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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전쟁 40년, 비타민C와 글루타치온으로 희망 찾은 재미의사 투병기

“서양의학은 ‘반쪽 의학’, ‘해줄 게 없다’는 의사는 의사 아니다”

  • 하병근 의사, 의학박사(신경과학) byha84@hanmail.net

난치병 전쟁 40년, 비타민C와 글루타치온으로 희망 찾은 재미의사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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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막지한 진단법

난치병 전쟁 40년, 비타민C와 글루타치온으로 희망 찾은 재미의사 투병기

하병근씨(오른쪽)와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꼽는 부인 유정현씨.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대학원생 연구상을 수상하던 날 찍은 사진이다.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염증도 문제였지만 내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 것은 걷기조차 힘든 호흡기 관련 난치병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증상이 조금씩 나타났지만, 이마저도 중학교 시절 축농증 수술을 하다 우연히 발견됐다. 당시에도 의사들은 구체적인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폐렴 같다” “기관지확장증 같다”라고 언급할 뿐이었다.

난치병과 전쟁을 치르며 나는 자연스럽게 의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하얀 가운은 병약한 소년에게 곧 치유의 희망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힘들게 시작된 고교시절, 호흡기 증상은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심해졌다. 제대로 치료를 받아보자는 생각에 훗날 모교가 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만난 분이 고(故) 한용철 선생님이다. 그는 내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던 날 병원장으로 졸업식장에 나오셔서 친히 내 손을 잡아주셨다. 미래에 존경하는 스승이 될 분을 고교시절 내과병동에서 주치의로 처음 만난 것이다.

입원한 뒤에도 병실의 불을 밝히고 공부하던 내가 기특했던지, 선생님은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셨다. “여기 들어와서 의사가 되면 내 병을 고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들어만 와”라면서 환히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인자하신 의사선생님의 모습과 달리 그 시절의 의학은 차갑기만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내가 받은 것은 진단뿐이었다. 치료법이 없는 질환을 진단하는 과정에 몸은 더 황폐해져갔다. 아마 그때가 내 생애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당시의 기관지확장증 진단법은 무시무시했다. 어떻게 그런 진단법을 만들어냈는지 의사가 된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은 CT 촬영으로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지만, 그때는 요즘 위장관 사진을 찍을 때 흔히 들이켜는 하얀 색깔의 조영제를 기도를 통해 폐 속으로 쏟아넣고 기관지확장증 여부를 판단했다.



조영제가 기관지를 타고 흘러들어가면 자연스레 기침이 나온다. 의사들은 기침을 참으라고 한다. 기관지를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기침을 하면 안 된단다. 의식을 잃을 만큼의 고통이 몰려와, 촬영을 마치고 나면 기진맥진 상태가 된다. 그런 다음에는 기침을 해서 조영제를 뱉어내라고 한다. 기침을 하면 하얀 조영제가 쏟아져 나온다. 검사를 받으면서 이미 탈진 상태가 됐는데, 그 기력에 기침을 하라고 한다. 며칠 터울을 두고 양쪽 폐를 촬영했는데,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하셨다.

이런 진단법은 환자를 단순한 객체로 생각하는 일방통행적 의료철학의 산물이다. 진단 결과에 따라 치료법에 큰 차이가 난다거나 기존의 치료법에 변화를 줘야 한다면 모를까, 치료법도 제대로 없는 질환에 정밀한 진단만 해서 뭘 하자는 것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치료법이 없다”

서울대병원에 다녀온 후 나는 앞으로 의사가 되면 내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고교시절을 보냈다. 고교 3년간 내가 다닌 곳은 학교, 독서실, 병원뿐. 내 고교시절은 투병과 학업이 전부였다. 3년 동안 극장 한 번 안 갔다면 요즘 젊은 친구들은 믿을 수 있을까. 어머니는 학교로 도시락을 실어 나르셨고 나는 공부에만 매달렸다. 늘 병원을 드나들며 항생제 주사를 달고 살았지만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주위의 많은 사람이 내가 고등학교 3년을 못 버틸 것이라고 염려했지만, 나는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붙들고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나는 그토록 꿈꾸던 의사가 된다는 희망으로, 그래서 이제 내가 짊어진 난치의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들떴다. 관악에서 보낸 예과 시절은 고통을 잊을 수 있게 할 만큼 꿈이 차오르던 시절이다. 그런데 예과 2학년, 한창 즐거운 캠퍼스 생활에 젖어갈 무렵 내 가슴엔 긴긴 세월 씻기지 않을 생채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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