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베이징 왕징 지역의 농민공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빵 한 조각을 입에 문 채 일터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4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 중국에서 농민공이 가장 많은 광둥(廣東)성의 성도 광저우(廣州)역 광장. 이미 장거리버스 등 교통편이 끊어진 상황이지만 여기저기서 옷가지와 이불 등 봇짐을 멘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주름이 깊이 팬 이들의 얼굴엔 저마다 수심이 가득했다. 모두 경제위기로 기업이 도산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농민공(農民工)이다.
최근 중국에서 이런 농민공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판샹차오(返鄕潮)’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광저우역 광장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농민공들로 초만원이었다. 자정이 넘으면서 역 청사가 문을 닫자 이들은 역 광장에서 골판지나 신문지를 깔고 아무렇게나 누웠다. 아침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역 주변엔 하룻밤에 20~30위안(약 4000~6000원)씩 하는 여관이 있지만, 한 푼이 아까운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농사는 이미 친척에게 맡겼고 고향에 돌아가도 할 일이 없는데….”
이날 역 광장에서 만난 후베이(湖北)성 출신의 왕훙(王宏·48)씨는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며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내쉬었다.
8년 전부터 광저우시의 한 가죽가방 회사에서 숙련공으로 일했던 왕씨 부부는 최근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2년 전 데려온 아들까지 세 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동안 못 받은 임금만 무려 1만5000위안(약 300만원). 날이 밝으면 고향 가는 열차를 탈 수 있지만 그의 가슴은 천근짜리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다. 친척에게 맡긴 3무(畝·1무는 667㎡로 1마지기와 비슷)의 경작지를 되돌려받아 농사를 지을 수는 있지만 이걸로는 연간 3000위안도 벌기 어렵다.
마음을 짓누르는 왕씨의 사연을 듣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미안해 50위안(약 1만원)을 건넸더니, 이를 본 주변 농민공들이 자기 사연도 얘기해주겠다며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이들에게는 50위안도 작은 돈이 아닌 셈이다.
#장면2
중국에서 농민공을 가장 많이 배출한 ‘농업대성’ 허난(河南)성의 타이캉(太康)현 반차오(板橋)진 허우시(后席)촌에 사는 한레이(韓雷)씨는 요즘 매일 이웃 주민과 마작으로 소일한다. 도시에서 농민공으로 일하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별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당초 광둥성 둥관(東莞)시에 위치한 바오라이(寶來) 전기공장의 농민공이었다. 대만 기업가가 투자한 이곳은 직원이 자그마치 5000명이나 되는 큰 공장이었다. 2000년 초부터 이곳에서 수위로 일했던 그는 지난해 5월 회사가 감원을 실시하며 해고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에 와도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얼마 안 되는 농사일은 아내가 혼자 해도 충분했다. 집에서 할 일 없이 놀던 그는 두 달 만에 다시 집을 나서 광저우와 둥관을 돌아다니며 직장을 구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중국의 경제잡지 ‘차이징(財經)’이 올해 초 전한 농민공 르포기사의 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