 2015년 6월 30일자로 점포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증명을 받았다고 한다. 김씨가 반발하자 나진산업은 2015년 7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명도소송을 냈고, 조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26일 점포를 닫았다. 법적 투쟁을 통해 1년 반가량 영업을 지속한 것이다. 폐점을 앞둔 김씨는 12월 9일 매장 밖에 ‘현수막(사진)을 내걸었다. 나진산업은 김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현재 이 사건은 서울용산경찰에서 조사 중이다.



“피해 알리니 명예훼손…”

그는 “폐점하는 이유와 그간의 사정을 거짓 없이 인근 상인들에게 알리는 게 ‘공공의 이익’이라 생각했다. 상가 구성원들이 알아야 나처럼 당하지 않으니까. 직원과 아르바이트생 32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내몰린 것도 억울하지만, 아버지(이병두 회장)가 고령으로 몸져누우니, 하루아침에 신의를 저버리는 나진산업의 태도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나진상가 상인 이씨는 롯데리아 용산전자상가점 폐점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나진상가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도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마당에 소상인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며 “이런 지역에서 무슨 구성원이 참여해서 삶의 질을 높인다는 도시재생을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예산 낭비다”고 말했다.

나진산업 측에 임대차계약 기간을 3개월로 변경한 이유와 상점을 공실로 두는 이유를 물었지만 “밝힐 게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나진산업 임대팀 관계자는 “임대차계약 기간을 3개월로 변경한 것은 내부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3개월 임대차계약 기간과 일부 점포의 폐점, 건물주와 상인 간의 소송으로 상인들이 불안에 떠는 상황인데 용산전자상가 도시재생은 후보지 선정 자체가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상인들이 “건물주 배만 불리는데 세금을 쓴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용산전자상가 거버넌스 관계자는 “그동안 이런 상황을 ‘쉬쉬’ 했다. 만약 서울시가 이 상황을 알게 된다면 용산전자상가의 도시재생 최종 사업 확정은 어려울 거다. 이런 곳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적합한지는 서울시가 판단할 사안”이라고 했다.

용산구와 서울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용산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건물주가 임대차계약 기간을 단축하거나 임대료를 올리는 것을 기초자치단체가 제재하기는 어렵다. 다만 건물주와 상인 간의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 도시재생의 취지인 만큼 독소 조항을 신설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방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도시재생 최종 사업자인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31일 나진상가에서 벌어지는 일을 언급한 민원이 접수돼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백광진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재생정책과 팀장은 “소규모 재생사업이 후보지 구성원들 역량을 키우는 사전 단계일 뿐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올 2월 중에 도시재생 사업 지역을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도시재생에 대한 상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광지로서의 용산전자상가 도시재생이 아닌 지역 상인의 일상과 사회경제적 활동의 기반이 되는 장소로서의 지역 재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개발 사업이 아닌, 구성원의 참여가 필수인 도시재생은 누구를 위한 사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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